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5월호

‘15초의 꿈’ 만드는 이미지의 연금술사

  • 마정미 SPERO@chollian.net

    입력2006-10-25 1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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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괴기스런 판타지와 차가운 느낌. 대중매체들이 이미지 광고 열풍에 빠졌다. 이런 광고들이 젊은 층에게 어필하기 때문이다. N세대를 읽어내는 코드는 없을까. 이미지 광고 붐을 주도하고 있는 CF감독 박명천에게서 N세대 감각을 배워본다.》
    이미지가 범람한다. 발터 벤야민의 말대로 기술복제시대의 문화예술은 끝없이 복제되고 패러디되면서 이미지를 양산한다. 그 중에서도 광고는 영화와 뮤직비디오의 양식을 넘나들면서 화려한 영상을 펼친다.

    짧은 15초 동안 이미지의 융단폭격을 하고 사라지는 최근의 광고들은 낯설고 생경하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개연성없는 논리 구조, 기계적이고 차가운 이미지가 이들의 특성이다.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가 들리고 얼굴을 물 속에 집어넣는 10대 소녀, 나뭇가지를 움켜잡는 손가락, 손 안에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올챙이, 이어 소녀가 굴을 입안에 밀어 넣는 장면, 마지막으로 왼쪽 뺨에 새겨지는 TTL. 화제를 불러일으킨 SK텔레콤의 TTL 론칭광고다.

    이 광고로 촉발된 이미지 광고 열풍이 온통 대중매체를 잠식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광고산업을 이끌어 온 광고계의 원로들은 이 광고를 두고 “광고표현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우리 시대는 갔다”고 말한다. 최근의 광고들은 n, @, e, i, m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기호들과 함께 사이버 세계로, 괴기스런 판타지의 세계로 넘나들고 있다. 그로테스크한 가면의 아이가 등장하는 마이크로 아이, ‘파란 피’가 흐르는 나우누리, “내 혈액형은 I”를 읊조리는 물갈퀴 여인의 터치 아이, 스타크래프트 영웅 ‘쌈장’이 등장하는 코넷, 제 5원소의 분위기를 차용한 움직이는(mobile) 인터넷 한솔 엠 닷 컴, 조지 오웰의 1984를 연상케 하는 카이(khai) 등. 수많은 광고들이 충격적인 이미지와 낯선 서사구조로 현란한 잔상을 남기고 점멸한다.

    포스트모던의 징후들



    사실 이미지 광고는 새로운 양식이 아니다. 제품과 제품의 컨셉에 따라 표현양식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패션업계 같은 분야의 광고는 이미지로 소구해온 지 오래다. 이들 광고가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최근 이미지 광고가 유행처럼 번지고 그 강도가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련의 광고들은 포스트모던 광고 양식이라 할 수 있다. 프레드릭 제임슨의 틀을 빌어 살펴보면, 그 특성은 현실과 허구의 뒤섞임, 서술구조의 해체, 공간과 시간의 해체, 예술장르의 혼합, 페미니즘적 시선, 카메라와 시청자간의 시선일치 파괴, 전통적 색채조화의 파괴 등에 있다.

    해체되고 어두운 이미지들은 기성세대에게는 조금 불편하다.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이상스런 광고가 마케팅에서 놀라운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TTL같은 경우 당초 잡았던 매출신장률이 4배 이상 늘었고 괴기스럽다고 하는 마이크로 아이는 단말기가 없어서 못 팔 정도라 한다. 다시 말하면 이런 이미지들은 이 시대의 ‘유스 마켓(you th market)’, 젊은 소비자층에게 어필하고 있다는 얘기다.

    광고는 사회가 만든다. 그렇다면 소비자의 욕구와 감성과 잘 맞아 떨어지고 있는 이런 광고 양식들은 단순히 하나의 양식이 아니라 이 시대 문화의 속성 자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문화 생산자로부터 얘기를 들으면 그에 대한 긍금증을 풀 수 있을까.

