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주변 맛집부터 난해한 논문까지 바로 찾을 수 있는 정보의 홍수 시대. 그럴수록 나한테 딱 맞는 알짜 정보를 고르기는 어렵다. 특히 내 몸, 건강과 관련된 정보일 때 더욱 민감하다. 좋은 의사를 찾고 싶지만 신문 기사나 인터넷 검색, 주변인의 추천만 믿기는 찝찝하다. 5월 국내 최초 의사 검색 서비스를 시작한 ‘굿닥(Goodoc)’은 이런 사람들에게 맞춤형 좋은 의사를 찾아주는 사이트다.
굿닥 사이트(www.goodoc.co.kr)에서 진료과, 진료 항목, 지역 등을 설정하면 추천 의사 목록이 뜬다. 개인 사진과 함께 전문 분야, 학력, 임상 경력, 학회 활동, 수상 내역까지 알 수 있다. 가령 ‘서울 청담’ 지역 ‘임플란트’ 잘하는 ‘치과의사’를 검색하면 임플란트를 전문적으로 하는 의사 23명 목록이 뜬다. 그중 한 의사를 고르면 그가 공개한 진료 스케줄을 보고 진료를 예약할 수 있다. 예약을 했으니 병원 대기실에서 무작정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나를 치료할 의사의 경력을 다 알고 가니 훨씬 편리하고 믿음직하다.
5월 29일 사이트가 오픈한 지 딱 열흘째 되던 날,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굿닥 임진석(30) 대표와 만났다. 임 대표는 “열흘 동안 굿닥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은 10만 번 다운돼 ‘건강 카테고리’ 앱 안에서는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모바일, 인터넷 접속자 중 5%는 실제 전화 등으로 병원 예약까지 했다”며 한껏 고무돼 있었다. 굿닥 출시 이후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는 “원래 아이를 데리고 다니던 소아과가 불친절해서 싫었는데 굿닥 덕분에 좋은 병원을 알게 됐다” “본래 치아교정 치료받던 치과 의사를 굿닥에서 검색해봤더니 치아교정 전문이 아니었다. 그래서 병원을 바꿨다”는 등 다양한 추천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현재까지 굿닥에 등록된 의사는 총 3000명. 그중 100여 명은 굿닥을 통해 예약까지 가능하다. 등록된 의사가 가장 많은 분야는 치과, 피부과 등이다. 임 대표는 “두 진료과는 재방문이 잦고 병원별 가격 및 치료 편차가 크기 때문에 이용자들도 관심이 많고 의사들도 적극적”이라고 분석했다.
의사 3000명 정보 공개
임 대표는 연세대 문헌정보학과에 재학 중이던 2001년부터 2010년까지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일했다. 그는 다음에서 검색 서비스를 오랫동안 다뤘기 때문에 의료 분야에서 정보비대칭이 특히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2006년 의료법 개정으로 병원 홍보가 가능해졌지만 병원들이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홍보를 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환자에 돌아가는 것을 보며 문제의식도 생겨났다. 실제 미국에서 ‘작닥(Zocdoc)’이라는 의사 검색 서비스가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관련 아이템을 구체화했다.
굿닥 창업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의사들을 설득하는 일이었다. 상당수 의사는 굿닥 서비스에 의문을 가졌다. 심지어 몇몇 의사는 “굳이 인터넷에 정보를 안 올려도 장사 잘되는데 왜 내가 학력, 경력 등을 모두 인터넷에 공개해야 하냐”며 거부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임 대표는 “의료사회가 워낙 벽이 높다보니 의사들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좋은 의사는 환자를 기다리게 하지 않고 환자와 소통하는 의사다”라며 의사들을 면대면 설득했고, 이에 꽤 많은 의사가 마음을 열어주었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정보 공개만 허락했던 의사들도 굿닥의 실체에 대한 소문을 듣고 뒤늦게 예약 서비스 도입을 허락한 경우도 있었다. 임 대표는 “아무리 설득해도 정보 공개를 원하지 않는 의사는 ‘좋은 의사’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단언했다.
