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나는 일생 동안 ‘정상적’이라는 것에 익숙해지기가 몹시 어려웠다. 내가 접하는 인간들, 세상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인간들이 보여주는 정상적인 그 무엇이 내게는 혼란스러웠다.내 생각에는 생길 수도 있는 일들이 절대로 생기지 않는 것도 의문이었다. 나는 인간이 언제나 가장 엄격한 순응주의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인간 존재가 개인화되지 않는 정도가 너무나 심한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 -살바도르 달리
일러스트레이션·박용인
우리 반 아이들은 살바도르 달리의 아이들이다. 모두 비정상적이고 자기만의 우주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반인에게서라면 생기지 않을 일들이 일어난다. HS중학교에는 1, 2학년 합쳐 총 일곱 명의 장애아가 다닌다. 모두 시설에서 사는 이 아이들은 여느아이들과 함께 통합반(‘원반’이라고 한다)에 소속돼 있으나, 교과목에 따라 특수학급인 목련반에서 수업을 한다.
나는 목련반 담임을 맡은 특수교사다. 따뜻한 남쪽, 부산이 고향인 나는 북방의 경기도 포천으로 발령이 났다. 대학 동기들은 “지현이 군대 가네, 휴가 오면 보자”며 놀려대기도 했다.
아이들은 각기 장애 정도와 개성이 다르고 성장 속도도 다르다. 손이 많이 가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덜 가는 아이도 있다. 창수나 지선이는 사춘기를 겪고 있다. 석재는 마음은 착한데 자주 야단을 치게 된다. 애선이는 똑똑한데, 일손이 모자란 탓에 많이 가르쳐주지 못해 미안하다. 착하고 여린 미희는 늘 궁금한 게 많다. 학습 욕구도 높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아이다. 재윤이와 유철이는 지도할 부분이 많다.
개인 수준별 수업을 하려면 학생 수가 적어야겠다 싶지만, 막상 아이들이 적으면 효과적인 수업이 되지 않는다. 이상하게 교실이 허전하고 활기가 없다. 식물이 서로 모여 있어야 잘 자라듯, 아이들도 한데 모여 있어야 에너지가 상승 하는 것 같다.
1학기 수학시간이다. 석재, 창수, 애선이가 함께 수업을 한다. 아이들 수준에 맞는 책을 골라 돌아가면서 설명하고 풀이해준다.
애선이 기분이 좋지 않다. 요즘 애선이는 자주 창밖을 내다보며 우울해한다. 애선이는 창수나 석재보다 머리가 좋고 학업 수준이 높지만, 외모 때문에 더 장애인 취급을 받는다. 애선이의 별명은 달팽이. 눈과 눈 사이가 많이 멀고 치아가 심하게 삐뚤빼뚤하다.
“애선아, 기분이 안 좋아?” 가만히 손을 잡아주자 고개를 끄덕였다. 짜증내거나 투정 부릴 줄 모르는 애선이의 눈이 붉어지더니 눈물이 고인다. 눈을 껌뻑이자 또르르 눈물이 떨어진다. 애선이는 잘 우는 아이가 아니다. 안경 밑으로 손을 넣어 눈물을 닦아낸다.
오늘도 애선이는 혼자 울다 스스로 추스르고 수학 문제를 푼다. “애선이 누나 왜 울어요?” 한 학년 아래인 창수가 묻는다. “기분이 안 좋아서.” 내가 대답한다. “기분이 왜 안 좋아요?” 말투가 퉁명스럽다. “이유 없이 기분이 안 좋을 때도 있어.” “기분 안 좋으면 울어요?” “우는 사람도 있지.” “선생님도 기분 안 좋을 때 있어요?” “물론이야. 누구나 기분 안 좋을 때가 있어.” “그럼 선생님도 울어요?” “응, 나도 울어.”
창수 안의 분노
창수가 몇 초쯤 가만있더니 갑자기 눈을 빛냈다. “선생님도 운다고 했죠? 그래, 그럼 내가 선생님 울릴 거예요!” 눈을 치켜뜨고 나를 노려본다. ‘어디 한번 해보자, 나한테 화낼 건가?’ 하는 눈빛이다. 창수가 나한테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 한창수. 나 울리고 싶으면 울려. 근데 네가 안 울려도 쌤 요새 속상해서 집에 가면 많이 울어.” 내 말에 창수는 김이 새는 모양이다.
이후에도 창수는 싸움(?)을 걸어왔다. “나, 방학 때 염색할 거예요!” 반항기가 가득했다. 초록색, 보라색, 빨간색으로 할 거란다. “그래라. 염색하면 쌤한테도 보여줘. 방학 동안엔 염색해도 되지 뭐” 했더니 전의를 잃은 눈치다. 사춘기의 반항일까, 아니면 내가 미운 걸까. 날을 세워 달려들다가 내가 대응하지 않으면 더는 공격하지 못하고 물러서는 창수 안에는 터뜨리지 못한 분노가 남아 있는 것 같다.
유철이가 친구 물건을 말없이 가져갔다. 유철이를 다음 수업에 들여보내지 않고 마주 앉혔다. 인지능력이 낮을수록 잘못을 바로 지적해줘야 한다. 그래야 혼란이 없다. “유철이 잘못했지? 잘못했으니까 벌 받아야 해. 10분간 꿇어앉아 있어.” 유철이가 버틴다. 반성의 기색이 없다. 자존심도 센 녀석이다. “유철아, 남의 물건을 말없이 가져가면 도둑이야. 도둑이 되면 친구들이 너랑 같이 안 놀아. 어떤 친구가 유철이가 아끼는 모자나 연필을 아무 말도 안하고 가져갔어. 너 기분 좋겠니?” “아니오.” “그래, 주인에게 말해야 돼. 안 그러면 도둑인 거야. 그래서 네가 잘못한 거고.” 그제야 유철이가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유철이가 어제 제 성기를 만졌다. 1학년 원반 교실에서 그러다가 같은 반 여학생과 눈이 마주치자 씩 웃었단다. “아악! 유철이 봐!” 여학생들이 놀라 소리를 지르는데도 웃다니. 아이들이 소리 지르는 게 재미있었을까. 남들이 놀라는 것에 재미를 붙이면 큰일이다. 더 심한 행동, 성기를 노출하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유철이를 불렀다. 신발장 앞에 햇볕이 따스하게 들어오기에 그리로 데리고 갔다.
아무리 애를 써도 바뀌지 않는 현실
“노유철, 너 오늘 바지에 손 넣고 성기 만졌지?” 유철이는
눈치가 빠르다. 유철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들켰다, 부끄럽다’는
표정이다. “그거 부끄러운 행동이지? 남 보는 데서 해도
되는 행동이야?” 몇 번의 승강이 끝에야 답한다. “아니요.”
어느 새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교실 밖으로 나왔다. 목련반 아이들도 유철이에게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기웃거렸다. 집으로 가는 버스 시간 때문에 더 이상 혼낼 수도 없다. “노유철, 너 내일 벌 받을 거야.
1, 2, 3, 4 교시 다 원반에 못 가. 알았어? 오늘
교실에서 남들 보는데도 바지에 손 넣어서 벌 받는 거야.” 천천히 잘못된 부분을 강조해 말한다. 유철은 시무룩하게 “네에”하고
대답한다.
유철이가 아침에 무단횡단을 했다. 현장에 있었던 과학 선생님 말이, 사고 나기 일보직전으로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학교에는 비상이 걸렸다. 유철이가 살고 있는 시설 ‘가온의 집’에 위험을 알리고 유철이의 등교 문제를 의논했다. 시설에서는 차량을 지원하거나 인솔교사를 보내줄 형편이 안 된다. 교사가
등교 지도를 하고 마중 나가는 등 가능한 방법을 의논했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유철이를 재택학급으로 보내자는 얘기가 나왔다. 며칠 후 나는 교감선생님과 시설로 찾아갔다. 위험하다는 학교의 입장과, 장애 학생만 위험한 건 아니지 않으냐는
시설의 입장. 긴 시간의 토론 끝에 유철이를 재택학급으로 보내자는 결론이 났다. 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유철이는 다운증후군을 갖고 있다. 유철이는 학교에서 사회성을 기르고 행동 기술 등을 배워야 한다. 사랑과
지지, 교육의 기회와 적절한 자극이 있으면 다운증후군의 아이도 독립적이고 책임감 있는 사회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
재택학급 학생으로 변경하는 데 필요한 서류는 겨우 석 장. 회의록, 신청서, 발송 공문이 전부다. 이
석 장으로 한 아이의 운명이 바뀐다. 나는 그동안 유철이를 시설로 보내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써보았다. 동사무소와 시청 등에 문의하고, 장학사와 면담하고, 선배의 조언을 구하고, 학교의 교장·교감선생님에게 항의도 하고 사정도 했다. 아침에 내가 유철이를 마중
나가기도 했다. 나 혼자 서류 준비를 미루며 버텼지만, 더는
미룰 수 없는 시점이 왔다. 한창 클 나이의 유철이가 이제 시설 안에서만 지낼 것을 생각하니 허탈하고
막막했다. 유철이를 등교시켜줄 부모만 있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을 텐데.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나의 무능함에 괴로웠다.
“선생님, 사람은 왜 죽어요?”
