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호

“조직의 별? 우리는 행성 아니면 유성”

대기업 임원의 모든 것

  • 구자홍 기자 | jhkoo@donga.com

    입력2013-12-20 1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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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대 최대 임원 승진’=‘역대 최대 임원 퇴사’
    • 겉은 화려하고, 속은 타들어가고
    • 신규 임원 임기 통상 3년…실적 나쁘면 언제든 짐 싸야
    • 10대 그룹 상장사 임원 비율 1% 미만
    • 연봉도 부익부빈익빈…삼성전자 5억, SK계열사 1억대
    “조직의 별? 우리는 행성 아니면 유성”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조직의 별’이라는 대기업 임원에 오르려면 평균 20년이 걸린다. 높은 연봉에 비서를 두고 기사가 딸린 고급 승용차와 골프장 회원권을 제공받는 대기업 임원은 회사원들의 꿈이다.

    그러나 정작 대기업 임원들은 “임원 승진을 통보받았을 때 가장 기뻤지만, 이후로는 ‘임시직원’의 비애를 많이 느낀다”고 푸념한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각종 지원과 혜택 뒤엔 실적 압박이 똬리를 틀고 있다. 1년 단위로 연봉계약을 체결하는 임원은 실적이 나쁘면 언제든 짐을 싸야 하는 불안정한 신분이다. 화려한 겉모습 뒤에서 속앓이하고 있는 대한민국 대기업 임원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ㅋㅋ 올랐다.”

    “ㅎㅎ 고맙습니다. 응원해주신 덕분입니다.”

    “이제 자유인으로 돌아갑니다. 여러 감정이 교차하지만 한마디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좋은 분들을 만나 인생이 풍요로웠고 즐거웠습니다.”



    12월 초 한 재계 인사에게 거의 동시에 날아든 문자메시지다. 앞의 두 통은 각각 부사장에서 사장,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한 사람에게서 왔고, 세 번째 메시지는 전무에서 부사장 승진에 실패하고 회사를 떠나게 된 이에게서 온 것이다.

    “우리는 벚꽃”

    대기업 인사철에는 이처럼 희비가 교차하는 문자메시지가 답지한다. 승진 소식에는 ‘ㅎㅎ’ ‘ㅋㅋ’처럼 기쁨을 뜻하는 문자를 쓰고 문장이 짧다. 하지만 퇴사 소식을 전하는 문자메시지에는 ‘만감이 교차한다’는 표현과 함께 글이 전반적으로 길다. 승진 소식을 전한 이에겐 대개 전화로 축하하고, 퇴직 임원에 대한 위로는 착잡한 심경을 배려해 문자메시지로 하는 게 보통이다.

    매년 인사철이 되면 기업은 임원 승진자 명단을 앞 다퉈 발표하고, 언론은 새로 임원에 오른 이들을 조명하는 기사를 쏟아낸다. 하지만 이면에선 승진자 못지 않은 숫자의 임원이 퇴사한다. ‘역대 최대 승진’이라는 말은, 뒤집어 해석하면 ‘역대 최대 임원 퇴사’가 된다. 기업들은 퇴사 임원 현황 공개를 꺼린다. 언론도 ‘샛별’에 관심을 둘 뿐 퇴장하는 임원에게는 주목하지 않는다. 퇴사 임원은 회사에 버림받으면서 세상으로부터 서서히 잊혀간다.

    전무급 이상 부사장, 사장으로 퇴사하는 임원은 그나마 형편이 낫다. 대기업마다 처우가 조금씩 다르지만, 전무 또는 부사장으로 퇴사하면 1년, 사장을 지내면 최소 2~3년간 ‘자문역’에 위촉해 기존 연봉의 50~70%를 지급한다. 하지만 초급 임원인 이사 또는 상무로 퇴사하면 퇴직금 수령과 동시에 임원으로서 제공받던 모든 혜택이 하루아침에 날아간다. 최근 대기업 상무로 퇴사한 인사는 “임원은 화사하게 피었다가 이내 땅바닥에 나뒹구는 벚꽃과 같다. 한때 아무리 화려했어도 회사를 떠날 때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며 씁쓸해했다.

    ‘행성’ 밑에 ‘유성’

    대기업 임원으로 승진하면 흔히 ‘별을 달았다’고 한다. 군인이 장성으로 진급하는 것만큼 힘들고, 장성이 되면 처우가 획기적으로 달라지는 데 비유한 것이다. 그러나 ‘임원=조직의 별’은 옛말이 됐다. 한국 경제가 고속 성장을 구가하던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기업 임원의 위상은 조직의 별에 견줄 만했다. 회사 규모가 날로 커짐에 따라 승진이 빨랐고, 임원이 되면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의 직원을 거느렸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한 이후 임원의 위상과 역할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일례로 삼성전자의 임원은 1000명이 넘는데, 이렇게 임원 숫자가 비약적으로 늘면서 임원 한 사람이 거느리는 직원이 서너 명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대기업 임원의 지위가 ‘별’에서 ‘행성’, 심지어 ‘유성’으로 낮아졌다는 자조도 나온다.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재벌 오너의 제왕적 기업운영 행태가 여전한 우리 기업 현실에 비춰보면 대기업 임원 가운데 스스로 빛을 발하는 별보다 오너의 신임으로 빛나 보이는 임원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 오너 주위를 돌며 그의 신임을 받아 빛을 내는 대기업 임원은 그냥 별이라기보다 행성에 가깝다는 얘기다. 그나마 그룹 계열사 사장쯤은 돼야 행성급 임원이라 할 만하다. 임원 중엔 승진 때 반짝 빛나고 2~3년 뒤 소리 소문도 없이 퇴사한 이가 허다한데, 그들은 행성도 아닌 유성이라는 것.

