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기 후반 한국 경제는 경이로운 성장 속도를 자랑했지만, 이내 ‘성장 정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내수 침체, 실질 국민총소득 감소, 고용 없는 성장 등 현재 경제 상황이 지속되다가는 일본이 겪은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만연해 있다. 유한킴벌리 사장 출신으로 17대 대통령선거 후보였던 문국현 뉴패러다임 인스티튜트 대표는 성장 정체의 공포를 타개할 답을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1909~2005)에게서 찾았다. 이 글은 동아일보가 격주로 발행하는 비즈니스 전문지
107호(2012년 7월호)에 실렸다. <편집자 주>
고(故) 피터 드러커(왼쪽)와 문국현 대표.
세계경제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장기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1인당 GDP 4만 달러 달성을 목표로 했던 한국 경제는 아직도 5년 전 수준인 1인당 2만3000달러에 머물러 있다. 일부 수출 대기업들이 낮은 환율 덕분에 크게 성장한 반면 대다수 수입·중소기업은 높은 환율에 허덕이고 있다. 한계에 도달한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다시 깨울 수는 없을까? 매년 2000억 달러 이상의 무역흑자를 실현하고 있는 중소기업 강국 독일은 유럽연합(EU) 27개국의 경제 문제와 재정 문제를 홀로 지탱하고 있다. 전 세계 ‘히든 챔피언(비공개 명품 중소기업)’의 80%가 몰려 있는 독일 경제권의 창조 경제에서 우리 한국 기업이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일까?
드러커의 3대 해결책
Ⅰ. 근로자의 손만 빌리지 말고 머리와 가슴까지 모두 빌려라
많은 기업이 급변하는 세계경제 환경 속에서 크게 흔들리고 있다. 경쟁은 날로 심해지고 성장은 한계를 보이며 수익은 주는데 비용은 올라가고 있다. 새로운 비전과 목표를 세우고 전 직원을 독려하며 경영자들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회사는 점점 어려워지기만 하는 것 같다.
일부 대기업은 목표관리제도를 도입하고 중간 경영진과 간부들을 독려한다. 할당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관리자들을 좌천시키기도 하고 해고하기도 한다. 주어진 목표를 다 달성하더라도 매년 하위 10∼20%의 관리자들을 해고하는 기업도 있다. 그러나 이런 기업들은 경영 규모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세계 최고의 길에서 멀리 뒤처져 있다.
왜 그럴까? 위기 속에서도 성과를 내는 좋은 기업, 차별적 성과를 내는 위대한 기업들에서는 사람 존중의 경영철학이 실현되고 있다. 이런 위대한 기업에서는 사람의 손과 발만 빌리고 있지 않다. 근로자를 육체근로자로 머물게 하지 않고 근로자의 잠재력을 모두 이끌어낼 줄 안다. 육체근로자까지 지식근로자, 혼이 있는 근로자로 바꾸어내는 문화와 제도와 리더십이 있다. 피터 드러커 교수는 이것을 3H(Hands, Head, Heart) 전인 경영이라고 했다. 이것이 사람의 잠재력을 믿고 긍정의 힘을 믿었던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드러커 교수의 경영철학의 진수다.
Ⅱ. 목표관리제와 함께, 꼭 자율경영을 실현해보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목표관리제가 실패하는 첫 번째 이유는 목표가 최고경영자나 대주주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정해지기 때문이다. 실행 주체인 관리자와 근로자들의 여건과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비전과 목표는 설령 방향이 옳았다 해도 실행 단계에서 다양한 난관에 부딪히고 지체되며 결국에는 변형되고 좌절되곤 한다. 드러커 교수는 기업이든 정부든 모든 조직은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했다. 따라서 조직의 성과는 구성원인 사람들의 성과에 달려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사람들을 개인적, 조직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이끌어가는 이가 경영자다. 근로자 개개인의 꿈과 노력이 전사적 비전과 목표에 일치하도록 하는 것이 경영자의 첫 번째 역할이다.
