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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코드로 읽는 三國志 인물학

攻·守·速·遲·勇·德·剛·柔

21세기 코드로 읽는 三國志 인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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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것은 중국에선 예로부터 인재를 양성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서였다. 자연발생적으로도 인재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재란 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길러지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유능한 리더란 바로 그런 인재들을 찾아내 적소에 배치해서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의 소유자라고 봤다. 유비(劉備)가 삼고(三顧)의 예를 다해 공명을 군사(軍師)로 맞아들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고, 그랬기 때문에 유비는 유능한 리더로 평가받는다.

그렇다고 리더만 자신에게 필요한 인재를 찾아다닌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인재라 생각하는 자들이 자신의 포부와 능력을 펼칠 장(場)을 열어줄 리더를 선택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원소(袁紹)의 아래에 있다가 그로서는 안되겠다 싶어 구조를 찾아간 순욱(荀彧)의 경우가 그 좋은 예다.

공간적으로 장대하고 다양한 인재들이 풀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선 흑과 백의 이분법은 먹혀들지 않는다. 국지적 사고 또한 무용지물이다. 다면적 사고, 전방위 사고, 요즘 말로 해서 ‘글로벌 싱킹(global thinking)’이 요구된다. 그들은 인물을 논할 때 ‘그릇(器)’의 크기를 말하곤 하는데, 그것은 중국이 갖는 지리적 스케일과 다양한 인재를 포용해야 하는 현실적인 필요성을 인식한 결과였다.

그들이 ‘능력’이라 표현하지 않고 ‘그릇’이라 한 것은 승패를 가리는 것은 개인의 능력만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성공과 실패는 특정 개인의 능력과 운명, 그리고 우연이 어우러져 함께 만들어내는 그 무엇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그들에겐 하늘이 뜻이 아주 중요하다. 아무리 출중한 능력을 갖고 있다 해도 하늘의 뜻이 그 사람으로부터 멀어져 있다면 그는 결코 승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늘의 뜻이란 시대가 흘러가는 방향이고,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다름 아닌 민심이었으니 승자란 민심을 얻은 자를 일컫는 말에 다름 아니었다. 1841년 ‘영웅과 영웅숭배’를 쓴 영국의 사학자 칼라일이 출중한 능력을 가진 특정 개인을 영웅이라 칭하면서 어디까지나 개인에 초점을 맞춘 데(‘플루타르크 영웅전’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반해 중국인들은 특정 개인과 함께 그를 둘러싼 집단과의 상호관계에 초점을 맞춰 인물을 평가했다. 다시 말해 ‘관계’에 주목했던 것이다.



무예에 뛰어나고 학문에 식견이 있는 자는 그 분야의 대가일 수는 있겠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전문가일 뿐이다. 전문가는 전체를 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자는 재상은 될 수 있으나 천자의 재목으로는 부족하다고 보았다. 독불장군 또한 경계의 대상이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선 영웅이 경계의 대상일 수는 있었지만 칭송이나 숭배의 대상은 되지 못했다. 대신 어질고 덕 있는 인물이 숭배의 대상이 됐다. 그 덕을 이루는 요체가 ‘그릇’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눈에는 무능한 인물로 비치는 사람이 덕 있는 인물로 추앙받았던 데는 이런 정신적 배경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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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삼윤 < 문화비평가 >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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