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 검찰총장도 이날 신 전 총장과 김고검장에 대한 기소를 끝으로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했다. 검찰의 추락한 위상을 또다시 국민들에게 보여줘 큰 실망감을 안겨준 점과 스스로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 검찰조직이 새로 태어나기 위해 새 지휘부와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게 용퇴의 이유였다.
그러나 이총장의 사표는 즉각 반려됐다. 뒤늦게 총장의 사의 표명 사실을 안 대검 간부들은 총장실로 몰려가 “검찰조직을 위해 남아달라”고 만류했고, 이총장은 결국 사퇴의 뜻을 접었다.
같은 날, 과천 정부종합청사에 위치한 법무부의 분위기도 뒤숭숭하긴 마찬가지였다. 정부가 이날 발표한 개각 명단에 ‘예정대로’ 송정호 법무부장관의 이름이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송장관의 교체는 7월 초순 검찰수사에 대한 청와대 압력설이 불거지면서 기정사실화됐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에 대한 검찰수사가 한창이던 지난 4월 이후 청와대 관계자들이 송 장관에게 수십번 전화를 걸어 홍업씨의 선처를 부탁했다는 게 청와대 압력설의 요지다.
하지만 송장관이 이를 거절한 뒤 홍업씨는 구속됐고, 곧바로 ‘장관의 조직 장악력과 업무 추진력에 문제가 있다’는 말과 함께 경질론이 흘러나왔다.
이같은 압력설이 불거지자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며 즉각 부인하고 나섰다. 하지만 법무부의 분위기는 달랐다. 일부 간부들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원칙과 정도(正道)에 따라 검찰이 수사하고 법무부가 중립을 지킨 게 뭐가 문제냐”는 반응을 보였다.
이날 송장관의 퇴임식은 오후3시 법무부 2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했다.
“…권력자나 그 주변을 관리하고 처벌하는 일은 검찰의 몫입니다. 그런 점에서 근래 검찰이 보여준 엄정한 수사에 대하여 치하하는 바입니다. 이 수사는 국가의 미래와 정의를 위하여 불가피한 것이었습니다…지금 법무부와 검찰은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런 때일수록 ‘전사이 가도난(戰死易 假道難)’이란 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싸워서 죽는 것은 쉬우나 길을 내줄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검찰은 옳고 바른 길을 내줄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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