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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외교·안보 지식인 죄다 자주파라는 게 문제” [+영상]

[여의도 머니볼] 민주당의 고약한 딜레마, 시진핑의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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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3-07-2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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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하이밍 파동, 뭐가 문제냐는 반응”

    • “이재명, 운동권 기반 대외 인식 가져”

    • 탈냉전 데탕트에 발목 잡힌 韓 진보

    • 중국發 ‘대만 반도체 위기’ 임박했거늘…

    • 美中 양극? 앞으로도 美 1극 체제!

    • 젊을수록 北·中에 호감도 낮은 이유

    [+영상] 싱하이밍에 한방 먹은 민주당, 중국 어이할꼬



    6월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에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와 만나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6월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에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와 만나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더불어민주당 내에는 ‘싱하이밍 파동’이 왜 문제인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일이 터지고 내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단체대화방 몇 군데에 ‘이재명 대표가 큰 실수를 한 것 같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대화방 참여자는) 민주당 의원들과 원외 자문그룹 등 많다. 그랬더니 반응이 ‘뭐가 문제냐’라더라. 이재명 대표가 외교·안보와 관련해 등장한 세 가지 장면이 있다. 첫 번째는 방한한 미국 상원의원(존 오소프)을 만나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언급한 거다. 두 번째는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쳐들어갔는데,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초보 정치인’이기 때문이라 말한 것이다. 세 번째가 ‘싱하이밍 파동’이다. 하나같이 운동권의 세계관이다.”

    최근 활발히 활동하는 민주당의 정책통 인사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태를 복기하자.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는 6월 8일 이재명 대표를 대사관저로 초청해 “미국이 전력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 속에 (한국) 일각에선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데 베팅을 하는 것 같다”며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 장면을 유튜브로 생중계했다. 정무적 판단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꼴이다. 한데 당내에 위기감이 없었다는 게 앞선 정책통 인사의 발언 요지다. 어떤 망탈리테(mentalit´e·집합적 무의식의 총체)가 개입했다고 봐야 한다. 그가 언급한 운동권 세계관의 고갱이는 ‘반미·자주’다.

    北·中에 유화적이고 日에 강경한

    탈냉전 이후 민주당의 대외 노선은 명확하다. 북한과 중국에는 유화적이고 일본에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민족주의적 성향이 짙게 묻어 있다. 한미관계에서도 자주외교 원칙을 천명했다. 반대로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계열 정당은 미국과 일본에 유화적이고 중국과 북한에 경계심을 나타냈다. 한국 현대사를 통틀어보면 국민의힘의 노선이 주류에 가깝다. 다만 소련이 붕괴한 탈냉전 이후에는 민주당의 노선이 그 나름대로 각광을 받았다. 국제적인 데탕트(화해) 무드와 민주당의 노선이 절묘하게 포개졌다. 대포가 아니라 대화가 쓰임새를 발휘하던 시기다.

    보수도 데탕트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1992년 노태우 정부에 의해 전격적으로 한·중수교가 이뤄졌다. 양국 간 경제협력의 규모와 범위가 비약적으로 커졌다. 30년 간 한·중 교역은 약 47배가 늘었다. 2021년 기준으로 양국 간 교역액은 3000억 달러를 넘겼다. 중국이 한국의 최대 교역국으로 자리매김한 건 당연한 일이다.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을 통해 남북관계에도 일대 전환기가 마련됐다. 대북 강경 노선보다는 대북 화해협력 노선이 헤게모니를 움켜쥐었다. 그러니 민주당의 대중·대북 유화 노선이 실리적으로도 득이 되는 일이었다.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이 수교를 맺을 때의 중국과 지금의 중국은 위상이 다르다. 세계적인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교수는 제2차 세계 냉전(Cold War Ⅱ)이라는 표현을 쓴다. 과거 미국과 소련 사이의 제1차 세계 냉전에 이어 미·중 사이에 2차 냉전이 발발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역시 2차 냉전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퍼거슨 교수는 이 전쟁을 6·25전쟁에 비유한다. 5월 1일 후버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라온 퍼거슨 교수 인터뷰(Cold War II: Niall Ferguson On The Emerging Conflict With China) 중 일부 내용이다.

