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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김형오 의원의 탕평채와 톳나물 무침

동서남북 하나로 뭉친 맛과 영양의 조화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의 탕평채와 톳나물 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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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영양분을 고루 갖춘 탕평채, 몸에 흡수가 잘 되면서 영양도 풍부한 톳나물 무침. 이들 음식은 만들기 쉬우면서 맛도 있다. 국민이 원하는 정치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의 탕평채와 톳나물 무침
“당직자들이 표정관리를 좀 하래요.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자꾸 웃음이 나오는걸.”

1월11일 오전 한나라당 당직개편이 확정, 발표되자 김형오(金炯旿·58) 의원은 홀가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김 의원은 오래 전부터 사무총장직 사의를 표명해온 터였다.

하긴 그가 그럴 만도 하다. 지난 2004년 3월 사무총장을 맡은 이후 8개월 동안 한나라당은 엄청난 변화와 시련을 겪었다. 당사만 두 번 옮겼다. 여의도공원 천막당사를 거쳐 염창동으로. 전당대회도 두 번 있었다. 대통령 탄핵역풍으로 4·15총선을 힘겹게 치러야 했고, 곧바로 두 번의 보궐선거가 숨 돌릴 틈도 없이 이어졌다. 중앙당 규모가 크게 줄어들면서 대대적인 구조조정도 불가피했다.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은 국가보안법 철폐를 저지하기 위해 때아닌 철야농성을 벌여야 했다. 이런 모든 일을 뒤치다꺼리하는 자리가 바로 사무총장이다.

그 가운데 김 의원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당직자 구조조정. 중앙당 당직자 350여명 중 무려 40%가 넘는 150여명을 정리해야 했다. 김 의원은 “길게는 20년 이상 당에 몸담아왔던 이들을 떠나보내는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며 “그들의 협조와 이해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말 감사하고 또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의 정당생활도 올해로 15년째다. 지역구는 부산 영도구.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지만 중고교 시절 이사와 터잡은 부산 영도구 영선동이 고향이나 다름없다. 지역에서 그는 영선동 ‘맏머리새미’ 둘째아들로 통한다. 김 의원의 돌담집을 일컫는 맏머리새미가 무슨 뜻인지는 정작 본인도 잘 모른다. 동네 사람들이 지역사투리를 섞어 만든 말 정도로 추정할 뿐. 아쉽게도 맏머리새미는 지난해 말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새 주인이 신축하기 위해 집을 허물어버렸기 때문이다.



김 의원이 정치를 시작한 것은 숙명인지도 모른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선택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지금에 이르렀다. 1975년 그는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바로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다. 유신의 망령이 시대를 유린하던 때라 언론환경은 열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3년 정도 지나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을 때 그는 거절하지 못했다. 그 후 1982년 가을 청와대 대통령공보비서실을 거쳐 1986~90년에는 국무총리와 대통령의 정무비서관으로 일했다. 정무비서실에서 그의 주된 업무는 정국운영 프로그램 기획. 현실에 대한 분석과 이론적 접근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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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사진: 김용해 기자 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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