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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풋한 매력으로 한국 영화의 청춘 이끈 여왕들

문희·남정임·윤정희, 여배우 트로이카

풋풋한 매력으로 한국 영화의 청춘 이끈 여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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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6년과 1967년은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시기다. 재능 있는 배우와 의욕 넘치는 감독,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에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는 관객이 삼위일체가 돼 그때껏 볼 수 없던 걸작을 쏟아냈다. 그 중심에 갓 데뷔한 여배우 3인방, 문희·남정임·윤정희가 있었다. 1968년 ‘미워도 다시 한 번’의 흥행으로 시작된 ‘신파 반동’ 탓에 채 꽃피기도 전에 스러지고 말았지만, 눈부시게 화려했던 트로이카의 전성시대를 추억한다.
풋풋한 매력으로 한국 영화의 청춘 이끈 여왕들

1 발랄하고 거침없는 매력으로 인기를 끌었던 배우 남정임. 2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으로 한국 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배우 문희. 3 이지적인 현대 여성부터 비운의 여주인공까지 다양한 배역을 소화한 배우 윤정희.

1964년개봉한 신성일·엄앵란 주연의 영화 ‘맨발의 청춘’(김기덕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 청춘이란 단어를 불러들였다. 고무신 부대의 눈물을 짜내는 것이 목표였던 신파 멜로 영화판에 새로운 기운을 가져온 것이다. 젊고 혈기 넘치지만 뒷골목 조무래기 깡패에 불과한 신성일의 우울하고 반항적인 연기와 싱싱하고 발랄한 여대생이라는 새로운 여성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 엄앵란의 연기. 이 커플의 사랑은 현실로까지 이어졌고, 영화는 큰 인기를 끌었다. 신성일이 입은 터틀넥 스웨터와 트위스트김의 청재킷·청바지가 유행했고, 엄앵란의 톡톡 쏘는 여대생 연기는 이후 한국 영화 속 여대생의 전형이 되어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감독, 1975)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비슷비슷한 날림 영화가 우후죽순 만들어지는 법. ‘맨발의 청춘’ 아류작이 쏟아졌다. 그리고 1965년 10월, 이만희 감독의 ‘흑맥’이 개봉됐다. 남자 주인공은 신성일, 상대역은 문희라는 이름의 신인이었다. 서울역 주변을 무대로 소매치기를 하며 연명하는 일당의 두목 신성일이 아직 소녀티를 못 벗은 문희를 만나 사랑하고, 범죄에서 벗어나려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는 내용의 영화였다. 또 ‘맨발의 청춘’ 아류작인가? 엄앵란이 시집가고 없으니 신인 여배우를 하나 급히 만들었나보다 했다. 그런데 서울 뒷골목과 그곳에서 기생하는 어두운 청춘의 이야기를 ‘맨발의 청춘’보다 더 뛰어나게 담아낸 게 아닌가. 그 중심에 신인 배우 문희가 있었다. 이 여배우의 얼굴에는 지금까지 한국 영화에서는 볼 수 없던 스산한 분위기가 담겨 있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소설 ‘죄와 벌’의 주인공 ‘쏘냐’를 떠올렸고, 함께 연기한 배우 신성일은 옷이 흘러내려 속살이 드러나는 것도 모른 채 연기할 만큼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는 그녀에게 감탄한다. 이만희 감독은 이 배우에게 최고 여배우 문정숙의 ‘문’과 자신의 이름 끝 자인 ‘희’를 따서 ‘문희’라는 예명을 지어주었다.

1세대 트로이카

풋풋한 매력으로 한국 영화의 청춘 이끈 여왕들

1968년 제7회 대종상 시상식에서 남녀 주연상을 받은 신성일과 문희.