    닉스, TTL 등의 광고를 찍은 박명천이라는 CF 감독이 있다. 잿빛의 파리, 좁은 뒷골목을 질주하던 97년 청바지 닉스의 여운은 아직도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영상이다. 원씬 원캇(one scene, one cut)으로 손톱을 깎거나 귀지를 파는 부부의 모습, 그 옆에서 하릴없이 장난치는 개와 고양이를 담은 한미은행 광고 또한 그의 손을 거쳐 나간 히트작이다. 그런가 하면 OB라거에서는 ‘YMCA’에 맞춰 펭귄과 춤추는 CF로 IMF에 멍든 사람들을 위로했다. 국제전화 002 전원주편도 빠질 수 없다. 온갖가지 70년대 문화가 뒤섞여 촌스러움을 자아내는 화면과 전원주의 열연에 사람들은 기가 막혀 했다. 최근에는 ‘초코바로 맞아 볼래’라는 생뚱맞은 광고를 내놓았다.

    현재 매스 메스 에이지라는 프로덕션을 이끌고 있는 그는 상종가를 치고 있는 최고의 CF감독이다. 실험적인 작품만 선별되는 해외광고 클립 ‘SHOT’에 국내에서는 최초로 그의 광고가 실렸다.

    사실 박명천이라는 감독은 그 인물 자체가 하나의 기호인 듯하다. 이 시대와 궁합이 잘 맞는 그의 존재, 그의 감각, 그의 상상력과 생각을 되짚어보면 이 시대를 읽을 수 있다. 그것은 빠른 속도로 치달아가는 현대사회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아온 30여년의 한국사회를 보여준다. 그의 인구통계학적 프로필을 살펴보면 드러나듯 그는 신세대가 아니다. 기성세대의 주문에 따라 신세대의 감각으로 광고를 만들어내는 그는 88학번 1969년생이다. 즉, 세간에서 일컫는 ‘386’의 끄트머리 세대인 것이다. 이 프로필은 그를 이해하고 이 시대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코드다.

    이미지가 건네는 말

    그의 CF에는 언어적 메시지가 최소한으로 들어가 있다. 아예 말없는 광고이거나 동시녹음 때문에 말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미지가 말이나 글에 비해 훨씬 많은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글은 약속된 텍스트의 체계를 통해 의미를 담지만, 그림은 보여주는 것만으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각도에 따라, 얼굴에 따라 많은 표정과 이야기가 들어 있고 미묘한 차이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집니다. 스니커즈 CF같은 경우 표정과 모습에는 그들의 계층, 생활 등이 드러나 있고, 머리 모양 등을 통해서 어떤 부류의 인물인지가 보이지 않습니까.”

    최근의 이미지 광고 유행에 대해서 어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웃어버린다.

    “우리나라는 유행의 조류가 굉장히 빠른 편입니다. 패션의 전이가 빠르고 사회 분위기나 문화적 현상들도 마찬가지지요. 그것은 유행에 따르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불안 심리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저는 항상 ‘몰려다니면 죽는다’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제 광고 패턴은 이미 이미지 광고에서 라이브한 일상생활 쪽으로 넘어갔어요.”

    그의 전략은 ‘치고 빠진다’이다. 그래서 그의 광고는 한편 한편이 다르다. 도저히 같은 사람이 만들었다는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다. TTL CF에 감탄한 사람은 한미은행 광고와의 연계성을 찾지 못한다. 그런가 하면 스니커즈의 생뚱맞고 낯선 이미지 표현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이런 변신에 대해 그는 “회사와 제품의 컨셉에 맞출 뿐”이라고 말한다. 마케팅 브리핑을 받고 기업환경과 전달의도를 파악한 다음 표현강도와 뉘앙스를 결정한다. 소비자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박감독의 경우 ‘나라면 이렇게 하겠어’가 잘 먹힌 셈이다. 광고가 예술이 아닌 이상 기업이 요구하는 의도를 잘 반영하는 일이 우선이다. 더구나 광고주가 기업의 생사가 달려 있다는 긴박한 자세로 나오면 그 역시 사생결단을 하게 된다. 그렇게 만든 작품이 대체로 히트쳤다. TTL과 스니커즈같이 새로운 표현방식이 나온 것은 그런 배경.

