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호

닷컴·서브프라임 거품 예측 장기분석 행동경제학 대가

로버트 실러 美 예일대 교수

  • 하정민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입력2013-12-18 1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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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붕괴를 내다보는 등 굵직굵직한 경제 현상을 예측해 주목을 받았지만 학계 비주류인 그의 주장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2005년엔 세계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경고했다. 3년 후 세계 금융위기가 터졌다. 사람들은 그의 예측 능력을 칭송하며 석학이라 일컬었다.
    • 왕성한 강연과 저술 활동으로 친숙한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2013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면서 학자 인생의 절정기를 맞았다.
    “천동설과 지동설이 둘 다 옳다고 인정한 꼴이다. 노벨경제학상의 권위가 훼손됐다.”

    영국 경제일간지‘파이낸셜타임스’가 201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발표 직후 내놓은 논평이다. 2013년 10월 14일 수상자가 발표되자 세계 경제학계는 크게 술렁였다. 핵심은 두 가지다. ‘알프레드 노벨 사후 제정된 노벨경제학상의 존재 의의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는 점과 ‘주류 경제학의 구멍을 파고든 행동경제학의 입지가 날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논란은 수상자의 면면에서 기인한다. 3명의 수상자는 미국 시카고대 교수 유진 파머와 라스 피터 핸슨, 예일대 교수 로버트 실러다. 문제는 파머 교수와 실러 교수의 주장 및 연구 분야가 정반대라는 점. 두 사람은 앙숙이다. 전통 경제학의 적자(嫡子)인 파머 교수는 ‘인간은 언제나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 시장 또한 항상 완벽하게 작동한다’는 명제를 신봉하는 ‘효율적 시장 이론’의 권위자다. 반면 실러 교수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언제나 합리적인 것만은 아니다. 따라서 종종 시장의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행동경제학(Behavior al Economics)의 대가다.

    전면에 등장한 ‘이단아’

    실러 교수의 이론은 인간의 비합리적인 판단과 행동이 시장의 왜곡을 초래한다는 명제를 깔고 있다. 이에 따라 실러 교수는 2008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 이후 “효율적 시장이론이 틀렸다는 점이 완전히 드러났다”며 파머 교수를 매섭게 공격했다. 상식적으로 두 사람의 상반된 주장이 모두 틀릴 수는 있어도 둘 다 맞을 수는 없다. 노벨경제학상위원회가 황희 정승도 아니고, 상의 권위가 훼손됐다는 말이 나올 만도 했다.



    실러 교수의 수상은 몇 년 전만 해도 ‘주류 경제학의 이단아’쯤으로 평가받던 행동경제학의 발전 속도와 그에 대한 사회 저변의 인식 변화가 엄청나게 빨라지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2002년 사상 최초의 심리학자 출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대니얼 카너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신동아’ 2013년 5월호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사람들’ 참조)가 이 상을 탔을 때와 비교하면 상전벽해 수준이다. 카너먼 교수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할 때만 해도 “대다수 경제학자가 잘 연구하지 않는 틈새 분야를 개척해 노벨상을 탔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제 실러 교수까지 노벨상을 수상함에 따라 행동경제학이 주류 경제학의 전면에 당당하게 등장했다.

    2000년대 이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면면을 보면 행동경제학과 직간접적 연관을 맺고 있는 인물이 많다. 201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로이드 섀플리 교수는 게임이론과 수리경제학을 접목한 ‘협조적 게임이론(cooperative game theory)’으로 노벨상을 탔다. 최근에는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 지명자의 남편으로 더 유명해진 조지 애컬로프 UC버클리대 교수도 2001년 중고차 시장의 정보 불균형을 분석한 ‘레몬이론’으로 노벨상을 탔다. 두 사람의 이론은 행동경제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애컬로프 교수는 실러 교수와 함께 2009년 초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라는 행동경제학 분야의 명저도 펴냈다.

    실러 교수는 미국의 대표적 주택가격 지수인 ‘케이스-실러 지수’를 개발했으며 주식과 금융 분야에서도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21세기 들어 연이어 터진 경제위기, 즉 2000년 초 닷컴 버블 붕괴,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모두 예측한 유일한 학자다. 그는 어떻게 이런 혜안을 갖게 된 것일까.

