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개월 만에 경영 일선에 복귀한 이건희 삼성 회장.
삼성이 슈퍼파워임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 또한 도처에서 쉽게 발견된다. 삼성이 어떤 권력보다 큰 힘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근거 중에서 백미는 삼성이 우리 사회 곳곳에 떨치는 무소불위의 영향력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여타 권력기관에 비해 국민의 심정적 지지를 많이 받고 있다는 점이다.
권력기관이 국민의 지탄이 아닌 지지를 받는다는 것이 통상 있는 일은 아닌데도 삼성은 그 조직의 부정적인 측면을 잘 아는 상당수의 국민으로부터도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예를 들어 최근 경영복귀를 단행한 이건희 회장에 대한 대다수 언론의 뜨거운 반응을 보면 삼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사랑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비자금 폭로사건 이후 배임 및 조세포탈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가 공식 퇴진한 지 2년이 채 안되었고, 형이 확정된 지 불과 7개월 남짓 지난 시점에 총수의 자리로 복귀하는 이건희 회장을 대한민국의 조야는 난세의 영웅처럼 반겼다.
생활을 지배하는 삼성
삼성전자가 사상 최고의 실적을 발표한 시점에 겸손하게도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며 출사표를 던진 그에게 기립박수까지 보내는 분위기였다. 그 와중에 “자신이 직접 발표한 경영쇄신안을 번복하고 지배구조를 과거로 되돌려버리는 이건희 회장의 복귀는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는 일부의 비판은 설 자리조차 찾지 못하고 환영의 환호성에 휩쓸려 묻혀버리고 말았다. 삼성과 이건희 회장이 갖고 있는 이러한 야누스적 면모는 삼성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는 이들이 시발점에서부터 맞닥뜨리게 되는 고민이다.
삼성이 권력이라는 주장은 좋은 의미에서도 나쁜 의미에서도 통용된다. 우선 삼성이 갖는 힘의 긍정적인 측면을 한번 살펴보자. 삼성은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집단이며 우리 기업 중에서 글로벌 수준에 가장 근접해 있는 대표 재벌이다. 2009년 삼성그룹은 200조원이 넘는 매출을 달성했고 순이익 12조원을 기록했다.
특히 삼성그룹의 핵심기업인 삼성전자는 2009년에 매출 136조원과 영업이익 10조9000억원을 달성하며 세계 최고의 전자기업으로 등극했다. 삼성전자는 2005년 한국 기업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100억달러를 웃도는 순이익을 달성하면서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순익 100억달러 클럽의 멤버로 당당히 입성한 바 있다.
삼성전자 앞에 이름을 올린 기업들인 엑슨모빌, 씨티그룹, GE, 도요타 등의 면모를 보면 그 실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올린 수익이 일본 9개 주요 전자회사 수익 전체의 2배에 달했다는 보도는 일본인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면서 우리 국민에게는 무한한 자긍심을 심어주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나라와 비교하자면 헝가리의 GDP와 비슷한 규모다. 일개 기업의 매출규모가 한 나라, 그것도 결코 작다고는 할 수 없는 국가의 국내총생산 규모와 맞먹는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삼성은 대한민국의 수출에서 2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고, 국세의 10% 가까이를 부담하고 있으며 한국 상장기업의 시가총액에서 삼성의 계열회사가 차지하는 비율 또한 20%를 넘어서고 있다. 삼성은 20여만명의 임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대학생들의 취업선호도에서 항상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기도 한다. 브랜드 가치에서도 삼성은 175억달러로 세계 19위를 차지한 바 있으며 ‘비즈니스 위크’가 선정한 2009년 미국 10대 히트상품에 LED TV와 듀얼뷰 카메라, 블루레이 플레이어 등 무려 3개 제품을 올려놓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