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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잎에 부치는 봄의 노래

궁류·대현마을

버들잎에 부치는 봄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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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잎에 부치는 봄의 노래

대현마을 전경.

1982년 4월 26일 밤 9시 반 경남 의령군 궁류면 경찰지서에 근무하던 우범곤 순경(당시 27세)은 지서와 예비군 무기고에서 카빈 소총 2정과 실탄 144발, 수류탄 8발을 탈취해 주민들에게 무차별 난사했다.

그의 범행은 우발적이었다는 추후 소문과는 달리 믿기지 않으리만치 치밀했다. 먼저 우체국으로 가서 전화교환원부터 살해한다. 지금과 같은 인터넷이 없던 시절, 외부와 통하는 유일한 수단이던 전화를 단절하기 위한 조치다. 그리고 불이 켜진 집을 골라 다니며 젖먹이, 노인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난사하고 특히 상가(喪家)에 들러서는 돗자리에 앉아 있던 수십 명의 주민에게 서너 발의 수류탄을 던진다. 살벌했던 남북 대치 시대, 마을 주민들은 대규모 무장공비가 나타난 줄 알고 공포에 떨었다.

56명 사망한 참사의 현장

한 주민이 캄캄한 어둠 속 산비탈 길을 달려 의령경찰서에 신고한다. 하지만 여덟 시간 동안 토곡리 등 4개 마을은 공포 그 자체. 우 순경은 다음 날 새벽 5시께 일가족 5명이 잠자고 있던 궁류면 평촌 외곽의 외딴 농가에 들어가 수류탄 2발을 터뜨려 자폭한다. 자그마치 무려 56명의 사망자와 34명의 부상자를 남긴 광란의 살육제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버들잎에 부치는 봄의 노래

평촌마을회관 벽면 간첩신고를 독려하는 문구가 이채롭다.

‘恐怖(공포)·悲鳴(비명)·鮮血(선혈)의 8시간 죽음의 宮柳面(궁류면).’ 그해 4월 27일자 ‘동아일보’의 머리기사 제목이다. 기사는 “坪村(평촌) 마을은 집집마다 온통 피범벅이었으며 방과 마루 등에는 피가 뒤엉겨…”등으로 이날의 참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 사건은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았고 나아가 지구촌을 놀라게 했다. 아무리 술 취했다손 치더라도 한 개인이 하룻밤 사이에 그 많은 인명을 살상할 수 있었을까.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동네사람들과 격의 없이 술잔을 나누던 순한 청년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치안 체계가 도마에 올랐다. 담당 경찰서장은 물론이고 급기야 내무장관까지 사임하기에 이른다. TV 방송용 서프라이즈도 이만한 서프라이즈는 찾아보기 힘들다.

경남이지만 대구 문화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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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회를 들으려고 모인 주민들.

사설이 길었다.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은 사건처럼 이렇게 외지고, 외롭고 또 궁벽한 마을이다. 용감한 주민이 죽을힘으로 내달려야 비상전화라도 걸 수 있을 만큼 떨어져 있는 산간오지, 경남 중심부에 숨어 있는 존재감 없는 산간마을이다. 그나마 의령군에 속해 있는 덕분에 가끔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의령은 행정구역으로는 경남이지만 대구 문화권이다. 지금은 메워져 흔적조차 없어진 대구시 서구 성당못 인근에 위치한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직행버스로 한 시간 남짓 걸린다. 그래서 대부분의 물산이나 인적 교류가 부산이나 마산보다는 대구 쪽으로 향하게 된다.

우 순경 사건의 궁류면 정도로 대중에게 인식되지만 그러나 그날의 비극을 되살릴 만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몸서리쳐지는 기억을 떨쳐내려는 주민들과 행정관서가 참극의 현장을 죄다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숱한 사람이 죽어간 상가는 부숴버리고 그 위에 보건진료소를 지었다. 우 순경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농가는 텃밭으로 변해 지금은 집터만 간신히 알아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기억까지야 없앨 수 있겠는가? 마을 입구에서 만난 정서분(74) 할머니는 손사래와 함께 진저리를 친다. 우 순경이 동거녀와 낮잠 자다가 벌인 말다툼이 발단이 되었다고 하나 믿기 어렵다는 것이 정 할머니의 설명. 하지만 모든 사건 사고 뒤에는 여자가 버티고 있다는 것은 불멸의 진리가 아니던가. 스무 살에 시집와서 50년 넘게 이 마을에 살았다는 정 할머니가 들려주는 그날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참담한 역사를 간직한 궁류면 소재지를 뒤에 두고 산길을 거슬러 한참 가다보면 평촌리 대현마을이 나타난다. 구름도 울고 넘는다는 노랫말에 딱 어울리는 언덕 위의 남루한 마을이다. 마을 뒤편 고개를 왼쪽으로 두고 거슬러 올라 한티 고개를 완전히 넘어서면 합천군 쌍백면. 그래서 한때는 합천군에 속했다가 다시 의령군으로 되돌아온 ‘왔다갔다’ 마을이다. 대현마을은 능선과 밭이 유려한 곡선으로 조화를 이룬 자굴산 자락을 끼고 있다.

산자수명한 마을, 그래서 수년 전 이곳에다 ‘의령예술인촌’을 조성한다고 떠들썩했지만 지금은 흐지부지된 상태다. 봄은 이제 올 만큼 왔지만 산꼭대기 마을에는 칼날 같은 바람이 귓전을 사납게 때린다. 팔십 노인 너덧 가구가 사는 마을, 대처에서 놀러온 손자가 심심한 듯 접근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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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yule21@empas.com 사진·권태균│ 사진작가 photocivi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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