    이 과감한 광고들이 오히려 상당한 매출 신장을 보인 것을 보면 그의 모험은 도박이 아닌 것이다. 실지로 아이디어를 도출한 후 작업에 착수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그가 결코 감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생각한 이미지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정밀한 장소 헌팅과 모델선정, 연기, 조명 모든 것이 짜여진 대로 한치의 오차도 없어야 한다. 그는 소품 하나 하나에도 신경쓰는 편이다. 굿모닝증권 CF에 나오는 물잔은 하나에 700만원짜리다. 증권가를 다루려면 고급 이미지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명효과 뿐 아니라 소품도 명품으로 고른 것. 세트 촬영이 많은 것도 정교한 이미지를 뽑아 내기 위한 것이다.

    인터넷 업체의 광고는 이미지를 잡아내기가 쉽지 않다. 광고하는 제품이 무형의 서비스이므로 제품을 보여주거나 실연할 수 없는 것이다. 박감독은 회사의 특성과 아이덴티티를 살리는 일에 고심한다.

    “늘 이 회사가 어떤 곳인가, 이 집이 무엇을 하는 집인가를 먼저 생각해요. 최근에는 광고주 측에서 제 마음대로 해보라고 말하지만 마음대로 하면 큰일나지요. 기업의 이미지와 회사의 사활이 달린 메시지이니 말입니다.”

    그는 이름에서 이미지를 뽑아 내는 일에 탁월하다. 굿모닝 증권 광고가 그렇다. 제품을 지시하는 직접적인 이름이 아닌 경우 이미지를 잡아내기 위해서는 우회해야 한다. 그래서 굿모닝의 이미지를 살린 픽토그램을 사용한 것. 그의 표현을 빌면 이 광고는 ‘쿨하게’ 가야 하고 ‘리치’해야 하며 ‘모던’해야 했던 것이다.

    그가 특히 신경쓰는 것은 모델 캐스팅이다. 모델의 분위기가 광고의 분위기를 좌우하기 때문에 캐스팅에만 한두달 걸리는 경우도 있다. 심혈을 기울이는 CF일수록 시간을 비우고 모델 캐스팅에 공을 들인다. “모델이 무척 중요해요.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표정과 연기를 통해 온몸으로 보여줘야 하는 사람이니 당연히 신중해야죠. 스니커즈 CF를 찍을 때는 백여 명의 모델들을 3번 이상 만나서 보고 또 보고 해서 골랐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상상력의 자유를 보장해 주는 광고주를 만났을 때 빛을 발한다. 최근에는 광고주와 광고 대행사가 프로덕션에 많은 자유를 주는 편이다. 덕분에 그가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작업이 많아졌다. 그 편이 광고 효과가 더 높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좋은 광고주가 좋은 광고를 만든다’는 것이 진리다.

    그가 광고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군대 제대후 복학해서 수강한 영상 디자인이라는 과목 때문이다. “군대에 다녀오니 바야흐로 컴퓨터와 영상의 시대가 시작되었더군요. 당시 강사는 영상인 프로덕션의 CF 감독 김종덕씨였는데, 그분이 저를 잘 보셨는지 당신 작업실에 있는 편집기와 기기들을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해 주셨습니다. 당시 학교의 컴퓨터와 편집기 등은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었는데, 편집기기가 완비된 프로덕션이 제공된다니 얼마나 꿈같았겠어요? 아예 그곳에 눌러 살았습니다. 졸업 후에는 곧바로 영상인의 CF조감독으로 일하게 되었지요.”

    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새삼스런 일도 아니다.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했고, 그의 가족은 아버님을 비롯하여 형 누나 삼촌이 모두 미술 계통에 있다. 박감독은 대학시절 언더그라운드 만화 동아리 ‘네모라미’에서 활약했고 같은 동아리 출신인 ‘도널드 닭’의 이우일씨는 지금도 가장 친한 친구다.

    “만화를 포기한 것은 좋아하는 일에 생계를 걸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공이 얼마나 들어갔느냐가 기준이 아니라 장당 얼마라는 식으로 평가된다는 것이 실망스럽더군요. 질이 아니라 양으로 계산이 된다면 먹고살기 위해 그림을 그려야 하고 좋아하는 일이 혐오스러워질 것 같아서 포기한 거지요.”