유철이를 재택학급에 보내고 싶지 않다고 교장선생님에게 울며 하소연했다. 교장은 “그럼 강 선생이 의지를 갖고 아이를 변화시켜보라”고 주문한다. 우리 반 아이들은 장애 없는 학생들처럼 변하지 않는다. 그건 영화나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비장애인의 눈에 만족스러운 ‘틀’이 우리 반 아이들에게는 없다.
유철이는 원반에서 활동적이진 않지만 자기 자리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거울도 보고, 엎드려서 자신이 하고 싶은 행동을 한다. 교실에 유철이의 자리가
있고, 그 자리의 주인은 유철이고, 그렇게 자신의 영역이
있으면 된 거다. 일반 아이들이라고 모두가 사회성이 좋아 친구들과 활발하게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틀’에 맞추기 위해 특수아들이 학교에 오는 것은 아니다. 생긴 그대로 또래의 일부로 적응하기 위해 학교에 온다. 장애아뿐
아니라 주변 모두가 함께 그 과정을 거쳐야 그들에게 비로소 자기 자리가 생긴다.
하굣길에 애선이가 묻는다. “죽으면 아파요? 죽으면
배 안 고파요?” 애선이는 평소에도 질문이 많아서 내가 공부를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아이다. “겨울에는 왜 해가 늦게 떠요? 겨울은 왜 추워요?” 나는 주먹으로 위성을 만들어 설명해준다. 그런 애선이가 창밖을
보며 우울해하고, 죽음에 대해 물으니 가슴이 덜컥 한다.
경복궁에 갔을 때다. 방학 때 어디 가느냐고 애선이가 내게 물었다. “집에 가지.” “선생님 집은 어딘데요?” “부산이야.” “나도 집에 가고 싶어요.” 말문이 막혔다. “나도 부산에 가보고 싶어요.” 시설에서만 살아온 애선이를 부산 집에 데리고 갈까. 그러면 다른
아이들은 어쩌지? 방학 때마다 몇 명씩 교대로 데리고 가도 될까. 엄마랑
의논해봐야지 하는 생각이 주루룩 들었다.
그런 애선이가 “선생님 나는 죽고 싶어요, 했다.” 놀라 왜 그렇냐고 물으니 “힘들어서요”라고 힘없이 대답한다. 뭐가 힘드냐고 묻자 “다요. 지금 걷는 것도 힘들고…”라고
말을 흐린다. 내가 “그래도 조금만 참으면 안 힘들 건데? 이제 가온의 집에 가면 맛있는 저녁도 먹고 텔레비전도 보고…”하니
애선이는 힘없이 “예” 대답하고는 앞서 간다.
일부러 차에 부딪히려는 것처럼 찻길로 바짝 다가가는 애선이의 작고 야윈 어깨가 안쓰럽다. “애선아, 안으로 들어와! 위험해!” 소리쳐도
아이는 반응이 없다.
유철아, 안녕
이젠 유철이를 보내야 한다.
겨울방학 일주일 전, 아이들에게 유철이 얘기를 했다. 유철이가
이제 학교에 오지 않고 재택학급에서 수업을 한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유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유철. 이제 쌤 못 보는데 괜찮아?” 섭섭해서 이렇게 묻는 내게 유철이는 반달눈을 만들어 웃기만 한다. 그러고는
몸을 비틀며 도망간다. 나는 그런 유철을 붙잡아 “쌤이 유철이
보러 가온의 집에 갈게” 라고 했다. 슬프고 섭섭한 건 오로지
나만의 감정인지도 모른다. 장애아들은 헤어질 당시에는 별로 슬퍼하지 않는다. 이별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막상 익숙한 얼굴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제야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때부터 기다림이 시작된다. 죽음까지 이어지는 기다림도 있다. 이별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그날 오후, 유철이를 재택학급 학생으로 변경한다는 공문을 시설에 전달하러 갔다. 이번에는 교장·교감선생님 없이 혼자 갔다. 아이들은 나와 함께 집에 간다며,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신이 났다. 시험 점수가 걱정인 지선이만 빼고 재윤, 유철, 애선, 미희는 좋다고 야단이다.
미희는 조그마한 주먹을 불끈 쥐고 “오, 예!” 소리친다. 지선이는 “왜
하필 오늘이냐”고, “왕엄마한테 절대 자기 점수 말하지 말라”고 부탁한다. 시험 못 치면 왕엄마한테 혼난단다. 유철이도 신이 났다. 먼저 가다가 뒤를 돌아보고 나와 눈이 마주치면
씨익 웃으며 괜히 튕긴다. “아, 왜요오~?” 소리를 길게 빼며. “노유철 좋아서!” 하자 “아~ 나 좋아하지
마요오~” 하며 몸을 비틀며 좋아한다. 재윤이도 히죽히죽
웃으며 내 주위에서 걷는다. 창수만 빼고. 창수는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에도 내 곁에 오지 않는다. 오히려 멀어지려 한다. 나도
창수에게 일부러 다가가지 않고 그냥 편하게 둔다. 창수에게서 긴장인지 경계인지 모를 기운이 느껴진다.
창수는 우리와 뚝 떨어져서 혼자 간다. 집에 갈 때 항상 가온의 집 친구들보다 저만치 먼저
가는 창수. 유철이나 재윤이는 다른 여자 아이들이 챙겨 함께 간다. 혹
유철이 늦거나 재윤이가 뛰어가면 여자아이들이 유철이를 기다려 데려가고 재윤이를 쫓아가 붙잡아 온다. 시설에서
교육시켰을 것이다. 창수는 그러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전혀
모르는 사이인 듯, 일행이 아닌 듯이 행동한다. 시설에서
산다는 게 부끄러운 것이다. 나는 창수를 나무라지 않는다. 창수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아서.
날이 무척 차다. 버스정류장 인근에서 붕어빵과 꼬치 어묵을 판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아이들은 꼬치 어묵과 붕어빵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새침한
지선이까지 꼬치 어묵과 붕어빵을 보는 눈이 진지하다. 안 그런 아이는 창수뿐이다. 창수는 포장마차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호주머니에 두 손을 푹 찔러 넣고 일반학급 남학생 곁에 서 있다. 저 아이들 옆에 있으니 전혀 장애학생으로 보이지 않는다. 입학 첫날, 창수와 석재, 지선이는 외형적으로 표시가 나지 않아 우리 반 아이들인지
몰랐다. 가온의 집 일행과 떨어져 또래 옆에 선 창수를 보니 괜히 마음이 짠하다. 부모님이 계셨다면 굳이 장애인 등록을 하지 않고 살았을 아이다.
아이들에게 붕어빵을 사 먹여도 되나. 교육적으로 문제가 없나. 나는 갈등한다. 교무실에선 아이들이 얻어먹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고
혀를 찬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가 많아 학교에서 밥이나 간식을 자주 준다. 아이들은 고마워하기보다 당연하게 여기고 불평까지 한단다. “오늘은
왜 이거예요? 통닭이나 피자가 더 좋은데” 라며.
“아저씨. 붕어빵 만 원어치 주세요.”
못 사주면 맘에 걸릴 것 같아 나는 붕어빵을 산다. 지선이와 애선이가 말린다. “쌤, 너무 많아요. 5000원어치만
사세요.” “그래? 모자라지 않을까?” “안 모자라요.” 애들이 착하기도 하지. 나라면 많을수록 좋아했을 텐데.
창수와 또래 남자 애들도 붕어빵 사는 모습을 힐끗 본다. 버스가 오고, 아이들과 우르르 버스에 탔다. 빈자리에 앉은 애선이가 붕어빵을 하나씩
나눠줬다. 2학년 남자애는 애선이가 내민 붕어빵을 거절한다. “백상훈, 너도 먹어. 너희도 먹고.” 내가
말해도 그 아이들이 고개를 젓는다. 창수도 안 받는다. 새침한
것들. 애선이가 내게도 붕어빵을 내민다. “쌤은 나중에 내려서
먹을게, 애선이 먼저 먹어.” 나도 창수 패들처럼 새침하다. 애선이와 아이들은 행복한 얼굴로 붕어빵에 빠져든다.
버스가 꼬불꼬불 포천의 산을 둘러 올라간다. 2학년 남학생들이 먼저 내린다. 그러자 창수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공손한 태도로 그들에게 인사한다. 중학생
때는 선생님보다 선배를 더 무서워하고 따른다더니 창수도 그런가보다. 우리 반 누구도 그런 문화에 속해
있지 않은데, 창수만 일반 학생들과 문화를 공유한다. 기특하고
장하다. 쌤한테 좀 불손하면 어때. 네가 또래들과 잘 어울리면
된 거지.
그러던 창수가 가온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애선이에게 다가와 붕어빵 두 개를 쏙 꺼내 간다.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붕어빵 봉지에 손을 넣어 꺼내 먹는다.
가온의 집으로 가는 오르막길에 하얀 알갱이들이 빛났다. “이거 눈이야?” 내가 물어보자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우와! 선생님, 소금이에요! 눈
오면 길이 미끄럽잖아요. 그래서 미끄러지지 말라고 엄마, 아빠가
아침에 뿌려놔요.” “오! 신기하다.” 내가 부산 억양으로 놀라자 아이들이 즐거워 죽는다. 애선이는 히
웃고, 지선이는 콧대를 살짝 높여‘뭐, 선생님은 처음 보는 거니까 모를 수도 있겠죠’ 하는 표정으로 거만하고
새침하게 웃는다.
