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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선 그래도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축구에선 그래도 희망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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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파는 분명 검증된 최고의 선수들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소속팀의 베스트는 아니다.

경기에는 뛰지 못하고 벤치만 달구어서야 경기감각이 살아 있기 어렵다. 소속팀 경기에서 뛰어 피곤한 몸으로 장시간 비행을 하면 컨디션이 좋을 수 없다. 이번 한일전에서 전자는 구자철이었고, 후자는 기성용이었다. 경기 당일 최고의 컨디션을 보이는 선수가 베스트 일레븐이 되어야 한다. 해외파니까 무조건 베스트멤버로 쓴다면 국내 K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대표팀 명단에 이름만 올려놓는 들러리가 될 수밖에 없다.

해외파의 결장 및 부진에 덧붙여 국내에서의 경기조작 파문으로 핵심 수비수인 홍정호(제주)를 쓸 수 없는 등 이래저래 악재가 쌓인 결과가 한일전 참패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일본축구가 아무리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섰다고 해도 한국축구가 세 골이나 먹고 영패를 당할 만큼 약체는 아닐 테니까. 하지만 이제 일본축구가 한국축구에 한 발 앞서 있다는 점은 FIFA 랭킹에서 보듯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공을 내 것으로 만들고, 상대에게 빼앗기지 않게 간수하고, 정확하게 이어주는 것이야말로 축구의 기본기다. 볼 키핑과 컨트롤, 패스가 제대로 돼야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다. 슈팅 능력은 공격수와 수비수 간에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볼 키핑, 컨트롤, 패스는 공격수든 수비수든 공통으로 익혀야 할 기본기다. 기본기가 먼저이고 투지와 정신력은 그 다음이다. 한국축구는 그동안 투지와 정신력으로 일본축구를 꺾어왔다. 그러나 축구기술에서 밀리면서 일본에만은 질 수 없다는, 비장한 정신력으로 언제까지 상대를 이길 수는 없는 일이다.

한국축구는 기본기에서 일본에 뒤진다. 포지션별로 최고 선수들로 구성된 국가대표 팀이건만 여전히 엉뚱한 패스 미스를 남발한다. 볼을 키핑하기 위한 첫 터치부터 부드럽지 못하다 보니 패스의 질이 떨어진다. 특히 수비에서 공격으로 내주는 패스가 상대에게 잘리면서 곧바로 실점 위기를 맞는다. 불필요하게 공을 몰다가 빼앗겨 스스로 공격의 맥을 끊고 상대의 역습을 자초한다. 좌우 측면에서 올리는 크로스도 대체로 높이와 속도가 맞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열 번의 슈팅에서 골문을 향한 유효슈팅은 한두 개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 한국축구는 수십 번의 슈팅을 하면서도 골을 넣지 못하다가 상대방이 날린 단 한 번의 슈팅에 골을 먹고 패배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맨땅에서 볼을 차야 하는 질 낮은 축구 인프라에, 초중고에서부터 무조건 상대 팀을 이기고 봐야 한다며 체력과 투지를 우선시하는 일선 지도자들에게서 기술축구가 나올 리 없었다.



축구에선 그래도 희망을 찾을 수 있다
全津雨

1949년 서울 출생

동아방송 기자

월간 신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실장·대기자

저서 : 작품집 ‘하얀 행렬’ ‘서울의 땀’, 칼럼집 ‘역사에 대한 예의’


2002년 월드컵 이후 한국축구의 인프라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유소년 클럽축구가 활성화되면서 어린 꿈나무들의 축구기술 수준도 높아졌다고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기본기가 부족하다. 16강에서 스페인과 연장전 끝에 승부차기 7대 6으로 분패한 20세 이하(U-20)월드컵 선수들은 모두 ‘월드컵 키드(2002년 월드컵을 보고 자란 선수들)’로 그전에 비한다면 훨씬 나아진 환경에서 축구를 배웠을 터다. 그러나 이들 중 김경중과 백성동, 김영욱 등 네다섯을 제외하고는 볼 키핑, 컨트롤, 패스 등이 매끄럽지 못했다. 수비에서 공격으로 이어지는 패스의 질이나 슈팅은 여전히 선배 세대의 그것들처럼 거칠고 부정확했다. 1승2패로 16강에 턱걸이한 뒤 우승후보 중 하나인 스페인과 승부차기까지 몰고 간 정신력과 투지는 높이 사야 하겠지만 그것만으로 우리 청소년 축구가 세계적 수준이 됐다고 자찬(自讚)할 수는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기본기가 떨어지는 축구로는 세계무대에서 분패할 수는 있어도 낙승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축구에서는 내일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정치에서는 좀처럼 미래의 희망을 찾기 어렵다. 품격과 도덕성, 상식과 균형감각으로 내일을 준비하는 새로운 정치 리더십의 출현은 정녕 기대할 수 없는 것인가.

신동아 2011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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