1960년대 중반. 1950년대를 주름잡던 스타의 시대가 저물고 있었다. 195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김희갑은 겹치기 출연으로 매번 지각을 하는 민폐를 끼쳐 스태프들의 원성을 사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깡패 출신 제작자 임화수에게 폭행까지 당했던 스타다. 그가 이제는 신인 코미디 스타 서영춘이 겹치기 출연으로 촬영장에 늦게 나타나는 데 분개해 호통을 치는 시대가 됐다. 영원한 청춘 김진규가 맡았던 배역은 새로운 스타 신성일과 신영균에게 돌아갔다. 과거의 신인이 중견이 되고, 새로운 신인이 나타난 것이다.

여배우의 세계도 그랬다. 오랫동안 한국 영화에서 여배우는 그 얼굴이 그 얼굴이었다. 그런데 최고의 스타 최은희가 영화감독으로 나서며 자신이 출연하는 영화 편수를 과감히 줄여나갔고, 김지미는 최무룡과의 스캔들에 시달리느라 정신이 없어 흥행작을 내지 못하는 상태였다. 떠오르던 샛별 엄앵란은 신성일과 결혼해 아기를 출산한 뒤 영화 출연을 사실상 접어버렸다. 새로운 얼굴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였다. 이때 문희가 나타났다. 스타는 좋은 작품과 좋은 감독을 만나야 만들어지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흥행이 돼야 스타가 나온다. 문희의 매력적인 분위기는 감독들의 눈을 사로잡았고, 그가 떠오르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흑맥’ 개봉과 비슷한 시기인 1965년 11월, 이번엔 김수용 감독이 만든 ‘갯마을’에서 매력적인 얼굴을 지니고 연기력도 제법인 신인이 탄생했다. 영화의 도입부, 마을 여자들이 모두 나와 땀을 뻘뻘 흘리며 배를 끄는 장면에서 소녀 과부 고은아는 땀에 젖어 엉겨붙은 귀밑머리와 고개 숙인 옆모습 하나로 관객의 머리에 ‘에로틱’이 무엇인지 각인시켰다. 문희와 고은아 두 신인 여배우 모두 대학 재학 중 감독에게 발탁됐다. 이른바 여대생 출신 여배우의 탄생이었다. 이들 전의 여배우는 악극단 출신이 대부분이라 학력을 내세우며 선전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나 이제 말하자면 미모와 지성을 갖춘 여배우가 등장한 것이다.

그 무렵 또 한 명의 스타도 조용히 태어나고 있었다. 방송국에서 단역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한 신인 여배우 한 명이 김수용 감독의 영화 ‘유정’의 신인 여배우 오디션에 참가한 것. 이 신인 공모에는 유례없이 상금 50만 원이라는 큰돈이 걸려 있었다. 춘원 이광수의 소설을 영화화한 ‘유정’의 주인공으로 낙점된 이민자라는 이름의 신인 여배우는, 이후 소설 여주인공의 이름 ‘남정임’을 예명으로 얻었다. 자신의 얼굴은 오른쪽이 아름다우니 그쪽으로 찍어달라고 촬영 기사에게 당돌하게 요구할 만큼 거리낌 없던 여배우 남정임은 이렇게 탄생했다.

1966년 영화 ‘유정’이 개봉됐고, 순애보적인 사랑을 설득력 있게 연기한 남정임은 적역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영화는 당대 한국 영화 최고의 흥행작 ‘성춘향’(신상옥 감독, 1961)의 관객 수 36만 명에 필적하는 35만 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한다. 이때부터 고은아·문희·남정임, 이 세 명의 신인 여배우는 여왕 자리를 넘보는 후보로 극장가를 점령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낸 배우는 고은아였다. 당시 최고의 흥행 감독이던 김수용은 고은아를 “동양적이고 정적인 분위기를 지녔고, 일제강점기 최고의 여배우 문예봉과 6·25전쟁 후 최고의 여배우 최은희 두 사람의 인상을 합쳐놓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한국 여배우의 적통을 이은 배우로 평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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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영화감독 dook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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