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수출 안 해”강경.
영화 ‘식객’이 일본 판매를 거부했다. ‘식객’(감독 전윤수·제작 쇼이스트㈜)이 아시아 각국의 판권 경쟁이 뜨거운 가운데 전 감독이 일본의 편집 요구를 거절했다. 영화 막바지 한일 양국의 역사적 해석 부분을 마음에 걸려 한 한 일본 바이어가 “좋은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 대한 설정을 편집하지 않으면 구매하기 힘들다”고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전 감독은 “절대 편집하지 않을 것이다. 이익을 위해서 작품을 해치는 것은 타협할 사항도 아닌 데다 그 이유가 역사적 문제라면 더욱 할 수 없다. 일본에 수출 안 하면 그만이다”는 강경 입장을 보이고 있다.
2007.11.18 기사
처음 고백하건대 위 기사는 사실이 아니다. 작품 계약과 동시에 감독은 자동적으로 저작권이 포기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적 문제를 이유로 영화를 수출하지 않겠다고 주장할 권리가 없다. 영화 산업 구조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기사가 홍보성 기사라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 기사를 감쪽같이 믿으셨고 나를 애국자로 여기셨다.
난 사실을 고백하지 않았다. 진실이 아니더라도 애국자가 된 아들 덕에 투병의 괴로움을 위로받으셨다면 난 그걸로 만족했다. 아버지 장례식 날 영화계 선후배가 많이 찾았다. “돌아가시기 전에 아들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는 걸 보셨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며 위로해줬다. 큰 위로가 됐고 마음껏 울 수 있었다.
염하는 날, 창백한 아버지 얼굴에 입을 맞췄다. 열 살 이전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탓에 아버지 얼굴에 입술을 대는 게 최초로 느껴졌다. 장례지도사에 의해 면도를 끝낸 아버지 얼굴에서는 기분 좋은 스킨로션 냄새가 났다.
선산에 유골을 뿌리며 투병 중 내 영화로 위로받으셨을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들이 만든 영화를 보러 힘을 내서 지팡이를 짚었을 것이고, 침침한 눈으로 좌석 번호를 확인하셨을 것이며, 불 꺼진 좌석에 앉아 스크린을 향해 눈빛을 빛냈을 것이다. 그리고 신문에 난 홍보성 기사를 보고 아들을 칭찬하기 위해 내 휴대전화 번호를 하나하나 눌렀을 것이다. 그리고 눈 감는 순간 임종을 보지 못해 괴로워할 아들을 걱정했을 것이다. 나는 안다. 위로를 받은 건 아버지가 아니라 오히려 나라는 것을.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위로의 영화
마이크 피기스 감독의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좋아한다. 존 오브라이언의 반자전적 소설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절망 끝에 선 두 남녀의 운명적인 만남, 사랑,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을 그리고 있다. 매번 느낀다. 알코올 중독자 벤과 창녀 세라의 사랑에는 관객을 향한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음을.
죽음을 앞둔 아버지로부터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은 것처럼 세라도 죽음의 끝을 향해 달리는 벤으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그녀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벤이 변하길 기대하지 않았죠. 그 사람도 날 그렇게 대했어요. 그 사람 인생이 좋았어요. 벤한테는 제가 필요했어요. 그이를 사랑했어요. 정말 사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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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을 볼 때마다 나는 매번 훌쩍거린다. 대학 강의 때마다 이 자료를 활용하니 적어도 6번이다. 앞으로도 안 울 자신은 없다. 나는 16㎜ 필름이 뿜어내는 거친 이미지에 취한다. 그리고 벤과 세라의 수중 키스와 감미로운 음악에 위로받는다. 그러고 보니 난 너무 많은 위로에 익숙해져 있다. 이젠 줘야 한다. 나를 필요로 하는 그 누군가에게 위로가 돼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찍는다. 그것이 내가 위로 받는 길이고 내가 성장하는 길이며 마르지 않는 눈물샘을 유지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