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조 원 운용 라폰트, 여전히 AI 인프라주 주목
닷컴버블 웃돌지만 철도 혁명에 비하면 멀었다
버리의 ‘벤더 파이낸싱’ 지적 걱정할 단계 아냐
GPU vs CPU…승자 상관없이 웃는 반도체주

2024년 6월 2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블룸버그 주최의 한 행사에서 코투 매니지먼트의 설립자이자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필립 라폰트가 발언하고 있다. Gettyimage
헤지펀드 코투 매니지먼트의 수장인 라폰트의 별명은 ‘새끼 호랑이’다. 약 80조 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으며, 개인 재산만 12조 원에 달하는 인물의 별명으로는 의아할 수 있다. 이는 ‘헤지펀드의 아버지’로 불리는 투자 거장 줄리안 로버트슨으로부터 기인했다. 로버트슨은 조지 소로스와 헤지펀드 업계를 양분했던 거물이다.
로버트슨에겐 독특한 경영 방식이 있었는데, 직원 가운데 될성부른 떡잎에게 자금과 인력을 지원해 독립시키는 것이었다. 이 가운데 성공한 인물들을 로버트슨의 헤지펀드 타이거 매니지먼트의 이름을 따 새끼 호랑이로 불렀다. 라폰트는 여러 새끼 호랑이 가운데 가장 비범한 인물로 꼽힌다. 입사 3년 만에 로버트슨에게 인정받고 독립해 지금의 성공을 이룬 덕분이다.
‘닷컴버블’ 웃돌지만 철도 혁명에 비하면 멀었다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라폰트는 통신·기술 분야 애널리스트로 경력을 시작한 인물답게 성장주 투자에 강점을 보여왔다. 이번 AI 랠리에서도 그는 반도체를 비롯한 AI 인프라주를 선택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해 칩, 네트워크, 전력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이미 큰 폭으로 상승했음에도 그는 시장이 AI 인프라의 성장성을 아직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확신의 출발점에는 그가 믿는 ‘기술혁신의 법칙’이 자리하고 있다.라폰트는 기술혁신이 일종의 복리처럼 작동한다고 본다. 1960년대 메인프레임 혁명은 거대한 중앙집중형 컴퓨터를 통해 현대 컴퓨팅 시대의 문을 열었다. 이어 1980년대에 개인용 컴퓨터가 대중화했고, 1990년대에 인터넷 혁명이 뒤따랐다. 이후 2000년대 후반 아이폰의 등장 이후 2010년대 모바일 혁명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중요한 점은 각각의 혁신이 이전 혁신의 토대 위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이다. 메인프레임이 있었기에 PC가 가능했고, PC의 보급이 있었기에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점차 거대한 시장이 창출됐다.
라폰트는 AI 역시 같은 흐름 위에 놓여 있다고 본다. AI는 갑자기 등장한 단발성 유행이 아니라 반도체, 네트워크, 클라우드 등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기술혁신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AI 혁명은 오히려 새로운 성장 사이클의 초입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반도체를 비롯한 AI 인프라 기업들의 미래를 여전히 낙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술혁신의 법칙에 따라 AI는 우리가 지금껏 경험했던 어떤 혁신보다도 더 큰 규모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데, 시장이 이러한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올해 AI 관련 주식이 S&P500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50% 남짓이다(그래프 1 참조). 이는 닷컴버블 당시 인터넷 관련 주식의 비중을 웃도는 만큼 과열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시계열을 더 확장해 보자. 19세기 철도 혁명 당시 철도 관련주가 차지한 비중은 전체 주식시장의 75%에 달했다. 만약 AI가 이전의 기술혁신보다 더 거대한 변화를 유발한다면, 그리고 철도 혁명 이상의 영향력을 가졌다면,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75%보다 커야 한다. 라폰트가 아직 시장이 AI 혁명의 성장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보는 이유다.

