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 승부 확인하는 것은 예비전력
- ‘진돗개’발령 시 예비군 동원은 위헌?
- 총동원보다는 부분동원이 중요
- 직업예비군 제도 도입해야
- 한국군 완편율과 ‘했다 치고 작전’
- 거대한 고물 집합체 ‘향방 물자’
방독면을 쓰고 모의 시가지 전투를 하는 동원예비군. 이들이 입소하지 않으면 육군은 완편작전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도 제2의 6·25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제2의 6·25전쟁은 핵전쟁으로 비화할 수도 있기에 우리는 총력으로 맞서야 한다. 전면전에 대비한 ‘작전계획 5027’은 허점이 없는지 재검토하고, 미국·일본과의 동맹과 협조 관계도 재점검해야 한다. 국가 동원 태세도 철저히 살펴봐야 한다. 전면전에서 승부를 확인하는 것은 최초 전투에 투입된 현역이 아니라 동원된 예비전력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승부를 확인하는 동원 전력
정원영 국방연구원 박사의 논문 ‘국방여건 변화에 따른 예비전력 정예화 방안’에 따르면, 전쟁(전면전)이 일어날 경우 현역인 상비군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워 상당수의 예비군을 동원해야 한다. 상비군(현역)이 전쟁 대응 전력의 52%밖에 되지 않으므로 나머지48%는 예비군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여타 예비군도 동원해야 한다. 한국은 약 60만 명의 현역과 320만 명의 예비군을 확보하고 있다. 전시에는 이 320여만 명을 순차적으로 총동원해야 하는 것이다(그림 참조).
전시에는 공익요원이나 제2국민역 등을 소집하고, 입대 연령이 된 모든 장정도 징집한다. 보통 부대는 전체 구성원의 30% 정도가 부상이나 전사를 당해 작전에 참가하지 못하면 와해된 것으로 보고 임무를 다른 부대에 넘기고 후방으로 빠져 나와 재편성된다. 예비군과 징집된 청년들은 새로 창설한 부대에 들어가거나, 전투 중 상당한 피해를 당해 작전할 수 없게 된 부대를 보충해준다. 그래서 전면전의 승부를 확인하는 것은 예비전력이란 말이 나왔다.
북한은 천안함·연평도 사건 같은 국지도발을 할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도발하면 반드시 보복하겠다고 거듭 천명했고 한미 연합군은 북한의 국지도발에 대응한 작전계획을 완성해놓았다. 따라서 북한이 도발하면 한반도는 순간적으로 불꽃 튀는 제한전·국지전에 돌입하고 양측 모두 전면전을 의식해 동원령을 내리는 단계로 갈지도 모른다.
이때 한국이 놀라운 응징력을 발휘해 승리를 거듭한다면, 이번에 ‘피도 눈물도 법도 없는’ 장성택 처형을 지켜본 김정은 측근들이 ‘한국의 힘’에 놀라 김정은을 배신할 수도 있다. 그로 인해 ‘내란’을 의미하는 북한 급변사태가 일어난다면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내전으로 고통받는 북한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다국적군 파병을 승인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북한과 마주한 한국이 가장 많은 병력을 파병해야 한다. 그런데 위기에 빠진 김정은 세력이 중국에 파병을 요청한다면 사태는 매우 복잡해진다. 이런 상황까지 고려한다면 한국은 중국과의 일전도 불사한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북한 내부와 서해 양쪽에 전운이 감도는 상황을 상정하고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이 때문에 북한 급변사태도 동원령을 요구한다고 봐야 한다.
부분동원 시스템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동원체계는 완벽한가. 북한은 우리보다 두 배 이상 많은 770여만 명의 노농적위군과 90여만 명의 교도대를 갖고 있다. 따라서 산술적으로 본다면 우리 예비군은 노농적위군보다 두 배 이상 강한 전력을 발휘해야 한다. 과연 우리 예비군은 그런 전력을 갖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의 동원체계는 전혀 완벽하지 않다. 주먹구구에 가까울 정도로 허점투성이다.
