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호

반신욕은 무조건 좋을까?

  • 입력2011-02-23 1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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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반신욕을 하다가 영면했다. 황장엽씨는 생전에 반신욕을 즐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주간동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1997년 귀순 직후에는 오리고기 등을 하루에 두 번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식사 횟수를 줄이고 매일 아침 두 시간씩 거르지 않고 반신욕을 했다.”(주간동아 758호)

    반신욕이 건강법으로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각종 언론매체가 앞 다퉈 반신욕을 홍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필자는 대학한방병원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병원에는 주로 중풍이나 구안괘사(口眼·#54034;斜)로 고통받는 환자가 많았다. 그런데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병력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필자는 그들 중 상당수가 반신욕을 즐긴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반신욕을 통해 효험을 보았다는 분도 많지만 그 반대의 부작용이 나타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반신욕으로 하반신이 데워지면 하부에 있던 혈액이 따뜻해져 상반신으로 올라가 상반신의 혈액량이 급속하게 늘어나는 것이다. 올라온 혈액은 열기를 동반하다 보니 뇌신경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런 상황을 한의학에서는 기가 넘친다고 하는데, 기가 넘치는 것은 흔히 ‘풍’으로 정의된다. 그래서 안면이 마비되는 구안괘사는 와사풍이라고도 불린다. 물론 이 상태가 심해지면 ‘풍’은 몸의 일부 혹은 전부가 마비되는 중풍으로 이어진다. 위에서 소개한 주간동아 기사도 한의학적 추정에 힘을 실어준다.

    “특히 (사망하기 얼마 전인) 10월1일 그(황장엽)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이전보다 더 화색이 도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화색은 일반적으로 생기의 표현이지만 그 내부에는 붉은 화기가 있다는 것으로 반신욕의 부작용이 회광반조(回光返照·사람이 죽기 직전에 잠시 온전한 정신이 돌아오는 것)처럼 마지막 불꽃을 피운 것으로도 추정할 수 있다.

    인체는 직립의 자세로 서 있다. 직립의 자세는 필연적으로 퍼 올리는 혈류량에 에너지 부담을 크게 느끼게 마련이다. 그래서 일시적으로는 반신욕을 통해 혈류량이 많아지면 머리도 맑아지고 피로도 풀리는, 신선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혈액이 지나치게 많이 올라오면 오히려 심장과 뇌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심장은 펌프처럼 외부로 혈액을 밀어낸다. 혈액이 심장에 집중되면 팽팽한 풍선처럼 늘어나며 수축하기 힘들어져 펌핑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엄청난 부하가 걸리게 마련이며 위험할 수도 있다. 특히 황씨는 사망 당시 과긴장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긴장하면 혈관은 수축한다. 특히 수족의 혈관이 좁아지고 수족에 있던 혈액이 심장으로 몰려 심장 펌핑에 부담을 준다. 이런 상태에서 다시 반신욕으로 심장에 혈액을 보내는 것은 과도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몸속의 어느 부분에 혈액이 필요 이상으로 흐르면 몸속의 다른 부분에 흐르는 혈액의 양은 반드시 줄게 된다. 이런 상태와 비슷한 예는 코피 치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동의보감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코는 뇌와 통해 있다. 그러므로 피가 뇌로 넘쳐 올라오면 코피가 나온다.”

    천천히 걸어라

    반신욕은 무조건 좋을까?

    반신욕은 심장과 뇌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한의학에서 치료할 때는 대돈이나 태계 등 다리에 있는 혈을 찾아 침을 찌른다. 실제로도 우선 다리의 무릎 아래 부분을 만져본다. 만약 차가우면 발끝이나 발뒤꿈치 또는 장딴지를 만져주거나 따뜻하게 해 혈액을 발쪽으로 돌아가게 치료한다. 머리 쪽 이상이라도 전신의 조화를 생각해 발부터 치료하는 것이다.

    노화는 발에서 시작된다는 말도 있다. 확실히 나이가 들수록 엉덩이의 근육이 줄어들어 허벅지가 가늘어지면서 하반신이 위축된다. 근육의 섬유가 커지면 안에 뻗어 있는 모세혈관의 수도 늘어난다. 반대로 근육이 쇠퇴하면 모세혈관의 수도 줄어든다. 인체 근육의 70% 이상이 허리와 허벅지 등 하반신에 몰려 있다. 젊을 때는 하반신의 근육이 충실하고 그 속에 뻗어 있는 모세혈관도 많기 때문에 하반신에 혈액이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하반신 근육이 줄어들면서 혈관도 줄어들고 혈액은 상반신에 집중돼 심장병이나 뇌일혈이 잘 생긴다. 한마디로 하반신 근육의 질이 건강과 젊음을 좌우하는 것이다

    하반신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천천히 걷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얼마 전부터 불어닥친 둘레길 열풍은 건강의 본질을 파악한 집단지성의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상부의 이상은 하부에서 고치고 하부의 이상은 상부에서 찾는다는 한의학적 지혜의 소산인 것이다. 하늘의 비는 땅에서 올라간 물이고 땅의 생기는 하늘의 태양빛으로 비롯된 것임을 파악한 것과 같은 이치다.

    먹어서 하체를 강화하는 한약으로는 육미지황탕이라는 처방이 있다. 마와 산수유, 목단뿌리, 백복령, 택사, 지황 등 여섯 가지 약물인데, 특히 남자에게 좋다는 산수유가 포함돼 있다. 인체의 뿌리인 하체를 강화하기 때문인지 한방에서는 “육미지황탕 천첩을 먹으면 육십 넘어서 사흘 동안 고스톱을 쳐도 허리가 아프지 않다”는 말이 널리 퍼져 있을 정도다. 이외에도 오미자, 구기자, 토사자, 복분자, 차전자 같은 각종 열매도 하체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반신욕은 무조건 좋을까?
    李相坤

    1965년 경북 경주 출생

    現 갑산한의원 원장. 대한한의사협회 외관과학회 이사, 한의학 박사

    前 대구한의대 안이비인후피부과 교수

    저서 : ‘콧속에 건강이 보인다’ ‘코 박사의 코 이야기’


    물론 다리가 굵고 큰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젊은 여성의 하체가 비만인 것은 오히려 건강이 악화됐음을 보여주는 증상일 수 있다. 오랫동안 앉아 있거나 몸이 차가워져서 풍선에 물을 부우면 처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이럴 때는 오히려 반신욕이 하반신의 혈액을 데워 상부로 순환하게끔 도와주어 도움이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자기 몸에 맞게 균형을 갖추는 게 가장 좋은 건강관리 방법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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