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집필 : 김정남 교수(연세대 의대 심장내과)공동 집필 : 김기식 교수(계명대 의대 동산의료원 순환기내과) 박창규 교수(고려대 의대 구로병원 순환기내과) 안태훈 교수(가천의대 길병원 순환기내과) 오병희 교수(서울대 의대 순환기내과) 유규형 교수(한림대 의대 성심병원 순환기내과) 이종구 박사(이종구 심장내과의원 원장) 정명호 교수(전남대 의대 순환기내과)
방치되고 있는 고혈압정남식 교수(연세대 의대 심장내과)
53세의 평범한 회사원 J씨는 얼마 전 업무를 끝내고 퇴근하던 길에 갑자기 쓰러졌다. 119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로 긴급 후송되었지만 의식도 혈압도 잡히지 않았다. 1시간 가까이 전류 충격과 긴급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자 그제야 심장이 다시 뛰었고 이튿날 비로소 혈압과 호흡이 정상으로 회복됐다.
“술을 많이 마셨어요. 거기다 최근 혈압약 먹는 걸 깜박했는데….”
어느 정도 회복된 뒤 J씨는 이렇게 말했다. 평소 고혈압으로 인한 관상동맥(심장혈관)질환을 앓던 그는 며칠 전부터 가슴이 답답한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최근 들어 혈압약을 복용하는 걸 자주 잊었다는 것이다. 혈압약은 정해진 시간에 꼬박꼬박 복용해야 한다고 강조해온 의사의 말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J씨는 일주일에 한 번쯤은 ‘폭탄주’를 마셔야 하는 전형적인 샐러리맨으로 30년을 살아왔다. 게다가 사회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핑계로 하루에 두 갑씩 담배를 피워댔다. 바닷가가 고향이라 소금에 절인 생선구이와 젓갈을 빼놓지 않고 밥상에 올린 것도 그에겐 치명적인 식습관이었다. 30대 초, 우연히 직장인 건강검진에서 고혈압 진단을 받은 이후 혈압약을 챙겨 먹긴 했지만, 술 담배는 줄이지 못했다. 그러다 마침내 고혈압으로 인한 돌연사 위험이 찾아온 것이다.
돌연사 직전 되살아난 J씨, 호흡 곤란으로 내원한 S씨
아내의 구박으로 뱃살 빼기에 돌입한 39세의 S씨. 그는 3개월 전부터 조깅을 시작했다. 그러나 조금만 달려도 숨이 가빠 가슴이 뻐근해지곤 했다. 처음엔 운동부족 탓이려니 하며 가볍게 여겼지만 최근 들어선 앉아서 사무를 보는 중에도 호흡곤란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국 병원을 찾은 S씨는 15년 전 진단받은 고혈압을 방치한 결과 심장에 이상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혈압은 240/ 110mmHg까지 올라 있었고, 심장 좌측이 정상보다 크게 확장된 반면, 수축기능은 정상인의 3분의 1 정도로 떨어졌다. 또 망막의 혈관이 부분적으로 파열되었으며 콩팥 기능도 저하돼 있었다. 모두 고혈압 때문에 나타난 증상이다.
S씨는 즉시 입원치료에 들어갔다. 얼마간 혈압치료 후 회복세를 보이던 그에게 갑작스런 언어마비 및 우측 반신마비를 동반한 뇌경색이 발병했다. 입원 1주일 만이었다. 다행히 입원중이어서 빠른 진단이 가능해 혈전용해술 등으로 뇌경색은 거의 회복됐다. 만약 병원 밖에서 발병했다면 회복은커녕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혈압은 중년 이후의 주요 사망원인인 심장병, 뇌졸중 등의 원인 제공자다. 일반적으로 45세 이상 남녀의 약 30%에서 나타나며, 나이가 들면서 발생빈도도 급등해 70대의 50∼60%가 이 질병을 갖고 있다.
현재 고혈압 인구는 성인의 20∼25%. 그중 자신이 고혈압 환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4명 중 1명에 불과하다. 이들 가운데 적극적으로 고혈압을 치료하고 있는 사람은 5%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다른 나라의 사정도 마찬가지여서 미국의 경우 고혈압을 제대로 치료받는 환자가 전체 환자의 34%, 일본은 22%다.
이렇듯 고혈압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뚜렷한 증상이 없기 때문이다. ‘소리 없는 살인자(Silent Killer)’라는 별명처럼 고혈압은 환자 본인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서서히 합병증을 유발한다. 높은 혈압은 혈관과 장기를 손상시켜 뇌졸중, 협심증, 심근경색, 심부전, 망막혈관 파열, 대동맥 박리, 신부전 등 다양한 합병증을 일으키고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른다.
다행히 간단한 혈압측정만으로도 고혈압의 위험경보를 조기에 접할 수 있고 설사 고혈압으로 진단받았다 해도 식생활 및 생활습관을 잘 관리한다면 20년은 더 살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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