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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립선 질환의 가려진 진실

소변 줄기가 시원치 않다구요? ‘침묵의 암’일 수도 있습니다

전립선 질환의 가려진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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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9월, 한국 중년남성들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대한비뇨기과학회가 전국 86개 병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998년 1629명이던 전립선암 환자 수가 2002년엔 70% 증가한 2767명에 달한 것. 한국이 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전립선암 안전지대라는 믿음이 여지없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전립선 질환의 가려진 진실

간편한 검사로도 전립선 질환을 조기 진단할 수 있다.

몇해 전 미국 아이오와주의 어느 백화점.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들어간 소년 둘이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왔다. “화장실에 변태가 있다!”는 이들의 고함은 즉각 경찰의 귀에 들어갔고, 곧 화장실에 있던 64세의 한 노인이 청소년 성추행 미수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됐다.

그런데 몇 개월 뒤, 이 노인은 되레 자신을 체포한 경찰관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자신은 전립선 질환 때문에 소변이 잘 나오지 않아 요도 마사지를 하고 있었을 뿐인데, 경찰관들이 자신의 해명은 듣지도 않고 체포함으로써 명예를 손상시켰다는 이유였다.

백화점에 쇼핑 나온 사람들 앞에서 망신살이 뻗쳤을 노인을 생각하면 안쓰러운 마음이 밀려온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변태 취급까지 받았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으랴. 전립선 질환에 무지한 시민이나 마사지 등의 임시방편에만 의존하다 성 변태로 오해받은 환자 모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 일화다. 탈은 많은데 말은 없는 전립선 질환, 그에 대한 오해는 어디까지일까.

여성의 나이가 주름으로 온다면, 남성의 나이는 화장실에서 온다는 말이 있다. 그토록 세차던 소변줄기가 나이 든 걸 서러워하듯 방울지는 눈물로 한숨을 쉬기 때문이다. 바로 전립선 비대증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전립선 비대증은 50대의 50%, 60대의 60%, 70대의 70%가 앓을 만큼 남성의 노화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질병이다.

하지만 전립선 비대증의 원인은 단순히 노화에만 있지 않다. 일례로 운전직에 종사하는 이들 중엔 비교적 젊은 40대의 나이에도 심각한 배뇨곤란을 겪는 이가 허다하다. 직업 특성상 소변을 참는 습관, 불규칙한 생활이 원인이다.



고정관념부터 버려야

문제는 전립선 비대증을 앓는 이들이 스스로 ‘전립선 비대증=노화’라는 고정관념에 갇혀 병을 숨긴다는 것이다. 젊음을 경쟁력으로 여기는 사회 풍토가 빚어낸 세태라 환자만 탓할 일은 아니지만, 전문적인 치료를 받지 않고 민간요법에 매달리다 병을 악화시키는 이들을 보면 야단이라도 쳐서 치료를 권하고 싶은 심정이다.

어디 전립선 비대증뿐일까. 전립선 질환을 생식기 문제로만 생각하는 오해도 큰 문제다. 전립선염의 경우 환자 대다수는 증상이 나타나면 ‘전립선’이 아닌 ‘성(性)’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즉 ‘혹시 성병?’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여 병원을 찾을 생각도 못한 채 속이 타들어간다. 어느 날 증상에 맞닥뜨린 환자는 병을 가족에게 숨기고, 지인에게도 숨긴다. 그리고 인터넷과 잡지를 탐독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병원에 와서도 짐짓 딴청만 부리다 슬그머니 사라지는 웃지 못할 상황도 발생한다.

사정이 이러니 국내 전립선염 환자가 얼마나 되는지, 그 현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임상적으로야 비뇨기과 방문 환자의 15∼20%가 전립선염 환자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도 성병을 의심하여 병원을 찾은 이가 대부분이다. 아직까지 수면으로 떠오르지 않은 환자들까지 감안한다면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전립선염은 50세 이하 남성에서 흔히 발생하는 전립선 질환이면서, 심하면 성기능이 저하되기도 하니 훗날을 생각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병원을 찾아야 할 일이다.

한편 전립선암은 방심이 낳은 폭탄이나 마찬가지다. 육류 위주의 식생활을 하는 서양에서나 걱정할 질환이라는 상식이 현재의 위기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전립선암은 일일 지방질 섭취량이 많은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미국 등지에서 위험질환으로 인식돼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육류 위주의 서구식 식생활이 일반화된 지 이미 오래다. 서구식 식생활에 따른 비만 위험을 소리 높여 외치면서도 이와 밀접한 것으로 알려진 전립선암에는 소홀했으니 이것이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번 대한비뇨기과학회의 조사결과 외에도, 2002년 중앙 암 등록사업 보고에 따르면 전립선암은 1995년 대비 211% 증가해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암’으로 자리잡았다. 이제는 방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전립선암은 그 치료와 진단에 대한 세인의 오해 때문에 더없이 홀대받고 있다. 진단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결과가 나올 때면 이미 사망한다든가 수술을 받으면 기저귀를 차고 살아야 한다는 등의 속설이 조기검진을 가로막고 치료하는 데 애를 먹인다. 이렇게 잘못된 상식들은 자신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그뿐인가. 잘못된 민간요법에 매달리다 보면 더욱 곤란한 상황들을 만나게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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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병하 연세대 의대 영동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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