    MIT의 소중한 인연

    로버트 실러는 1946년 3월 미국 자동차산업의 본산인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서 리투아니아 이민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벤저민 실러도 자동차 엔지니어로 일했다. 1967년 미시간대를 졸업한 실러는 1972년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그의 스승은 198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소비이론 ‘생애 주기(life cycle) 가설’의 창시자로 유명한 프랑코 모딜리아니 교수였다.

    MIT 시절 실러는 평생의 벗인 제레미 시겔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MBA스쿨 교수를 만났다. 두 사람은 MIT 입학 전 건강검진 때 실러(Shiller)와 시겔(Siegel)이라는 성이 비슷해 앞뒤로 나란히 줄을 섰다가 조우한 것을 계기로 1946년생 동갑내기, 미 중서부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더해져 그야말로 ‘절친’이 됐다.

    아들만 2명을 둔 것, 전업주부가 아닌 전문직 종사자가 아내라는 사실도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두 가족은 여름휴가를 같이 보낼 정도로 돈독한 사이다. 다만 금융위기 이후 시겔 교수는 미국 금융·부동산 시장의 광범위한 거품론을 주장하는 실러 교수와 견해를 달리했다. 시겔 교수는 “미국 주식 시장이 그다지 고평가 상태가 아니다”라고 주장해 친구와 논쟁을 벌였다.

    실러는 MIT 졸업 후 미네소타대, 런던정경대(LSE)를 거쳐 1982년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이후 30년 넘게 이 학교에 재직하며 많은 후학을 길러냈다.

    실러 교수가 세계 경제학계로부터 처음 주목받은 것은 1987년이다. 당시 그는 칼 케이스 웰슬리대 교수와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주택가격 지수인 케이스-실러 지수를 개발했다.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등 미국 10대 도시의 집값을 지수화한 이 수치는 1년에 4번(2월, 5월, 8월, 11월 마지막 주 화요일) 발표되는데, 미국 주택시장 동향을 가장 잘 반영하는 지표로 꼽힌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집계 대상을 20대 도시로 확대해 수치를 산출하고 있다.

    닷컴 버블 붕괴 예측해 명성

    1996년에는 저서 ‘매크로 마켓(Ma- cro Markets)’으로 폴 새뮤얼슨 상도 수상했다. 금융 관련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긴 학자에게 주는 권위 있는 상으로,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이자 미국의 첫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고(故) 폴 새뮤얼슨 MIT 교수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실러가 본격적으로 대중적 명성을 얻은 계기는 닷컴 버블이다. 정보기술(IT) 업계의 활황으로 미국 나스닥지수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던 2000년 3월, 실러 교수는 달아오른 시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책 한 권을 발표했다. “지금 주식시장은 투기적 버블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은 주식 투자가 아니라 주문(呪文)을 외우는 투기에 나서고 있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다. 이 책을 내놓은 지 한 달 만에 그의 분석은 현실로 드러났다. 나스닥지수는 불과 한 달 만에 30% 폭락했다. 미국발 ‘닷컴 버블’붕괴로 세계경제가 위축됐다.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용어가 유명해진 것은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이 이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린스펀은 미국 경제가 ‘신경제(New Economy)’의 호황으로 흥청망청하던 1996년 11월 “주가 상승이 과도하다”는 직설적인 말 대신 “금융시장이 비이성적 과열에 휩싸였다”는 완곡한 표현으로 주가 상승을 진정시켰다. 그린스펀에게 이 용어를 알려준 사람이 바로 실러다. 두 사람이 함께 식사하면서 세계경제 동향에 관해 얘기를 나누던 중 실러가 이 용어를 언급했고, 이에 힌트를 얻은 그린스펀 전 의장이 이 말을 사용해 세계적 반향을 일으켰다.

    실러가 닷컴 버블 붕괴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던 건 1980년대 초부터 미국 주가 및 주요 기업의 배당금 변화를 상세히 비교해온 덕분이다. 그는 어떤 기업의 영업활동이 좋지 않아 배당금을 많이 줄 수 없는 상황인데도 이 기업의 주가가 급격하게 상승하면 이것이 주가 방향성이 급하게 바뀔 수 있는 신호라고 생각했다. 특히 시장 참여자 대다수가 잘못된 기대를 가지면 주가는 ‘실제 가치(펀더멘털)’를 뛰어넘어 ‘거품(버블)’의 영역에 도달한다고 봤다. 그는 이 논리를 훗날 세계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예측할 때도 그대로 적용했다.

