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국은 교섭을 할 수 없는 어리석은 국가”라고 말했다고 ‘주간문춘(週刊文春)’이 보도해 가뜩이나 경색된 한일 관계가 더 얼어붙었다.
- 일본 정부는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주간문춘’의 보도는 사실일까.
- 이 보도를 어떻게 봐야 할까.
아베 총리의 발언을 전한 ‘주간문춘’ 기사.
주간문춘은 1959년 4월 첫 호를 냈으며 매주 목요일 발간돼 권당 380엔(한화 약 4200원)에 판매된다. 일본 측 자료에 따르면 주간문춘의 매주 발행부수는 70만1200부로 일본 주간지 중 1위다. 성향으로 보면 ‘SAPIO’ ‘주간현대(週刊現代·슈칸겐다이)’와 함께 반한(反韓) 논조의 극우지로 분류된다. 다만 발행부수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다른 극우지와는 달리 기사의 신뢰성이 높은 편이다.
주간문춘은 최근 3차례의 보도로 한국을 자극했다. 결정적인 것은 기사에 아베 총리의 발언을 인용한 것이다. 지난 11월 14일 발매된 주간문춘은 ‘한국의 급소를 찌른다(韓國の「急所」を突く!)’라는 기사에서 아베 총리 주변의 말을 빌려 아베 총리가 “중국은 어리석은 국가이지만 아직 이성적인 외교게임이 가능하다. 한국은 교섭을 할 수 없는 어리석은 국가”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아베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반일(反日)을 불태우게 하는 것은 주변의 간신이라며 그 필두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라고 비난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아베 총리의 측근이 비공식적으로 한국에 대한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면서 일본 기업들을 한국에서 일제히 철수시키는 시나리오 등 새로운 차원의 정한(征韓·한국 정복) 전략을 제시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국 내 여론이 들끓자 일본 정부의 대변인 격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아베 총리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그러자 주간문춘은 11월 20일 후속 기사에서 “관방장관이 본지 보도를 부정했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본지는 아베 총리와 대단히 가까운 복수의 인물들에게서 증언을 취득했다. 공개석상에서는 결코 말하지 않았던 아베 총리의 본심인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의 해명이 거짓이라고 반박하면서 기사에 보도된 아베 총리 발언이 사실이라고 거듭 강조한 것이다.
발언 있었다고 인정한 셈
주간문춘 보도로 아베 총리는 겉다르고 속다른 면모를 드러낸 셈이 됐다.
몇 가지 정황 증거를 볼 때 아베 총리가 주간문춘에 보도된 내용의 발언을 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주목할 만한 정황 증거는 기사에 대한 일본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다. 일본 정부는 오보라고 주장하면서도 주간문춘에 기사를 바로잡아달라고 요청하지 않고 있고 법적 대응도 일절 하지 않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은 허위보도에 대해선 해당 언론인 처벌, 오보 시정, 손해배상, 발행금지 등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미디어에 의한 인권침해를 특별구제 대상으로 두는 ‘인권옹호법’을 따로 두고 있다.
사안이 중대하고 오보 피해를 구제할 각종 법적 장치가 있는데도 일본 정부가 보도에 전혀 대응하지 않는 점으로 볼 때 기사 내용이 사실일 개연성이 높다. 일본에선 언론사 기사를 둘러싸고 소송이 벌어지는 경우 법원이 기사의 진위를 우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주간문춘은 2013년 10월 의류제조업체 유니클로를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했다가 유니클로로부터 2억2000만 엔(약 24억2000만 원)의 손해배상 및 발행금지 청구소송을 당했다. 이에 대해 도쿄지방법원은 “기사 내용의 신빙성이 높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다. 언론 기사와 관련해 일본법은 기사 내용이 사실로 증명되고 공공의 이해에 관련된 것이면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본다(일본 형법 제230조의 2항).