    The war in Ukraine is the first hot war of Cold War II. And just as the Korean War was the first hot war of Cold War I, it’s the moment of revelation in which people in the United States begin to see that this is serious. Remember, Putin would not have invaded Ukraine without a green light from Xi Jinping. He would not still be able to prosecute his war without the substantial economic support he gets from trade with China.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은 2차 냉전의 첫 번째 뜨거운 전쟁이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1차 냉전의 첫 번째 뜨거운 전쟁이었던 것처럼, 미국인들이 이것의 심각성을 알기 시작한 계시의 순간이다. 푸틴은 시진핑의 승인이 없었다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라. 그는 중국과의 무역에서 얻는 실질적인 경제적 지원 없이는 여전히 그의 전쟁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1962년 쿠바에 중거리 탄도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던 소련과 이를 막으려는 미국 사이에 갈등이 불거졌다. 흔히 ‘쿠바 미사일 위기’라고 한다. 현대사에서 핵전쟁에 가장 근접했던 시기다. 퍼거슨 교수는 중국이 대만에 침공할 가능성을 진단하면서 쿠바 미사일 위기를 언급한다. 세계 최고의 시스템 반도체 기업인 TSMC가 대만에 있다는 점을 들어 “대만 반도체 위기”라는 표현도 쓴다.(I think we could get to 1962 a lot faster than they did in Cold War I, and we’ll call it the Taiwan semiconductor crisis.)

    “美 1극 체제에서 우리의 선택은 자명”

    중국과 대만 간 무력전이 발발하면 한국에도 남의 일이 될 수 없다.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장 역시 중국이 5년 내로 대만에 군사 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그는 “신냉전 구도로 가는 건 막아야겠지만,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고 북한이 무력행사에 나서면 (동아시아에) 두 개의 전선이 형성된다. 그럴 경우 한국이 전략적 모호성을 취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관련 기사: 신동아 7월호 ‘제국이 세계를 운영한다면 중국보다는 미국이 낫다’) 민주당 내에서도 대만 문제에 관해 입장을 미리 정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실리적으로만 따져도 중국을 택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미·중 간 ‘힘의 격차’ 때문이다. 여기서의 힘은 비단 군사력만을 뜻하지 않는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나는 신냉전이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 세계화가 돼 있어 진영이 구축되기도 어렵고, 양 진영이 절연해 각자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 또 진영을 구축하려면 최소한의 이데올로기적 정합성이 있어야 하는데, 자유주의는 민주와 자유라는 가치가 있어 뭉칠 수 있지만 권위주의는 절대 뭉칠 수 없다. 그리고 중국이 미국과 상대할 한 축이 될 능력이 있을까. 나는 미·중 양극 체제가 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싱하이밍 대사의 발언에서 보듯 편을 가르고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미국이 1극 체제로 가는 한 우리의 선택은 자명하다. 물론 먼저 나서서 선택할 필요는 없다. 정 선택을 강요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중국이 소련의 역할을 대신한 2차 냉전이라고 보건, 미국 1극 체제라고 보건 탈냉전 데탕트 구도는 무너지고 있다. 화해와 협력에 방점이 찍힌 대외 노선이 힘을 받기 어렵다. 국민의힘보다는 민주당에 위기일 수밖에 없다. 유권자 사이에는 반중(反中) 정서가 확산한다. 민주당 처지에서는 상황이 고약하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이 한국리서치 액세스 패널(2020년 10월 말 기준 전국 62만여 명)을 활용해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2021년 11월 8~10일 실시한 조사를 보자. 중국에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다는 응답률이 73.8%로 일본에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다는 응답률(63.2%)보다 높다. ‘중국의 부상이 한국의 경제적, 안보적 이익’에 ‘위협’이라는 응답자는 69.2%로 ‘기회’를 택한 응답자(21.9%)를 크게 앞섰다.