낳은 정, 기른 정
가온의 집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언제 갈 거냐” “자기들
방에 놀러 올 거냐” 등을 묻고는 각자 방으로 흩어진다. 왕엄마는
가온의 집 사무국장이다. 서류를 받은 사무국장이 날선 눈빛으로 질책한다.
유철이는 재택학급에 갈 수준이 아니라는 생각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제 역량이 부족했습니다. 유철이가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굳게 먹었건만 기어이 눈물이
났다. 앞으로 유철이가 다시 학교에 돌아올 수 있는지, 고등학교
진학 때라도 시설에서 나와 특수학급으로 갈 수 있는지 계속 알아보겠다고 했다. 눈빛이 풀린 사무국장은
유철이는 성격이 밝아 잘 적응할 거라며 오히려 나를 위로한다.
다른 아이들 얘기도 물었다. 요즘 애선이가 죽음에 관심이 많다고 하니 사무국장이 놀란다. 하굣길과 경복궁 체험학습을 다녀올 때의 얘기를 들려줬다. “애선이가
그런 줄은 몰랐는데…. 앞으로 또 그런 일이 있으면 연락해달라”고
사무국장이 말한다. 창수는 시설에 사는 걸 부끄러워하는 거 같다고 하자 그는 시설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줬다.
얼마 전에 창수가 방을 바꿨는데, 그 방에서는 창수가 가장 큰형이다. 같은 방 동생 중에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아이가 한 명 있다. 그 애가 자꾸 창수를 거슬리게 한다. 창수는 그 아이를 제압할 수 있지만, 아빠한테 혼날까봐 참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하루는 그 아이 때문에 또 화가 났는데, 화를 터뜨릴 길이 없자 창수는 짐을 쌌다. 당장 여기서 나가겠다고. 아빠는 모른 척 내버려뒀다. 창수는 씩씩거리며 짐을 쌌지만, 막상 갈 곳이 없었다. 현관으로 뛰쳐나간 창수는 짐을 들었다 내렸다 하며 분해서 눈물만 흘리더니 “죽어버릴
거야, 뛰어내려 죽을 거야!” 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아빠는 또 그런 창수를 그냥 내버려뒀다. 시간이 지나고 창수가 제
발로 찾아와 죽는다는 말을 취소했다. “안 죽을 거예요. 왕엄마한테
말하지 마세요.” 풀이 죽어 항복했단다. “왕엄마가 알면
상담하자고 귀찮게 할테니.” 주먹을 불끈 쥐고 눈물 흘리는 창수가 보이는 것 같다. 학교에서 괜히 내게 틱틱거리거나 멀리 가던 아이. 수업 태도가 학년
초보다 나빠지고 있는 아이. 때로는 어떻게 시비를 걸어볼까 반항적이다가, 내가 순순히 받아주면 전의를 상실하고 마는 창수의 서러움과 분함이 보이는 것 같다.
지선이는 지적 장애가 전혀 없는데 자신의 능력만큼 공부를 안 하는 거 같다고 하자 “그
지지배가 열심히 안 하죠? 머리는 되는데…” 사무국장이 받는다. 지선이는 일반 시설에 있어도 될 정도로 장애 정도가 가볍다. 지선이는
첫돌이 안 돼 이곳 시설에 들어왔다. 일반 시설에 가야 했지만 키우면서 정이 든 우리가 낫지 않을까
싶어 지금껏 데리고 있다고 한다. 안 그래도 지선이한테 시험 성적으로 압박을 줬더니 요새 살살 피해
다닌다며, 사무국장이 웃었다. 가온의 집은 좋은 시설이구나
싶어 안심이 됐다.
사무국장은 지선이 얘기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선이 엄마는 재혼을 했고, 시댁에서는 지선이의 존재를 모른다. 그래서 방학 때만 1박2일로 엄마에게 간다. 그것도
시설의 강요로 가는 것이다. 문제는 지선이 엄마가 아이를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내 보기에 지선이는 극히 정상적인 아이다. 그런데 엄마 눈에는 이상해
보이다니. 지선이가 안쓰럽다. 사실 우리 반 아이들은 장애도
안타깝지만 따뜻한 부모가 없는 게 더 마음이 아프다. 아이를 보면 부모의 손길이 느껴진다. 나쁜 부모라면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 싶으니, 시설 종사자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다.
두근거리는 삶
장애 학생들은 학교에서 또래들과 어울리며 사회생활을 배운다. 눈치도 생기고 적응력을 키운다. 어느 정도의 적응력(자립 능력)을
키우지 못하면 평생 시설에서 살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지내는 학창 시절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험대이자 교육장이 된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 친구의 아들’이
있다. 그는 스위스 로잔에서 호텔경영을 공부했다. 클래스메이트의
절반 이상이 세계 각국에서 온 외국인이라고 했다. 나야말로 세계를 다니며 여러 나라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 집은 스위스는커녕 서울 소재 대학도 반기지 않았다. 부산의 국립대를 나와 자립하는 것이 내 길이었다.
부모님은 사범대를 원했지만 나는 교사가 되기 싫었다. 그러자 엄마가 특수교육이 어떠냐고
했다. 특수교육은 생소한 분야였다. 어쨌건 교사는 싫다, 평생 학교만 다니냐고 우겼지만 별달리 대안이 없었다. 능력이나 재력
있는 부모를 둔 친구들은 그래도 선택의 폭이 넓었다. 결국 나는 사범대를 지원했다. 그래서였다. 임용지를 고를 때 집을 떠날 수 있는 서울이나 경기를
택했다. 넓고 새로운 곳에서 나를 더 키우고 싶었다.
춥고 낯선 포천으로 발령이 났다. 새로운 곳은 맞지만 세상의 오지에 떨어진 것 같았다. 사방은 눈과 얼음이고, 겨울은 지독히 길고 추웠다. 문득 엄마 친구 아들이 생각났다. 이제 그 사람은 외국계 유명 호텔에서
근무한다. 나는 북쪽의 추운 시골에서 부모 없는 시설의 장애아들과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꿈꾸던 미래와 너무 달랐다. 이 커다란 간극이 무슨 의미인지
나는 아직 모른다. 그리고 여전히 또 다른 무대를 찾아 기웃거린다. 어쩌면
나는 두 삶의 커다란 간극이 갖는 의미를 찾을 때까지 헤맬 것 같다.
재윤이의 원반에서 돈이 없어졌다. 학급 급우들은 재윤이를 의심했다. 재윤이가 친구들 물건을 생각 없이
가져오긴 하지만, 돈에 대한 개념은 아직 없다. 재윤이는 ‘범인’이 아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재윤이를 붙잡고 심문(?)을 하다가 속이 상해 울고 말았다. 재윤을 의심하는 원반 아이들이 야속하고, 유철이 없는 허전함과 유철이를
재택학급으로 가게 만든 현실의 제도도 야속해 아픈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2학기에 공부한 내용을 편집해 방학숙제로 만들었다. 목련반에서 공부한 날이 더 많은 유철이의
것도 만들었다. 시설에 순회를 나가는 선생님에게 유철이의 방학숙제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유철이는 재택학급에서 아직은 멍하게 구경하듯 앉아 있단다. 내 이야기를
하면 “좋아요, 강지현 선생님! 보고 싶어요!” 하고 소리친단다.
포천의 냉기는 지독하다. 첫 1년을 마무리하는
종업식이 끝났다. “안녕히 계세요.” 창수가 현관에서 마지막
인사를 한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반듯한 태도다. 시틋하거나
비껴버리거나 도전적인 눈빛도 아니다. 창수의 자발적인 인사를 처음 받았다. 얼떨떨하게 창수를 쳐다봤다. 네가 내게 인사를 하다니. 우리가 1년을 잘 지냈구나. 순간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잘 가, 한창수. 나를 울리겠다던 창수의 선전포고는 결국 실행되지 못했지만.
1년간 수업하며 찍은 사진으로 앨범을 만들었다. 유철이는 사진 속에서 밝고 귀엽게 웃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는지 나는 모르겠다. 우리는
그냥 1년을 같이 살았다. 울고 웃으며.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2012년, 라온의 집으로
올해는 재택학급을 맡았다. 학교에 올 수 없는 중증 장애인들을 위해 시설로 찾아가 수업을
한다. 이른바 순회교사다. 내가 맡은 시설은 ‘라온의 집’이고, 학생은
세 명이다. 이들은 작년 목련반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장애 정도가 심하다. 아이 셋 모두 지적 장애와 지체 장애를 함께 갖고 있다. 말할 줄
아는 아이는 없고, 내 말을 얼마나 알아듣는 지 알 수가 없다.
스물한 살 윤정이는 라온의 집에 산다. 다리 근력이 약하고 발목이 뒤틀려 일어서지 못하고
엉덩이로 밀고 다닌다. 남자처럼 짧은 커트 머리에 잘 웃는다.
스무 살 광현이는 남자다. 163cm의 키에 체격이 좋다.
짙은 눈썹에 여드름이 많아 얼굴이 붉다. 겉보기엔 건장한
20대 청년이지만, 걸음이 부자연스럽고 혼자만의 세계에 푹 빠진 표정에서 장애인임을 알
수 있다. 집에서 다니고, 재택수업이 끝나면 한두리 장애인
시설에서 시간을 보내다 집으로 돌아간다.