우선 정교한 부분동원 체계가 없다. 6·25전쟁의 기억 때문에 전면전을 상정해 나름대로 총동원 체계는 갖춰놓았으나 부분동원 체계는 갖추지 못했다. ‘전쟁이 나면 총동원을 하면 되지, 왜 부분동원을 걱정하느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현실을 알면 부분동원이 총동원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앞에서 전쟁 초기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전력의 48%를 예비군으로 채워야 한다고 했는데, 이 48%의 예비군을 동원하는 것이 바로 부분동원이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여타 부분동원을 해 총동원이 완성된다. 전쟁은 화재와 같아서 초기 진압이 매우 중요하다. 소수를 동원하는 초기 진압에 실패하면 총동원을 해도 불을 끄는 것이 어려워진다.
작전을 위해 출동하는 부대는 완전편제, 즉 ‘완편(完編)’을 갖춰야 한다. 육군 부대에 완편이란 3각 편제 완성을 뜻한다. 육군 작전은 대개 좌우에 있는 동료가 적을 견제할 때 가운데 있는 내가 치고 들어가 적을 제압하는 형태로 펼쳐진다. 그래서 1개 조는 3명으로 구성하고, 1개 분대는 3개 조에 분대장 한 명을 더해 10명으로 짠다. 그런 식으로 3개 소대→3개 중대→3대 대대→3개 연대로 이어져 독립작전을 하는 사단을 만든다.
그런데 평시에 육군 부대는 위험지역에 들어가 작전하지 않고 방어지에 주둔하므로 완편을 갖추지 않는다. 3각 편제를 갖추지 못하는 감소편제, 즉 ‘감편(減編)’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3각 편제로 해야 하는 작전 연습은 부대를 돌려가며 한다.
대대가 2각으로 편제돼 있으면 다른 대대에서 1개 중대를 빌려와 완편을 갖춰서 연습한다. 이는 작전 능력만 갖고 병력은 최소로 보유하겠다는 의도인데, 감편은 최소 비용으로 국방을 하려는 고육지책이다. 그러다 위기가 발생하면 예비군을 입소시켜 완편을 갖춘다. 따라서 완편은 부분동원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평시 우리 육군 부대의 완편율은 어느 정도일까. 정 박사 논문에 따르면 한국 방어의 중추인 상비사단(GOP 사단)과 특공여단, 기계화사단, 기갑여단의 완편율은 85% 정도다.
공병여단이나 항공여단, 특전여단(특전사) 같은 특수 목적 부대나, 군수사 같은 지원부대의 완편율은 70%와 50%로 떨어진다. 향토사단과 동원사단의 완편율은 30%와 15%로 추락한다(표 참조).
상비사단 등은 유사시 바로 작전을 실시해야 하는데, 완편율이 85%라 완벽한 사단 작전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어느 부대보다도 먼저 완편을 갖춰야 한다. 부분동원부터 해야 하는 것이다. 공병여단과 항공여단 특전여단은 전선 돌파를 주임무로 한다. 그중 가장 먼저 침투하는 것이 특전여단인데 완편율이 70%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들도 상비사단 이상으로 빨리 완편을 갖춰야 한다. 사정이 이런 까닭에 부분동원은 절실한 문제가 된다.
총동원은 향토사단과 동원사단까지 완편해 투입하는 것인데, 생업에 종사하던 320여만 명을 모두 동원하는 것은 쉽지 않다. 향토사단은 한발 늦게 작전에 투입되는 진짜 예비군 부대이므로 그 앞에 있는 부대를 완편하는 부분동원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부분동원을 할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전면전에만 대비해온 것이 첫째 이유다.
