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7월25일 이탈리아 로마 빌라 톨로니아에서 ‘별이 빛나는 하늘 아래’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결국 7월 말 나는 무개차는 아니었지만 관광버스를 타고 가족과 함께 산타루치아를 지나 포지타노 인근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관광 가이드는 차내 방송으로 파바로티가 부르는 ‘산타루치아’를 들려줬다. 시리도록 푸른 바다, 맑은 하늘과 따가운 햇볕. 오감이 모두 날름거렸다.
전날 밤엔 로마 시내 빌라 톨로니아(Villa Torlonia)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에 갔다. 이탈리아에 도착하기 전 인터넷 서핑을 하다 우연히 알게 된 음악회였다. 1인당 21유로씩 주고 티켓 네 장을 예매했다. ‘별이 빛나는 하늘 아래(Sotto Il Cielo Stellato)’라는 콘서트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연주자는 별로 유명하지 않았지만 리스트와 쇼팽의 피아노곡들이 연주된다니 서정적인 저녁 한때를 보낼 수 있겠거니 생각했다.
공연장이 있는 빌라 톨로니아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로마에서 대표적인 정원 가운데 하나다. 19세기 초 은행가 톨로니아가 건축한 이 정원은 한때 궁전으로도 쓰였다. 1920년대 독재자 무솔리니는 이 가문에 상징적으로 1년에 1리라의 집세만 내고 이 거대한 정원을 독차지하고 살았다.
빌라 톨로니아 안 ‘올빼미의 집(Casina delle Civette)’으로 불리는 예쁘장한 건물의 아치형 테라스가 공연장이었다. 말 그대로 별이 빛나는 하늘 아래였다. 관객은 할머니 네 분, 할아버지 세 분, 젊은 남녀 한 쌍이 전부였다. 그들은 난데없는 동양인 관객의 등장에 좀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의자에는 우리 가족 네 명의 이름이 하나씩 붙어 있었다. 이름표를 떼고 의자에 앉자 좀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의 입이 뽀로통하게 튀어나온 것을 애써 피하며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고풍스러운 건물과 아름드리 나무, 드문드문 반짝이는 하늘의 별들 때문인지 분위기는 제법 운치가 있었다. 이제 이런 시각에 어울리는 ‘청각’이 나올 차례였다.
저녁 8시 30분쯤 잘생긴 백인 남자 피아니스트가 등장했다. 표를 예매할 때 자세한 레퍼토리가 소개돼 있지 않았지만, 어떤 곡이든 괜찮다고 생각했다. 공연 제목에 걸맞은 곡들이 나오겠거니 했던 거였다. 그런데 첫 곡이 리스트의 ‘장송곡(Funerailles)’이었다. 이 곡에 대해 시적이고 종교적인 영감을 준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어쩐지 그 순간과는 좀 어울리지 않았다.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연주한 이 곡을 들을 때와는 느낌이 너무 달랐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몸을 비틀고 신음을 내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참으라고 눈에 힘을 줘보지만 어찌할 수 없었다. 두 번째 곡은 리스트의 ‘오버만의 골짜기’(Valee d Obermann). 이 역시 도입부는 좀 어려웠고, 리스트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이날은 수면제가 따로 없었다. 내 눈꺼풀도 무거워져왔고, 아이들과 아내는 졸기 시작했다.
세 번째 곡 연주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가볍다 생각했는데, 쇼팽의 녹턴 9번이다. 계속되는 쇼팽의 왈츠곡들. 아내도 아이들도 깨어나고, 별들도 눈을 반짝였다. 왈츠 64번의 두 곡, ‘화려한 왈츠’로 불리는 34번의 세 곡이 나올 때 아이들의 박수소리도 커졌다. 왈츠 A단조 19번(posthumous)은 이날 분위기와 가장 잘 어울렸다. 세상을 자기 맘대로 다스렸던 독재자가 몸소 자신의 처소로 점찍은 곳에서 아무런 중압감도 없고, 자유로운 상태로 쇼팽의 피아노 선율에 몸을 맡겼다. 전날 로마 공항 수하물 찾는 곳에서 감쪽같이 사라진 여행가방에 대한 생각도 모두 잊었다(가방은 공항 직원 실수로 스페인으로 갔다가 이틀 만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