요컨대 아베 총리의 ‘한국은 어리석은 국가’ 발언이 사법기관에서 사실로 판명날 수 있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함부로 소송을 못 거는 것으로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
정언(政言) 유착
아베 정권과 주간문춘은 ‘정언(政言) 유착관계’로 봐도 무방하다. 양측 모두 극우 성향으로, 그 이념적 정책적 지향성이 거의 일치해 주간문춘은 아베 정권에 우호적인 기사를 자주 게재해왔다. 아베 정권은 자신의 입장을 대변해줄 공신력 있는 ‘스피커’로 주간문춘 같은 극우 언론사들을 활용해왔다. 반대로 이들 언론사는 아베 정권에서 고급 정보를 얻어 뉴스 가치를 높여왔다. 양측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관계라고 할 수 있다.
아베 총리의 발언을 전한 주간문춘 기사에는 기사 작성자의 이름이 나와 있지 않다. 언론사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취재원을 극단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기자 이름을 아예 빼버리는 일이 있긴 하다. 이번도 이러한 경우로 볼 수 있다.
다만, 언론과 취재원으로서 주간문춘과 아베 정권이 예전부터 가까운 사이라는 점은 확인된다. 아베 정권에 대한 주간문춘의 이전 기사들을 보면 ‘주간문춘 측이 아베 총리와 대단히 가까운 복수의 인물에게 접근이 가능하다’는 주간문춘 측 주장이 어느 정도 입증되는 것이다. 주간지에 특정한 내용을 흘린 뒤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건 일본 정치인들이 자주 사용해온 언론 플레이 기법이기도 하다.
이런 정황에 따르면 ‘아베 총리 측이 공개석상에서는 결코 말하지 않았던 아베 총리의 본심을 주간문춘에 흘려줬다’는 주간문춘의 주장은 개연성이 충분하다. 결론적으로, 주간문춘이 보도한 아베 총리의 발언은 사실로 규정할 수 있으며, 이는 일본의 극우 언론이 아베 총리의 ‘다중인격’을 폭로해준 꼴이 된다.
아베 총리는 2013년 11월 14일 총리관저에서 한국 측 정치·경제계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과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관계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차에 걸쳐 박근혜 대통령과의 한일 정상회담을 제안하면서 여러 유화적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뒤로는 총리 본인이 직접 “한국은 교섭도 할 수 없는 어리석은 국가” “박근혜 대통령이 반일을 불태우는 건 윤병세 외교장관 같은 간신 때문”이라는 막말을 퍼부었고, 그 측근이 “정한 전략” 같은 몰상식한 발언을 통해 침략 근성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아베 총리가 이렇게 겉과 속이 너무나 다른 언행을 하는 한 일본 정부에 대한 신뢰는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베 정권이 내부적으로 한국을 업신여기는 것은 최근의 미일 관계와 관련이 깊다. 미국은 중국의 대두를 점점 버거워하고 있다. 또한 재정도 충분치 않다. 동아시아·태평양에서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의 경제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한다. 이런 사정이 표면화한 게 일본의 집단자위권에 대한 미국의 승인이다. 일본은 미국의 대리인 구실을 지렛대 삼아 한국에 은근히 헤게모니를 과시하려는 것으로 비친다.
다른 한편으로, 아베 정권은 한국의 커진 국력을 민감하게 의식하는 것 같다. 한국 경제는 일본 경제를 급속히 추격하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 폭에서 사상 처음으로 한국이 일본을 앞질렀다. 국제신용등급, 구매력 기준 근로자 연봉에서도 일부 기관의 조사이긴 하지만 한국이 일본을 추월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전자·반도체 등 일부 분야에선 ‘제조업 대국’ 일본의 아성이 한국에 의해 이미 무너졌다. 아베 정권이 밀실에서 한국에 원색적으로 악담을 퍼붓는 것은 이런 상황 인식에 따른 신경질적인 반응일 수 있다.