‘했다 치고 작전’의 한심한 결과
부분동원은 북한 급변사태 때도 꼭 필요하다. 북한에 급변사태가 벌어져 한국군이 안정화작전을 위해 출동할 때는 위험지역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이들 부대는 반드시 완편을 갖춰야 한다. 즉 15%의 예비군을 충원해야 하는 것이다.
현행법은 전역 4년차 이하 예비군 가운데 일부를 이렇게 출동하는 부대의 입소자로 지정해놓았다. 이들이 입소하는 부대는 생소한 부대가 아니라 현역 생활을 한 부대다. 따라서 주변 상황을 잘 알고 있기에 바로 적응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이들이 익숙하지 않은 북한지역에서 작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익숙하지 않은 지역에서 작전하는 것은 현역도 마찬가지이므로 이들 부대는 가상 작전 연습을 반복해야 한다. 즉, 부대를 완편해 작전 훈련을 해봐야 하는데, 이것을 하지 않고 있다. 앞에서 설명했듯 현역만으로 소규모 3각 편제를 만들어 훈련하고 있을 뿐이다. 완편을 위한 동원훈련은 15%의 동원예비군을 지정한 부대에 입소시켜 하루 이틀 묵게 하는 데서 끝내고 있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예비군을 받아 완편된 작전부대가 주둔자가 아닌 위험지역에 들어간다면 식량 등을 보급받아야 한다. 보급은 군수사 예하부대가 오가며 해야 한다. 군수사 예하부대도 위험지역에 들어가야 하므로 이들도 상비부대 못지않은 완편을 갖춰야 한다. 군수사 예하부대의 완편율은 50%에 불과하다(표 참조). 절반이 예비군인 부대가, 그것도 위험지역 작전을 연습해보지 않은 부대가 유사시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작전부대와 지원부대를 완편해 작전을 연습해본 적이 없다는 것, 두 완편부대를 연결하는 작전을 연습해본 적이 없다는 것은 한국군의 ‘치명적 맹(盲)’이다. 잘못되면 유사시 이들은 군대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서 있는 ‘군중’이 될 수 있다. 군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상비부대 완편을 위한 부분동원 관련법이 없어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우리 군은 ‘했다 치고 작전’이라 불리는 또 다른 허점도 안고 있다. 이 말은 앞의 작전은 한 것으로 치고 만든 다음 작전이 꼬여버리는 데 빗댄 말이다. 1개 연대는 3000명 정도로 구성된다. 장정들로 편성돼 있어 이 부대는 2시간에 8km를 충분히 행군할 수 있다. 그래서 2시간 후 8km 떨어진 곳에서 모여 다음 작전을 한다는 계획을 짠다. 8km 행군은 해보지 않고 다음 작전만 열심히 연습했는데, 실전에서는 작전이 파행을 겪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북한군 역할을 맡은 대항군과 육군 대대가 가상전투를 하는 육군과학화훈련장(KCTC)에서 수없이 발견된다. 적을 공격하려면 아군을 분산해서 은밀히 침투시켜야 한다. 그래서 2시간 후 8km 지점에서 만나기로 하고, 소대나 중대별로 나눠 출발하게 한다.
작전지역에는 길이 많지 않고 적의 눈에 안 띄게 침투해야 하므로 순차적으로 출동시킬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각 부대의 출발시간이 달라져, 먼저 간 부대는 일찍 도착해도 마지막 출발 부대는 전력질주해도 제 시간에 도착하기 어렵다. 뛰면 소리가 나서 대항군 정찰부대에 포착된다.
행군편성과 작전편성은 완전히 다르다. 집결지에 모인 뒤에는 준비한 작전에 맡게끔 다시 부대를 편성(작전편성)하는데 여기에 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는 사이 ‘H-아워’가 되면 이 부대를 지원하기로 한 후방의 포병이 지원사격에 들어간다. 공격 개시 시간이 돼 아군 포병의 엄호사격이 시작됐는데도 작전편성을 끝내지 못하면 부대는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 그때 ‘냄새’를 맡은 대항군이 몰려와 포위 공격을 한다.
