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락을 만난 날은 한국이 월드컵에서 감격의 첫승을 거둔 다음날이었다. 그는 약속 장소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전날 벌어졌던 한국 대 폴란드 경기를 다시 보고 있었다. 전반전 26분 황선홍이 첫 골을 터뜨리자 그는 어제의 감격이 되살아난 듯 소리 높여 환호했다. 자연스레 인터뷰는 월드컵을 화제로 시작됐다.
“제가 만으로 41세인데 한국 대표팀이 요즘처럼 축구 잘하는 건 처음 봐요. 월드컵 개막하기 전 평가전도 열심히 봤는데 일취월장이 따로 없더라고요. 전에는 한국 축구하면 정신력, 투지였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축구를 즐기는 게 보여요.”
신문 정치면 보고 유행어 찾는다
그는 특히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선언한 황선홍 선수의 마음이 얼마나 가볍겠냐며 마치 자기 일처럼 흐뭇해 했다. 그는 언제부턴가 자신이 응원하는 대상이 달라졌다며 격세지감이 든다고 했다. 예전에는 패기 만만한 신예들을 주로 응원했는데 요즘은 노장이나 선배들을 응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예를 들면 바둑에서 이세돌과 조훈현 기사가 격돌하면 예전에는 반드시 이세돌을 응원했지만 지금은 조훈현 기사 편이란다. LG 투수 김용수를 좋아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20세 이상 차이 나는 후배들을 향해 힘차게 공을 던지는 그가 존경스럽기까지 하단다.
“하지만 정치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신인 편입니다. YS도 이제 나설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그런 거 보면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는 은퇴를 깔끔하게 잘하는 것 같습니다. 대중으로부터 별 반응이 없으면 물러나야 하는 건 연예인이나 정치인이나 마찬가지일 텐데요.”
최양락은 요즘 하루 대부분을 여의도에서 보내고 있다. 이른바 섬 생활(?)을 하고 있는 것. 매일 아침 8시40분부터 9시까지 SBS 러브FM ‘최양락의 개그세상’과 오후 8시부터 한 시간 동안 MBC 라디오 ‘최양락의 재밌는 세상’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방송까지 10시간이 넘게 비지만 그는 대부분의 약속을 여의도에서 잡으며 모처럼 여유를 맛보고 있다. 점심, 저녁식사는 거의 담당 PD들과 함께 먹는다. 낮 시간 약속 없는 날은 단골 사우나에 들러 오수를 즐기기도 한다고.
그가 오전에 진행하는 SBS 러브FM ‘최양락의 개그세상’은 그날그날 핫이슈를 촌철살인의 풍자로 풀어내, 작년에 큰 인기를 모았던 ‘알까기’ 이후 다시 한번 화제가 되고 있다.
“처음에는 정치 풍자라는 컨셉트 때문에 꽤 망설였어요. 그런 분야는 당연히 시사평론가 몫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프로그램 기획의도가 일반의 시각에서 보는 것이라고 하길래 용기를 냈습니다. 4월15일부터 시작했는데 예상보다 반응이 좋아 다행이에요.”
라디오 특성상 6개월은 지나야 정확한 평가가 나오지만 내부에선 진행자 기용이 탁월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오후에 방송하는 ‘최양락의 재밌는 세상’도 전직 대통령의 성대모사를 이용한 ‘3김 퀴즈’가 인기를 얻고 있다.
“글쎄요, 정치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관심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신문 정치면을 유심히 보고 있노라면 정말 재미있거든요. 날마다 유행어가 터져나오잖아요. 지루할 틈을 안 줘요. 아침 프로의 경우 보통 하루에 두 아이템 정도를 소화하는데 뉴스 거리가 넘쳐서 고민이에요. 흔히 호주나 캐나다를 ‘재미없는 천국’이라 부르고 대한민국을 ‘재미있는 지옥’이라고 하잖아요. 정말 딱 맞는 표현인 것 같아요.”
하지만 한국 정치가 축구보다 발전 속도가 더딘 것 같아 씁쓸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라디오에 흠뻑 빠져 있는 지금이 매우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1981년 MBC 라디오 주최 제1회 개그맨 경연대회에서 입선하며 연예계에 데뷔한 그는 그간 TV에서 활동하느라 라디오에 소홀했는데 이제 그 빚을 갚는 기분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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