    그의 만화실력은 만만치 않다. 명암이 깊게 들어가고 어두운 톤에 다소 추상적이다. 내용 또한 전체주의에 대한 혐오와 자의식이 배어 있는 그림들이 대다수다. 그의 광고에 나오는 이미지들도 실은 그의 만화에 담겨 있는 모티프가 많다. 물고기라든가 텔레비전, 냉장고, 의자만이 있는 방안 풍경,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 그의 아이디어 풀은 만화인 셈이다.

    영상세대의 기원

    만화와 함께 오늘의 박명천을 만든 것은 영화다. 그가 영화의 매력에 흠뻑 빠져 할리우드 키드로 성장하게 된 배경은 TV의 ‘주말의 명화’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길’. 어릴 때 본 이미지가 오래 남아 있다. 제소미나가 팔려갈 때 등장하는 전형적인 이별 신, 엄마가 손 흔들고 아이들이 쫓아오는 장면은 002 CF에 담겼다. 텀블링하는 장면은 ‘제7의 봉인’에서 이미지가 나왔다. 역광에 비치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기억에 남았던 것. 닉스의 묘지 편은 ‘석양의 무법자’ 이미지를 살린 것이다. 그 영화에서처럼 십자가가 끝도 없이 펼쳐진 곳을 촬영장소로 찾아 달라고 했더니 현지인은 “전쟁 중이 아니라 그런 곳은 없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마침내 비슷한 곳을 찾았고 촬영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영상세대의 출현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란 정치적·경제적 환경에서 비롯된다. 기성세대가 궁금해하는 영상세대의 탄생은 아이러니하게도 군부독재와 상관이 있다. 요즘 발군의 능력을 보여주는 재능있는 감독들의 영상 입문 계기는 대부분 어린시절 ‘주말의 명화’에서 받았던 감동과 영향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고전이라 할 만한 주옥 같은 영화들이 연일 TV에서 방영되어 어린 꿈나무들에게 꿈을 꾸게 만들었다. 80년초 전두환 정부의 초기집권시절, 3S(screen, sports, sex)정책이라 불리던 국민의 우민화 정책 덕분이다.

    여하튼 박감독도 ‘주말의 명화’에 세례받은 세대인데 교육열이 높은 어머니가 텔레비전을 보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욕망이 더욱 컸다. ‘주말의 명화’ 시그널 뮤직에 대한 그의 향수는 남다르다.

    “어릴 때 ‘주말의 명화’ 주제곡이 나오면 몸이 달았어요(002 CF에 삽입되기도 한 이 곡은 그에게는 ‘아랑훼스 협주곡’이 아니라 ‘주말의 명화’ 주제곡이다). 텔레비전이 안방에 있었기 때문에 영화를 보려면 부모님 허락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죠. 그래서 꾀병을 부려 어머니 옆에 누워, 이불을 에스키모 동굴처럼 만들고 ‘주말의 명화’를 보기도 했습니다.”

    그는 언젠가 영화를 만들 생각이다. 장르 넘나들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영화 감독 중에는 CF 감독 출신이 꽤 있다. ‘터미네이터’를 제작한 리들리 스코트 감독이 그 예.

    이미지의 다양성

    그가 펼치는 영상이 그로테스크하다는 평에 그는 “그렇지 않다”고 일축한다. 자신의 영상이나 그림이 낯선 것은 일반 사람들이 다양한 그림과 영상을 접해 보지 못해서 그렇다고 단언한다.

    이해와 사고의 폭은 관습과 교육에서 나온다. 어두운 것이 우울하고 악마적이라고 회피하는 경향은 우리가 받아온 교육 때문이다. 우리가 다양한 비주얼을 보고 자란 것이 아니라 곱고 밝은 그림, 디즈니 만화 같은 그림만 보고 자랐기 때문에 이런 그림을 보면 생경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섬뜩하다, 기괴하다, 무섭다”라는 평을 들었던 마이크로 아이 가면도 그렇다. “저는 인형 수집을 좋아해서 여행 갈 때마다 인형을 사오곤 합니다. 인형은 인간의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마이크로 아이에 등장하는 인형도 그 중 하나예요. 중국인형이 유럽에 넘어가서 유행한 인형인데, 바비인형처럼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이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광고를 보고 악마주의라고 해요.”

