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호

경기회복심리 찬물 끼얹은 lose-lose 기싸움

한 달 만에 막 내린 ‘김중수의 반란’

  • 문병기│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weappon@donga.com

    입력2013-05-22 1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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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銀도 정부”라던 MB맨의 ‘어깃장’
    • 5월 9일 기준금리 0.25%p 인하…‘청와대 품’으로
    • 역대 총재, 정권 초기 갈등 빚다 결국 손들어
    • 불필요한 갈등으로 기민한 선제적 대처 失機
    경기회복심리 찬물 끼얹은 lose-lose 기싸움
    5월 8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 김중수 총재를 비롯한 7명의 금융통화위원과 한은 주요 국·실장들이 회의실에 들어섰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정례회의를 하루 앞두고 동향보고회의가 열린 것이다.

    오전 9시에 시작한 이날 회의는 4시간 30분이 지난 오후 1시 반경 끝났다. 통상 동향보고회의가 오후 12시 반경 끝나는 것과 비교하면 한 시간가량 긴 격론이 오간 것. 이 자리에서는 금통위원들과 한은 집행부 간에 경제 현황과 금리 방향에 대한 토론이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금통위원들의 의견이 드러나는 만큼 다수결로 결정되는 기준금리의 방향은 금통위 정례회의가 아닌 동향보고회의에서 결정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은 관계자는 “한은 역사상 요즘만큼 금리 결정을 놓고 논란이 일었던 적이 없다”며 “지난달보다 논쟁의 강도가 더 높았다”고 말했다.

    다음 날인 5월 9일 한은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전격적으로 0.25%p 인하했다. 이는 7개월 만에 단행된 인하로 기준금리는 2010년 11월(2.50%) 이후 2년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노골적으로 금리인하를 요구했던 당(黨)·정(政)·청(靑)의 압박에 맞서 연일 저금리의 부작용을 언급하며 금리동결 필요성을 강조했던 김 총재와 한은의 반란이 불과 한 달 만에 막을 내린 것이다.

    “어차피 내릴 거면 진작에…”

    정부와 새누리당은 반색했지만 금리동결을 점쳤던 금융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불과 일주일 전인 3일 “우리가 기축통화국도 아닌데 금리를 어디까지 내리란 것이냐”며 박근혜 정부 경제팀과 날카롭게 각을 세웠던 김 총재의 변심이 한은에 대한 시장의 불신만 키웠다는 것이다. 경제전문가들 사이에도 “어차피 내릴 금리였다면 진작 내렸어야 했다”는 냉소적 평가가 주를 이뤘다. 한은 안팎에서는 새 정부 출범 후 한 달여 동안 지속된 기준금리 갈등의 배경을 놓고 박근혜 정부와 김 총재 간의 편치 않은 관계부터 섣불리 한은을 자극한 정부의 실책까지 다양한 관측을 내놓고 있다.



    김 총재는 9일 금통위 정례회의 직후 이례적으로 금통위원들의 표결 결과를 공개했다. 한은은 금통위 회의 2주 후 회의록을 공개할 때까지 표결 결과를 비밀에 부치는 것을 원칙으로 해왔다. 김 총재를 제외한 6명의 금통위원이 참여한 이날 표결 결과는 5대 1. 금리동결을 주장한 금통위원은 1명에 불과했다. 금통위원들의 의견이 3대 3으로 갈릴 때 마지막으로 ‘캐스팅 보트’를 던지는 한은 총재가 표결에 참여할 여지도 없이 일찌감치 금리인하 의견이 대세를 이룬 것이다.

