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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공격과 자살폭탄 테러 상존하지만, 그곳도 사람 사는 땅”

아프가니스탄 바그람기지 한국병원 초대 병원장 박석산 교수

“군사 공격과 자살폭탄 테러 상존하지만, 그곳도 사람 사는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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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이름에서 전쟁과 테러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가 많다.
  •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은 ‘아프간 사람이 사는 땅’이라는 뜻.
  • 그곳에는 계속되는 전쟁으로 고통 받는 평범한 사람이 있다.
  • 2010년부터 10개월간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미 공군기지 한국병원에서 병원장으로 일하며 현지인을 돌본 박석산 인제대 서울백병원 비뇨기과 교수를 만나 남다른 경험과 소회에 대해 들었다.
“군사 공격과 자살폭탄 테러 상존하지만, 그곳도 사람 사는 땅”
2007년 2월 17일 오전,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미 공군기지 정문에서 자살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기지 내에 주둔하던 한국군 다산부대 윤장호 병장과 미군 1명, 현지인 23명이 사망하고 2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불과 5개월 뒤, 국민을 큰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발생했다. 역시 아프가니스탄에서 샘물교회 자원봉사자 23명이 탈레반에 납치된 것. 3개월의 피 말리는 협상 끝에 모든 인질이 풀려나면서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2명은 살해당했다. 한국인에게 아프간은 여전히 두려운 이름이다. 한국을 비롯한 외국군과 외국 민간인을 향한 자살폭탄 테러와 납치살해 위협이 끊이지 않는 전쟁터. 자다가도 사이렌 소리가 나면 방탄조끼 챙겨 입고 방공호로 대피해야 하는 그곳에서 박석산(60) 인제대 서울백병원 비뇨기과 교수는 10개월여 동안 의료봉사를 했다. 2011년 1월 1일 귀국한 뒤 한국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박 교수는 “한동안 계속 전장에 있는 듯한 트라우마에 시달렸지만 이제 괜찮다”며 입을 열었다.

▼ 아프간은 어떻게 가게 됐나요?

“2010년 1월 갑작스럽게 정해졌어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아프간 지방재건사업(PRT) 일환으로 추진한 바그람 미 공군기지 내 한국병원 운영을 인제대 백병원이 맡게 됐어요. 전국 5개 백병원에 근무 중인 의사를 비롯한 의료진은 다 꾸렸는데 책임자가 없었지요. 파견 의사가 전부 젊은 총각이라 현지 병원에 의료장비와 진료 시스템을 구축할 총괄 관리자가 필요했어요. 그때 병원장을 자원했습니다. 제가 간다니 사람들이 놀라더군요. 결혼하고 애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잘 안 가려고 하거든요.”

▼ 가족의 반대가 심했을 것 같아요.

“부모님은 전쟁터에 뭐 하러 가냐고 펄쩍 뛰셨죠. 친구나 제가 아는 의사들도 거길 왜 가느냐고 했습니다. 하지만 집사람은 저를 이해해줬어요. 평소 해외선교를 많이 다니고, 불가리아 카자흐스탄 등에도 다녀온 사람이거든요. 아프간 파견을 덤덤히 받아들이고 열심히 기도해줬지요.”



▼ 왜 굳이 전쟁터에 가려 하신 건가요?

“종교인으로서 사명감이 있었고, 현지 상황을 잘 모르기도 했어요. 아프간에 가기 전까지는 위험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전쟁터로 간다는 건 알았지만 실감을 못했죠. 현지에 도착한 뒤 비로소 전쟁이 무엇인지 알았고, 눈물도 많이 흘렸어요.”

연세대 의대 학부와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친 박 교수는 고려대 의대에서 비뇨기과 박사학위를 받고 전문의 자격을 획득한 뒤 군에 입대했다. 독실한 종교인으로 의대생 시절부터 의료봉사에 열심이었던 그는 제대 후 전주예수병원에 취업했다.

“선교사 병원이에요. 당시 원장이 미국인 닥터 실(Dr. Seel)이었고요. 우리나라에서는 ‘설대위 박사’로 더 많이 알려진 분인데, 설암 분야의 권위자이면서 선교사시죠. 그분을 평소 굉장히 존경했어요. 저도 그분처럼 의료 선교를 하고 싶었고요. 전주예수병원 의사 중 상당수가 선교사로 해외에 나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결혼하고 딸이 생긴데다 당시만 해도 믿음이 부족하고 소명의식이 약해 선교사가 되지는 못했어요.”

박 교수는 전주예수병원에서 6년간 근무한 뒤 1989년 인제대 서울백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국내 의료봉사활동을 시작했다. 2000년부터는 해외 의료선교를 시작해 네팔, 캄보디아, 몽골, 이집트 등 6개국을 10여 차례 다녀왔다.

▼ 아프가니스탄은 다른 의료 봉사지와 느낌이 달랐겠지요. 아프가니스탄의 첫인상은 어땠나요?

“두바이를 경유해 작은 비행기로 갈아타고 바그람 기지에 들어갔어요. 3시간 반 정도 걸려 도착했는데 가는 내내 비행기 창문 아래로 황토만 보이더군요. 2월 말이었는데 흙산에 눈이 많이 덮여 있었고, 나무 한 포기 풀 한 포기 없었어요. 말 그대로 누런 황토색 광야였지요. 아프간 시골은 민가도 전부 흙집이에요.”

황무지 폐허의 땅

▼ 바그람 기지에 첫발을 디딜 때는 무슨 생각이 들던가요?

“주위에 군복 입고 완전무장한 사람밖에 없는 점에 놀란 기억이 나요. 민간인은 우리 일행뿐이니 얼떨떨했죠. 전쟁터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확 들더군요.”

▼ 기지에 도착해 무슨 일부터 했습니까?

“병원을 둘러봤어요. 새로 지은 콘크리트 2층 건물인데 아무 준비가 안 돼 있더라고요. 인테리어가 없는 건 물론이고 온통 먼지구덩이데요. 의료진 전부가 쓸고 닦는 일부터 시작했죠. 병원에서 쓸 책상이며 가구, 진료실 침대와 세면대, 냉장고, 시계 등 집기도 우리가 비행기 타고 두바이까지 가서 직접 사왔어요. 전쟁터에서 그런 물건을 구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아프간 시내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었거든요. 그곳에서 한국 사람은 굉장한 ‘봉’으로 소문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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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신동아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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