임 대표와 굿닥을 발굴한 것은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패스트트랙아시아(Fast Track Asia)’다. 패스트트랙아시아란 신현성 티켓몬스터 대표, 노정석 아블라컴퍼니 대표, 박지웅 스톤브릿지캐피털 수석심사역과 대니얼 프랜시스 인사이트벤처파트너스 수석심사역 등 벤처 성공 경험이 있는 창업자 4명이 힘을 합쳐 만든 벤처 캐피털이다. 가능성 있는 벤처를 발굴해 자본을 제공하고 멘토링과 노하우를 전수한다. 또한 이름에서 밝혔듯 일본, 동남아 등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백방으로 지원한다. 임 대표는 “벤처에 성공한 선배들이 그 영광을 독식하지 않고, 단기적으로 수익이 안 나더라도 가능성 있는 초기 벤처에 과감히 투자하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라고 밝혔다.
패스트트랙아시아의 1차 투자처 선발에는 총 600여 개 팀이 참가했는데 그중 임 대표의 팀이 1등을 했다. 600대 1의 경쟁률을 뚫은 비결로 임 대표는 “잦은 실패 경험”을 꼽았다. 임 대표는 굿닥 이전에 총 3번 창업했는데 모두 실패했다. 처음엔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티셔츠를 만드는 회사를 설립했지만 유통망이 없어 실패했고 결국 티셔츠는 G마켓 등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헐값에 처분했다.
스타트업 선배들의 지원
예약 화면, 인기 의사 화면, 의사 리스트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아이디어 외에 모든 환경을 지원해주는 패스트트랙아시아는 임 대표에게 탄탄한 동아줄 같은 존재다. 일반 벤처 기업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좋은 인력을 뽑는 일이다. 패스트트랙아시아는 기술 개발자뿐 아니라 회계, 재무, 인사, 홍보 등 굿닥에 필요한 모든 인력을 선발해 지원해주고 그들에 대한 인건비까지 지원한다. 임 대표는 “마치 ‘집안일 신경 쓰지 말고 너는 공부만 열심히 하라’는 엄마의 마음”이라며 웃었다.
패스트트랙아시아를 통해 받는 경제적 도움도 값지지만, 무엇보다 성공 경험이 있는 선배들의 멘토링은 굿닥에 큰 힘이다. 세 번의 실패로 위축돼 있던 임 대표는 노정석 대표가 건넨 말 한 마디를 가슴 깊이 새겼다.
“노 대표는 ‘사업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CEO의 그릇만큼 성공한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사업을 하다보면 주변에서 ‘이건 되는 아이템이다’ ‘이건 안 된다’ 하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하지만 결국 성공을 끌어내는 건 CEO의 그릇, 역량이니까 초기 성패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제 그릇만 키워나가면 된다는 거죠.”
굿닥이 가야 할 길은 멀다. 일단 현재 의사에 대해 제공하는 정보 외에 다양한 사용자 리뷰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용자들에게 정말 어떤 의사가 나한테 맞는 의사인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굿닥은 카카오톡으로 친구들에게 좋은 의사를 추천하거나, 페이스북에서 친구가 추천한 병원을 검색할 수 있게 하는 등 다른 서비스 모델과 협업을 고민하고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과연 ‘좋은 의사’란 어떤 의사일까? 임 대표는 “사람마다 생각하는 ‘좋은 의사’는 다르다는 게 우리 서비스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관련 논문을 많이 쓴 의사를 선호할 수 있고 때로는 친절한 의사, 꼼꼼히 진료해주는 의사를 좋아할 수 있다. 어떤 환자에게는 가격, 위치가 중요한 선택 근거다.
임 대표는 “각각 ‘좋은 의사’가 다르기 때문에 각 사람에게 맞는 의사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에 의사 면허를 가진 사람이 총 10만 명인데 그중 51%, 과반수가 굿닥 서비스에 가입할 때까지 의사들을 열심히 설득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