그러나 많은 기업에서 개인의 꿈과 전사적 비전은 일치하지 않는다. 개인에게는 전문성과 헌신이 요구될 뿐 꿈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아도 이것을 반영, 통합하는 체제와 문화를 가지고 있지 않다. 드러커 교수의 얘기를 빌리면 실패하는 경영자는 자신의 간부들과 근로자들을 단순한 기능 전문가 또는 월급쟁이로만 취급한다. 그러나 성공하는 경영자는 자신의 간부들이나 근로자들에게 함께 짓고 있는 ‘대성당’의 모습을 보여주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를 통해 조직 구성원 모두가 하나의 공동목표인 ‘대성당’을 공유하게 되고 보람을 느끼며 책임과 사명감을 가지고 헌신하게 된다.
목표에 의한 경영(Management By Objective·MBO)이 성공하고 차별적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목표가 상하 양방향의 대화와 정보교류에 의해서 합의돼야 한다. 경영에는 전략적 방향과 실행상의 면밀한 고려가 반영돼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최고경영자가 일일이 간섭하면 회사의 모든 의사결정이 대기 상태에 들어가게 되고 때로 회사 전체 운영이 사실상 마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최고경영자의 지식은 제한돼 있고 경직돼 있다. 조직의 전체 비전과 목표와 한 방향으로 가는 한 대부분의 미세한 조정은 간부들과 현장에 맡겨야 유연하고 신속한 대응이 가능해진다.
셋째, 간부나 근로자들이 갖는 주인의식과 보람, 사기에 미치는 놀라운 긍정적 영향 때문이다. ‘목표에 의한 경영’의 성공 여부는 목표를 설정할 때의 상하 양방향 합의 못지않게 운영상에서의 자율 여부에 크게 달려 있다고 드러커 교수는 강조했다.
Ⅲ. ‘경영서신’을 통해 조직의 투명성과 상호의존성을 높여가라
‘목표에 의한 자율경영’이 아무리 좋아도 조직 내에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고 정보가 자유롭게 제때 공유되지 못하면 실패할 수 있다. 무엇보다 상사의 스타일과 부하의 스타일 차이를 서로 알아야 한다. 나아가 매일 변하는 기업 내외의 변화에 대한 정보가 물 흐르듯이 모든 사람에게 제때 제공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그만 오해나 실패가 실망과 불신을 불러 전체 시스템을 망가뜨릴 수 있다.
이런 목적으로 성공적인 기업에서 널리 이용되는 경영수단이 경영서신(Manager、s Letter)이다. 경영서신은 대개 하급경영자가 작성해 상급경영자와 합의하면 상하 동료 간에 공유하는 ‘로드맵’ 같은 구실을 한다. 이 수단을 통해 회사나 상급경영자의 비전과 목표가 분명히 공유되고, 하급경영자의 의견과 이해가 반영된다. 상급경영자가 일상 교류에서 행했던 여러 지시나 의견 중에서 상충되거나 이해가 되지 않던 부분이 있었으면 그런 것들을 규명한 후 간명하게 재정리, 문서화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경영서신을 이용하면 경영층 상하 간에 비전과 목표가 완벽히 공유되고 역할과 책임이 분담되며 의사결정이 신속해진다. 경영자 양성에도 큰 기여를 한다.
|
경영서신을 잘 활용하는 조직의 경영자와 근로자들은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 경영의 주인이 되고 적극적 파트너가 된다. 조직은 신뢰기반 학습조직이 돼 매우 유연하고 창조적으로 변하게 된다. 기업의 공급망 전체에서 혁신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모든 이해당사자가 기업가정신으로 하나가 된다. 작업장이 혁신되고 불신에 기반을 둔 모든 낭비가 제거되며 거래처와의 관계도 좋아진다.
드러커 교수가 강조했듯이 모든 조직의 성과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비전과 목표가 양방향으로 공유되고 신뢰를 기반으로 해 자율경영이 활성화되는 기업만이 시장과 기술의 격변기에 세계 최고 명품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