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許甲範</b><br>●1937년 경기 안성 출생<br>●연세대 의대 졸업, 동 대학원 박사, 프랑스 몽펠리에 의대 당뇨병센터 연수<br>●1984∼2002년 연세대 의대 교수<br>●1992∼96년 대한당뇨병학회 회장<br>●1998∼2002년 김대중 대통령 주치의<br>●2001∼04년 대한성인병예방협회 회장<br>●現 허내과 원장<br>●저서 : ‘당뇨병 정복할 수 있다’ 등
당뇨병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에 대한 교육과 환자별 맞춤형 치료다. 다시 말하면, 당뇨병 치료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전문의에게서 올바른 조언을 듣고 모든 지시를 충실히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일찍이 독일의 당뇨병 전문가 콘라트 로렌츠 박사는 가르치는 이(의사, 간호사, 영양사)와 배우는 이(환자) 사이에 발생하는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말했다고 듣는 것이 아니요, 들었다고 모두 이해하는 것이 아니며, 이해하고 공감했다 해서 반드시 실천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실천에 옮겼다고 해서 계속 실행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점이다.”
이 명언은 특히 우리나라 현실상황에서 당뇨병 환자들이 깊이 음미해야 할 훌륭한 교훈이라 생각한다.
당뇨병은 흔히 자각증상이 없거나 있더라도 그 증상이 경미한 제2형(인슐린 비의존형)이 대부분이다. 드물긴 하지만 제1형(인슐린 의존형)과 1.5형(인슐린 요구형)도 있다.
그렇다면 증상이 별로 없는 당뇨병 환자를 ‘어떻게 조기에 발견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왜 조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이 필요할 것이다. 그 답을 찾으려면 당뇨병의 무서운 합병증(망막증, 신병증, 신경병증)과 병발증(고혈압, 심장병, 중풍)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아야 한다. 더불어 당뇨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며, 설사 걸리더라도 정상인과 다르지 않은 건강한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요령(당뇨병의 정복)은 무엇인지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필자는 지난 30여년간 수많은 당뇨병 환자를 치료하면서 얻은 경험과 다각도의 당뇨병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인 당뇨병의 특성을 밝히려고 노력했다.
한국인 당뇨병의 특성을 서구인 당뇨병과 비교해보면, 첫째 전신성 비만은 적지만 복부비만인 환자가 많고, 둘째 서구인 당뇨병은 1형과 2형 당뇨병으로 쉽게 분류되지만 한국인에서는 1.5형(중간형) 당뇨병이 많으며, 셋째 한국인의 중·장년층은 아직도 밥(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한다는 점이다.
지난 1년간 사망자 24만6000명의 사망원인을 분석한 통계청 자료를 보면 각종 암이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한다. 그 다음이 뇌졸중(중풍)과 심장병이고, 4위가 바로 당뇨병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몇 년 전만 해도 당뇨병의 사망률은 7위였으나 최근 들어 당뇨 사망자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명, 신부전증, 하지절단의 원인으로 꼽힌 것 가운데 당뇨병이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더욱 충격적이다. 그만큼 당뇨병성 합병증은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무서운 합병증도 당뇨병을 조기발견해 적절히 관리하면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무엇이 당뇨병인가
국민 10명 중 1명이 당뇨병
최근 들어 당뇨병 환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 1970년대 30만명 가량이던 국내 당뇨병 환자는 2004년 현재 전체 인구의 약 10%인 400만여명으로까지 늘어났다. 그럼에도 당뇨병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 전체 환자 가운데 제대로 치료받는 환자는 10% 선인 40만명에 그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대한당뇨병학회는 “2000년 국민 건강영양 조사 보고서에서 30대 이상의 13.6%가 당뇨병 환자로 나타났으며, 어린이와 20대에서도 당뇨병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통계청의 사망원인 자료에 따르면 당뇨병 사망자 수는 1990년 10만명당 11.8명이었으나 2000년엔 22.6명으로 10년 새에 갑절 가까이 늘었다.
하지만 이는 직접사인만을 따진 것이다. 심혈관 합병증에 따른 사망자까지 포함하면 당뇨병 사망자는 10만명당 80명 꼴이다.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교통사고 등의 사인(死因)을 누르고 사망률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처럼 당뇨병이 급증한 것은 1980년대 이후 생활양식의 급격한 변화, 그중에서도 식생활습관이 서구화되고 운동량 부족으로 과체중 및 복부비만 환자가 늘어난 때문이다.
우리나라 남성들은 30대에 접어들면서 올챙이 모양의 배불뚝이 체형이 되는 경우가 많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회식이나 업무상 접대 등 음주가 잦은 데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흡연이 느는 대신 운동량은 줄어든다. 이런 생활습관이 복부비만과 지방간의 원인이 된다. 복강내 지방세포는 지방질을 축적하고 분해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 복부가 쉽게 불어날 뿐더러, 지방질이 혈액 속으로 잘 녹아들어가 혈중 지방산의 수치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