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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1초들 外

우리가 사랑한 1초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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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우리가 사랑한 1초들 _ 곽재구 지음, 톨, 352쪽, 1만3800원

우리가 사랑한 1초들 外
살다 보면 문득 삶의 순간들이 먹먹해질 때가 온다. 자명종 소리에 일어나 출근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소줏잔을 기울이면서, 멋진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 위에서 문득 이게 내가 꿈꾼 삶인가 싶은 생각이 찾아오는 것이다. 월급날을 기다려 꼬박꼬박 할부원리금을 갚아가면서도, 주말 오후 가족들과 함께 삼겹살 파티를 하면서도 봄날 꽃밭 위의 배추흰나비처럼 팔랑팔랑 이 생각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내가 처음 생이 무엇인가 의문을 품었던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그 무렵 나는 내 인생의 업이 시가 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시 생각을 했고 낮 동안 이리저리 시정을 떠돌면서도 시 생각을 했고 누군가의 집에서 하룻밤 비럭잠을 자면서도 시 생각을 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시를 쓰지? 그 무렵 내가 택한 방법은 하루 24시간 8만6400초를 온전히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지금 내게로 오는 모든 한 초 한 초를 기억하고 그들의 습성과 사랑과 슬픔을 다 껴안은 뒤에 좋은 시를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1970년대 중반. 모두들 가난했고 정치적 현실은 암울했지만 내가 지닌 1초 1초를 다 느끼고 그들의 주인이 되리라 생각했을 때 행복의 느낌이 찾아왔다.

그 무렵 나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시를 사랑했는데 그의 시에는 인간 세상이면서도 신들의 세상에 펼쳐지는 것 같은 순수함과 신비의 시간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언젠가 타고르의 고향을 찾아가 그의 시편들을 그의 모국어인 벵골어로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은 바로 그 꿈의 실현이다. 2009년 7월부터 2010년 12월까지 1년 반을 나는 타고르 시의 이상향 산티니케탄에서 보냈다. 1년 중 9개월 동안 45℃ 이상의 폭염이 쏟아졌고 사람들은 지극히 가난했지만 나는 그곳에 머무는 동안 타고르가 왜 이곳을 그의 이상향으로 삼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오래된 숲길을 거닐며 가난한 사람들의 맑은 미소와 눈빛을 대하는 동안 나는 내게로 오는 1초들의 행복한 숨결을 느꼈다. 산책하고 시 쓰고, 가난한 이들과 밥 먹고 웃고 돌아와 책 읽고 글 쓰고, 아무도 없는 한낮의 고요한 숲길에 앉아 숲 향기를 맡다가 다시 시 생각을 하는 동안 많이 행복해하는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었다. 하루 24시간 8만6400초를 온전히 내가 느끼고 소유하는 시간이 내 생애 두 번째 찾아온 것이다.

누군가 내게 행복에 대해 물어온다면 나는 자기 자신에게 찾아오는 모든 1초를 사랑하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자기 눈앞의 1초들을 온전히 느끼고 사랑한다면 그때 이 세상은 우리가 꿈꾼 낙원이 되지 않겠는가. 감자 두 알과 짜이 한 잔으로 식사를 마치고 숲길을 거닐던 산티니케탄의 1초들이 그립다.

곽재구 │시인, 순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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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름의 끝 _ 다이앤 듀마노스키 지음, 황성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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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 이변이 더 이상 ‘이변’이 되지 않는 시대다. 가뭄·홍수·폭염이 세계 곳곳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1970년대부터 대기오염, 수질오염 등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보도해온 언론인인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앞으로 인류와 문명이 겪어야 할 운명의 전조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 문명은 행성의 신진대사를 붕괴시키고, 소행성 충돌이나 빙하기에 맞먹는 힘을 지구에 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구 역사상 유례없던 ‘긴 여름’, 말하자면 인류의 황금기는 끝나가고 있다. “이제는 인정하자. 지금까지 인류는 다만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현대 문명이 자연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설명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부제는 ‘지구에게 문명과 인류의 생존에 대해 묻다’이다. 아카이브, 422쪽, 1만8000원

제국의 탄생 _ 피터 터친 지음, 윤길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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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코네티컷대 생태학 및 진화생물학·수학과 교수인 저자는 러시아 모스크바대와 미국 뉴욕대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미국 듀크대에서 동물학 박사학위를 받은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현재는 수학과 진화생물학, 생태학과 게임이론을 바탕으로 세계사를 연구하는 통섭형 연구자다. 그가 이 책에서 논의하는 것은 ‘매번 전투에서 지기만 했던 로마가 어떻게 거대 제국을 만들 수 있었을까’다. 비슷한 경쟁자를 제치고 성공적으로 도약하는 집단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강력한 내적 결속, 집단행동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자본, 이른바 ‘아사비야’다. 저자는 12세기 무슬림 사회학자 이븐 할둔이 제시한 ‘아사비야’라는 개념을 원용해 ‘사막의 혼란 속에서 거대한 이슬람제국을 탄생시킨 이 역량이 세계 모든 제국을 탄생시킨 씨앗’이라고 말한다. 웅진지식하우스, 552쪽, 2만5000원

사르트르와 카뮈 _ 로널드 애런슨 지음, 변광배·김용석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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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지성계의 두 거인, 사르트르와 카뮈의 논쟁사’라는 설명이 붙은 책. 저자에 따르면 사르트르와 카뮈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만나 1951년 카뮈가 ‘반항적 인간’을 낼 때까지 돈독한 우정을 쌓았다. 그러나 이 책 출간 이후 사르트르가 카뮈를 ‘현실적 갈등과 동떨어져 있는 지식인’이라고 비난하고, 이에 대한 반박으로 카뮈가 사르트르를 ‘역사의 방향으로 의자를 놓지 못한 자’라고 공격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단절됐다. 미국 웨인주립대 교수로 사르트르 전문가인 저자는 ‘자유’와 ‘악 앞에서의 책임’ 문제에 공감대를 갖고 있던 두 사람이 의견 충돌을 일으키는 이유를 꼼꼼히 짚어나간다. 이 과정에서 20세기를 특징짓는 여러 주제에 대한 흥미로운 논쟁사가 완성됐다. 부제는 ‘우정과 투쟁’이다. 연암서가, 546쪽,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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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송화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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