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말입니다. 책의 내용은 온전히 제 이야기였습니다. ‘성공을 위해 자기 일에 혼신을 다해 몰입하는 스타일의 사람들이 모인’ 서울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10년 넘게 밥벌이하고 사는 제 이야기. 더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한 후회를 하면서도 현재 습속에 젖어 ‘적당주의 집단 스타일’이 몸에 밴 채 한 회사의 직원으로 ‘가족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그 얘기가, 저자 말처럼 지방 사는 이들에게만 국한된 건 아닙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갑니다. 정작 사람살이 양태는 대동소이한 것 같습니다. 조부모의 삶과 부모의 삶이 그리 다르지 않고, 부모의 삶과 자식의 삶은 때로 데칼코마니처럼 닮아갑니다. 열 중 아홉은 실패를 겪죠. 실패에서 오는 충격과 좌절을 다시 겪고 싶지 않기에 모든 걸 쏟아붓는 결정 앞에서 두려워 떱니다. ‘좋은 것이 좋은’ 상태로 세상과 타협합니다. 부모 된 입장에서야 자식은 실패 없이 평탄한 삶을 살게 하고 싶겠지만, 마음처럼 쉽게 되는 일이던가요. 부모처럼 아이도 실패를 경험하게 될 겁니다. 그게 지방만의 일이라기보다는, 계급 피라미드 꼭대기에 오르지 못한 대다수 사람의 사정이 아닐까 합니다.
보릿고개가 있던 1950년대를 지나 IMF(국제통화기금)외환위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청년들은 항상 백척간두에 서 있었습니다. 내일 먹을 밥 한 공기조차 없을 때나, 합격하고 나니 회사가 파산했을 때나, 이력서를 내도 서류 합격조차 어려운 지금이나 앞이 보이지 않기는 매한가지 아닐까요. 큰 벽에 막혀 주춤거리는 건, 지방 청년뿐만은 아닙니다. 수도권 청년 중에도, 열심히 자식을 먹여 살리고자 하는 부모 중에도 많은 이가 벽 앞에서 서성입니다.
물론 모두가 벽을 넘고 싶어 합니다. 몇 개 없는 사다리를 놓고 싸움도 납니다. 누군가는 벽을 뚫어볼까 고민하기도, 혹은 둘러갈 길 없을까 두리번거리기도 합니다. 벽에 오르다 지쳐 벽 중간에 간신히 매달려 있기도 하지요.
그래도 그중 누군가는 벽을 넘습니다. ‘상록수’ 가사처럼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깁니다. 지금의 우리도 혹은 한국도,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면 좋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이야기야말로, 정글에서 아직까지 살아 있는 자의 자랑인 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