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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지독하면서도 정상적인 혼란

사랑, 그 지독하면서도 정상적인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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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사랑이란 첫눈에 무조건 반하는 경험이요, 두 사람이 눈길을 마주하는 순간 운명지워지는 경험으로 등장했으며, 결국엔 완벽한 축복 아니면 처절한 고통으로 끝맺는 하나의 모험으로 간주됐다. 이들 중세 귀족의 불륜적 게임을 모태로 한 낭만적 사랑이 부르주아 결혼제도 속으로 연착륙을 시도한 것을 일컬어 ‘사랑의 혁명’이라 한다. 이후 사랑과 결혼을 결합하려는 이데올로기는 산업화와 도시화에 힘입어 노동자 계급에게 확산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는 20세기 이후 성적·문화적 혁명과 손잡고 하나의 규범으로 자리잡았다.

오늘날 이들 낭만적 사랑에 기반을 둔 가족이 새로운 위기상황을 헤쳐나가고 있음에 주목한 벡 부부의 분석은, 다른 유사한 작업보다 탁월한 통찰력과 재치있는 순발력이 돋보인다. 벡 부부는 현대사회의 가족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상황의 원인을 인간 노동의 ‘불완전한 상품화’, 더 정확히는 ‘분열된 상품화’에 기반하고 있는 부르주아적 산업화로부터 이끌어내고 있다. 곧 임금 노동자인 남편은 가사 노동자인 전업주부의 존재를 전제로 하며, 시장을 위한 생산은 핵가족을 전제로 하기에, 완전한 산업화와 완벽한 상품화는 성 역할 분업에 기반을 둔 핵가족과는 상호 배타적 관계에 놓이게 된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산업사회를 가능케 한 성 역할 분업이 노동시장 자체의 발전에 따라 ‘내파(內破)’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시장은 끊임없이 전통적인 성 역할로부터 벗어나 ‘일 우선 이데올로기’를 따를 것을 요구한다. 직업에 대한 헌신, 자유로운 이동성, 직업훈련에 대한 끊임없는 투자 등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노동시장의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안되는 여성의 숫자가 증가하면서 이제 결혼으로 인한 부부의 역할과 출산에 따른 부모의 역할은 협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랑과 결혼을 하나의 제도에 담으려 했던 시도가 위기상황에 직면한 지금 이 순간에도 인류는 사랑과 삶의 화해를 모색하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이름하여 연속적 단혼제(serial monogamy)를 선택 대안으로 등장시키고 있는 서구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현재로선 일단 부부가 사랑하는 동안 결혼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최선으로 보고있는 듯하다.

위대한 사회이론가들이 말년에 천착하게 되는 주제가 사랑이란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사회학의 창시자인 오귀스트 콩트는 인류를 향한 보편적 사랑을 핵으로 하는 종교의 교주로서 생을 마감했고, 세계적으로 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영국 사회학자 기든스도 최근 ‘성, 사랑, 에로티시즘: 친밀성의 변동구조’란 책을 펴냈다. 여기서 기든스는 ‘융합적’ 사랑을 하나의 이상으로 제안하면서, 낭만적 사랑의 유아성을 승화시켜 진정한 의미의 성숙한 사랑을 실현할 때만이 ‘일상의 민주화’가 가능하리라는 주장을 펼친다.



사족 하나. 사회구조적 차원의 사랑 분석이 아무리 정교하다 해도 개인행위적 수준에서 이뤄지는 사랑 경험은 몇 번을 반복해도 면역성이 생기지 않는 것 같다. 20대를 잠 못 이루게 한 그 질병을 예방할 백신이 개발되면 우리는 ‘위험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나?

신동아 200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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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 <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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