열여섯 아영이는 뇌성마비다. 어머니가 차로 등하교시키고 이너가 들어간 휠체어를 사용한다. 크고 동그란 눈이 약간 돌출됐고, 가슴과 복부에 벨트를 묶어 상체를
잡아줘야 한다. 몸은 굳은 곳이 없어 의지와 의도와 관계없이 몸이 움직이는 ‘불수의운동(不隨意運動)’이 활발하다.
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다. 배우는 게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어제는 숫자 1과 2를
손가락과 사물, 숫자카드로 반복해 보여줬다. 광현이는 내가
일, 이라고 하면 이! 하고 소리친다. 윤정이는 1과 같은 모양 찾기도 어려워한다. 같은 것 찾기부터 했다. 숫자, 색깔, 글자가 같은 것부터.
포천의 겨울은 영하 이십 몇 도가 예사다. 따뜻한 남쪽 지방에 살던 나는 너무 추워 한약을
먹고 병원도 다녔지만 좀처럼 동창(凍瘡)이 낫지 않는다. 시설로 올라가는 길도 전부 빙판이다. 눈이 쌓였다가 낮에 살짝 녹고, 밤에 얼고, 다시 눈이 쌓인다. 장갑 낀 손으로 입과 코를 막고 조심조심 걷지만
자주 넘어지곤 한다. 시설에 다다르기 전, 약간의 오르막에서
결국 뒤로 미끄러졌다. 미끄러지면서도 힘을 조절해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용을 썼다. 찬 공기와 접촉하는 얼굴은 시린데 몸 안에선 식은땀이 났다.
광현이가 소리 지르며 시설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혹은 교실에 올라오면서부터 온갖 괴성을 지른다. 말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지만 듣는
사람에겐 불협화음이다. 교실에 들어선 광현이는 나와 윤정이는 본체만체하고 교실을 빙빙 돌며 알 수 없는
소리를 우렁차게 질러댄다. 내가 다가가자 팔을 뒤로 빼서 가방을 흘리듯 벗고는 도망치듯 더 빨리 돈다. 나는 광현이를 붙잡는다. 그제야 눈을 맞추고 2초 정도 나를 보더니 알 수 없는 소리를 뱉는다. “우룰루루르 으으우무르.”
광현은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을 흉내 낼 때도 있고, 자신이 겪은 어떤 상황을 불시에
재현하기도 한다. 왼손바닥을 오른손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가 허공을 가리키며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이광현~. 어서 와. 선생님이랑 인사부터 하자.” 광현이는 안 보이는 척, 안 들리는 척 하던 짓을 계속한다. 광현이의 양손을 잡고 두 팔을 강하게 당겨 나를 보도록 한다. 눈이
마주치면 다시 ‘안녕하세요’ 한다. 그제야 고개를 짧게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겨우 대답한다.
부모가 건너온 고통
8시 50분쯤 아영이는 엄마 차를 타고 등교한다. 아영이는
늘 휠체어에 앉아 있으니 키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얼굴은 작은데 깡마른 팔, 다리가 길다. 말랐어도 힘이 세고 불수의운동이긴 해도 힘차다. 아영 엄마는 그런 아영이를 안고 교실로 올라온다. 눈이 내려 차가
시설까지 올라오지 못했단다. 언덕길 거리가 50m? 아니 100m 정도일까? 그 추위에도 아영 엄마는 땀범벅이다. 내가 혼자서도 미끄러워 용을 쓰며 오르는 길을 키가 160cm는
될 법한 딸을 안고 왔으니 얼마나 힘이 들까.
“어유, 선생님. 길이 얼어서 진짜 힘들었어요. 애는 뻗치지, 길은 미끄럽지. 아영이
안고 넘어지면 안 되겠고요. 다음부터는 이렇게 눈 오면 학교 못 오겠어요.” 아영 엄마가 숨을 헐떡인다. “게다가 아영이가 집에서 오줌 안
싸고 오는 동안 싸가지고. 아이고, 힘들어. 기저귀도 갈아야겠어요. 처음에 애 낳고는 버릴까말까 엄청 망설였어요. 진짜 여러 번 버리려고 했어요.”
나는 아영이가 들을까봐 눈치를 보는데, 아영 엄마는 시원시원하게 말도 잘한다. 아영 엄마는 매일 아영이를 등하교시키고, 아영이 생일이면 아빠와
함께 아영이 선물을 사러 간다. 엄마의 존재란 무엇일까. 특히
장애인의 엄마는 어떤 존재일까. 초짜인 어린 선생 앞에서 거리낌 없이 이런 말을 하는 부모는 얼마나
깊고 먼 고통의 시간을 건너왔을까. 아영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엄마가 대단해 보인다.
아영이는 새로 온 내가 낯설어 2주일 동안 울었다. 아영이는
낯선 사람, 낯선 환경을 싫어하고, 화가 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우는 것으로 의사를 표시한다.
처음 사흘은 아영이의 눈물만 닦아주다가 수업이 끝났다. 아영이는 작년의 애선이처럼 훌쩍거리는
게 아니라 소리 지르고 악을 쓰며 울었다. 눈물과 콧물도 계속 흘린다.
비쩍 마른 몸에 무슨 물이 이리 많을까 싶다. 오전 중에 두루마리 휴지 한 통을 다 쓰기도
한다. 온갖 성질을 악 쓰는 울음으로 표출하는 것 같다. 한번은
주먹을 꽉 쥐고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이를 악물며 이빨까지 으득으득 갈아
나는 깜짝 놀랐다. 경기를 하는 건가? 119를 불러야 하나? 아영 엄마에게 전화를 할까? 아이의 팔을 주무르고 뻣뻣해진 몸을
마사지하면서 어쩔 줄 몰랐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 체온계로 열을 재고 정신없이 주물렀다. 아영이는 잠시 힘을 뺐다가 다시 울어댔다.
그렇게 허둥거리는 동안 윤정이와 광현이는 방치됐다. 윤정이는 그래도 나를 보다가 광현이를
보다가 했다. 나랑 눈이 마주치면 웃어줬다. 잠시 틈을 봐서
윤정이에게 스티커책이나 스케치북을 주고 선 긋기, 이름 쓰기, 숫자
쓰기를 시키면 열심히 한다.
문제는 광현이다. 광현이는 아무것도 안한다. 그나마
가만히 엎드려 있거나 혼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히히 웃고 있으면 다행이다. 때로는 아영이의 우는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는지 갑자기 일어나 소리를 지르고 벽을 친다. 흥분하면 자기 손이나 옷을 물고 자해한다. 그러면 일이 커진다.
윤정아, 그만 빌어도 돼
화장실에서 윤정이가 넘어졌다. 윤정이는 화장실에 나와 함께 가야 한다. 바닥에 앉아 엉덩이로 밀고 다니고 혼자 옷을 내릴 수는 있지만 뒤처리는 힘들다.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혔는데, 중심을 못 잡아 뒤로 넘어졌다. 다시 변기에 앉았을 때는 이미 소변에 옷과 변기가 젖었다. 윤정이는
화장실에서 나가지 않으려고 버텼다. “괜찮아, 윤정아.” 윤정이를 달래면서 걸레로 변기 주변을 닦았다. 고무장갑을 낄까
하다 그냥 했다. 더럽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오줌이 그렇게
노랗지도 않고 냄새도 별로 없었다.
화장실 입구에 윤정이를 앉혀놓고 시설 담당자에게 갔다. 마침 식사를 하려던 담당자에게 사정을
얘기하자 “수업 중간에 화장실에 보내야 하나요?”라며 곱지
않은 투로 말했다. 밥도 못 먹고 일어나려니 짜증이 날 것이다.
윤정이한테 돌아와 오줌 묻은 바닥을 닦고 있으니 시설 담당자가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왔다. “들어가. 바지 벗어. 양말 벗어.” 짜증을
애써 누른 딱딱한 지시에 윤정이는 웃으며 앉은 채 몸을 움직인다. 부끄러운 건지 무서워하는 건지 미안해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아까 넘어졌을 때도 윤정이는 계속 웃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 웃는 윤정의 속마음은 어떨까. 교실에 남겨둔 두 아이가 걱정돼 먼저 교실로 돌아왔다.
“윤정이 양치했어? 씻었어?” 윤정은 무조건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입에서 냄새가 심하다. 거짓말하는
습관도 고쳐야겠다. 우리 교실은 책상과 의자, 칠판 외에도
한쪽으로 싱크대와 텔레비전이 설치돼 있다. 입 냄새가 심한 윤정을 싱크대 앞으로 가 앉으라 했다. “친구들은 수업하고 윤정이는 양치질할 거야. 거짓말했으니 앉아 있는
벌 조금 서고 양치할 거야.”
윤정이는 수업에서 제외되는 걸 엄청 속상해한다. 뭐든지 공부하는 걸 좋아한다. 날짜 공부하고, 거울 보며 위생교육하고, 식목일이라 컴퓨터로 나무 심는 사진, 영상 등을 보여줬다. 윤정은 울 것 같은 얼굴이다. 벌을 서고는 있지만 수업 내용과 텔레비전
화면은 다 볼 수 있는 위치다. 윤정이가 눈이 뻘게져서는 두 손을 싹싹 빈다. 아주 서러운 표정에 내 마음이 아프다.