이처럼 ‘했다 치고 작전’ 때문에 KCTC에 들어온 대대들은 하나같이 ‘북한군’에 전멸되곤 한다. 현역이 하는 작전이 이 모양이라면 예비군을 입소시켜 작전했을 때 어떨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사복 입은 戰士’
이 같은 상황에 대비한 것이 미군이다. 을지프리덤가디언이나 독수리연습 등을 할 때 미군은 예비군을 입소시켜 완편한 부대를 한국으로 보낸다. 그리고 작전부대와 지원부대를 연결하는 작전을 연습시킨다. 그때 각 부대를 순차적으로 이동시키는데 걸리는 시간과 그 부대들을 연결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도 계산해 작전계획에 반영한다. 그리고 계획에서 정해놓은 시간 내에 이동과 연결이 완료되도록 독려한다.
미군에서는 ‘했다 치고 작전’을 보기 어렵다. 생전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보고를 받으면 “해봤어?”라고 질문했다고 한다. 미군 작전의 핵심이 바로 ‘해봤어?’이다. 해보고 문제가 있으면 계획을 수정한다. 그래서 미군의 작전은 원활하게 돌아간다. 미국은 총동원은 마지막 예비수단으로 남겨두고, 부분동원으로 화재를 조기에 진압한다. 우리도 실제 경험을 중시하는 ‘해봤어?’정신으로 예비군을 부분동원해 완편한 후 작전을 연습해야 한다.
미국의 예비군이 생업을 병행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은 군으로부터 급료를 받고 진급을 하며, 예정된 기간을 근무하면 연금도 받는 ‘사복 입은 군인’(직업예비군)이다. 따라서 군인으로서 수행해야 할 자기 업무에 최선을 다한다. 소집령이 떨어지면 곧장 응소해 현역과 함께 위험지역에 들어간다.
미국은 이러한 예비군을 현역과 섞어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을 치렀다. 이스라엘도 예비군을 입소시켜 가자 지구 침공작전을 펼쳤다. 일본 자위대도 부분동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즉응예비자위관’ 제도를 도입했다.
‘해석개헌’이 필요하다
신속한 부분동원과 직결되는 것이 직업예비군제다. 한국은 신속한 부분동원이 절실한 나라인데도 직업예비군제를 외면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돈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과 국회는 차기 전투기(FX)나 이지스함 같은 첨단무기 도입에만 예산을 쓰게 하고 예비군 전력 현실화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군에서는 진급에서 밀린 장교들에게 동원 문제를 다루게 하니 ‘동원전력이 중요하다’는 말만 할 뿐 실질적인 정책 제안이 전혀 없다.
부분동원은 법적인 뒷받침이 없다는 중대한 허점도 안고 있다. ‘동원’은 대통령이 내리는 명령이라 ‘동원령’으로 불린다. 그런데도 법률과 같은 효력을 갖기 에 악용하면 대통령이 군을 동원해 독재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헌법에 동원령을 내릴 수 있는 경우를 엄격히 제한해놓고 있다.
우리 헌법은 76조 2항에서 동원령을 ‘국가의 안위에 관계되는 중대한 교전상태에 있어서 국가를 보위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가 불가능한 때에 한하여 법률의 효력을 가지는 명령을 (대통령은) 발할 수 있다’라고 규정했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이 ‘중대한 교전상태’이다. 헌법이 중대한 교전상태일 때만 대통령이 동원령을 내리도록 하고 있으니 ‘전면전이 아닌 상태에서의 중대한 교전상태는 무엇이냐’란 해석의 문제가 제기된다.