    많은 이가 ‘비이성적 과열’에 대해 “책 내용도 훌륭하지만 이런 책을 발간한 저자의 용기가 더 놀랍다”고 평가한다. 그도 그럴 것이, 2000년대 초는 지수 1만 선을 넘나들던 다우지수가 곧 2만, 3만 선을 돌파한다며 ‘다우 40000’유의 책이 범람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주가 거품이 과도하며 곧 거품이 꺼질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서브프라임 부실도 현실로

    실러는 주식 시장에 이어 부동산 시장의 과열에 주목했다. 2005년 12월 그는 CNN 인터뷰에서 “주택 가격이 오르기만 할 것이라는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이 부동산 거품을 만들고 있다. 미국의 집값이 30~40년 전에 비해 매우 높은 상태인 건 물가 상승 때문이지 실제 가치가 올라갔기 때문이 아니다. 미국 부동산 시장도 ‘비이성적 과열’ 현상을 보이고 있다. 집값은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 세계 자산시장이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던 당시 그의 주장에 공감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닷컴 버블 붕괴, 9·11 테러, 이라크 전쟁 등으로 위축된 미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2000년대 초부터 중반까지 대대적인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2001년 6.5%에 달하던 미국의 기준금리를 불과 2년 만에 1.0%로 끌어내렸다.

    시장은 이를 ‘그린스펀 풋(put)’이라 불렀다. 파생상품의 한 종류인 풋옵션처럼 주가가 하락할 때마다 그린스펀이 금리를 내려 주가 반등을 뒷받침했다는 뜻이다. 미국의 유동성 완화 정책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쳐 급격한 자산가격 상승을 낳았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0년대 중반 한국 사회를 강타한 미래에셋 펀드 열풍, ‘버블 세븐’이라는 신조어를 낳은 부동산 투자 열풍도 그린스펀의 저금리 정책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하지만 오랜 저금리 정책과 유동성 과잉은 ‘거품 경제’라는 독버섯을 키우고 있었다. 문제는 유동성 범람이 최고조를 향해 가던 2005년만 해도 이 위험성에 주목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년 반 후 실러의 예언은 적중했다. 2007년 4월 미국 2위 모기지업체 뉴센추리 파이낸셜이 한국의 법정관리와 유사한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부동산 거품이 한창이던 시절 미국의 많은 저소득층은 집값의 90%, 심지어 100%를 대출받아 집을 샀다. 이자 부담이 적지 않았지만 집을 사두기만 하면 곧 가격이 오르니 오른 가격으로 이자 부담을 상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집값이 언제까지 고공비행을 할 수는 없는 법. 집값 상승세가 주춤해지자 서민의 이자 부담이 빠르게 늘기 시작했다. 투기세력도 부동산 시장을 빠져나갔다. 뉴센추리에 이어 다른 모기지 회사도 줄줄이 파산 행렬에 돌입했다.

    닷컴·서브프라임 거품 예측 장기분석 행동경제학 대가


    주택 시장 급락의 충격은 고스란히 서민들이 떠안았다. 집값이 폭락하면서 집을 팔아도 빚을 못 갚는 사태가 빚어졌고, 도시는 차압당한 깡통주택으로 넘쳐났다.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한 2007년만 해도 금융위기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저소득층과 제2 금융기관에 국한된 사안일 뿐 월가의 대형 금융회사, 고소득층과 중산층 등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대부분이었다. 미 연준 등 세계 주요 중앙은행은 ‘서브프라임 사태가 금융계 주류나 실물경제에까지 큰 타격을 줄 정도는 아니다’라며 방관했다.