그렇게 빌 정도로 잘못한 것은 아니라서 윤정이의 손을 잡고 “괜찮아, 양치하고 공부하자” 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정이는 내가 손을 놓자마자 다시 손을 비벼댄다.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그래, 앞으로 거짓말하지 말자. 양치
안 했으면 안 했다고 이렇게 고개 저어요” 했다. 윤정이는
눈을 꿈뻑거린다. 시설에서 자란 윤정이는 손 비비며 빌어야 할 잘못을 많이 저질렀을까. 그때 사람들이 윤정이를 잘 용서해주지 않은 걸까. 손을 놓기 바쁘게
자동 인형처럼 두 손을 비벼대는 윤정이의 손을 잡고 양치와 공부하는 시늉을 번갈아 해보이니 그제야 안심하고 윤정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영 엄마를 도와 하교하는 아영을 차까지 들어다주고 왔더니, 그 사이 광현이가 문을 열려다가 반대로 잠가버렸다. 문이 열리지
않자 광현이는 문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치고 난리가 났다. 같이 안에 있는 윤정이가 몹시 걱정됐지만
태연한 척 광현이를 달랬다.
“광현아, 이광현. 그래, 집에 가자. 그렇게 발로 차면 더 안 열리잖아.” 나는 계속 달래고 광현이는 안에서 쿵쾅거리며 난리를 쳤다. 광현이가
이것저것 치고 돌리다가 문이 열렸다. 그 시간 동안 얼마나 간이 졸았던지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산산이 깨진 거울
와장창! 광현이가 거울을 던졌다. 방과 후 요리시간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다행히 교실엔 광현이와 나, 둘만 있었다. 늘 보던 윤정이가 하루 종일 없었고, 아영이도 오전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갔다. 점심도 평소처럼 식당이
아니라 교실에서 먹고, 점심을 먹고도 집에 안 가고 둘이서만 요리를 만들어 화가 났을까. 안 그래도 평소와 다른 분위기에 광현이 불안해할까봐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주고,
요리 냄새를 빼기 위해 환풍기를 돌렸다. 환풍기 도는 소리가 시끄럽고, 교실도 엉망이라 그랬을까.
광현이는 불안한 눈빛으로 교실을 돌기 시작하더니 벽거울을 쳐보았다. 그리고 못에 걸린 거울을
빼들고 냅다 집어던졌다. 와장창! 유리 깨지는 소리에 광현이도
놀랐는지 눈이 커진 채 씩씩거렸다. 나는 광현이의 양손을 잡고 뒤로 물러서게 한 다음 바닥에 앉혔다. 그러고는 가슴을 마사지해주며 광현이를 달랬다.
‘힘들다. 특수교사 정말 힘들다.’ 내 머리를
꽉 누른 생각은 그것뿐이었다. 산산이 깨진 거울. 다 타버린
음식. 시설 사람들은 밖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가 중이라 도움 받을 사람도 없다. 울고 싶었다. 머리끝이 곤두서고 가슴이 꽉 막혔다. 깨진 거울은 어떻게 치우나. 내가 치우는 동안 광현이가 다른 걸
또 던지면 어쩌나. 교실 밖 식당으로 광현이를 데리고 나와 둘이 쪼그리고 앉았다. 내 가슴도 사정없이 뛰었다.
조금 진정이 된 광현이는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놀랐는지 몸을 떤다. 무엇이 이 아이를 흥분시켰을까. 교실부터 치워야지 싶어 광현을 두고 교실에 왔다가 아차차 혼자 있는데 또 흥분할까봐 다시 광현을 데려다 교실
문 옆에 앉혀두었다.
교실에 들어가 환풍기를 껐다. 광현이 엄마에게 연락할까 망설이다 시계를 보니 30분 정도 남았다. 어쨌든 내가 해결해야 할 것 같아 전화는 하지
않고 교실 문을 열어놓고 광현을 지켜보며 바닥을 청소했다. 깨진 거울 유리조각들을 치우고 광현이에게
들어오라고 했다. “네가 어지른 거 치워!” 광현이 순순히
남은 것들을 줍는다. 광현이가 돌아가자 그제야 긴 한숨이 나온다. 이날
이후 광현이가 소리를 지르면 머리가 쭈뼛 서고 뒷골이 당긴다. 귀가 쨍하고 머리 제일 위쪽이 찡하게
아프다. 심할 때는 머리 위가 팍 뚫리며 터질 것 같다.
오늘은 괜찮겠지 하고 출근했는데 아침부터 괜찮지가 않았다. 광현이가 소리 지르는 게 심상찮아서
위험한 물건은 전부 교실 밖으로 들어냈다. 광현이는 손을 물고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끈이나 옷자락을 엄청 세게 물고 짐승처럼 큰소리를 내며 당겼다. 나는
광현이를 바닥에 눕혀 마사지했다.
광현이가 조금 진정된 것 같아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줬다. 광현이는 종이가 찢어져라 색연필아
부러져라 싶게 박박 그어대더니 다시 소리를 질러댔다. 뒷골이 당기며 더 이상 못하겠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영이가 위험할까봐 윤정이가 화장실 가는데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윤정이는 혼자 기어서 화장실에 갔다. 나는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광현이를 지켜봤다. 무섭고 겁이 났다.
광현이가 하교 후에 가는 한두리 장애인 시설에 전화해서 물어보았더니 거기선 그런 일 없단다. ‘우리는
광현이에게 스트레스 주지 않아서 괜찮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방어적인 반응에 기운만 빠졌다.
넌 무엇을 느끼니?
나는 아영이가 무엇을 느끼는지 모른다. 내가 아영이에 대해 아는 건, 익숙해지면 울지 않는 것과 왜 웃는지 모르지만 가끔 웃는다는 것이 전부다. 내가
자신의 팔다리를 펴서 주물러주면 큰 눈을 꿈뻑거리며 날 보다가 다른 곳을 보다가 다시 날 보다가 한다. 표정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통 알 수가 없다. “아영아” 하고 부르면
나를 쳐다본다. 엄마가 불러도 쳐다본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진 않지만, 무엇을 아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영 엄마도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신체 명칭에 대해 가르칠 때, 광현이와 윤정이를 나란히 앉히고 아영이 휠체어를 맞은편에
끌고 와 아영이가 모델이라고 했다.
“자, 손을 찾아봐.” 손가락 손톱 배 무릎
귀 발 발꿈치 팔꿈치 등을 만지고, 두드리고, 주물러주며
수업을 했다. 배를 찾을 때는 아영이 배를 퉁퉁 치고, 내
배도 퉁퉁 쳤다. 아영이가 웃고 윤정이도 웃었다. “으히히히.” 윤정이는 눈물이 날 정도로 웃어댔다. 아영이가 웃으며 주먹을 쥐고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원시 반사가 남아 있는 건지 아영은 물건을 손에 쥐면 자꾸 입으로 가져간다.
아영이가 때로는 까르르 웃는다. 무엇 때문에 웃는지는 모르지만 그럴 때는 정말 예쁘다. 자주 우는
아이라 웃을 때마다 얼른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러면 카메라를 보고 웃기도 한다. 아영이는 생리할 때가 되면 정확하게 짜증을 내며 운다. 인간의 감정은
신체라는 기계에 아주 정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점핑 클레이로 만들기를 하면 아영이는 혼자 클레이를 주무르지 못한다. 광현이랑 윤정이는
잘 만들진 못해도 동그랗게 하거나 누를 수는 있다. 외부에서 온 강사가 광현, 윤정과 함께 만들고 나는 아영이 옆에 앉아 내 손 위에 클레이를 놓고 아영이가 누르게 한다. 아영이와 함께 손을 잡고 클레이를 주무르면 아영이는 울지 않고 클레이를 본다.
집중하는 것도 같다.
요리 실습을 할 때면 아영이의 입에 침이 고이다가 흐른다. 한두 번 씹고는 삼켜버리는 윤정이의
버릇을 고치게 하려고 과일 등을 준비해 수업하면, 아영이는 눈이 동그래져 과일만 쳐다본다. 그렇다고 씹지 못하는 아이에게 과일을 줄 순 없어 초콜릿을 줬다. 초콜릿이
없을 때는 초코칩 쿠키의 초콜릿 부분만 골라줬다. 휴지를 아영이의 입술과 턱 밑에 받치고 초콜릿을 넣어주면
들어가는 것보다 흘러나오는 침이 더 많다. 아차 하는 순간에 아영이의 옷에 초콜릿과 뒤섞인 침이 묻는다. 아이들 생일 때 아이스크림 케이크도 반은 먹고 반은 흘렸다. 오렌지
같은 과일은 숟가락으로 즙을 내 떠먹였다. 옷에 안 묻히는 날이 거의 없어서 아영 엄마에게 늘 민망했다. 다행히 아영 엄마는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먹고 싶은 아영이와
먹이고 싶은 나를 이해해주는 것 같았다.
1학기가 끝나기 한 달 전쯤, 아영이의 휠체어를 바꾸기로 했다. 이리저리 알아본 뒤 교장선생님에게 얘기했더니 승인이 떨어졌다. 생각보다
일이 많았다. 행정실과 업체, 상급자, 아영 엄마 등과 접촉해야 했다. 내가 가르쳐주는 게 별로 없으니
이런 일이라도 해야 마음이 편하다.
