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수는 늘 곁에 있다고 하지만 요즘 우리 대중가수들을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 잠깐 새 앨범을 가지고 나타나 피치를 올리고는 이내 모습을 감춰버린다. 가요계를 주름잡는 톱 클래스 가수들이 노래부르는 장면은 바로 이 ‘활동기간’에만 볼 수 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가수 조성모를 볼 수 있는 때는 1년 중 9월 한 달이다. 올해로 만 3년 활동한 그는 지금까지 네 장의 창작 독집을 모두 9월에 발표했다.
이 기간에 다른 가수들은 철저하게 조성모를 피해간다. 괜히 신보를 발표했다가 ‘조성모 효과’에 눌려 앨범 판매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9월은 조성모를 위한 달로 비워두어야 한다. 시즌 내내 힘을 못 쓰던 과거 미국 프로야구 선수 레지 잭슨이 유독 10월 월드시리즈에서는 방망이가 불붙어 ‘미스터 옥토버(Mr. October)’로 불렸던 것을 응용한다면, 조성모는 ‘미스터 셉템버(Mr. September)’다.
조성모가 ‘9월의 사나이’임을 여실히 증명한 때는 지난해였다. 2000년 9월은 바로 4년간 미국에 체류하던 서태지가 컴백했던 때다. 신문은 온통 돌아온 서태지 얘기뿐이었다. 온 일간지와 방송이 그의 컴백을 비중 있게 다루는 통에 ‘이제 서태지는 가수가 아니라 사회 명사’라는 말까지 나왔다.
어떤 가수도 그를 이길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조성모는 이를 비켜가지 않았다. 서태지가 컴백하던 그때 용감하게 신보를 발표해 정면으로 서태지와 붙었다. 사회적 파급력에서 서태지 컴백 임팩트가 우세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조금은 위험한 승부였다.
나중에 발표된 연말 판매량 집계에서 서태지는 110만장에 그친 반면, 조성모는 210만장에 달했다. 앨범 판매만 놓고 볼 때 조성모는 완벽하게 승리했다. 바로 뒤에 나온 H.O.T.도 조성모를 이기지 못했다. 이른바 ‘빅3’ 대결에서 조성모가 당당히 챔피언에 오른 것이다. 서태지도 H.O.T.도 깨지 못한 조성모의 9월 아성이었다.
조성모를 얘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대목은 아마도 음반판매량일 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단연 기록의 사나이다. 그는 1998년 데뷔앨범 ‘투 헤븐’으로 18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발라드 가수의 데뷔작이 100만장을 넘긴 최초의 사례였다. 다음 두 번째 앨범 ‘슬픈 영혼식’은 240만장이 팔렸다. 일각에서는 264만장으로 한국 기네스북에 오른 김건모의 앨범보다 더 많이 나갔다고 주장하지만 공식화되지는 않았다.
조성모의 가창력 논란
이어서 겨울에 낸 리메이크 앨범에서는 ‘가시나무’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175만장이 팔렸다. 서태지마저 물리친 ‘아시나요’가 수록된 3집 ‘렛 미 러브’가 210만장이었으니 앨범 네 장이 내리 150만장을 넘긴 것이다. 다 합치면 800만장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수치다. 데뷔한 지 2년 반이 채 안 된 가수가 거둔 실적이라서 더 경이롭게 느껴진다. 그리고 올해 9월 다시 조성모의 신보 ‘노 모어 러브’가 발표되었다.
놀라운 것은 선주문이 120만장을 넘겼다는 사실이다. 조성모측도 이에 맞춰 발매 첫날에 100만장을 시장에 풀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관심사는 시시한(?) 100만장 수준이 아니라, 200만장을 넘겨 개인 통산 1000만장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있다. 아직 판가름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판매 그래프 추이로 볼 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조성모는 100만장 신화를 만들어낸 이전의 블록버스터들, 그러니까 신승훈 서태지 김건모 룰라 H.O.T. 등과 견줄 때 데뷔가 가장 늦었음에도 최단기에 가장 많은 앨범판매고를 수립하면서 그들을 거뜬히 추월했다.