현실적으로 이 조항은 ‘2010년 11월의 연평도 포격전이 중대한 교전상태였는가’란 문제로 비화한다. 연평도 포격전은 제한전·국지전인데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현역 부대를 통한 응징은커녕 동원령도 내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중대한 교전이 아닌 것이 된다. 해상의 함정도 아닌 대한민국의 영토가 포격을 받아 민간인이 숨지고 해병대가 맞사격까지 했는데도…. 따라서‘어느 정도로 교전해야 중대한 교전인가?’란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현행 헌법대로라면 북한 급변사태가 일어나도 연평도 포격전보다 더 큰 교전(중대한 교전)이 없다면 예비군을 동원할 수 없으므로 완편부대를 만들지 못한다.우리는 제대로 안정화작전을 할 수 있는 부대를 편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궁즉통(窮則通)’의 묘수를 만들 수는 있다. 출동하지 않을 현역부대에서 15%를 차출해 출동할 부대로 보내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15%가 빠져나간 부대는 어떻게 채울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본래부터 감편돼 있던 그 부대도 예비군을 공급받지 못하므로 30%가 부족한 상태로 작전해야 한다. 그런 현역부대가 우리를 제대로 지켜줄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거론되는 것이 ‘개헌’이다. 중대한 교전을 전제로 한 총동원이란 표현을 바꾸고 부분동원 조항도 넣자는 것이다. 그리고 부분동원한 부대로 제한전은 물론이고 테러 같은 ‘작은 위협’에도 대처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동원예비군에게는 현역 시절 쓰던 K-2와 비슷한 M-16소총이 지급된다. 그러나 일반 예비군에게는 고물 카빈 소총이 지급된다.
하지만 개헌은 대통령 중임 등 정치 문제와 연결돼 확대 해석될 수 있으니 누구도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해석개헌’이다. 일본은 헌법 9조에 ‘전쟁을 포기하고 국가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라고 명시돼 있음에도, 세계 2위의 군사력을 갖춘 자위대를 만들어 해외 파병까지 하고 있다. 이는 ‘자위대는 군대가 아니다’ ‘자위대는 일본 방어만 하고 공격을 하지 않으니 교전할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헌법을 해석함으로써 가능해졌다.
그런 예에 따라 현행 헌법상 ‘중대한 교전’에 대한 해석을 바꿔보자는 주장이 일고 있다. 북한 급변사태와 국지전·대(對)테러전 때 상비부대 완편을 염려하는 사람들의 진지한 생각이다. 이들은 과거 한국이 예비군을 부분동원한 적이 있으니 ‘중대한 교전’의 정도는 ‘낮은 긴장’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이 일어났을 때 군은 강원도 지역 예비군을 동원했다. 그러나 동원령에 의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비군들은 실제 작전에 투입되지 않았다. 법적 근거가 없는 동원은 이런 현실을 낳는다. 작전하지 못하는 동원은 동원이 아니다.
해석개헌을 하고, 부분동원을 적시한 법령을 만들며, 직업예비군제를 도입해 손쉬운 부분동원을 착근시키는 것이 지금 할 일이다. 한국군 완편율이 52% 정도이니 급료를 받는 60만 정도의 직업예비군을 갖춰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동원과 예비군 운용에 관한 법률들을 통합해 ‘동원기본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320만 예비군을 정예화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앞으로의 국방개혁은 노무현 정부 식으로 현역부대를 줄일 것이 아니라 예비군을 줄이고 봉급받는 정예 예비군을 만드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부분동원도 상비부대를 위한 동원과 동원사단을 위한 동원으로 분리하고, 상비부대 완편에 참여하는 예비군은 급료를 받는 최정예 예비군, 동원사단 입소 예비군은 다음 예비군으로 나눠야 한다. 그리고 향토사단에 들어가는 일반 예비군은 축소한다.
예비군 면제받는 의원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예비군 현실의 정상화다. 현재 국내 대학의 총 입학 정원은 55만9000여 명이다. 그 가운데 남학생을 절반가량인 30만 명으로 가정하고 이들을 2년간 모으면 21개월 복무하는 한국군 병력에 가까운 60여만 명 병력이 된다. 이는 입대자 대부분이 대학 출신이라는 것을 뜻한다.
