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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포장밥 대명사 햇반 성공 비결

신 영역 개척, 대기만성 마케팅

한국 포장밥 대명사 햇반 성공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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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일본 시장 벤치마킹 통해 찾은 돌파구 ‘무균 포장밥’

상품밥 신제품 개발을 위한 돌파구 찾기에 골몰하던 CJ는 1995년 우리와 식문화가 비슷한 일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일본에서 상품밥 시장을 석권한 ‘무균 포장밥’에 주목했다. 당시 일본의 상품밥 시장은 920억엔 규모로 연평균 14%의 성장세를 달리고 있었다. 일본에선 1980년에 레토르트밥, 1984년에 냉동밥이 출시되는 등 우리보다 10년 정도 앞서 시장이 태동했다. 하지만 일본에서조차 상품밥 시장이 본격적 성장을 맞은 것은 1988년 무균 포장밥이 나오면서부터였다.

무균 포장방식은 갓 지은 밥을 무균 상태로 포장해 장기간 보관할 수 있다. 알파미, 동결건조미처럼 원재료 단계에서 인위적인 수분 제거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갓 지은 밥맛과 식감을 살리기도 상대적으로 쉬웠다. 상품밥을 기획할 때마다 밥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골머리를 앓던 CJ로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솔루션을 찾은 셈이었다. 문제는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점이었다.

무균 포장을 하기 위해선 세미(洗米), 침지(沈漬), 취반(炊飯) 등 일련의 밥 짓는 공정 외에도 반도체 공장 수준의 클린룸을 갖추고 밥이 담긴 용기 내·외부의 미생물을 완벽하게 제거한 후 자외선으로 살균한 필름을 덮어 포장해야 한다. 이런 무균 포장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초기 설비 투자비만 최소 100억원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게다가 무균 포장 기술은 기본적으로 제품군을 다양화하기가 어렵다는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 즉, 맨밥이나 잡곡밥 등 곡물류만 활용한 밥에 적용하기는 쉽지만 쌀, 채소, 육류 등 조성 성분 차이가 확연하게 다른 재료들이 한꺼번에 들어가는 볶음밥류에 적용하기는 매우 어려운 기술이었다. 원재료 성분 조성이 달라지면 균의 증식을 억제하는 기술도 각각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원재료 간 성분 차이가 커질수록 균의 증식을 억제하는 최적화된 기술을 찾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 시장 벤치마킹을 통해 상품밥 시장에 진입할 가능성이 꽤 있는 해법을 찾기는 했지만 회사 내부에선 의견이 갈렸다. 막대한 투자비 부담에 더해 향후 제품 확장 가능성이 낮은 사업에 과연 투자해야 할지를 놓고 섣불리 결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1995년 경쟁사들이 레토르트밥을 시장에 선보이자 무균 포장 대신 레토르트 방식의 제품 개발을 추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까지 일부에서 나왔다.

레토르트는 밀봉 포장 후 고압솥에서 통상 120℃ 이상의 열을 가해 멸균하는 방식이다. 과도한 압력과 온도를 가하기 때문에 밥맛은 무균 포장방식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곡류뿐 아니라 채소, 육류 등 종류에 상관없이 무엇이든 밀봉 후 고온 가열하면 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제품군 확장성 측면에선 가장 유리한 방식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CJ로서는 초기 설비 투자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당시 CJ에선 레토르트 방식을 활용해 자장, 카레, 미트볼 등을 생산하는 ‘레또’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레또의 레토르트 설비를 활용하면 처음부터 설비투자를 다시 시작해야 하는 무균화 포장 방식의 5분의 1 수준에서 상품밥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는 게 내부 판단이었다.

③ 1996년 이천쌀로 만든 ‘햇반’ 출시

한국 포장밥 대명사 햇반 성공 비결

햇반은 30가지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CJ는 과도한 투자비 부담 때문에 품질(밥맛)에서 타협을 보기보다는 면밀한 시장조사와 대대적인 소비자 조사를 통해 사업 타당성에 대한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제품 콘셉트 조사를 통해 소비자가 갖고 있는 밥에 대한 일반적 욕구와 기존 상품밥에 대한 인식, 불만 사항 등을 파악했다. “담백한 맨밥을 먹고 싶을 때가 많은데 시중에 나와 있는 상품밥 종류는 볶음밥 일색이다” “레토르트 밥은 먹을 때 왠지 이상한 냄새가 난다” “맛도 별로지만 식감은 더 안 좋다” 등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CJ는 무균 포장밥 시제품을 만들어 소비자 테스트를 실시했다. 원재료로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경기도 이천쌀을 택했다. 조리법에도 신경 썼다. 압력솥의 원리를 적용해 밥을 짓고 아무것도 첨가되지 않은 순수한 쌀밥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테스트 결과는 매우 긍정적이었다. 소비자들은 냉동밥이나 레토르트밥 등 기존 상품밥에 대해서는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었지만 CJ가 개발한 무균 포장밥 시제품의 맛에는 합격점을 줬다. 실제 신제품으로 출시됐을 때 구매하겠다는 응답 역시 매우 높게 나왔다. 결국 이러한 조사를 바탕으로 CJ는 레토르트 사업이 아니라 국내 최초로 무균 포장밥 사업을 시작하기로 최종 결정하고 1996년 초 클린룸을 포함한 무균 포장 설비 구축을 위해 1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다.

설비 투자 진행과 함께 CJ는 소비자의 인식을 바꾸는 데 주력했다. CJ 이전에 경쟁사들이 내놓은 냉동밥, 레토르트밥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서 오는 새로운 욕구를 포착한 신제품이었지만 품질이 낮아 소비자에게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소비자의 머릿속에는 이미 ‘상품밥=저품질’이라는 등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CJ는 상품밥과 함께 소비자의 머릿속에서 연상되는 부정적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새로 브랜딩하는 먼 길을 돌아가기로 했다. 일부에선 기존 편의식 브랜드인 레또를 활용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상품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벗겨내려면 이름부터 새로워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독자적인 브랜드 전략을 택했다.

이렇게 탄생한 네이밍이 바로 ‘햇반’. 방금 만든 맛있는 밥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선택된 이름이었다. 제품 가격은 1050원(210g 소비자가격 기준)으로 정했다. 당시 소비자 조사에서 가격저항선은 800∼900원 사이로 나타났지만 초기 투자비 등 원가 부담을 고려해 높게 잡았다. 당시 일반 음식점의 공깃밥 한 그릇 값이 1000원선이었던 점도 감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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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실│동아비즈니스리뷰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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