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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지사→대통령’의 길… 이재명이냐 김동연이냐 [+영상]

[여의도 머니볼⑫] 보수‧노년층 주목받는 민주당 잠룡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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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3-07-28 14: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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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 김동연의 길



    오늘 조명할 인물은 김동연(66) 경기도지사입니다. 최근 김 지사가 윤석열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일이 늘고 있습니다. 7월 12일에는 경기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양평 고속도로’ 백지화 논란에 대해 “비상식적인 ‘국책사업 백지화’를 전면 철회하고 가장 빠르게 사업을 추진할 것을 강력 요구한다”고 했는데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두고는 “제가 부총리였다면 대통령에게 해임을 건의했을 정도로 상식적이지 않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7월 20일 공개된 ‘한국일보’ 인터뷰에서는 “국정 난맥상의 원인을 민심에서 찾아야 하는데 민심이 아니라 ‘윤심’만 찾고 있다”고 했고요. 이보다 앞서 6월 12일 공개된 ‘동아일보’ 인터뷰에서도 “윤석열 정부는 정치, 외교,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흑백논리를 적용하며 대한민국을 더 작아지게 만들었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김 지사는 1982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 생활을 시작했고 2018년 12월 경제부총리에서 퇴임했습니다. 36년의 시간 중 아주대 총장 재임 시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인생을 직업 관료로 보냈습니다. 보수와 진보 정권을 넘나들며 요직을 맡았고요. 2021년 9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정계에 발을 들였으니 정치인으로 불린지는 채 2년도 되지 않았죠. 그런 김 지사가 취임 1주년(2023년 7월 1일)을 즈음해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겁니다.

    두 경기지사가 받은 성적표 색채 달라

    김 지사가 목소리를 낼 동력이 있습니다. 한국갤럽이 6월 29일 공개한 2023년 상반기 광역자치단체장(시‧도지사) 직무 수행 평가 결과를 보겠습니다. 조사기간은 올해 1월부터 6월이고요.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을 택했습니다. 평균 응답률은 9.5%로 시중에 쏟아지는 여론조사와 비교하면 결코 낮지 않습니다. 전국 성인 2만4029명을 대상으로 해서 표본도 많습니다. 특히 경기도의 경우 조사대상이 6331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습니다.



    이에 따르면 김 지사의 2023년 상반기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평가는 57%입니다. 여야 텃밭인 TK(대구‧경북)와 호남권의 광역자치단체장들을 제외하면 긍정평가 비율이 가장 높습니다. TK에 비하면 야당에 대한 민심이 우호적이지만, 전반적으로는 여당 지지 성향이 강한 PK(부산‧울산‧경남)와 비교하면 어떨까요. 김 지사가 얻은 긍정평가 비율이 박형준 부산시장(55%), 김두겸 울산시장(54%), 박완수 경남지사(50%)를 앞섰습니다. 수도권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긍정평가가 50%, 유정복 인천시장의 긍정평가가 47%였고요.