같은 셈법으로 따져보면 연간 20만~30만 명의 군인이 전역해 복학한다. 대학에서는 이들이 누적되므로 대학생 신분을 가진 예비군이 50여만 명에 달하고 있다. 복학생은 최근에 군 생활을 한 전역자다. 가장 중요한 동원예비군이 될 수 있는 자원인데 이들이 실은 동원예비군이 아니라는 비밀을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대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복학생에 대해서는 동원훈련을 면제해준 탓이다. 이에 대해 모 육군 장성은 “복학한 우리 아들을 보니 우리 군이 보호해주는 것은 학습권이 아니라 놀이권이더라”라고 농담을 했다. 이런 식으로 동원을 면제받는 알짜 예비군이 50여만 명이라는 얘기다. 복학생들은 방학 때 동원훈련을 받게 할 수도 있는데….
현행 법령은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의원, 자치단체장, 차관급 이상의 국가공무원, 경찰관, 교도관, 소방관, 기관사, 군무원, 경호관, 집배원 등에 대해서는 예비군 훈련을 완전 면제해주고 있다. 판사, 검사, 대학교수, 교사 등은 복학생처럼 일부 훈련(동원훈련)을 면제해준다. 특혜를 받는 사람이 너무 많다보니 ‘그렇고 그런 사람들’만 훈련을 받는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다.
이는 국민 개병제 정신은 물론이고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에도 어긋난다. 면제 대상자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그러나 입법권을 쥔 국회의원들은 스스로가 면제 대상자였음을 밝히고 싶지 않은 데다 표가 떨어지는 것을 의식하는지 관련 법령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것’처럼 필요성은 인정해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중대한 교전이 없는데도 예비군을 동원하는 것은 위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군은 그런 교전이 없어도 대(對)간첩작전인 ‘진돗개’ 등이 발령되면 예비군을 동원한다. 이는 향토예비군법과 통합방위법을 근거로 한 것이다. 아직 ‘두 법에 의해 예비군을 동원한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 소원을 낸 사람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헌법 소원이 없으리라고 볼 수는 없다. ‘해석개헌’ 같은 준비를 해야 하는 이유다.
‘진돗개 하나’가 발령되면 두 법에 따라 예비군을 동원하는데,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이 일반 예비군에 대한 급식 제공이다. 동원예비군은 지정된 부대로 입소하니 그들에 대한 급식은 군이 책임진다. 국방부는 전쟁을 담당하기에 전시(戰時) 예산을 제대로 편성하고 있어 계획에 없던 예비군이 입소해도 충분히 먹이고 재워줄 수 있다.
도시락 싸 들고 작전?
그러나 일반 예비군은 다르다. 일반 예비군은 1년에 한 번 정도 하루 군부대에 들어가 훈련을 받는데 그때는 군이 급식을 제공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식사가 필요 없는 소집훈련만 받는다. 따라서 진돗개 하나가 발령돼 이들이 출동하면 당장 급식 제공이 문제가 된다.
하루 이틀짜리 동원이라면 일반 예비군들은 도시락을 싸 들고 출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처럼 작전이 한 달 넘게 길어지면 생업에 지장이 있어 잘 나오지 않게 된다. 자원봉사를 나가도 먹여주는 것은 기본이다. 급식도 주지 않는데 누가 죽을지도 모를 동원에 응하겠는가.
형식적인 예비군 훈련. 시가지 전투 훈련장에 모 회사 제품을 홍보하는 광고판을 붙여놓았다.
이러한 경우 그 지역의 통합방위협의회가 나서야 한다. 이 협의회는 통합방위법에 근거한 것으로, 자치단체장을 의장으로 하고 그 지역의 경찰과 소방 책임자 등을 당연직 위원으로 한다. 그리고 그 지역 유력인사를 위원으로 구성한다. 협의회는 자원봉사단체처럼 출동한 예비군을 구휼해야 하는데 이는 강제조항이 아니다.