    하지만 사태는 세계 금융의 심장부인 월가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약 1년 뒤인 2008년 9월 15일 자산 2000억 달러(약 220조 원)가 넘는 초대형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며 초유의 금융위기가 발생한다. 리먼은 월가 금융회사 중 서브프라임 모기지 투자 비율이 가장 높았던 곳으로 유명했다. 리먼 못지않게 서브프라임 투자 비율이 높았던 베어스턴스, 메릴린치 등도 줄줄이 나가떨어졌다. 반면 서브프라임과 같은 고위험 고수익 투자 대신 소매금융처럼 저위험 저수익 투자에 주력했던 JP모건체이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은 고비를 비교적 잘 넘기고 지금도 거대 금융사로 군림하고 있다.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의 후폭풍은 엄청났다. 미 연준은 무려 3조 달러를 찍어내는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금리인하로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을 때 국채 매입 등으로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에 직접 돈을 푸는 정책)로 세계 경제 시스템의 파국을 간신히 막았다. 하지만 위기의 근본 원인까지 뿌리뽑진 못했다. 결국 2010년 초 유럽발 재정위기가 발생했고 세계경제는 아직도 이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기는 비극이었지만 경제학자 실러의 명성은 그 덕분에 고공비행을 거듭했다. 이후 실러는 주요 경제지와 금융기관이 뽑는 ‘세계 경제학계를 움직이는 사람’ ‘월가를 움직이는 사람’ 등의 순위에서 늘 상위권에 올랐다. ‘신성한 교육자’ ‘대석학’을 의미하는 구루(Guru)라는 표현이 따라다녔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은 시간문제”라는 전망도 나왔다. 이는 결국 사실이 됐다.

    그가 칭송받는 중요한 이유는 거품이 꺼진 후나 거품이 꺼지기 직전 거품임을 언급하는 상당수 경제학자와 달리 거품의 정점에서 거품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이는 2000년대 초 그가 주식 시장 거품을 예측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부동산 시장의 장기 가격 변동을 철저히 분석해서 나온 결과물이다.

    노벨상 수상은 예측 못해

    또한 실러는 책, 논문, 언론 기고 등 활발한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통해 자신의 연구 성과를 학자들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쉽게 알리려고 노력했다. 보통사람들이 어렵고 딱딱하게만 느끼는 경제학의 대중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았다는 점 또한 다른 경제학자들과 구별되는 차이점이다.

    ‘예측의 달인’ 실러는 정작 자신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은 예측하지 못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믿을 수 없다. 세상에 훌륭한 경제학자가 너무도 많아 노벨상 수상을 기대하지 않았다”고 소감을 털어놨다.

    이를 단지 겸손함의 표출로만 보기는 어렵다. 경제학계에는 이런 농담이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으려면 2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뛰어난 연구 업적, 둘째는 장수 능력이다. 특히 두 번째 조건이 첫 번째보다 훨씬 중요하다.’ 노벨상은 대개 젊은 시절 연구 성과를 낸 노장 학자들에게 돌아갈 때가 많다. 워낙 쟁쟁한 후보가 많기에 자신의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장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우스갯소리다.

    실러는 금융위기를 예측했고 월가 대형 금융회사의 행태에 대해 쓴소리를 퍼부었지만, 2012년 9월 펴낸 ‘금융과 좋은 사회(Finance and the Good Society, 한국어판 제목은 ‘새로운 금융시대’)’에서 “올바른 금융은 좋은 사회에 기여한다”며 금융산업을 옹호해 눈길을 끌었다.

    금융위기의 한복판에서 월가 대형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수천만 달러의 급여와 성과급을 챙긴 데서 보듯 금융산업 종사자들의 탐욕과 무책임은 금융위기를 초래한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2009년 초 집권하자마자 월가를 살리기 위해 대규모 공적자금을 퍼부어야 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월가와 금융인들의 탐욕을 지적하면서 ‘살찐 고양이(fat cat)’라는 격한 표현을 쓰며 비난했다. 일반 대중의 인식도 다르지 않다. 2011년 미국에서 시작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 금융업과 금융업 종사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실러는 일부 금융인의 잘못이 클지라도 좋은 사회를 건설하고 전 세계적인 문제로 부상한 빈부격차를 줄이려면 금융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역사적으로 봐도 영국의 산업혁명은 금융의 기여가 없었더라면 현실화하지 못했을 것이고 미국의 서부 개척도 금융의 공이 컸다는 것. 과거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했던 많은 국가가 이제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국 금융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인 것도 그 증거라고 주장한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금융의 구체적인 형태는 단정하긴 어렵지만, 행동경제학의 발전이 좋은 해답을 제시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도 덧붙였다.

    그의 이런 예측이 맞아떨어질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세계경제가 격동을 겪고 있는 지금, 깊은 고찰과 명철한 비전으로 정책 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석학들의 시각이 어느 때보다 긴요한 것만은 사실이다. 세계적 경제학자들은 단순히 상아탑에 갇힌 고고한 이론가가 아니라 정치인이나 기업가 이상으로 실물경제의 변화를 주도하는 중심축이다. 실러 교수의 향후 행보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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