    주목할 지표는 부정평가 비율입니다. 김 지사의 직무 수행에 대한 부정평가 비율은 17%였는데요. 김영록 전남지사(14%)를 제외하면 전국에서 가장 낮습니다. 70대 이상에서 부정평가 비율이 11%로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낮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중도성향 응답자 중에서는 긍정평가 비율 58%, 부정평가 비율 16%로 전체 평균에 수렴했습니다. 보수성향 응답자에서도 긍정평가 비율 49%, 부정평가 비율 25%로 나와 긍정평가 비율이 두 배 가까이 높았고요. 한국갤럽은 “대부분의 응답자 특성에서 ‘잘하고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고, 연령대나 정치적 성향에 따른 차이도 크지 않아 두루 호평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김 지사의 전임 경기지사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사 시절 얻은 성적표와 비교하면 더 흥미롭습니다. 같은 한국갤럽 조사 기준으로, 2019년 상반기 이재명 경기지사가 얻은 직무수행 긍정평가 비율은 45%였습니다. 부정평가 비율은 36%였고요. 50대와 60대 등 고령층으로 갈수록 긍정평가 비율이 낮았고요. 보수성향 응답자에서는 부정평가 비율이 51%였습니다. 물론 이재명 지사의 경우 이듬해 코로나19 대응이 호평을 받으면서 직무수행 긍정평가 비율이 70%대로 치솟는 반전을 기록하긴 했습니다만, 여기서는 취임 1주년을 즈음한 조사만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 때문에 이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숫자가 말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이재명‧김동연 두 사람이 같은 시기 얻은 성적표의 색채가 다르다고요. 임기 초 이재명의 경기도정은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으로부터 힘을 받았습니다. 40대(53%), 화이트칼라(51%), 학생(52%) 층에서 직무수행 긍정평가가 과반을 넘긴 점이 이를 방증하죠. 대신 농‧임‧어업과 자영업, 가정주부 등에서는 부정평가 비율이 긍정평가 비율을 웃돌았습니다. 반면 임기 초 김동연의 경기도정은 농‧임‧어업과 자영업, 가정주부 등에서도 부정평가 비율이 20%를 밑돌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확장성’이 돋보입니다.

    김 지사의 메시지에서도 전임 지사와의 차별점이 엿보입니다. 그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취임 1주년의 성과를 묻는 질문에 3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는데요. 먼저 ‘돈 버는 도지사’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진보는 경제 성장에 유능하지 않다는 관념을 깨려고 했다”고 하면서요. 나머지 키워드는 ‘기후 도지사’와 ‘글로벌 도지사’입니다. 이재명 대표가 경기지사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지난 1년 경기도는 공정‧평화‧복지의 기틀을 닦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며 “정치의 본질은 억강부약(抑强扶弱)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과는 여러모로 다르죠.

    평등·평화와 친환경·신성장

    두 사람의 메시지는 각기 다른 지지층을 상정합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대선 이후 민주당 새로고침위원회가 발간한 대외비 보고서 ‘이기는 민주당 어떻게 가능한가’를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고서는 3000명의 패널이 응답한 자료를 모아 대한민국 유권자를 6개 그룹으로 분류했는데요. 평등·평화 그룹(37.7%), 능력주의 보수 그룹(21.5%), 친환경·신성장 그룹(18.8%), 반권위·포퓰리즘 그룹(9.3%), 민생 우선 그룹(6.4%), 배타적 개혁 우선 그룹(6.3%)입니다.
    대외비 보고서이기 때문에 구체적 내용은 극히 제한적으로만 보도됐는데요.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정치학자 이관후 박사가 ‘피렌체의 식탁’에 지난해 9월 2일 기고한 글(‘한국 유권자, 보수-진보 이분법은 끝났다’)을 참고해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덩어리가 큰 평등·평화 그룹(37.7%)은 복지와 노동, 민족주의, 균형외교 등 한국 진보의 전통적 어젠다를 지지합니다. 30~50대 여성이 많고, 남성의 경우 50대가 중심이라고 하는데요. 지역적으로는 서울, 경기, 호남이 많습니다. 대신 환경이나 젠더 등의 이슈에는 별반 관심이 없습니다.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이죠. 취임 1주년 당시 이재명 경기지사가 내놓은 메시지에 크게 호응할 그룹이기도 합니다. 능력주의 보수 그룹(21.5%)에는 60대 이상이 가장 많고 서울과 영남, 고학력자·경영사무관리직이 주를 이뤘습니다. 국민의힘 핵심 지지층입니다.

