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부여사
송호정 지음, 사계절, 256쪽, 1만8000원

그러나 부여는 기원전 3세기에 역사 무대에 등장해 700년 이상 만주 일대를 무대로 활약한 우리 고대 국가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은 부여 왕실에서 태어나 성장한 부여 왕자다. 백제도 온조 집단이 부여 후손임을 자처했고, 나중에 국가 부흥을 꾀하며 국호를 남부여라고 한 데서 드러나듯 그 연원이 부여에 있다. 신라와 가야 역시 부여에서 내려온 주민 집단이 아주 중요한 구실을 했다는 것을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발해도 부여 후손으로서 옛 부여 지역을 회복하고 자랑스러워한 것이 사료에 기록돼 있다. 이처럼 부여의 역사는 한국 고대국가 발전 과정에서 변방이 아닌 중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찍이 부여를 주목한 신채호는 ‘독사신론’에서 ‘4000년 우리 역사는 부여족 성장 발전의 역사’라고 주장했다. 그는 단군의 정통이 부여로 계승되고 기자, 한(韓) 등이 단군 후예인 부여 왕조의 명령을 받들었으며, 부여에서 고구려가 파생됐다고 보았다. 부여는 오늘날 지린성과 헤이룽장성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고대국가 발전 과정에서 우리 민족이 품으려고 노력한 지역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 것이다.
그러나 부여의 활동 지역이 중국 땅이다보니 우리가 유적 현장에 접근할 기회조차 쉽게 갖지 못하는 동안 부여사 연구의 주도권이 중국 학계로 넘어갔다. 동북공정이 추진되기 전부터 중국 학계에서는 부여를 중국 지방민족 정권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었다. 그러다 동북공정의 시작과 함께 부여는 더욱 집중적인 연구 대상이 됐고, 고고 조사와 병행해 중국의 고대 역사로서 정리하는 많은 연구 성과가 나오고 있다.
많은 사람이 동북공정 탓에 우리 고대 역사인 고구려사가 중국사로 편입됐다고 걱정하며 동북공정에 대한 반박 논리를 만들기 위해 고민한다. 그 반박 논리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주몽을 비롯해 고구려를 세운 집단이 예맥족이 세운 부여의 왕족 출신이라는 점이다.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여사를 중국 역사가 아닌 예맥족이 세운 한국 고대 역사로 자리매김하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후손이 고구려, 백제, 신라(가야), 발해를 세웠다는 점에서 우리 역사의 출발점에 부여사가 있다.
감춰진 우리 고대사로서 부여사의 제자리를 찾는 것은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과제다. 이 책은 ‘국내 1호 고조선 박사’인 필자가 그동안 고대사의 변방에 있던 부여의 역사를 한국 고대국가의 출발점이자 원류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지린, 선양 등 만주 지역을 수십 차례 답사하고 국내외 연구 성과를 종합해 저술한 책으로, 부여의 기원부터 성장과 쇠퇴, 제도, 생활과 문화에 이르기까지 지금껏 부여에 관해 밝혀진 모든 것을 집대성한 최초의 단행본이다.
송호정 |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
지낭-삶의 지혜란 무엇인가 _ 풍몽룡 지음, 문이원 옮김

용재총화 _ 성현 지음, 김남이·전지원 옮김

한자, 중국어와 함께하는 중국문화산책 _ 임진규 지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