버리의 ‘벤더 파이낸싱’ 지적 걱정할 단계 아냐
그렇다면 AI 혁명이 현재 어느 단계에 와 있을까. 기술혁신은 대체로 두 단계를 거친다. 먼저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는 시기가 있다. 이후 그 인프라를 기반으로 새로운 산업과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단계가 찾아온다. 인터넷 혁명 당시 광케이블과 데이터센터 등 기반시설이 먼저 깔렸고, 그 위에서 인터넷 기업들이 성장한 게 대표 사례다. 모바일 혁명 역시 스마트폰 보급이 선행된 뒤 페이스북(현 메타)과 우버 등이 성장했다. 라폰트는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AI 혁명은 여전히 인프라 구축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그는 앤트로픽의 클로드 코드를 비롯한 에이전틱 AI의 확산에 주목하고 있다. 이제 목표만 제시하면 AI가 스스로 웹 서핑을 하고 다른 AI 에이전트와 협업하며 작업을 진행하는 시대다. 지시 사항을 수행하기만 했던 기존 방식보다 토큰(AI 요금 산정 기본 단위) 사용량이 훨씬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토큰 사용량의 증가는 자연스레 칩 수요의 증가로 이어진다. 반도체 기업들이 더 크게 뻗어나갈 공간이 열린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의문이 생긴다. AI 인프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고 해도, 정작 이를 구매할 기업들의 자금이 바닥난다면 어떻게 될까. 영화 ‘빅 쇼트’의 실제 주인공인 마이클 버리가 AI 열풍에 대해 제기한 핵심 비판도 여기에 있다. 버리는 AI 산업이 닷컴버블 시절의 ‘벤더 파이낸싱’ 구조를 닮아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판매자가 구매자에게 자금을 지원해 제품 구매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엔비디아가 오픈AI에 투자하고, 오픈AI는 오라클과 계약을 체결하며, 오라클은 엔비디아의 GPU를 주문하는 식이다. 자금이 순환하며 수요를 부풀릴 뿐, 결국 빅테크의 자금이 반도체 기업으로 흘러 들어가는 구조라는 지적이다.
라폰트는 버리의 지적에 대해 부인하진 않는다. 다만 관점이 다르다. 핵심은 돈이 순환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아직 순환을 지속할 여력이 충분하다는 점이라는 것이다. 칩을 구매하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여전히 막대한 현금을 창출하고 있다. 라폰트에 따르면 이들 기업의 2026년부터 2031년까지 에비타(EBITDA·상각 전 영업이익) 규모는 약 6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이들은 재무 상태가 매우 건강해 부채를 더 늘릴 수도 있다. 만약 레버리지 비율(순부채/에비타)이 3배 수준까지 높아진다면 약 4조 달러를 추가 조달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투자 주체도 빅테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라폰트에 따르면 각 나라의 국부펀드와 사모 신용 등을 합하면 약 2조 달러의 투자금이 대기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를 종합해 그는 2031년까지 AI 생태계로 유입될 수 있는 자금 규모를 약 12조 달러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다. “돈을 왼쪽 주머니에서 오른쪽 주머니로 옮길 뿐”이라는 버리의 지적은 맞을지 모른다. 그러나 라폰트의 시각에서 중요한 것은 아직 왼쪽 주머니에 돈이 한참 남았다는 사실이다.

GPU vs CPU…승자 상관없이 웃는 반도체주
그렇다면 라폰트는 어떻게 투자하고 있을까. 올해 1분기 기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주식 보유 현황 공시(13F)에 따르면 코투 매니지먼트의 보유 종목 가운데 가장 비중이 높은 다섯 종목은 TSMC, GE버노바, 램리서치,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브로드컴이다. GE버노바를 제외하고는 모두 AI 인프라 관련 주식이다.앞서 에이전틱 AI의 확산으로 칩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구체적으로는 그래픽처리장치(GPU)뿐 아니라 중앙처리장치(CPU)의 수요 역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에이전틱 AI가 사람처럼 작업을 처리하는 만큼 CPU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대를 반영하듯 올해 인텔과 AMD의 주가는 각각 5월 기준 약 200%, 100% 상승했다.
그런데 라폰트의 선택은 CPU도 아니었다. 그가 담은 종목은 TSMC 같은 파운드리 기업과 ASML, 램리서치,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같은 반도체 전공정 장비 업체다. CPU 수요가 증가하며 GPU만큼 거대한 시장을 형성할 수도 있지만,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CPU와 GPU 가운데 어느 쪽이 우위를 점하느냐와 무관하게 전체적인 칩 수요 자체가 증가한다면, 이들 기업은 웃을 수밖에 없다. 밸류에이션 측면에서도 납득이 되는 선택이다. 라폰트가 선택한 네 기업(TSMC, 램리서치,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브로드컴)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절대적으로 저렴한 수준은 아니지만 CPU 업체들과 비교하면 부담이 덜하다.
다만 주의할 점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변동성이다. 올해 미국 주식시장이 하루에 위아래로 1.5% 이상 움직인 날은 5월 초 기준 70회, 6월까지 범위를 넓히면 이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그래프 2 참조). 아직 한 해의 절반도 지나지 않았음에도 2005년 이후 가장 많은 수준이며,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한 2020년보다도 높다. 시장의 변동성이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에 와 있는 만큼 단기적 주가 움직임에 일희일비해선 안 된다.
라폰트의 이야기에서 건질 수 있는 투자 교훈이 있다. 바로 가격에 대한 고민이다. 2024년 넷플릭스의 SF 드라마 ‘삼체’가 화제가 됐다. 물리학의 삼체 문제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삼체 문제란 서로 중력을 주고받는 세 천체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문제를 말한다. 천체가 두 개라면 공식을 통해 해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천체가 세 개가 되는 순간 공식으로 해를 구할 수 없게 된다. 단지 천체 하나가 늘어났을 뿐인데, 순식간에 난제가 되는 것이다.
주식투자도 마찬가지다. 어떤 기술과 산업, 기업이 유망할지를 예상하는 것 자체는 비교적 쉬운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 ‘주가’라는 변수가 추가되는 순간, 주식투자는 난제가 된다. 일례로 2000년 닷컴버블을 떠올려 보자. 모두가 인터넷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됐다. 하지만 주식시장은 폭락했고, 이후 3년 동안 긴 하락 국면을 겪었다. 시장이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가격에 선반영했기 때문이다.
라폰트는 AI의 잠재력이 과거 철도 혁명 이상의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AI 관련 주식이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시장은 AI 투자에 대한 자금 부담을 우려하지만, 막대한 대기 자금을 고려하지 못한 판단이라고 본다. 그만큼 가격이 더 오를 여지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어떤 산업이나 종목이 유망하다는 이유만으로 투자에 나선다. 그러나 단순히 좋다는 사실만으로 투자에 나서면 안 된다. 투자자라면 “시장은 이미 그 사실을 가격에 반영했는가”를 물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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