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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늙은 절 한 채’찾아가는 길

전북 완주

‘잘 늙은 절 한 채’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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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란 참 묘한 존재다. 한량없이 천진스러운가 하면 때로는 능글맞고 뻔뻔하기 짝이 없다. 화암사 찾아가는 길을 굳이 알려주지 않겠다는 이 시는 어떤가? 정녕 그럴 양이면 그에 대한 시를 발표하지 않거나 사람들이 관심도 갖지 못하게 메모하듯 몇 자 긁적거려놓으면 될 걸, 굳이 실제의 절보다 산보다 더 훤칠한 시를 만들어 세상 천지에 퍼뜨리는 까닭이 무엇인가. 기품과 맛깔스러움을 다 갖춘 시를 보고도 찾아가지 않고 배기는지 보자. 그 반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영악스러운 대개의 독자도 실은 시인과 같은 처지다. 시인의 수작을 뻔히 알면서도 정말 거기 가면 능선 한 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릴지 모른다 싶은 마음에 조바심을 내며 인터넷을 뒤지고 지도를 확인한 다음, 소리 소문 없이 현장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곤 뭘 얻는가. 시인과 같은 관찰 혹은 각성, 아니면 자조와 회한?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러한 게임 자체가 문화의 층위가 된다는 점이다. 나도 그 게임에 말려들었다.

사진보다 선명한 시 구절

우연히 내 손에 쥐여진 시인의 시집을 넘기다가 이 ‘화암사’에서 멈칫했다. 생전 처음 대하는 절 이름 때문이었다. 화엄사도 아니고 화암사가 어디 있담? 궁금증을 풀 요량으로 시문을 읽어나갔는데 ‘잘 늙은 절 한 채’란 구절을 보곤 나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기막힌 표현, 절구란 바로 이런 말을 두고 하는 것인 듯싶었다. 나 같은 산문장이는 원고지 스무 장으로도 제대로 그리지 못할 절집 모습을 시인이 단 세 글자로 죄 말하고 있지 않은가. 백 장의 컬러 사진을 보는 것보다 더 선명하게 고풍스럽고 창연 단아한 절 한 채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넣게 하는 표현. 갑자기 나는 이 ‘잘 늙은 절’이 어디 있으며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곤 이내 탄식했다. 낚시며 등산을 다닌답시고 그 앞길을 여러 차례 지나다니고도 절간 안내판 하나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자책이 앞섰던 것이다. 완주 땅 그쯤에 있는 산이고 절간이라면 능히 그럴 법도 하겠다는 생각은 뒤늦게 들었다.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는 내가 숨겨놓은 그림처럼 예쁘고 적막한 저수지도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이 세상에 소문을 다 내버린 바람에 화암사는 이제 유명한 절이 됐단다. 타지에서 온 이들은 모두 시를 보고 찾아왔노라고 말하기도 한단다. 그렇지만 시를 읽고 시의 현장까지 찾아가는 우리나라의 시 독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하여 절간의 고요와 둘레의 청정함은 아직 전혀 훼손된 바가 없다.

시인이 알려주지 않으려는 길을 내가 자세히 이르고자 한다. 서울에서 가는 경우, 경부고속도로 대전인터체인지를 지나면 이내 대전터널을 만난다. 터널을 나와서 곧바로 대전 외곽고속도로에 들 수 있다. 이 길로 10여 ㎞쯤 가서 대전-통영 고속도로로 옮겨 탄 다음 금산 못미처의 추부인터체인지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온다. 좌회전해서 국도를 올라타면 머잖아 추부 면소재지에 이를 수 있다.

마침 때가 점심 무렵이고 속이 출출할라치면 이곳 추부에서 추어탕 한 그릇을 먹고 가는 여유를 가져도 좋다. 작은 마을에 열 집 넘는 전문 추어탕집이 있어서 찾아들기도 쉽다. 집집의 음식 맛도 대동소이 그리고 탁월하다.

고속도로를 나오면서부터 빈번히 만나는 ‘대둔산’ 안내 표지판만 따라가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추부에서 진산에 이르고 진산을 벗어나 고갯길에 오르면 홀연 대둔산 정상 부위의 당찬 바위들이 천공을 찌르고 있음을 보게 된다.

대둔산 위락시설구역을 벗어나 계속 17번 국도를 좇아 남쪽으로 가는 동안에는 수려한 풍경을 지닌 골짜기가 찻길을 따른다. 대둔산과 맞은편의 천등산이 만들어낸 계곡이다. 4㎞쯤 더 나아가면 천등산 등산로를 만난다. 물길 가운데 보(洑)가 만들어져 있는 지점이다. 대둔산의 번잡함을 마다하는 산행객들이 즐겨 오르는 천등산이지만 주위 어디에도 안내 표지판은 없다. 갓길에 차를 세워두고 계곡의 보를 건너가면 곧장 산길을 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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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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