    ‘경기지사 김동연’의 메시지에 가장 크게 호응할 그룹은 친환경·신성장 그룹(18.8%)입니다. 이들은 경제 성장에 방점을 찍되 국가가 복지를 통해 일정하게 개입하는 것에 찬성합니다. 시장을 중시하지만 혁신으로 대변되는 신산업이 필요하다고 보고 환경 이슈에 진보적입니다. 투자와 기후, 글로벌 등을 강조한 김동연 지사의 메시지와 상당부분 겹치죠. 경제부총리 시절 김동연 지사의 주요 브랜드가 ‘혁신성장’이기도 했고요. 친환경·신성장 그룹의 경우 능력주의 보수 그룹과도 연합할 수 있고 때에 따라 평등·평화 그룹의 손을 들어줄 수도 있습니다. 당파성이 약하지만 분명한 지향점을 갖춘 스윙보터 유권자 집단입니다.

    논리적으로만 보면, 김 지사가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평등·평화 그룹)에 스윙보터(친환경·신성장 그룹)까지 아우를 수 있을 듯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평등·평화 그룹과 친환경·신성장 그룹은 복지에 전향적이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스탠스를 취하지만, 노동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릅니다. 정치공학적으로만 따져도, 민주당 내에서 헤게모니를 쥐기 위해 먼저 공략해야 할 대상은 평등·평화 그룹이지 친환경·신성장 그룹이 아니고요.

    지금이야 행정가로서 김 지사의 메시지가 주목받지만, 차기 대선 국면에서 같은 메시지 전략이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재명 지사 역시 2018년 지방선거 당시만 해도 경기 성남시 분당구와 경기 과천시 등 보수 지지세가 강한 지역에서 적잖은 격차로 이길 만큼 ‘확장성’이 큰 후보였습니다. 성남시장 시절에도 ‘일 잘하는 행정가’ 이미지로 보수층의 관심을 끌었고요. 그런 그도 대권을 겨냥하면서부터는 지지층에 착근하기 위한 메시지를 늘렸습니다. 기본소득‧기본대출과 같은 공약에 더해, “친일 청산을 못하고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2021년 7월 2일)고 발언하기도 했고요.

    ‘양당구조에 중독’된 정치판

    유권자 사이에서 정서적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점도 변수입니다. 가상준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쓴 ‘2022년 대통령 선거 투표참여와 정서적 양극화: 부정적 투표(Negative Voting)를 중심으로’를 보면 20대 대선에서 부정적 투표(반대 정당과 후보에 대한 부정적 태도에 의해 강하게 추진되는 투표선택) 비율은 31.7%에 달했습니다. 이는 조사대상이 된 17대(19.1%), 18대(21.5%), 19대(19.1%) 대선과 비교해 도드라지게 높아진 수치죠.

    논문을 쓴 가 교수는 이에 대해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상대 정당 및 후보자에 대한 혐오가 중요한 투표선택 기준이었다”고 썼습니다. 시니컬하게 표현하면, 지금의 한국 선거는 상대에 대한 혐오를 요령 있게 동원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인 겁니다. 이런 구조에서 외연 확장에 나서는 건 당위적으로는 필요하나 실리적으로는 모험수에 가깝습니다.

    김 지사는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차기 대선 도전은 (제가 아니라) 국민께서 결정하실 일”(동아일보 인터뷰)이라고 답했습니다. 과연 그는 민주당 바깥의 스윙보터에 구애하는 대권주자로 발돋움할 수 있을까요. 김 지사는 2021년 9월 대선 출마선언문에서 “나라가 둘로 쪼개져 싸우고 있다”면서 “언제까지 ‘양당구조에 중독’된 정치판을 지켜만 보겠느냐”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양당 중 한곳에 몸을 맡겼지만, 그에 대한 여론의 지형을 보면 유권자들은 여전히 ‘양당 구조’에 얽매이지 않는 정치를 바라는 듯합니다. ‘김동연의 길’을 주목해야 할 이유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서 확인해 주십시오. ‘구독’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이 기사에 나온 조사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각 기관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됩니다.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1986년 제주 출생. 학부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상아탑 바깥으로 나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자, 미디어업계와 재계를 취재하며 경제기자의 문법을 익혔습니다. 2018년 6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신동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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