윤정이의 위로
선 긋기, 이름 쓰기, 모양 알기, 색깔 알기. 모양 찾기, 스트레칭, 요리, 색종이 접기, 만들기, 악기 연주, 악기 소리 듣기, 날씨
알기, 날짜 알기, 요일 알기, 일대일 대응 등. 우리 반의 수업 내용이다. 당장은 잘 모르겠는데, 어떤 순간 예상치 못한 발전이 보인다.
윤정이가 색깔의 이름을 듣고 그 색을 찾진 못해도, 같이 칠한 색깔 악보를 보며 같은 색의
핸드벨을 찾아 소리를 낸다. 그게 무슨 음악인지 노래인지 알지는 못해도 같은 색을 찾는 것도 잘 안
되던 지난 시간이 생각나 새삼 놀란다. 지난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아 기쁘다.
윤정이는 코를 벌렁거리고 눈을 게슴츠레 떴다 감았다 하면서 사시(斜視)가 섞인 눈으로 초점을 애써 맞추며
같은 색을 찾아 핸드벨을 땡 치고, 웃으며 날 본다. 그런
윤정이를 보면 이 아이가 이렇게 집중해서 하는데 열심히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윤정이에게 “아이구, 정말 잘하네. 진짜
많이 늘었네. 완전 똑띠네”하고 부산말로 칭찬해주면 광현이가
시큰둥해서 쳐다본다. 그런 땐 광현이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그 애 손을 잡고 윤정이와 똑같이 해주면, 손에 힘을 빼고 순순히 따라온다. 내가 가리키는 곳을 보고 내 얼굴을
유심히 보며 시키는 대로 한다. 늘 회의가 들면서도 이런 순간 위안을 받는다.
꿈속에서 울었다. 아빠가 장애인이고, 라온의
집 원장이다. 아빠와 같이 외출했는데 아빠가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몸이 굳어 있었다. 내가 아빠를 잘 감당하리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길 한복판에서 돌덩이 같은 아빠는 내게 뻣뻣하게 기대고,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당황스럽고 힘들고 내가 밉고 아빠에게 미안했다. 아빠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울고 말았다. 아빠가 건강했으면, 장애가
없었으면 했다. 장애인인 아빠는 얼마나 힘들까 싶으면서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선 “나 못하겠어요, 힘들어요” 했다. 간절히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그런 마음에 대한 죄책감.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 힘들어 울었다.
피 냄새. 윤정이의 팬티에 피가 잔뜩 묻었다. 피가
덩어리로 뭉쳐 있는데도 내가 화장실에 데려가지 않으면 윤정이는 그대로 있다. 광현이가 또 소리를 지르자
귀와 머리가 동시에 아파왔다. 도망치듯 윤정이를 데리고 화장실로 갔다.
피신이다.
윤정이에게 생리대를 채우려니 피 냄새가 우산처럼 퍼진다. 아이를 세면대를 붙잡고 서게 하고
나는 쪼그리고 앉아 허벅지, 엉덩이에 묻은 생리혈을 닦았다. 윤정이의
엉덩이는 늘 앉아 지내느라 갈색으로 짓눌려 아픈 것도 같고 더럽게도 보인다. 생리를 해도 잘 씻지 못하고, 닦지도 못한다. 찜찜한 생리대를 스스로 갈 수도 없다. 기가 막히고 암담하다. 그때 서 있던 윤정이의 손이 내려오더니 내
머리를 서툴게 쓰다듬는다. 고개를 들어보니 윤정이가 웃고 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한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담긴 웃음이다. 교실에서 난리를 치는 광현이를 진정시키려고 허둥거리던
나를 보아온 윤정이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 윤정이의 손과 웃음이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나는 아이처럼 울고 말았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했다. 광현이를 만나자마자 긴장이 된다. 그런데 광현이가 히죽거리고 웃는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나도 긴장이 풀리면서 기분이 좋아져서 따라
웃는다.
스무 살 광현이의 여드름 많은 얼굴은 객관적으로 비호감이다. 체험학습을 가면 광현이를 본
일반인이 눈길을 피하는 게 느껴진다. 그런데 내 눈에는 광현이가 귀엽다. 사랑스럽다는 표현은 좀 안 어울리지만 씨익 웃거나 알 수 없는 말을 열심히 중얼거리면 “아이고, 그랬나” 하고
맞장구가 저절로 나온다. 손을 번쩍 들거나 독특한 억양으로 “선생님!” 하고 외치면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다.
광현이는 어떤 말은 알아듣는다. 계속 말을 걸고 자주 말을 해줘야 눈치가 생기고 알아듣는
단어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내가 가고 없어도 후임자가 광현이에게 계속 말을 걸어주면 좋겠다. 광현이가 자폐의 울타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어떤 일이 있으면 좋겠다. 기회와
관심, 기다림과 격려는 기본으로 필요하다. 똥을 눈 뒤 닦지
못한다고 엄마나 다른 사람이 닦아주지 말고 스스로 하도록 가르쳐주고 기다려줘야 한다. 바지를 거꾸로
입으면 벗어서 다시 입도록 하고, 반찬을 떠주길 바라더라도 스스로 반찬을 집게 가르치고 기다려줘야 한다.
자원봉사자가 떠난 자리
아영이는 낯선 환경에 놓이면 운다는 이유로 익숙한 곳에서만 키울 게 아니다. 오히려 낯선
곳에 자주 데리고 나가야 한다. 사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접촉의 기회를 넓혀줘야 한다. 윤정이는 워커로 다리 운동을 한다. 윤정이가 다리 힘을 잃지 않고
조금이라도 걸을 수 있도록 후임자가 신경 써주면 좋겠다.
라온의 집에 자원봉사자들이 왔다. 회사나 어떤 단체에서 가끔 봉사활동을 온다.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단체로 갖춰 입고 30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우르르 왔다. 간혹 20대,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도 있다.
그들이 우리 교실을 기웃거린다. “이 방은 뭐지? 여기는
학교예요?” “네, 재택학급입니다. 학교에 통학하기 힘든 학생들은 여기서 수업 받아요.” “그럼 중학교
선생님이세요?” “네.”
사람 좋아하는 윤정이가 신이 나서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넉살 좋은 봉사자가 “그래, 그래” 하고 들어와
윤정이 옆에 앉는다. 몇 사람이 따라 들어와 교실 안을 구경한다.
남자 셋은 교실에 들어와 앉고, 여자 두어 명은 밖에서 깔깔거리며 우리를 구경한다. 윤정이는 낯선 사람을 보자 기분이 좋아져서 얼굴이 뻘겋게 달아오른다. 윤정이는
악수하자고 먼저 손을 내밀다가 그들이 잡기 전에 놀라는 척하며 뒤로 빼고 혼자 웃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
윤정을 광현이가 뚱한 표정으로 본다. 초등학교부터 같은 반에서 올라온 광현이다. 질책하는 것 같은 광현의 눈빛이 묘하다.
“같이 나가서 산책해도 돼요?” 봉사자 중 한 명이 묻는다. 곧 방과 후 수업을 해야 한다. 아영이도 먼저 가고 없어 윤정이가
없으면 광현이랑 둘만 있어야 한다. 광현이가 낯선 상황에서 흥분해서 뭘 깨면 어쩌나 걱정이 되지만 “그러세요” 했다. 봉사자들이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윤정이가 저리 좋아하니 내 걱정이 대수랴 싶다. 윤정이는 좋아서 활짝 웃는다. 그런 윤정이를 보고 “어머! 오빠를
완전 좋아하네!” 하며 여자 봉사자들이 놓치지 않고 깔깔거린다.
광현이와 둘이 수업을 했다. 시끌벅적거리던 밖이 조용해져도 윤정이가 오지 않는다. 이상하다. 윤정이를 찾으러 나갔다.
일층 엘리베이터 앞에 윤정이가 혼자 앉아 있다. “양윤정!”
불러도 초점 없이 메마른 눈이 허공을 향해 열려 있다. 봉사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마당에는 그들이 타고 왔던 차도 없다. 소란하게 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윤정이만 덩그러니 빈 껍질처럼 남아 있다.
“양윤정! 수업하러 올라와야지.” 내 말에 윤정이
움찔 떤다. 얼마 후에야 내가 누군지 알아보고는 희미하게 웃는다. 어딘가
넋이 나간 아이 같다. 봉사자들이 원망스럽다. 애를 다시
올려주고 가야지! 화가 난다. 윤정이는 처음 본 그 사람들이
뭐가 그리 좋았을까. 생각보다 이 일의 후유증이 오래갔다. 그
봉사자들처럼 나도 결국 윤정이의 삶에서 빠져나갈 사람 아닌가. 그들과 뭐가 다른가. 그런 생각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오늘은 인절미를 만들었다. “이제 정리하자”고
했더니 광현이의 눈빛이 이상해지면서 바로 쓰레기통을 엎고 책상을 밀치고 벽으로 달려가 머리를 박았다. 오늘만
해도 벌써 두 번째다. 점점 횟수도 잦아지고 행동도 과격해진다. 때로는
내가 자신을 막는 힘을 반동으로 이용해 난리를 부리기도 한다.