    이미지 자체의 어두움도 싫어하지만 지저분한 것, 불량스러운 것에도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다.

    “기성세대는 치부를 다루는 것을 싫어해요. 지저분한 뒷골목을 보여주거나 장애자를 보여주면 국민 정서에 해를 끼친다고 하죠. 그러나 감춘다고 해서 사회가 깨끗하고 살 만한가요? 불량스러운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심의에 걸리고 청소년이 사랑을 얘기한다고 해서 방송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실정이예요. 보수주의자들은 사회의 어두운 부분이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광고가 그리는 세계가 장밋빛 허구라는 것은 광고를 만드는 사람들만의 책임은 아닌 것 같다. 파시즘의 영역을 소비주의가 대체하고 있다면 일상 속의 파시즘을 생산하는 것은 여전히 권력을 가진 기득권 층이다. 세상의 아름다움만 부각시키고 싶어하는 것은 그 어두움에 대한 책임이 기성세대에 있기 때문이다.

    “학교를 가면 국화빵 찍어내듯이 똑같은 교육을 받아야 하고 똑같은 길을 가라고 강요합니다. 방향을 정해 놓고 그 길에 가지 않으면 낙오자 취급을 하죠, 아이들은 모르모트처럼 그 길을 가지만 막상 자유가 생기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헤매게 됩니다. 자신이 무얼 하고 싶은지, 원하는 것이 무언지 모르는, 자율성을 잃은 인간이 되는 것이죠.”

    그는 맹목적인 세계화 바람에 휩쓸릴 생각도 없지만 ‘우리 것’에 집착하지도 않는다. 과연 우리 것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얼마나 있는가 묻는다. 우리 문화란 옛부터 중국 일본 미국 등 타문화들이 들어와 뒤섞이고 덧칠된 문화라는 것.

    박명천 감독의 영상에 종종 등장하는 것은 물과 질주 이미지다. TTL의 경우는 연속되는 5편에 모두 물이 등장한다. 그것은 어항의 물인 경우도 있고, 너른 바다, 휘돌아가는 강물인 경우도 있고 찰랑이는 물이기도 하다. 이 모든 이미지는 광고의 타깃 오디언스인 ‘스무살’의 이미지와 관련 있다. 물은 생명의 시원이기도 하고, 고여있는 마른 늪의 이미지이기도 하며 거듭나는 재생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미래가 불확실한 스무살, 아직 애티도 벗지 못한 채 다가오는 불안한 미래에 조심스럽게 손을 뻗는 그들의 모습을 표현하는 적절한 소재다.

    또하나의 이미지인 질주는 왠지 도시인의 외로움을 전한다. 골목길, 숨막히는 회색빛 도시의 골목을 내처 달리는 모델은 탈주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물론 그는 이것이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라고 말한다.

    “질주는 저 자신의 삶을 반영합니다. 마냥 숨가쁘게 달려온 제 생이지요.”

    그는 한가롭게 여행을 다녀 볼 새도 없었다. 졸업하자마자 광고판에 뛰어들어 밤샘 작업에 시달리고 지금까지 내내 달려왔으니까. 그에게도 절망적인 기간이 있었다. 3년쯤 조감독 생활을 했을 때 그는 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자신은 너무나 보잘 것 없는 것 같고 세상은 너무나 닫혀 있다고 느낀 것이다. 사실 광고계에 들어왔다가 포기하고 나가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그는 9개월간 창문도 없는 지하실 골방에 박혀 웅크리고 지냈다. 도피성 유학을 생각했다.