다른 가수들은 밀리언셀러로 시장을 호령하는데 시간이 걸렸거나 중간에 약간은 저조한 실적의 앨범이 끼어 있는 반면, 조성모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슬럼프도 없었다. 가공할 행진이며 급작스럽고 스피디한 성공이다. 가히 조성모 현상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러한 엄청난 성공에도, 그 현상에 대한 확실한 진단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조성모의 무서운 행진을 알면서도 왜 그렇게 인기가 높은지에 대해 전문가들조차 확실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의 신승훈 서태지 김건모는 명백한 인기의 원동력이 있었다. 신승훈은 발군의 가창력이 있었고, 서태지 신드롬엔 그때나 지금이나 신세대를 담보하는 의식이 바탕에 자리하며, 김건모는 토털 엔터테이너의 자질을 갖고 팬들에게 어필했다. 또한 H.O.T.는 신승훈 서태지 김건모 이후 가요계를 점령한 10대들의 욕구와 희망을 견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조성모는 그들처럼 분명한 뭔가가 없다. 아니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얼마 전 한 중앙일간지 기자에게 조성모 현상에 대한 분석을 요구한 적이 있다. “글쎄요, 애매하죠”라는 게 그 기자의 첫마디였다. “왜 사람들이 조성모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서태지처럼 의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H.O.T처럼 누가 뭐래도 환호를 보내는 10대 팬들을 거느린 것도 아니고…. 김건모는 흑인음악시대를 이끌었고 신승훈이야 노래를 잘했습니다. 그런데 조성모는 솔직히 최고 스타다운 가창력을 갖춘 게 아니잖아요?”
조성모의 가창력에 관한 한 이런저런 상충되는 얘기들이 존재한다. 먼저 사람들로 하여금 애절함을 느끼게 하는 음색을 갖춘 것은 분명하다. 그 음색으로 그림을 그리는 듯 감정을 토해낸다. 음색이 호소력을 갖는 것이다.
팬들은 죽은 애인과 결혼식을 올린다는 내용의 노래 ‘슬픈 영혼식’을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조성모표’ 비가(悲歌)라느니 최루성 발라드라는 말은 모두 감상(感傷)적 청춘을 자극하는 그의 음색에서 나온 것이다.
사실 대중음악에서는 음의 높낮이나 음정보다 음색이 더 중요하다. 음역이 높지 않아 노래를 잘한다는 평가를 받지 못했으면서도 대중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음색으로 한시대를 풍미한 가수로는 남진이 있다.
서태지 역시 가창력의 소유자는 아니다. 팬들은 곡에 맞는 최적의 목소리라고 강변하지만, 그렇다고 노래솜씨가 빼어나다는 점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서태지가 구사하는 음악은 가창력만으로 결정되는 스타일은 아니다.
반면 조성모에게 가창력은 절대적이다. 발라드 가수이기 때문이다. 그는 감정표현이 중요한 발라드 음악을 가슴으로 전하는 독특한 음색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음은 견고하지 못하다. 이 점에서 감정을 잘 조절하면서도 탄탄한 소리를 들려주었던 신승훈과 차이가 난다.
조성모는 라이브나 녹음된 CD에서 더러 음이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원로 음악평론가 이백천씨는 조성모의 노래를 두고 “내공이 느껴지지 않는다. 더욱 공력을 다져 소리를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충고한다. 조성모의 매력적인 소화력보다는 부족한 노래솜씨 쪽에 비중을 두는 음악관계자들이 확실히 더 많다.
전문가들은 조성모가 성공한 이유를 가수 본연의 가창력보다는 다른 데서 찾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치밀한 홍보와 마케팅 전략, 즉 ‘작전의 승리’라는 것이다. 1998년 데뷔 당시 그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투 헤븐’이 라디오에서 호응을 얻고 있는데도 텔레비전에 출연하지 않았다. 물론 의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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