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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하라, 그리고 성공하라

협상하라, 그리고 성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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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고시에이터’란 영화가 있다. 억울하게 살인자로 몰린 대니(새뮤얼 잭슨)가 누명을 벗기 위한 방편으로 인질을 잡자 협상전문가 크리스(케빈 스페이시)가 그와 협상을 벌이며 함께 사건을 해결한다는 줄거리다. 상대방 심리를 정확히 읽어내 적절한 화술과 태도로 협상에 임하는 영화속 대니 같은 협상전문가는 우리에겐 아직 낯선 존재다.

일본과의 어업 협상, 제일은행·대우자동차·하이닉스 매각 협상, 프랑스와의 외규장각 고문서 반환 협상, 우루과이라운드의 쌀시장 개방 관련 협상, 의약분업 관련 협상…. 우리는 국내 이익집단들간 협상은 물론 외국 정부 및 기업과의 협상에서 속시원한 결과를 이끌어낸 경험이 매우 드물다. 혹 성공한(?) 협상이라고 한다면 정치권에서 종종 볼 수 있던 이른바 ‘밀실야합’ 정도랄까.

봇물 이루는 ‘협상도서’

그러나 대내외적 환경은 우리에게 협상의 전문성을 점점 강하게 요구한다. 정치·경제·사회·문화의 트렌드를 파악하고 독자 수요를 예측하는 데 열심인 출판계가 그런 요구의 증대를 그냥 봐넘길 리 없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협상을 주제로 한 책들이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가장 최근에 나온 주목할 만한 책은 ‘한국인은 왜 항상 협상에서 지는가’(굿인포메이션)이다. 게임이론과 정보경제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 김기홍씨는 현재 산업연구원(KIET) 디지털경제실 연구위원으로 활동중이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이른바 내부협상의 중요성. 1992년 스위스 제네바의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본부 앞에서 한국 농민대표들이 삭발시위를 벌였다. 그곳에서 열린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의 주요 의제가 쌀시장 개방이었기 때문. 이 시위를 두고 한국정부와 언론은 ‘나라 망신시키는 추태’ 운운했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당시 정부와 언론의 그런 시각은 협상의 기초조차 모르는 무지의 소치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시위는 정부의 협상력을 강화시켜주기 때문이다. 적당한 부정적 여론은 오히려 협상 대표들의 입지를 강화시켜준다. 따라서 대외협상 이전에 내부에서 힘을 모아가는 과정, 즉 내부협상이 무척 중요하다. 구체적으로는 국내 이해당사자측에 협상정보를 미리 알려 동의를 구하거나, 협상에 비판적인 여론을 등에 업고 활용하는 일 등이 필요한 것이다. 외국과 협상할 때 자국내 이해당사자인 각계 대표들과 함께 참석해 조언을 구하고, 그것을 우회적인 압력수단으로 활용하는 미국이 그 좋은 예다.

협상은 흥정이 아니라 ‘과학’

기업활동을 사실상 협상의 연속이라고 볼 때,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이 펴낸 책을 번역한 ‘갈등을 창조적으로 푸는 협상의 기술’(21세기북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경영학자, 기업인, 회계사, 변호사, 컨설턴트 등 12명이 공동집필한 이 책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협상의 체계적 관리를 강조한 데 있다. 협상에 임하는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하지 않고 협상의 원칙과 과정을 관리해 기업 전체의 협상 역량을 높이는 한편 정기교육을 통해 전문 협상인력을 양성하고, 협상을 할 때마다 택했던 접근방식과 결과, 교훈 등을 데이터베이스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갈등이 심각해지면 마지못해 협상에 나서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타개해보려는 미온적인 태도에 대한 따가운 일침인 셈이다.

이쯤에서 그동안 우리에게 성숙한 협상문화가 부재했던 까닭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김기홍씨는 한국이 외교·통상 협상에서 패배하는 요인으로 합리적 협상 과정을 ‘흥정’이라며 터부시하는 한국적 협상문화, 중립적인 제삼자의 부재, 압력단체에 끌려다니는 정부의 협상력 부족, 냄비근성의 여론, 장기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협상가 등을 든다. 상명하복과 책임회피를 유발하는 권위주의, 흑백논리, 조폭식 해결방법, 비합리적 지역주의와 연고주의 등도 협상문화 낙후의 요인으로 꼽는다.

여기에 중요한 요인을 하나 덧붙이자면, 밀실 뒷거래로 상징되는 투명하지 못한 거래 및 의사결정 관행이 아닐까 한다. 합리적 협상의 자리를 향응과 금품이 대체해온 게 우리의 현실 아니던가. 이렇게 보면, 협상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최근의 현실은 비록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차원일지언정 우리 사회의 투명성이 조금은 높아졌음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협상에 임할 때 제로섬 게임, 즉 ‘너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란 식의 자세를 보이는 경우가 잦다. 상대방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내려는 자세로는 협상이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이 문제와 관련, 미국 최고의 스포츠 에이전트이자 협상가인 론 샤피로의 충고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샤피로는 1994년부터 2년간 벌어진 메이저리그 야구선수들의 역사적 파업사태를 해결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협상 세미나 및 컨설팅을 제공하는 샤피로 협상연구소(Shapiro Negotiat ions Institute)를 이끌고 있는 그가 집필한 책으로 ‘파워 오브 나이스: 협상의 새로운 강자’(미래의 창)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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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 < 출판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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