    마침 그때 닉스 CF 일이 들어왔고 그 광고를 기획했던 디자이너 백종열씨가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해서 정말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고집스럽게 만들어냈다. 절박한 심경에서 만든 광고라 아직도 박감독은 가장 애착이 가는 광고로 닉스를 꼽는다. 그때는 정말이지 상황이 열악했다. 골방에서 나오자마자 낯선 유럽의 도시에 덜렁 홀몸으로 건너가서 스탭진을 이끌고 골목으로 묘지로 움직이며 작업을 해야 했다. 어찌된 일인지 촬영일만 잡히면 비가 오거나 일이 꼬였다. 그러나 최악의 조건에서 오히려 좋은 작품이 나오는 법. 악조건이었기 때문에 더욱 결사적으로 정열과 모든 에너지를 쏟아 광고를 만들었다.

    “달리는 신이 많은 것은 한편으로 의도적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뛸 때는 더 이상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리얼하고 표정이 생생해요. 저는 모델이 표정이 나오지 않을 때는 모델에게 한바탕 뜀박질을 시킵니다. 그러면 훨씬 자연스런 표정이 나오거든요.”

    박명천은 비교적 자본주의와 궁합이 잘 맞는 사람이다. “저는 출신이 커머셜이에요. 미술을 전공했지만 순수미술이 아니라 시각 디자인이고 ‘광고는 예술이 아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요.”

    그는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랐다. 오늘의 그를 만든 것은 서울이라는 도시다. 그의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물고기의 이미지는 ‘노량진 수산시장의 생선들을 보며 자란 탓’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물고기는 살아있는 물고기가 아니고 목잘린, 내장이 발리어진 죽은 물고기들이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장바구니를 들고 나간 시장에서 그는 바다의 꿈이 아니라 푸른 바다의 기억마저 빼앗긴 냉동 생선의 꿈을 보며 자란 것이다.

    네모라미 시절에는 마케팅 전략을 배웠다. 언더그라운드 서클인 이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자금조달, 회원관리, 조직, 유통 등의 문제를 고민하며 자연스럽게 마케팅원리를 터득한 것이다. 경쟁은 어디에서나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자본주의의 아이들

    박명천의 프로덕션 이름은 매스 메스 에이지(MASS MESS AGE)이다. 분절된 어의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면 ‘대중 혼란 시대’쯤 될까. 무척이나 철학적이고 문명비판적인 작명인 셈이다. 그러나 대문자로 쓴 이 명패를 가만히 바라보면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이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MESS와 AGE를 붙여보면 MESS- AGE가 된다. MASS MESSAGE라면 ‘대중 메시지’ 혹은 ‘대량 메시지’다. 결국 CF 제작 프로덕션이라는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다. 그러나 이 MESSAGE를 분절하고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이 대중사회의 혼란스럽고 분열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이름이 되어 버린 것이다.

    “특별한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재미있잖아요. 이미지도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여러가지 의미가 있듯이 언어나 문자도 그런 것 같습니다.”

    사실 매스 메시지의 작명은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에서 연유했다고 그는 고백한다.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명제에 그는 공감한다. 더욱 공감하는 것은 ‘미디어는 마사지’라는 말. 프로덕션 식구들끼리 CF를 잘 만든 경우는 메시지이고 잘못 만들었을 경우는 마사지라고 자조적으로 말하곤 한다. 가끔 ‘거기 마사지 업소죠?’라는 전화가 걸려 올 때도 있다.

    그는 우리사회가 다작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경제시스템이라고 한다. 제작 경비와 비용이 늘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욕심대로 세트를 만들고 촬영에 심혈을 기울이면 추가경비가 엄청나게 깨진다. 사무실 운영을 위해 일을 계속 맡을 수밖에. 다작을 하다 보면 할 이야기가 점점 없어진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는 법인데, 그의 표현을 빌면 우리 사회는 ‘닳아 없어지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요즘 그를 가장 답답하게 하는 것은 심의다. 어제 밤샘 작업한 것이 하이홈 닷 컴이라는 인터넷 사이트 광고인데 기지촌 같은 분위기의 거리와 등장인물들이 나와 심의를 제대로 통과할 수 있을지 걱정한다. “물론 심의는 필요합니다. 허위광고라든가 기만광고처럼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겠지요. 그러나 표현규제의 가이드라인이 제발 상식선이면 좋겠어요. 심의 의원들의 경직성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한때 맥주광고가 심의에 걸린 경우가 있는데 모델의 표정이 ‘음주를 조장하는’ 표정이라는 이유다. 스니커즈의 ‘진정한 사랑’ 편은 여고생이 사랑에 대해 얘기한다는 이유로 심의에 걸려 방송되지 못했다. 아니 원조교제가 판을 치고, 미디어에는 온통 섹스와 폭력뿐인데 교복 입고 사랑을 이야기하면 안 되다니. 그는 자신이 표현하는 것은 삶에서 나오는 것이고 동시대 사람들이 같이 느끼는 것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되도록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은데 제약에 의해 방해받는 것이 싫다. 오히려 제재를 받는다는 사실에 꿈틀해진다. 못하게 하니까 더 하고 싶다.

