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원하는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는 온라인 공개강좌 서비스다. 2012년 미국에서 첫선을 보였고, 한국에선 2015년 10월 ‘K-MOOC’로 탄생했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 K-MOOC 홈페이지 : www.kmooc.kr). K-MOOC 인기 강좌의 요점을 추려 소개한다.
- 어렵게만 느껴지는 철학을 에피소드로 만난다. ‘당신의 삶을 위한 철학의 에피소드’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철학의 개념과 용어를 설명해준다. 철학의 핵심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 강좌는 우리의 삶과 세상에 대해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강연 내용 일부(13회 강연 중 1회 강연)를 요약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나는 왜 이 직장에 다니고 있는가?’ ‘나는 왜 학생으로서 공부하고 있는가?’ 이렇게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성찰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직장상사가 당신을 부릅니다. 서류가방을 건네며 “이 가방을 전달하게”라고 말합니다. 가방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말해주지 않습니다. 이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겁니까? 직관적으로 ‘돈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이 돈을 저쪽에 전달한다는 것은 혹시 뇌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때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물어보시겠습니까, 아니면 모르는 척하고 명령을 수행하시겠습니까?
물어볼 수도 물어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고 그것이 가져다주는 결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 필요가 있습니다. 나중에 “저는 그냥 전달했을 뿐입니다”라고 로봇처럼 이야기한다고 해서 책임이 면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나치는 무려 600만 명에 해당하는 유대인을 죽였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유대인들을 가스실에 넣어서 문을 잠그고, 독가스를 주입하고, 그 시체를 실어 나르고, 또 사람을 넣고. 이런 식으로 마치 ‘살인공장’과 같은 것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명령을 받은 유대인도 있었습니다. “자네가 이 가스실에 독가스를 주입하고 유대인들을 죽이는 역할을 맡게.” 동료 유대인들을 죽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 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한 유대인 가운데 그 명령을 거부하고 “차라리 나를 죽여라”라고 저항한 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동료 유대인을 다 죽이는 데 협조하고 난 뒤 자신도 그 가스실에 들어갈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의미 없는 행동을 하느니보다는 인간답게 살아가는 성찰을 하겠다.’ 이것이 바로 소크라테스가 우리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살아가면서 실수나 실패를 한 적은 없습니까? 실수나 실패는 우리에게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나는 농구를 시작한 이래로 9000번 이상의 슛을 놓쳤다. 나는 거의 300번의 경기에서 졌다. 나는 스물여섯 번의 경기를 결정짓는 위닝샷을 놓쳤다. 나는 실패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성공한 이유다.”
누구의 말일까요? ‘농구의 황제’로 불리던 마이클 조던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실패를 통해서 성장해나감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실수나 실패는 늘 우리 삶을 따라다니는 그림자 같은 존재입니다. 하는 일마다 척척 성공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주변에 그렇게 보이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가 그 경지에 오를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실수와 실패를 거쳤는지 알고 계시나요?
아흔다섯 살의 할아버지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첼로를 켜기 시작합니다. 열아홉 살인 손자가 묻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나이에 왜 그렇게 연습을 많이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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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뺄셈의 가치철학을 연구하라”
어떤 분이 제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소시지를 일부러 부러뜨리는 데도 비용이 발생하는데 그냥 그대로 포장해서 70%에 내놓으면 안 됩니까? 하지만 이럴 경우엔 브랜드 가치만 떨어집니다. 반드시 부러뜨려서 정가의 70%로 팔아야 가치가 살아납니다.많은 사람이 무언가를 더 가치 있게 만들려면 하나라도 더 보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멀쩡한 노트북에서 키보드를 빼버렸더니 패드가 되면서 대성공이 일어납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무엇을 뺄 것인지를 연구해야 합니다. ‘가장 완벽한 것은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라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이제 장자라는 중국 철학자가 이야기하는 ‘무용지용’의 참뜻이 무엇인지는 분명해졌습니다.
사물의 쓸모 있고 없고는 사물에 내재된 속성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용처를 아는 사람에게는 쓸모 있는 것이고, 용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쓸모없는 것이 됩니다.
쓸모 있는 것을 찾으려면 우리가 쓸모없다고 생각한 것이 왜 쓸모없는지를 봐야 합니다. 쓸모없는 것은 과연 진정으로 쓸모없는 것일까요? 아니 쓸모 있는 것은 항상 쓸모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지 내 마음에 달린 것일까요?
많은 사람이 “철학은 아무 쓸모없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골치만 아픈 철학을 왜 우리가 공부해야 하느냐는 겁니다. 학생들과 이야기해보면 특히 대학 입학 면접에 온 수험생 중 부모와 싸우지 않고 온 경우가 없을 정도입니다.
“도대체 넌 이해할 수 없다. 왜 철학을 공부하려고 하느냐, 그 아무 쓸모없는 학문을.”
저는 이것이 철학에만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 전체에 쏟아지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은 과연 아무 쓸모없는 것일까요. 철학은 과연 아무 쓸모없는 것일까요.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쓸모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는 그 철학을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드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원래부터 쓸모 있는 것이 있고 원래부터 쓸모없는 것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고 하는 장자의 말을 떠올리면서 저와 함께 한 학기 동안 ‘철학은 무엇인가’ ‘철학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나아가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이런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시기 바랍니다.
김형철
● 1955년 부산 출생
● 연세대 철학과 학사
● 볼링그린주립대대학원 석사, 시카고대 대학원 철학과 박사
● 전 연세대 리더십센터 소장
● 현 한국철학회 부회장
● 현 연세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