또 한바탕 난리를 치는 광현이를 그대로 내버려뒀다. 잠시 진정했다가 다시 시작하는 광현이를
시멘트 벽 앞으로 데려갔다. “여기서 박아! 더 해봐!” 시멘트 벽에 머리를 박으면 아프다는 걸 광현이는 경험으로 안다. 광현이의
눈이 뻘게진다. 천천히 박아 간을 본 광현이가 으흐프프 소리를 지른다.
분한 모양이다. 그때 광현이의 이마에 땡코를 날렸다.
광현이가 깜짝 놀란다.
흥분하던 광현이 땡코 한 방에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을 차리고 멍하니 날 본다. “너
자꾸 이럴 거야! 뭐 하자는 거야! 엉?!” 윤정이가 “으흐흐흐”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광현이가 땡코 맞은 것이 재미있어 죽겠는 모양이다.
윤정이가 웃어대니 광현이도 “흐흐흐” 따라 웃는다. 어이가 없다. 방금까지 그 난리를 치던 아이는 어디로 갔나. 이젠 광현이를 혼낸들 소용이 없다. 방금 일은 광현이에게 다른 세상의
상황이다. 나는 그제야 긴장이 쫙 풀리며 진이 빠진다. 나도
광현이처럼 어떤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땡코 한 방 맞으면 좋겠다.
졸업 영상 찍던 날
2월 15일.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이들 앨범에 넣을 사진을 추리느라 작년 담임이 만든 파일을 보았다. 아영이의
웃는 모습, 수업하는 장면을 보니 내가 잘못한 건가, 내가
요령이 없나, 광현이의 발작도 혹시 내 탓인가, 온갖 의문이
든다.
졸업식에 사용할 동영상을 찍어야 하는데 광현이 때문에 걱정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광현이는
난리를 쳤고, 촬영 장비는 목요일까지 돌려줘야 한다. 과연
졸업 동영상을 찍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목요일. 광현이의 컨디션이 별로다. 소리 지르고
초점 없는 눈으로 교실을 돌아다닌다. 날씨 탓에 결석이 잦던 아영이는 학교에 온 게 못마땅한지 또 운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어 책상을 밀어 넓은 공간을 만들었다. 광현이가
흥분한다. 아영이는 광현이가 소리 지르니 더 크게 운다. 어찌할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동영상 촬영을 포기할 수는 없다. 다른
재택학급 졸업생들은 모두 있는데 우리 반만 없는 것은 안 된다.
그 와중에 컴퓨터로 인사말을 만들어서 화면에 띄웠다. 총
4개의 페이지.
1. HS중학교 친구들아 안녕
2. 함께 졸업하게 되어 기뻐
3. 고등학교에 가서도 멋진 학생이 되자
4. 윤정, 광현, 아영. 라온의 집 친구들이.
한 화면마다 한 명이 들어가고, 마지막은 함께 찍으면 되겠다고 계획을 세우며 틈틈이 아영이의
눈물과 콧물을 닦고 광현이를 살펴본다. 하지만 아영이는 계속 울고 광현이는 불발탄처럼 씩씩거리며 교실을
돌아다녔다. 너무 힘들다. 이번에는 카메라 설치. 나는 기계치다. 아이들 눈치까지 보면서 카메라와 삼각대를 조작하려니
더 어렵다. 겨우 설치하니 배터리가 없다. 충전 어댑터를
찾지 못해 또 낑낑. 찾고도 연결하는 곳을 몰라 허둥거렸다. 마음이
심란하고 분위기가 어수선하니 있는 것도 안 보인다. 제대로 못하면 어떡하지. 못하겠다. 도망가고 싶다는 마음에 시달리면서도 손과 몸은 계속 움직였다.
갑자기 광현이의 눈이 커진다. 광현이의 시선이 카메라 삼각대에 꽂힌다. 삼각대 옆에는 아영이가 휠체어에 앉아 있다. 광현이가 돌진하는 것과
동시에 나도 몸을 날렸다. 하지만 광현이 더 빨랐다. 나는
광현이를 뒤에서 잡았지만 삼각대가 아영이의 휠체어 뒤로 넘어가고 아영이는 기겁을 하고 “앙” 소리치며 운다.
광현이를 잡아 교실 한편으로 데려간다. 어떻게 하나. 일단
달려들지 못하게 바닥에 앉힌다. 광현이가 부릅뜬 눈으로 날 본다. 나도
광현이를 노려본다. “으히으히!”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와
삼각대를 번갈아 보는 광현. 처음 보는 삼각대나 카메라가 신기한 모양이다. 광현이의 손을 잡고 삼각대로 데려간다. 아영이의 휠체어를 멀리 밀어놓고
삼각대를 세우고 카메라를 가져와 보여준다.
“이걸로 우리를 찍을 거야. 만져보고 싶으면 만져봐도 돼.”
광현이는 이리저리 고개를 갸웃거리며 카메라를 본다. “이걸로 동영상 찍어서 우리 졸업식에
틀 거야.” 내 말이 이해가 된 걸까? 알 수가 없다. 광현이가 눈을 껌벅거린다. 그런 광현이를 녹화 버튼을 눌러 찍었다. 윤정이, 아영이도 찍어 녹화한 것을 광현이에게 보여줬다. 턱을 위로 약간 들고 눈도 치켜뜨고 광현이가 진지하게 화면을 지켜본다.
윤정이는 작은 화면 속의 자신을 보고 까르르 웃는다. 광현이가 나오면 광현이를 가리키고
아영이가 나오면 아영이를 가리킨다. 아영이도 울음이 잦아들며 화면을 주시한다. 이때다 싶어 분위기를 띄운다. “우리 이거 찍어서 졸업식 때 틀자~.”
광현이를 문장이 쓰인 화면 앞에 세워놓고, 녹화 버튼을 눌렀다. 광현이가 얼어붙는다.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서 굳듯이 광현이가 얼었다. 방금까지 흥분해서 날뛰던 아이 같지 않다. 이럴 수가. 카메라가 자신을 찍는 걸 알고, 서 있는 자리에서 이탈하지도 않는다. 눈만 껌벅이며 카메라를 보는 광현이. 내가 카메라 뒤에서 “광현아, 인사하자, 안녕하세요?” 하니 광현이 따라 한다. 진짜 놀랍다. 촬영을 이해하다니. 1년을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네가 날 놀라게
하는구나. 이렇게 잘 하는데 도망치려고 겁을 내다니.
우리의 인연은 무엇일까
이젠 윤정이 차례다. 윤정이는 예상대로 잘한다. 잡아준
자리에서 카메라를 본다. 내가 인사하는 시늉을 하자, 윤정이도
손을 배에 모으고 허리 숙여 인사한다. 손을 흔드는 시늉을 하자 윤정이도 따라 한다. 얼굴에는 연신 미소. 윤정이는 1년
내내 저렇게 웃었다. 종이접기를 하거나 손을 씻거나 스티커를 붙이면서,
손가락을 하나씩 꼽아 숫자를 세고, 연필을 같이 쥐고 이름을 쓸 때도 웃었다. 작은 일에도 저렇게 즐거워하는 윤정이가 불쌍한 사람인가. 말은 못해도
나를 쓰다듬어 위로해주는 아이. 언제나 웃어주던 아이. 이제
헤어지는구나, 졸업이구나. 가슴이 저릿하다.
그렇게 울던 아영이도 울음을 그치고 분위기를 살핀다. 아영이도 동영상을 찍는다. 아영이는 고개를 오래 들고 있지 못한다. 그래도 이름을 부르면 바라보는지라 “윤정아, 아영이가 여기 보게 이름 부르자” 했더니 윤정이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온갖 소리로 아영을 부른다.
“아하아-! 아하-!”
그 외침이 아영이를 부른다는 걸, 우리는 누구나 안다. 윤정이가
애타게 부를 때마다 아영은 고개를 들어주고 나는 눈물을 참으며 촬영을 한다.
이번에는 세 명을 같이 카메라 앞에 세웠다. 광현이가 다시 진지해진다. 광현이는 다른 친구들이 촬영하는 동안에도 카메라에 집중하며 얌전히 있었다. 중간에
눌러보고 싶어 꾹꾹 누르기도 했지만 던지거나 소리치는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눌렀다. 상호작용이 어려운 광현이, 알아듣기는
하지만 발화가 안 되는 윤정이, 그리고 둘 다 안 되는 아영이를 보고 내가 카메라 옆에서 인사하는 시늉을
하자 윤정이는 따라 하고 광현이는 천장을 본다. “이광현 여기 봐! 아영~ 여기 보자!” 셋 다 카메라를 봤다가 딴 곳을 봤다가 한다. “윤정아, 손 한번 흔들까? 마지막
인사야.” 윤정이가 손을 흔들고 허리 숙여 인사한다.
개인 촬영과 단체 촬영이 기적처럼 끝났다. 아이들과 바닥에 둘러앉아 찍은 것을 돌려 보았다. 광현이가 커진 눈을 내리깔고 삐딱하게 내려다보는 자세가 진지하다. 열심히
보다가 광현이는 화면을 한 번씩 건드려본다. 광현이 손을 잡고 재생하는 방법을 가르쳐줬다. 온전히 집중한다. 깔끔하게 잘 찍혔다. 도망가고 싶고, 울고 싶던 내 마음은 짐작도 못할 정도로.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 너희들이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 특히 이광현. 카메라 앞에서 그렇게 의젓하다니. 대만족이다. 이광현!
