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경영인들의 모임인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설립된 이유는 단순하다. 정부와 정치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다. 특히 시대 흐름에 뒤진 정치인들에게 경제공부를 시키면서 기업들이 경제활동, 곧 이윤활동을 하는 데 걸림돌을 제거해 달라는 뜻에서 이와 같은 이익단체를 세웠다. 우리의 전경련은 일본의 경단련을 모방한 것이다. 한편 정부는 이런 단체를 휘어잡아 각 기업의 활동을 통제한다. 서로 밀고 당기는 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민간기업과 정부. 양자는 상생할 수 없는 관계일까. 현재로선 그렇다는 대답만 들린다. 민간기업은 정부의 간섭을 줄이는 ‘작은 정부’를 외치고 있고, 정부는 정부대로 자율규제라는 가면을 쓰고 각종 규제로 기업활동의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그 동안 얼마나 변했는지는 면밀히 따져봐야겠지만, 아직도 양자가 으르렁거리는 것만은 분명하다.
민간기업, 즉 ‘업자’들은 공무원의 경쟁력에 그리 좋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업자들에게 공무원 조직은 비효율의 대명사, 책임 전가의 명수, 전시행정의 표본, 그리고 로비의 대상이다. 공무원들은 상대하기 싫은 존재이기도 하지만 피할 수도 없는 존재, 그래서 난처한 존재인 셈이다.
감사 의식해 억지로 일 만들기
국내 중견기업 실무자가 공무원들과 일하면서 겪은 경험담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현장에서 들리는 얘기들을 한 조각씩 맞춰 보면 민간기업에서 느끼는 공무원의 모습이 그려진다. 전산장비를 개발하는 A기업 최진철(가명·36) 과장은 지난해 이맘때 정부 모 부처가 입찰에 부친 장비 공급권을 따내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지난해 초부터 IT 붐이 식으면서 민간기업을 상대로 하는 매출이 상당수 줄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선 매출이 줄어 울상을 지었고, 어떻게 해서든지 전년도 수준은 유지해야 했다. 영업부에서 근무하는 최과장은 또박또박 현금으로 결제해주는 정부 물량을 찾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판매처를 물색했다.
그러던 중 정부 모 부처에서 전산장비를 구매하는 수주를 입찰한다는 공고를 보고 입찰에 참가했다. 마지막까지 경쟁한 업체는 세 군데. 그러나 운이 좋았는지 최과장은 최종 낙찰되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문제의 정부 부처는 1주간 협상기간을 갖자고 요청했다. 우선협상 대상자로 지정되긴 했지만 최종 계약까지 1주일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어찌 생각하면 타당한 요구일 수도 있겠다 싶어 최과장은 사장에게 그대로 보고하고 협상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부처 실무자들은 최과장이 작성한 장비 공급 계획서를 꼼꼼하게 훑어봤다. 이미 입찰 경쟁에서 승리해 사실상 타당성이 증명된 것이었지만 공무원들은 ‘관행상’이라는 이유를 붙였다.
1주일 동안 최과장이 동료 직원들과 함께 다시 작성한 계획서는 무려 책 한 권 분량이었다. 이 과정에 공급가의 3%가 깎였고, 부가 서비스도 대폭 늘었다. 그럴 때마다 공무원들은 “1주일 협상기간에 한 일이 있어야 감사에서 지적 받지 않는다”는 이유를 늘어놨다. 마치 의무적으로, 그리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처럼 말하는 데서 기업의 적정이윤 논리는 먹혀들지 않았다.
답답한 최과장이 공무원들을 많이 상대해온 친구들에게 이런 사정을 털어놓자, 이들은 “정부는 갑이다. 그리고 기업은 을이다. 갑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공무원과 함께 일할 수 없다”는 말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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