    금융시장에서는 김 총재의 표결 결과 공개가 이번 금리결정이 총재와 한은의 뜻이었음을 내비치기 위한 것으로 풀이한다. 당연직인 한은 총재와 부총재를 제외한 5명의 금통위원은 한은과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은행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4대 3의 대결구도로 금리동결이 결정됐던 지난달 금통위에서는 김 총재를 비롯해 박원식 부총재, 문우식(한은 추천), 임승태(은행연합회 추천) 위원이 금리동결을 주장했다. 총재와 부총재, 한은 추천 금통위원은 금리방향과 관련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 전직 금통위원은 “금통위 회의록이 공개되면 누가 금리동결에 표결했는지 윤곽이 드러나는 만큼 한은 측의 의견은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보통”이라며 “동향보고회의 등을 통해 금리방향의 대세는 이미 파악되기 때문에 한은이 소수 의견에 그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한은이 금리인하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 이상 이번 금통위에서 5(금리인하)대 1(금리동결)의 표결 결과가 나올 수 없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정책 엇박자’를 무릅쓰고 4월에 금리동결을 택했던 한은의 통화정책 기조가 한 달 사이에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김 총재는 “금리를 동결해야 하는 이유가 5가지라면 인하해야 하는 이유도 그만큼은 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지난달에는 많은 논의 끝에 그중 하나를 선택했고 이번에는 또 지난달과 다른 선택을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총재는 주요국들이 최근 금리인하에 나섰다는 것 외에는 지난 한 달 동안 금리동결 방침이 바뀌게 된 경제적 이유에 대해서는 설득력 있는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의 경기개선 흐름에 대한 전망과 하반기 경제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상저하고(上低下高)의 국내 경기 전망은 4월과 5월 모두 큰 차이가 없었다.

    MB맨의 자존심?

    금리인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변수는 결국 정부와 갈등을 지속하는 데 따른 한은의 부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규모 추가경정예산과 부동산 종합대책, 투자활성화 대책 등 정부가 잇따라 경기부양을 위한 승부수를 띄우는 가운데 하반기 경제 회복세가 예상보다 더디면 자칫 금리동결 방침을 고수한 한은이 모든 책임을 안아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4월 금리동결이나 5월 금리인하 모두 정부와의 관계와 여론을 고려한 정치적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김 총재 스스로 금리인하의 첫 번째 이유로 ‘정부 및 국회와의 정책공조’를 꼽은 것도 이 같은 해석에 무게를 싣는다.

    정부와 금융시장에서는 애초에 김 총재가 4월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정부와 갈등구도를 형성했던 것부터 예상외라는 평가가 주류를 이룬다.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조세연구원 등 국책연구원의 원장을 역임한 김 총재는 한은 총재로 내정된 직후 “한은도 정부”라고 밝힐 정도로 물가안정이라는 한은의 고유 목표보다는 성장 중심의 확장적인 통화정책을 선호하는 ‘비둘기파’로 평가돼왔다. 특히 그는 한은법 개정을 놓고 정부와 한은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1997년 재정경제원 경제부총리 특별보좌관을 지낸 경험 때문에 ‘정부로부터의 통화정책 독립’을 주장하는 한은의 논리에도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재는 박근혜 정부의 첫 경제사령탑인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도 막역한 사이다. 현 부총리는 김 총재의 경기고, 서울대 후배이며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같은 시기에 유학할 때부터 친분을 유지해왔다. 현 부총리는 4월 1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은 총재와는 평소에도 자주 보고 친하다”며 “공개된 장소에서 (한은 총재와) 협업이 이뤄졌으면 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경기회복심리 찬물 끼얹은 lose-lose 기싸움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5월 9일 2013년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 때문에 현 부총리가 내정되자마자 금융시장에서는 한은이 곧 기준금리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뤘다. 김 총재 스스로도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부터 정부와의 정책공조를 강조하며 금리인하 기대감을 키웠다.

    일각에서는 금리 갈등의 이유를 이명박 정부 초대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내 ‘MB맨’으로 분류되는 김 총재와 박근혜 정부의 껄끄러운 관계에서 찾기도 한다. 박근혜 정부 새 경제팀이 출범하자마자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크게 낮추면서 경기 부진의 책임을 전임 정부로 넘기는 ‘빅 배스’(big bath·목욕으로 때를 씻어낸다는 뜻) 전략을 취하자 이명박 정부에서 한은 총재로 임명된 김 총재가 새 정부와의 공조 대신 갈등을 선택했다는 것. 김 총재는 2010년 국정감사에서 박근혜 당시 의원이 “한은의 뒤늦은 금리 정책이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켰다”고 지적하자 10여 분 동안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은 내부에서는 이런 김 총재가 4월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금리를 동결했던 배경으로 정부의 실책을 먼저 꼽는다. 온건한 성장중시론자인 김 총재가 한은 독립성의 투사처럼 변신한 데는 한은과 충분한 조율 없이 ‘밖에서’ 금리인하를 공론화한 새 정부의 ‘무리수’가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상처만 남긴 금리 갈등

    새 정부 경제팀과 한은의 관계가 껄끄러워지기 시작한 것은 현 부총리가 취임 전인 3월 13일 인사청문회에서 “금융과 재정, 부동산 등 종합적인 패키지 형태의 경기 대응 정책이 필요하다”며 금리인하를 거론하면서부터.