졸업식 전날, 교실에서 윤정, 광현, 아영과 마지막 인사를 했다. “졸업식이 끝나면 이제 여기 안 오고
방학 때처럼 쉴 거야. 그리고 3월이 되면 PY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고등학교 선생님이랑 공부하는 거야. 이제 선생님이랑은 내일 졸업식 때 보고 안 봐. 우리가 같이 하는
수업은 끝났어. 그동안 공부 열심히 해서 너희들은 이제 고등학생이야.”
천천히 설명하는데 자꾸 눈물이 났다.
윤정이는 눈이 동그래져서 우는 나를 본다. 광현이는 듣는지 다른 생각을 하는지 가만 앉아
있고, 아영이도 조용히 있다. 내가 분위기를 바꾸려고 억지로
씨익 웃었다. 내가 웃자 그제야 윤정이가 안심한 듯 따라 웃는다. 마음이
찡하고 아리다.
지난 1년간 나는 무엇을 했을까. 처음 아이들을
봤을 때 미칠 것 같았다. 반향 없는 쇼를 하는 거 같아서 얼마나 막막하던지. 내가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 우리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과
너무 다르다는 생각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기도 했다. 서로를 잘 모른 채 1년이 지났고, 너희는 졸업하고 나는 다른 학교로 간다. 내일을 마지막으로 각자의 삶이 흘러가겠지. 이렇게 닿았다가 떨어지는
너희들과 나. 이런 인연은 무엇일까. 그 답을 몰라 안타깝고
마음이 쓰라려 나는 이 글을 쓴다. 훗날이라도 그 답을 알 수 있을까 싶어서. 우리가 함께한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서.
졸업식과 분홍 꽃다발
졸업식 날이다. 광현 엄마가 처음으로 학교에 오기로 했는데, 9시가 가까워도 오지 않는다. 휴대전화도 없고 어눌한 광현 엄마라
걱정이 되어 마중을 나갔다. 9시쯤 되니 버스가 도착하고 광현이 모자가 내린다. 나를 보고 반가워한다.
강당에 전교생과 선생님들이 모이고 졸업식이 시작됐다. 아영이는 엄마, 아빠와 같이 왔다. 분홍색 꽃다발을 들고 휠체어 앉은 아영이는 다행히
기분이 좋다. 고맙게도 아영이는 졸업식 내내 울지 않았다. 낯선
교장선생님이 가까이 와도 울지 않고, 전교생이 노래를 불러도 울지 않았다. 낯선 환경을 싫어해 체험학습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아영이다. 시설에서도
봉사자나 낯선 사람이 오면 싫어서 우는 아이인데, 오늘은 졸업식이란 걸 아는 걸까. 우연히 컨디션이 좋은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2시간 동안 의젓하게 넓고 사람 많은 강당에 있는 아영이를 보니 대견하기 짝이 없다. 아영이 엄마아빠도 좋아서 사진 찍기 바쁘다. 나는 혹시라도 아영이가
울까봐 옆에 앉아 손과 팔, 다리를 계속 어루만졌다.
그러다가 광현이 이따금 소리를 지르면 나는 광현이의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대거나 입을 살짝 막았다.
그러면 광현이는 “으흐흐” 기분 좋게 웃었다. 광현이도 졸업식인 줄 알고 나를 봐주는 거 같다. 웃는 광현이를
보니 내 입도 쫙 벌어진다.
윤정이는 언제나처럼 즐거운데 이상하게 꽃을 싫어한다. 꽃다발을 주자 휠체어에서 밀어내버린다. 꽃에 대한 나쁜 기억이 있나. 사진 찍을 때 딱 한 번만 들자고 부탁했더니 진짜로 사진을 딱 한 번 찍고는 다시 밀어내버렸다. 윤정이가 꽃을 싫어하는 걸 처음 알았다. 윤정의 숨은 트라우마 하나를
발견한 졸업식이기도 하다.
졸업식 날 내가 펑펑 울 것이라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아이들이 너무 잘해줘서 놀라고 기뻤다. 아영 엄마가 “고등학교에 가서도 쌤처럼 아이들을 사랑해주는 선생님을
만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영 아빠도 “고생하셨다”며 고마워한다. “분홍
꽃다발은 아영이 것이 아니라 선생님 것”이라며 아영 엄마가 내게 꽃을 건넸다. 그제야 눈물이 터진다.
어눌한 광현 엄마는 매끄러운 인사는 못 해도 조심조심 나를 대한다. “이제 가도 되지요?” 묻기에 “카메라 없으시면 제가 찍어드릴게요” 하고 광현이와 엄마를 찍었다. 사진을 전해줄 순 없어도 내 카메라
속에 광현이를 담고 싶었다. “광현아, 잘 가, 고등학교에서 잘 하고! 어머니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마지막 인사를 하고 광현을 보내는데 가슴이 벅차면서 아리다. 도대체
언제쯤 나는 이런 감정에 익숙해질까.
부모가 없는 윤정이는 복지사가 대신 와서 내가 대단하다며 칭찬해줬다. 광현이 소리 지르지, 아영이는 울지. “근데 쌤 참 대단해요. 아무나 못해.” 나는 윤정이와 마지막 셀카를 찍었다. 꽃다발 없이, 활짝 웃으며.
학교 송별회에서는 눈물이 제대로 터져 앞이 안보일 정도였다. 라온의 집에서의 1년과 목련반에서 보낸 1년, 그리고
유철이의 얼굴이 스쳐갔다. 교감선생님이 내게 술을 따라줬다. 유철이
때문에 원망스럽던 마음, 정든 마음이 한데 뒤섞여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우리를 살게 하는 모습
동물학 박사 탬플 그랜딘은 자폐성 장애인이다. 그녀는 좋은 과학 선생을 만나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웠다. 이 세상엔 다양한 사고방식이 있다. 언어적
사고, 그림으로 하는 사고, 전체를 보는 눈과 세부적인 것을
보는 눈. 사람마다 사고하는 방식과 뇌가 활성화하는 부분이 다르다 했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적절한 자극을 받지 못해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고 방치된 것을 볼 때마다 분통이 터진다.
사람들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각과 갖가지 이해 방식을 수용해야
하는 이유는, 그 자체가 우리 삶에 필요하다는 데 있다. 그
자체가 우리의 생긴 모습이고, 우리를 살게 하는 모습이라고.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에 꾼 꿈 하나가 떠오른다. 시커멓고 커다란, 살아 있는 학교가 있었다. 그 형체가 너무 음침해서 사람들은 싫고
무섭다며 피해 다녔다. 그런데 그 커다란 학교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눌하고 느린 말투로 “수업 좀 해주면 안 돼?” 이 한마디에 나는 그 학교가 아주 좋은 생명체라고 느꼈다. 그래서
도망 다니기에 바쁜 사람들에게 생긴 건 이래도 진짜 착하고 따뜻한 학교라고, 무서워하지 말라고 설득했다. 웃으며 설득하다가 잠을 깼는데, 깨어난 후에도 나는 웃고 있었다.
당선소감
2013년 10월 24일 제49회 신동아 논픽션 시상식에서 우수작 수상자 강지현 씨(오른쪽)가 우수작 수상자 김명준 씨(왼쪽), 동아일보 최맹호 부사장(가운데)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아이들과 나눈 기쁨과 애잔함, 모두 담진 못했다”
나는 내 또래의 젊은이들이 무슨 생각으로 어떤 일을 하며 이 사회를 살아내는지 늘 궁금했다. 이 글은 그런 의미에서 특수교사로서의 나의 첫 보고서이기도 하다.
왜 특수교사가 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성공하려면 성공한 자 옆으로, 부자가 되려면 부자 옆으로 가라고 하는데, 왜 그런 험한 일을 택했냐는 질문은 차라리 솔직한 편이다. 교사이신 부모님이 특수교사를 권했고, 나는 따랐다. 막상 특수교사로 임용된 후 내 생활을 알게 되자 부모님은 무척 걱정하고 후회하셨다.
당선 소식을 듣고 아주 기뻤다. ‘달리의 아이들’은 부분적인 이야기다. 지면의 제한이 있고 필력이 모자라 전체를 쓰진 못했다. 유철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목련반과 라온의 집 아이들이 주는 슬프고 기쁘고 애잔한 수많은 감정 등. 유철이를 재택학급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제도에 대한 분노와 원망, 갈등은 최대한 압축했다. 관련 기관을 고발하려고 쓴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능한 내가 미울 때마다 주변 사람들을 많이 괴롭혔다. 가족과 선배, 친구들과 동료 선생님들은 때로 돈키호테로 변신하는 나를 받아주고 격려해줬다. 특히 포천의 선생님들은 지금도 내게 여전히 둥지처럼 따뜻함을 주신다.
‘달리의 아이들’을 탈고했지만 나의 의문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심사위원들이 답을 찾아 헤매는 나의 심정을 알아주신 것 같다. 내가 언제까지 특수교사일지 나는 모른다. 내가 만난 아이들처럼 나도 ‘달리의 아이’이기 때문이다. 수상으로 이끌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강지현
● 1986년 부산 출생
● 부산대 졸업
● 現 성남여중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