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김영민
필자가 운영하는 센터에서도 명절 전후로 부부 상담이 증가한다. 명절에 시댁에 간다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져온다는 주부가 적지 않다. 명절이 끝난 후 갈등이 폭발하기도 한다. 집에 오는 길에 아내가 “힘들었다”고 한마디했는데 남편이 “애썼다”고 위로해주기는커녕 “그렇게밖에 생각을 못하냐”고 짜증을 내면서 다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아내에겐 시댁까지 왔다갔다 하고 명절 준비하는 데서 오는 육체적 피곤함보다, 내가 힘든 것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데서 오는 서운함이 더 크다.
부부가 함께 겪는 명절증후군
그런데 여자만 명절증후군을 겪는 게 아니다. 요즘은 아내 눈치를 보는 남편이 늘고 있다. 여성의 권리가 신장된 데다 맞벌이 가정이 늘어난 때문이다. 아내의 가정 경제 기여도가 높다 보니 아내 주장을 무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자녀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 아이들 공부 핑계로 며느리가 시댁에 안 가는 경우도 많다. 명절 연휴 동안 지방의 시댁에 왔다갔다 하면 공부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이유를 댄다. 아이들을 혼자 내버려두면 안 되니 엄마는 집에 남고 아빠만 혼자 가라는 얘기다. 그런데 자녀가 대학에 가도 엄마의 태도는 바뀌지 않는다. 대학생 자녀가 시골에 안 가겠다고 하는데 혼자만 남겨놓을 수는 없지 않으냐면서 다 큰 자식을 핑계로 계속 시댁에 안 가려 한다.
피할 수 없는 외나무다리
아내가 명절 연휴에 해외여행 가자고 조르면 가장의 마음은 편치 않다. 부모는 “괜찮다” “잘 다녀오라”고 하지만 왠지 미안하다. 그런데 다음 해에도 아내는 해외여행 타령을 한다. 남편이 “부모님 모시고 함께 여행 가자”고 하면 아내가 난리를 친다. 타협안으로 “이번 명절엔 부모님 해외여행 보내드리고 우리는 다음에 가자”고 하면 “그럴 돈이 어디있느냐”는 답이 돌아온다.
부모가 이해심이 많아 아들 내외에게 뭐라고 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부모는 “왜 안 오냐”며 성화고, 아내는 아내대로 “못 간다”고 버티면 남편만 중간에서 죽어난다. 과거에는 ‘못된 시어머니, 불쌍한 며느리’가 명절증후군 불변의 공식이었지만 지금은 경우의 수가 많아졌다. 아내 처지에서 바라보면 시부모가 원인을 제공하는 경우, 시형제나 동서가 보기 싫은 경우, 남편이 미운 경우 등 이유는 가지가지다.
시부모가 원인을 제공하는 경우부터 살펴보자. 지금은 줄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상한 시부모’는 존재한다. 혼수 때문에 마음에 안 들었던 며느리에게 주야장창 면박을 주는 시어머니도 있다. 잘난 아들 생색을 내기도 한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학벌이 안 좋아서, 싹싹하지 않아서, 가정교육을 못 받아서 마음에 안 든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냥 며느리가 싫은 것이다. 아들을 빼앗긴 것 같아서 누가 됐든 며느리를 싫어하는 시어머니도 있다. 어떤 시어머니는 누군가를 흉보고 깎아내려야 마음이 편한데, 며느리라고 예외일 수 없다. 뭐든 트집을 잡는다. 시아버지가 합세하는 경우도 있다.
며느리는 처음엔 내가 부족해서 그러려니 하고 참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한계상황에 도달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며느리는 스스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시댁과 거리를 두게 된다. 그런데 명절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외나무다리다.
이런 경우, 남편이 자기 부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관건이다. 남편이 자신의 부모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아내의 어려움을 이해한다면 다행이다. 부모 댁에 가는 것에 대해서는 남편이 나름대로 동의를 구한다. 무조건 가야 한다고 하는 것과 가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아내에게 천지 차이다.
이상한 가족
어떤 남편은 명절에 부모 앞에서도 아내 편을 들어주려 한다. 아침에 되도록 빨리 일어나려고 노력한다. 집에 오면서 애썼다고 위로도 한다. 시간을 내서 처가에 들러 사위 노릇도 한다. 아내에게 선물도 사준다. 그러다가 아내가 너무 힘들어하면 명절 때 아내는 부모집에 가지 않도록 배려하기도 한다. 그래서 중간에서 부모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려고 한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다. ‘이상한 부모’일수록 뭐 하나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남자가 돼서 여자에게 질질 끌려다닌다고 아들을 족친다. 아들은 중간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그런 남편이 안쓰러워 아내는 “차라리 내가 가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