    현 부총리의 발언이 알려진 직후 기재부가 “현 부총리의 발언은 금리인하를 의미한 것이 아니다”고 해명했지만, 3월 28일에는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정책점검회의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에서 당연직 참석 멤버가 아닌 김 총재의 불참 사실을 부각하면서 청와대-정부와 한은의 불편한 관계는 계속됐다.

    특히 4월 1일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MB(이명박) 정부 때도 한은이 경제정책과 관련해 굼뜬 모습을 보였는데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말한 뒤 이틀 뒤에는 조원동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 추경편성에 따른 국채금리 인상 우려를 설명하며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려주면 좋다”고 연이어 한은에 돌직구를 날렸다. 기재부가 뒤늦게 열석발언권(금통위 참석 권한)을 포기하고 현 부총리도 금리에 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금리는 금통위의 고유권한이므로 언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물러섰지만 한은과 당정청 관계는 돌이키기 어려워졌다.

    금리 압박이 거세질수록 한은은 4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정부의 압박에 굴복해 통화정책 독립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한은 관계자는 “민감한 주제인 금리인하를 놓고 정부가 몇 번씩 노골적으로 언급한 것은 결국 한은의 퇴로를 차단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정부가 불필요하게 한은을 자극하는 발언으로 한은으로부터 ‘자발적인 지원’을 받을 기회를 스스로 내쳐버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 총재는 4월 6일 청와대 경제금융점검회의(서별관회의)에 불참하면서 김 총재와 현 부총리는 4월 18일 주요 20개국(G20) 회의 전까지 공식 만남을 갖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기재부 장관, 한은 총재가 새로 임명되자마자 회동을 하고 정책 조율에 나섰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 달간의 금리 갈등은 한은에 적지 않은 부담을 남겼다. 4월 금리를 동결하면서 “책임질 것은 지겠다”며 정부와의 정책 대결을 선언했던 한은이 자존심을 꺾고 석연치 않은 금리인하에 나서면서 한은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아예 이번 금리 갈등을 정권 교체 때마다 나타나는 한은과 정부의 의례적인 ‘기싸움’으로 보는 이도 적지 않다. 1998년 한은법 개정으로 금리 수준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의 장(長)이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에서 한은 총재로 바뀐 뒤 임명된 총재는 김중수 총재를 포함해 4명. 이 중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 임명돼 김 전 대통령 퇴임 전에 임기를 마친 전철환 총재를 제외한 박승, 이성태 총재는 모두 새 정부가 들어선 직후 금리 결정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

    “한은은 못 이길 싸움”

    하지만 결과는 모두 새 정부 경기부양 기조에 맞춘 한은의 금리인하로 끝났다.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가 경기부양책 필요성을 주장했을 때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은 튼튼하다”고 맞섰던 박승 전 총재는 북핵 위기,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확산 등으로 경기가 급격히 악화되자 정부 출범 두 달 반 만에 금리를 인하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강만수 전 기재부 장관과 첨예한 갈등을 빚다가 그해 8월 정부의 의사와는 반대로 금리를 인상하면서 정부와 여당 내에서 총재 해임론까지 불러왔던 이성태 전 총재는 곧이어 터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10월부터 12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금리를 끌어내려야 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정권이 교체되면 경기부양을 원하는 정부와 통화정책의 연속성을 중시하는 한은 사이에 의견 충돌이 생기기 마련”이라며 “하지만 저금리의 부작용보다는 경기부양의 효과가 더 눈에 띄기 때문에 결국 한은은 이기기 힘든 싸움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경제팀 역시 한은과 불필요한 금리 갈등을 촉발해 추경 편성을 통한 경기회복심리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게 됐다. 각국이 금리인하와 양적완화에 나서면서 환율전쟁의 위험이 높아지는 가운데 ‘아베노믹스’로 인한 엔화 약세가 가속화하면서 올해 경제성장률이 정부의 예상을 밑돌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한은이 뒤늦게나마 금리를 인하하면서 정부가 목표로 하고 있는 올해 성장률 3% 달성의 기반을 만들어준 만큼 저금리 장기화로 인한 체감물가 상승이나 가계부채 증가 등의 부작용은 정부의 몫이 됐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정부와 한은의 정책공조 기조가 회복된 것은 긍정적이지만 불필요한 금리 갈등으로 경제상황에 선제적이고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한 점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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