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업의 미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선거 시즌이면 후보들마다 농촌 대책을 내세우고 농가부채 해결을 위한 각종 공약을 제시하지만 형편없는 추곡 수매가 때문에 농약을 마시고 자살한 농부 이야기는 가을이면 어김없이 신문지상을 장식하곤 한다.
정부는 농가부채를 덜어주기 위해 이자율을 내리고 각종 기관을 통해 농업 지원금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농촌의 현실은 정부의 노력이 무색하게 나아지는 것이 없다. 이제 농업계 내부에서부터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지 않냐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벤처가 우리 사회 경제의 패러다임을 뒤흔들어놓은 것처럼 농업에도 ‘벤처’ 개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여느 때보다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과연 벤처는 위기의 한국 농업에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일단은 긍정적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1954년, 진주에서 도라지를 재배하던 농업인 이성호씨는 도라지를 약재로 쓸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예나 지금이나 도라지는 식탁에 흔히 오르는 반찬거리이고 큰돈이 되지 않는 작물이다. 흔해 빠진 도라지를 약재로 쓴다는 생각부터가 황당한데다 돈이 될 리 없는 일에 매달리는 그를 주위 사람들은 비웃었다.
‘오래된 도라지가 산삼보다 약효가 낫다’는 옛말에 착안한 이씨는 40년간 도라지 재배법을 연구했다. 하지만 연변에나 가야 ‘20년 묵은 도라지’가 있을까 일반 재배법으로 기르는 도라지의 수명은 고작 3년에 불과하다. 도라지를 수십년간 기른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20년 묵은 도라지
1970년, 계속된 실패 끝에 이씨는 드디어 20년 묵은 도라지를 재배하는 데 성공했다. 한자리에 오래 심어두면 도라지가 썩어버리지만 자리를 옮겨 심으면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특히 지리산 자락의 토양은 다년생 도라지 재배에 적합했다.
항암 기능을 갖고 있는 다년생 도라지의 개발은 당시로서도 획기적인 일이었다. 이씨는 다년생 도라지를 사업화해 ‘주식회사 장생도라지’를 설립했다. 분말, 농축액, 한방차 등 각종 가공식품을 개발,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씨의 아들인 이영춘씨가 사업을 물려받아 본격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면서 매출도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 1998년 연간 10억원 안팎이었던 매출액이 1999년에는 19억원, 2000년에는 27억원, 2001년에는 33억원대로 증가했다.
장생도라지의 성공은 인근 농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진주지역을 중심으로 하동과 그 인근지역 250개 농가에서 다년생 도라지를 위탁 재배하고 있다. 전체 15만평에 이르는 규모로, 농가들은 다년생 도라지 위탁재배를 통해 연간 6억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다년생 도라지 재배 성공의 의미는 단지 인근 농가의 소득 증대에만 그치지 않는다. 다년생 도라지를 재배하는 지리산 자락의 땅들은 일반작물을 재배하지 않는 유휴지나 개간지다. 또 도라지를 재배하는 데 특별히 비료나 농약을 줄 필요가 없어 일손이 크게 들지 않는다. 농가들로서는 버려두는 땅을 이용해 크게 힘들이지 않고 부수입을 올리는 셈이다.
장생도라지는 도라지 가공식품으로 해외에 수출도 하고 있다. 작년까지 미국과 일본에 8개 영업점을 설치했고 작년 한해 2억원 정도의 수출 실적을 올렸다.
도라지 가공식품은 원료를 양산하기가 어려워 상품 생산량을 늘리는 데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매출액 규모가 크지 않은 편이었다. 장생도라지는 올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해마다 매출액의 20%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지출해왔고 그 결과 원료가 많이 들지 않으면서 약효가 뛰어난 제품들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장생도라지의 박진수 경영관리팀장은 “신제품이 나오는 올해부터는 이제까지보다 더 큰 매출을 거둘 것이며 해외 영업을 본격 추진하는 만큼 10억원 이상의 수출 실적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풍년농산미곡처리장의 나준순 사장도 세인의 비웃음을 무릅쓰고 새로운 상품을 개발한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나사장은 일찌감치 환경농법에 관심을 뒀다. 농약을 쓰지 않는 대신 메뚜기를 이용해 벼농사를 짓는 철마농법, 오리를 이용하는 오리농법을 개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5도 이온쌀이 히트하면서 농업계의 화제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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