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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하라, 그리고 성공하라

협상하라, 그리고 성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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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피로에 따르면 협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최선의 방법은 어느 정도까지 상대방이 원하는 걸 얻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때문에 협상을 하면서 가장 주의할 사항은 다시는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돼서는 안된다는 것.

샤피로는 상대를 적으로 대하기보다는 앞으로도 계속 거래와 협상을 할 동반자, 나아가 친구로까지 만드는 것이 최고 수준의 협상전략이라고 한다. 이 경우 당장 내가 약간 손해보는 것 같아도 결국은 상대도 이기고 나도 이기는 윈-윈 게임이 될 수 있고, 장기적으론 내가 더 크게 이기는 결과까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샤피로는 그 실천방법으로 협상 상대의 말을 주의깊게 경청할 것,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데 노력할 것 등을 제시한다. 불굴의 의지마저 느껴질 만큼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며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보다는 부드러운 사람이 협상에 강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 책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협상하지 않는 게 상책일 때도 있다는 주장이다. 협상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협상목적을 잊고 협상가치가 전혀 없는 협상에 스스로 발목이 잡히는 일을 경계하라는 충고다. 결국 문제는 어떤 협상이 가치가 없으며, 또 언제 그만둬야 하는지 잘 판단하는 일이다.

이 문제에 대한 샤피로의 충고는 다음과 같다. 상대방이 당신에게 최저선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할 때, 상대방 제안보다 더 좋은 대안이 있을 때, 상대방이 거래 내용을 준수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 때, 그리고 단기수익보다 장기적 문제가 앞설 때 등이다.

협상은 자신과의 싸움



앞서 영화 ‘네고시에이터’를 언급한 바 있지만, 카터와 레이건 대통령 시절 대(對) 테러리스트 협상자문을 맡았던 세계적인 프로협상가 허브 코헨이 ‘협상의 법칙’(청년정신)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결코 예사롭게 넘길 수 없다. 지금도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며 미국 기업들을 대표해 협상활동을 벌이는 코헨은 이 책에서 풍부한 협상 사례들을 들려준다. 그 가운데 각별한 협상방식이 ‘메뉴제한 방식’인데, 1977년 크로아티아인들에 의한 TWA 소속 비행기 납치사건이 좋은 예다. 미국에서 납치된 비행기는 파리 드골공항에 착륙했다. 당시 프랑스경찰은 비행기 바퀴를 쏘아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선택범위가 제한된 최후통첩을 보냈다.

“지금 여기 미국경찰이 도착해 있다. 만일 투항해 미국경찰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간다면 길어야 2년 정도 복역할 것이다.” 납치범들에게 생각할 여유를 준 프랑스경찰은 다시 이런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체포한다면 너희들은 프랑스 법률에 따라 사형에 처해질 것이다. 어떻게 할지 결정하라.” 납치범들은 결국 투항했다.

구 소련과의 협상에 여러 차례 나섰던 코헨은 이른바 ‘협상에서 제한된 권한이 갖는 의미’를 실감나게 들려준다. 그에 따르면 조직간 협상에서는 조직의 최고 책임자가 직접 나서거나 협상자에게 전권을 일임하는 것은 위험하다. 어떤 조직이든 조직의 우두머리는 최악의 협상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코헨의 지적이다. 뛰어난 능력과 인내심을 갖췄더라도 광범위한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 협상에서 실패할 확률도 그만큼 높다는 것. 코헨의 이런 통찰은 협상이 상대방과의 싸움이기 이전에 자기 자신과의 싸움임을 시사한다.

지금까지 거론한 책들은 협상의 얄팍한 기법과 술수에 치중한 책들이 아니다. 구체적인 협상방법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협상에 임하는 사람이나 조직의 태도, 지켜야 할 원칙 등을 더 강조한다. 협상 전술보다는 전략, 전략보다는 원칙에 주안점을 둔 것이다.

‘협상의 예술’로서의 정치

지방선거를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대선을 앞둔 올해는 연중 내내 선거의 계절, 정치의 계절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여러 정파나 정치인들간 이합집산이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선거의 계절은 곧 협상의 계절이기도 하다. 밀실의 테이블에서 이뤄지는 음습한 정치거래 관행이 여전할 것인지 궁금하다. 그런 거래에 임하는 사람들에게 협상관련 도서들이 얼마만큼 도움을 줄지 모르지만, 어쨌든 비합리적 지역주의와 연고주의에 바탕한 거래는 진정한 의미의 협상이 아니다.

최고 수준의 정치는 곧잘 예술에 비견된다. ‘협상의 예술’로서의 정치를 보게 될 날, 정치인들의 공허한 수사(修辭)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상생(相生)의 정치를 볼 수 있을 날은 언제일까.

신동아 200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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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훈 < 출판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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