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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영혼을 달래는 책을 찾아서

굶주린 영혼을 달래는 책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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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밥이 되는 책과 밥이 되지 않는 책이 있다. 밥이 되는 책을 읽을 때는 흔히 독서노트를 만들지만, 밥이 되지 않는 책을 읽을 때는 독서일기를 쓴다. 나는 문학평론을 한다. 그 중에서도 소설평론이 주다. 당연히 내게 소설 읽기는 남들처럼 취미나 재미를 위한 놀이가 아니다. 오히려 직업적 의무를 느끼는 노동에 가깝다. 그래서 소설을 읽을 때는 날카로워지지만, 소설 이외의 것을 읽을 때는 너그러워진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인문교양서나 미술에 관한 책, 영화에 대한 책을 즐겨 찾는 이유다. 이제는 ‘제2의 한국인’이 된 히딩크 감독식으로 말하자면 정신이 아직도 굶주릴 때면 ‘소설이 아닌, 소설일 수 없는, 소설과 거리가 먼’ 책들을 찾는다.

물론 T. 무어는 “책이 유익한 것이었다면 세계는 훨씬 전에 개혁됐을 것”이라면서 책의 가치를 의심했다. “모두들 책을 믿는다면 책이 없는 것만 못하다”라며, 책에 대한 맹신을 경계한 이는 맹자다. 때문에 필요해서 읽든 필요 없어도 읽든 중요한 것은 ‘왜’ 읽느냐보다 ‘어떻게’ 읽느냐일 것이다. 유익한 것을 하나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나쁜 책은 없다. 그리고 아무리 유익한 책이라도 그 절반은 독자에 의해서 완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처럼 영화, 인터넷, TV 등 책 이외의 것에서 쉽게 더 큰 즐거움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은 때에는 무슨 책을 어떻게 읽든 책을 읽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다. ‘책 읽는 사람이 아름답다’라는 홍보 포스터에 안성기나 조수미가 모델로 나와야 효과가 있는 시대이니 말해서 무엇하랴.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민음사, 2001)는 ‘놀라운’ 책이다. 실용서도 아니고, 전공서도 아니며, 문학서도 아니다. 엄청난 이야기들을 목청껏 외치는 시끄러운 책도 아니고, 자질구레한 이야기들도 충분히 의미있다고 위로하는 책도 아니다. 그런데도 작년 주요 일간지들이 선정한 ‘올해의 책’ 가운데 으뜸을 차지한 ‘이상한’ 책이다. 그저 이름만으로도 보증수표가 되는 각계 저명인사 26명이 13쌍을 이뤄 출연(?)했기 때문에? 읽었다면 교양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따근따끈한 주제들을 다뤄서? 글 아닌 말로 된 대담집이라 읽기에 부담 없어서? 현장감 있는 88컷의 사진들이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켜서?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지적들이다. 이런 점들은 무시 못할 이유이긴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대체 왜 이런 ‘괴물 같은’ 책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 것일까.

삶과 유리되지 않는 책



‘우리 시대의 삶과 꿈에 관한 13가지 이야기’란 부제에 걸맞게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라는 대담집의 기획의도는, 책머리에서 페르세우스의 방패에 비유해 밝히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돌로 변하는 메두사란 괴물을 무찌르기 위해 페르세우스는 자신의 방패에 비친 메두사의 모습을 보고 공격했다. 이때의 방패는 ‘반성’과 ‘성찰’의 도구가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 산재해 있는 메두사 같은 공포스럽고 위험한 현실에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이야기들을 한번 터놓고 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디지털, 인터넷, 신화, 자본, 이성, 여성, 환경 등 현재 우리를 둘러싼 키워드들을 화두로 제시한다. 책 중에는 질문을 던지는 책이 있고, 대답을 하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제대로 된 질문이 곧 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주제들을 다루면서도 칙칙하거나 무겁지 않다. 잘난 사람들이 무게 잡으면서 지극히 타당한 교훈을 계몽적 어조로 풀어놓은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왜 이렇게 살기가 힘든지, 그러니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문제 삼는 책이다. 삶과 유리된 책이 가장 무서운 메두사임을 아는 책답다.

때문에 이 책의 대담자들은 자신의 ‘머리’를 드러내는 대신 ‘가슴’을 드러낸다. 솔직하고 인간적인 만남이 가능했던 것도, 그리고 그 속에서 인쇄 잉크의 냄새가 아니라 삶의 리얼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대담 태도 때문이었으리라. 거창하거나 화려하지 않아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울림이 큰 만남들은 그 자체로 책을 책 이상의 것으로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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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현 < 문학평론가 > penovel@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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