    서울 청담동의 주택을 개조한 매스 메스 에이지 사무실은 참 고즈넉하다. 소품과 촬영기구 등이 여기저기 있지만 테이블과 콘솔 등이 모두 한국의 고가구 분위기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20대 초반의 ‘날라리 같은’ 직원들이 편한 옷차림으로 이 방 저 방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박감독은 빡빡한 스케줄로 집에 거의 들어가지 못한다. 잠은 작업을 하다가 의자에서 몇 시간 잘 뿐이고, 끼니도 하루에 한 번밖에 챙겨먹을 시간이 없다. 디자이너인 부인 김혜진씨(30세)와는 가끔 일 관계로 사무실에서 만난다. 지금 소원은 개와 산책할 여유만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것.

    다원주의와 열린 사회

    “저는 휴머니스트가 아니에요. 사랑에도 관심 없고, 인간적이라든가 선량한 인간으로 포장되고 싶지도 않아요”라고 그는 강론한다. 그렇다면 그는 그야말로 신세대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그에게서는 오히려 위선이나 위악에서 자유로운 개인주의뿐 아니라 현대인의 분열적이고 다층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

    그가 언젠가 다루고 싶은 소재는 구원이라고 한다. 그는 구원의 실체에 대해 말을 흐렸지만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무엇, 밑바닥 인생이나 개인의 결핍, 소외, 답답함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제시하고 싶다고 한다. 살다 보면 극한 상황이 있다. 모든 상황이 최악이고 사람의 힘으로 안 되는 상황이 있다. 때문에 탈주일 수도 있고 구원일 수도 있는 어떤 희망을 다루어 보고 싶은 것이다.

    “‘모든 사람이 소중해. 너도 이 세상의 한 부분이야. 너도 소중해’라는 것을 전하고 싶어요. 누구의 삶이든 가치있는 삶이고 누구나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할 일을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386세대의 정체성에는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 개인주의와 인간애가 뒤섞여 있다. 누구보다 개인주의적이고 주변 사람들과의 이기적인 사랑 따위는 믿지 않지만 모든 인간을 구원하고 싶어하는 아이러니. 문득 타인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타인을 인정하고 차이에 대해 강요하지 않는 삶, 그러나 자신의 욕망이 타인과 환경을 파괴한다면 타인을 어디까지 배려해야 할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는 자신이 할 일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저는 자기가 맡은 부분만 잘 해내면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온전히 신세대 젊은이인 것 같으면서도, 세상과 인간을 사유할 줄 아는 그들의 모습은 다원화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N세대의 특징은 아니키스트적 속성과 다중인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유없는 사회주의도 싫고 평등없는 자본주의도 싫다. 국가나 체제의 강제도 싫고 권위의식이나 간섭은 더더욱 싫다. 그들 자신이 저마다 소우주인 것이다. 그리고 이 소우주 하나하나가 모여 사회를 구성한다. 영상과 소비문화에 심취한 퇴폐적인 세대로 보이기도 하지만 누구보다 합리적이고 계산이 빠르다. 또 극히 개인주의적인가 하면 건전한 커뮤니티를 구성하고 사회의 자정활동을 펼친다. 그것이 이들 세대의 다원성이고, 열린 사회 혹은 오픈 시스템의 자생력이라는 생각이 든다.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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