    이번에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1000명을 대상으로 국민이 바라는 신정부의 경제외교안보 정책을 조사한 결과를 보자. 이 자료는 대선 직후인 2022년 4월 4일 공개됐다. 그 결과, 한·중관계에 단기적인 어려움을 겪더라도 한국 정부가 주요 갈등 현안에 대해 당당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84.9%가 찬성했다.

    마지막으로 4월 18일 한국리서치가 발표한 ‘주변국 호감도’ 조사다. 조사 대상자들에게 한반도 주변 5개국에 대해 평소 느끼는 감정을 0도에서 100도 사이(0에 가까울수록 차갑고 부정적인 감정, 100에 가까울수록 뜨겁고 긍정적인 감정)로 표기하게 했다. 미국에 대한 감정온도가 57.2도로 가장 높다. 이어 일본(34.9도), 북한(27.3도), 러시아(25.5도), 중국(25.1도) 순이다. 중국에 대한 감정이 ‘김정은의 북한’은 물론 ‘푸틴의 러시아’보다도 낮다.

    자세히 보면 재밌는 대목이 있다. 젊을수록 북한과 중국에 대한 호감도가 낮았다. 18~29세 응답자의 북한 호감도는 22.3도, 중국 호감도는 15.1도다. 냉전시대에 자란 60세 이상의 북한 호감도(30.3도)와 중국 호감도(31.8도)보다 도드라지게 낮다. 대신 이들은 전 세대를 통틀어 미국(62.3도)과 일본에 대한 호감도(42.4도)가 가장 높다. 30대에서도 북한 호감도는 25.9도, 중국 호감도는 20.2도에 그쳤다. 러시아에 대한 호감도(22.1도)는 전 세대에서 가장 낮다.

    20·30대는 자유와 민주를 공기처럼 누리고 자랐다. ‘민주주의 세대’라는 말로 갈음할 수 있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에 대한 비호감도가 큰 데서 나타나듯 권위주의 체제에 반감이 크다. 중국의 경우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이후 패권주의 색채가 짙어졌다. 따라서 20·30대는 미·중 사이의 실리외교라는 말에 쉽사리 설득당하지 않는다. 숫자가 그렇게 웅변한다.

    관성대로 가면 여론과 불화

    탈냉전시대에 보수는 냉전시대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과 북한에 공세적 레토릭을 쏟아내면서 대중의 정서와 멀어졌다. ‘수구’라는 오명도 들었다. 민주당의 대외 노선이 ‘세련됐다’는 평을 받았다. 2차 냉전 시대에 이르자 민주당의 대중·대북 레토릭이 고루하다는 평을 듣는다. 세계질서가 달라졌는데, 수권을 노리는 정당이 과거 세계관에 발목이 잡혔다. ‘싱하이밍 발언 파동’이야말로 대중의 주파수와 따로 움직이는 민주당의 현주소를 반영한다. 노선의 재조정도 쉽지 않다. 세계관을 만드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앞선 민주당 원외 정책통 인사의 말이다.

    “정당의 노선에는 지식인의 저변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민주당 쪽의 진보 성향 외교·안보 지식인 사이에는 여전히 자주파가 주류다. 죄다 ‘반미 자주파’ 내지 ‘균형자론 자주파’라는 게 문제다. (현 노선이) 오래간다고 봐야 한다.”

    이것은 민주당 처지에서 거대한 딜레마다. 관성대로 가면 여론과 불화한다. ‘미래 유권자’인 청년 세대의 정서도 거스른다. 자칫 외교안보에서 ‘노년 진보’에 의존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시대의 조류에 몸을 맡기려면 대대적인 인적 혁신이 필요하다. 탈냉전 시기 문법이 익숙한 지지층도 설득해야 한다. 어느 쪽이건 초고난도 방정식이다. 민주당이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숙제에 직면했다.

    *이 기사에 나온 조사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각 기관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신동아 8월호 표지.

    신동아 8월호 표지.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1986년 제주 출생. 학부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상아탑 바깥으로 나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자, 미디어업계와 재계를 취재하며 경제기자의 문법을 익혔습니다. 2018년 6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신동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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