통합방위법은 그 지역 예비군 동대를 위한 행정 비용 지원을 명시하고 있다. 이 비용을 ‘육성지원금’이라고 하는데, 이 지원금을 통합방위협의회 운영비로 전용하는 경우가 많다. 즉 통합방위협의회 위원들의 거마비와 행사비로 지출하는 것이다. 예비군을 위한 협의회가 단체장이 지역 유지를 합법적으로 모셔 대접하는 모임으로 변질돼버린 것이다.
예비군의 무기 문제는 더 심각하다. 동원예비군은 부대로 입소하기 때문에 현역과 같은 무기를 지급받는다. 그러나 향토방위(향방)작전에 나선 일반 예비군은 40년 이상 군생활을 한 참모총장도 쏴보지 못한 카빈 소총을 지급받는다. 6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총이라 제대로 발사되는지도 의문이다.
왜 일반 예비군에게는 고물 무기가 지급되는가. 관련 법령에 작전수명을 넘긴 장비는 일반 예비군이 사용할 ‘향방 물자’로 전환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이 ‘작전수명을 넘긴’이라는 대목이다. 작전수명은 무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30년 안팎이다. 그런데 새 무기가 공급되지 않으면 더 오래 쓰는 경우도 허다하다.
휴대전화보다 못한 무전기
향방 물자는 현역부대에서도 고물 취급을 받던 것들이다. 고물이라는 것은 고장이 났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오래된 무기일수록 부속품을 구하기 어려워 고장이 나면 수리하기 어렵다. 따라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사하지도 않고 향방 물자로 넘어온다. 이러니 서류상 향방 물자는 ‘그득’해도 실제 작전을 하면 들고 나갈 것이 없게 된다.
작전을 하려면 반드시 통신을 해야 한다. 동원된 일반 예비군들은 ‘목’으로 일컬어지는 요소요소에 배치된다. 이처럼 산지사방으로 분산 배치된 일반 예비군을 관리하고 지휘통제하려면 무전기가 필수품이다. 그런데 이들에게 지급되는 무전기도 작전수명이 한참 지난 향방 물자다.
무전기가 정상 가동된다고 해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상당수가 현역부대가 쓰는 무전기와 교신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현역부대의 통신장비가 비약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우리 사회의 전자제품 발전상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40년 전만 해도 전화를 가진 집이 드물었다. 컴퓨터는 구경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초등학생들도 스마트폰을 가지고 논다. 노트북이나 PC가 없는 집이 없다. 인터넷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게 됐다.
군은 어떤 조직보다도 통신을 중요시한다. 통신 없는 작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터넷도 처음 군에서 개발해 사용하다 민간으로 넘어간 것이다. 군은 컴퓨터와 통신을 결합한 종합지휘통신망인 C₄I 체제를 숨 가쁘게 발전시켜왔다. 복잡한 암호와 보안체제도 발전시켰다. 그러니 일반 예비군에 지급된, 보안도 되지 않는 워키토키로는 접속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일반 예비군에 지급된 워키토키보다는 휴대전화로 현역부대와 교신하는 것이 더 낫다는 자조의 말이 나온다. 이렇게 재미없는 작전을 하니 ‘당나라 군대에 온 것 같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이다.
일반 예비군 문제는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수를 줄이고 제대로된 장비와 급식을 주고 훈련을 시켜야 한다. 향방 물자는 폐기해 고철로 재활용하거나 후진국 지원용으로 전환하는 것이 낫다.
예비군을 중심으로 한 동원전력 현실화는 시급한 문제다. 북한 장성택 처형으로 위기가 고조되는 지금은 더욱 그러하다. 예비군은 대한민국을 지키는 최후의 숨은 전력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