니체가 주간문춘 기사 본다면…
주간문춘은 지난 12월 5일엔 ‘금주의 바보’라는 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금주의 바보로 선정했다. 이 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 문제와 군 위안부 문제로 소동을 피우고 있다” “박 대통령은 악담을 퍼뜨리는 아줌마 외교를 하고 있다”며 박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또 “박 대통령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은 경험이 적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려면 사랑이 필요하다. 성인 남자친구가 지금 필요한 시점”이라고 성희롱에 가까운 막말을 늘어놓았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일일이 대응할 가치가 없다. 막말과 막글은 부끄러운 일이고 스스로 평생 후회하면서 살아갈 불명예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주간문춘은 이처럼 아베 발언을 전한 첫 보도 외엔 별다른 팩트가 없음에도 시리즈 형식으로 박 대통령을 비난해왔다. 이는 아베 발언의 귀책을 발언 당사자인 아베 총리가 아닌 박 대통령에게 돌리려는 고육책으로 풀이된다. 아베 발언 기사를 내보낸 뒤 취재원인 아베 총리 측에 피해가 덜 가도록 나름대로 애를 쓰고 있는 셈이다.
아베 정권은 한·중 정상회담에 복잡한 심경을 내보이고 있다.
주간문춘은 11월 20일 기사에서 아베의 발언이 사실이라고 거듭 강조하면서도 이 발언에 대한 한국 측 반응을 전하면서 “한국 측에 자성을 바라는 건 무리한 것인가”라고 비꼬았다. 이것 역시 아베의 발언 자체보다는 그 발언을 둘러싼 한국 측 태도로 초점을 돌리려는 시도로 비친다.
‘금주의 바보’는 주간문춘이 2013년 4월부터 고정란으로 싣고 있는 연재기사로, 집필 담당자는 데키나 오사무라는 ‘오타쿠(특정한 어떤 것에 몰두하는 사람) 스타일’의 작가다. 그는 1975년생으로, 와세다대에서 서양문학을 전공했으며 독일 철학자 니체와 관련된 책을 몇 권 낸 뒤로 스스로를 ‘철학자’라고 일컫는다. 니체가 만약 ‘박 대통령의 성인 남자친구’ 같은 기사를 본다면, 이런 기사를 쓰는 사람을 과연 자신의 후학으로 인정해줄지 의문이다.
한국 언론은 주간문춘을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려놓는 게 좋다. 최근 주간문춘이 주목받은 건 아베 총리의 발언을 기사에 인용해서였다. 그러나 이후에 나온 ‘금주의 바보’ 기사 같은 것은 주간문춘 자신의 의견 개진에 불과하다. 주간문춘 같은 일본 극우 언론의 비이성적 혐한(嫌韓) 논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므로 새로울 게 없다. 우리가 무시하면 그만이다. 일본 사회의 공론 장에서도 이런 기사를 걸러낼 자정 기능은 있을 것이다.
표리부동 부끄러워해야
아베 정권은 2013년 출범 초 60%가 넘는 높은 지지를 받았다. 이후 아베노믹스 효과가 한풀 꺾이고 말았다. 여기에다 언론자유 침해 소지가 큰 비밀보호법을 야당과 언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처리하면서 여론 지지율은 40%대로 추락했다. 이로 인해 아베 정권은 ‘과거 퇴행적 정책을 펴도 다 용인된다’는 기존의 믿음을 수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아베 정권의 과거 퇴행적 정책이란 과거사를 부정하는 것, 쇼와시대처럼 인접국이야 어떻게 되든 군국주의 맹주로 되돌아가려 하는 것 등이다. 이러한 정책의 근저에는 아베 정권을 떠받드는 일본 극우 진영의 ‘일본 천황이 일본을 지배한다’는 팔굉일우(八紘一宇) 사상, ‘일본 민족만 위하면 된다’는 신도(神道) 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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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정권은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균형감을 잃고 있다. 인류의 보편적 사고에서 멀어지는 행동을 계속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신사처럼 말하지만 언행일치가 안 되고 신뢰를 주지 못한다. 아베 정권은 이번 주간문춘 보도로 표리부동이 드러난 걸 부끄러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