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동아 만평 ‘안마봉’은 과거 ‘신동아’와 ‘동아일보’에 실린 만평(동아로 보는 ‘카툰 100년’)에서 영감을 얻어 같은 그림체로 오늘날의 세태를 풍자한 만평입니다.

ⓒ정승혜
11월 11일 국무회의에서 김민석 국무총리가 “내란 극복이 지지부진하다. 신속한 내부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쿵’하자, 이재명 대통령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짝’을 했다.
비상계엄에 불법적으로 관련된 공직자에게 그 책임을 묻는 건 당연하다. 내란특검팀의 수사 기한을 세 차례나 연장한 것도 그 때문 아닌가. 그런데 일반 공무원들 조사는 얘기가 다르다.
정부는 ‘헌법 존중 정부 혁신 태스크포스(TF)’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지어 중앙행정기관(49개) 소속 공무원 75만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예고된 조사 방식은 임시행정기구의 오만함이 전해진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일을 기점으로 직전 6개월∼직후 4개월의 10개월간 업무용 컴퓨터와 서면 자료를 열람하고, 휴대전화도 들여다본다. 자발적으로 휴대전화를 제출하지 않으면 대기 발령이나 수사 의뢰도 불사한다니, 벌써부터 직권남용, 헌법의 기본권 침해 우려가 나온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도 알지 못했던 계엄 선포를 미리 알고 협력할 일반 공무원이 얼마나 있을까. 계엄에 연관된 사람들은 이미 전방위적으로 특검 수사를 받고 있다. 그런데도 계엄을 모의하거나 은폐한 공무원을 색출하겠다는 이 ‘소동’은 결국 ‘정권에 밉보이면 죽는다’는 사인을 보낸 거 외에는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누군가 “민주당이 29번 탄핵 발의를 했으니 계엄도 나올 만했어”라며 보낸 문자메시지가 발각된다면 그는 ‘내란 동조자’란 딱지가 붙게 된다. 민주국가에서 개인 메시지를 내란 동조 프레임으로 징계하려는 압박과 발상이 놀랍다.
TF는 ‘내란 행위 제보센터’도 운영한다고 하니, 인사철을 앞둔 관가에 투서와 고발의 광풍을 예고하고 있다. 죽창 없는 ‘인민재판’이 따로 없다.
1933년
정치와 권력의 칼날

<칼을 빼어 들고 제리를 끊는 모양> - ‘신동아’ 1933년 4월호
육체를 직접 베어내는 이 극단적 이미지는 그가 마주한 정치적 좌절과 흔들리는 권력의 발판을 한눈에 보여준다. 1932년 11월 6일은 경제 대공황의 후폭풍 속에 치러진 독일 연방 총선일로, 나치당이 제1당 지위를 유지했지만 의석을 잃으며 권력을 온전히 장악하지 못한 날이었다. 반면 11월 13일은 독일 북부 항구도시 뤼베크에서 시의회 선거가 있던 날이다. 당시 히틀러와 나치당은 중앙 권력은 물론 지방 권력까지 포섭하려던 시기였기에 이 선거 결과 역시 민감한 시험대였다.
뤼베크는 중세 한자(Hansa)동맹 중심지로, 무역 공동체의 핵심 도시였던 만큼 자긍심이 높고, 반(反)나치 정서도 강한 지역이었다. 선거 한 달 전, 히틀러가 유세를 위해 뤼베크를 방문하려 하자 시 정부는 “공식 방문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사실상 입성을 거부했다. 이 소식은 독일 언론에서 크게 보도되며 히틀러에게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줬다. 결국 11월 13일 선거에서도 나치당은 단독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고 사회민주당이 최다 의석을 차지했다. 히틀러는 이 굴욕을 오래 기억했고, 집권 후인 1937년 ‘대함부르크법(Groß-Hamburg-Gesetz)’을 통해 뤼베크의 자유도시 지위를 박탈하며 정치적 보복을 감행했다. 한때 ‘한자의 여왕’이라 불리던 도시가 그의 기억 속에서는 벌줄 대상으로 전락한 셈이다.
이 만평은 히틀러가 마주한 두 번의 정치적 고비를 단칼에 시각화한다. 두 다리를 내리치는 장면은 치명적 상처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그 고통이 더 집요한 반격으로 이어질 불길한 예감을 남긴다. 실제로 1932년의 연이은 실패도 히틀러의 야심을 꺾지 못했고, 그는 이를 계기로 전략을 재정비했다. 나치당은 제1당 지위를 유지하며 혼란에 빠진 바이마르공화국의 균열을 파고들었고, 결국 히틀러는 다시 일어나 정권을 움켜쥐었다. 그의 좌절은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 상승의 기반 공사처럼 작동했다.

히틀러 백태 <수상 취임 광경>

<히틀러의 방울 소리에 놀아나는 사람들>

<잠자는 민중을 일깨우는 나치스>
‘신동아’의 이 만평은 단순한 히틀러 풍자를 넘어, 조선이라는 식민지 공간까지 파고든 세계사의 진동을 보여준다. 독자는 그 만평을 넘기며 히틀러의 비틀린 권력사뿐 아니라, 식민지 조선이 간절히 바라보던 국제질서의 한 단면을 함께 읽어내게 된다.
황승경 예술학 박사·문화칼럼니스트 lunapiena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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