    대기업 임원에 오르면 대개 최고경영자(CEO)와 목표관리를 위한 MBO (Management by Object)를 작성한다. 자신이 담당할 업무에서 어떤 성과를 낼 것인지 제시하고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를 보장받는다. 목표관리를 위해 세부적으로 균형점수표(BSC·Balanced Score Card)를 작성하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재무적 목표와 직원교육, 연구개발(R·D)투자 등이 종합적으로 기록된다. 목표 지표는 핵심성과지표(KPI·Key Performance Indicator)로 계량화하는데 여기에도 재무적 목표와 비재무적 목표를 함께 제시한다.

    임원은 이처럼 CEO 또는 상급자와 맺은 MBO를 근거로 매년 자신이 회사에 기여한 성과에 대해 평가를 받고, 그 결과에 따라 승진 혹은 퇴사 상황을 맞는다. 임원들이 “‘임원’은 ‘임시직원’의 준말”이라고 자조하는 것도 성과가 나쁘면 언제든 짐을 싸야 하는 신세이기 때문이다.

    “조직의 별? 우리는 행성 아니면 유성”

    대기업 임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땅 밑, 지구 밖도 조심

    임원이 되면 1년마다 연봉계약을 체결한다. 그래서 ‘임원 임기는 1년’이란 말까지 나왔다. 대부분의 대기업은 신규 임원에게 보통 3년 정도의 임기를 보장한다. 3년이 지나면 실적에 따라 진퇴가 극명하게 갈린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임원은 실적과 결과가 숫자로 나타나기 때문에 3년 정도 재직하면 자신의 명운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일반 직원과 달리 임원에겐 정년이 없다. 다만 직급에 따른 승진연한이 있다. 상무는 최장 12년까지 근무할 수 있고, 전무와 부사장의 승진연한은 대개 6년이다.

    대기업 임원이라고 하면 누구나 폭넓은 재량권을 갖고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조직이 커지고 기업 환경이 변하면서 다른 부서, 다른 사업 부문과 협업해야 할 일이 늘어난 탓에 임원 개인이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은 그리 많지 않다. 이처럼 권한은 줄었지만 책임도 작아진 것은 아니다. 업무 성과에 대해서는 물론 부하직원의 잘못에도 공동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들이 임원 평가 방식을 다면평가로 바꾼 이후 임원들은 상급자는 물론 하급자 눈치까지 봐야 하는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상급자에게선 실적에 따른 압박과 평가를 받고, 부하직원에게선 상향평가를 받아야 하니 ‘안팎 곱사등이’란 말이 나온다. 부하직원에게 상향평가를 받지만 정작 자신의 상급 임원에 대해서는 평가 권한이 없다.

    모 그룹 회장 비서실에 근무했던 인사는 “요즘 임원은 1990년대 임원보다 처우는 좋아졌지만 권한은 오히려 축소된 경향이 있다”며 “임원이 재량권을 갖고 업무추진력을 발휘할 때 실적이 좋아지는데, 지금처럼 위 아래 눈치 보는 구조에서는 높은 실적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국 경제가 고성장을 멈춘 이후 대부분의 기업은 인사 적체 현상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임원 승진을 위한 내부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인사철이 되면 기업 인사팀과 감사팀에는 각종 투서가 난무한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일반적으로 실적을 보고 승진 여부를 판단하지만, 비리와 관련된 투서가 들어오면 사실 여부를 확인해 인사상 불이익을 준다”고 전했다. 모 그룹의 한 임원은 “모바일과 온라인 등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발달하면서 기업 내부는 물론 대외활동도 조심해야 할 상황”이라며 “정보 유통이 빛의 속도처럼 빨라져 한번 나쁜 소문이 퍼지면 아무리 억울해도 바로잡을 길이 없다”고 말했다.

    과거에 임원은 인사권자로부터 신임을 얻고 실적이 받쳐주면 오랫동안 자리를 보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실적은 기본이고 사내외 평판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한 대기업 임원은 “선배 임원들은 오너와 주변 경계만 잘하면 됐는데, 우리는 거기에다 땅 밑과 지구 밖 GPS 위성까지 의식하며 살아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이희경 서치펌 드림HR 이사는 “임원으로 오래 재직하는 이들을 보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나 조직 내부는 물론 외부에도 적을 만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평균 연봉 3억9500만 원

    임원의 위상이 과거에 비해 낮아졌다곤 하지만 대기업에 입사해 임원으로 승진하는 것은 여전히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렵다. 국내 대기업 전체 직원 중 임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2012년 상장사를 기준으로 매출액 상위 10대 그룹 임원은 5215명. 10대 그룹 전체 직원은 60만 명이 넘는다.

    10대 그룹 중 가장 많은 임원을 둔 그룹은 삼성으로 17개 상장사에 2116명이다. 다음으로는 현대차그룹이 11개 상장사에 912명의 임원을 뒀고, LG가 652명으로 뒤를 이었다. 매출 규모 3위인 SK의 임원 수(486명)가 4위인 LG보다 적은 것은 전체 직원 수와 관련이 있다. LG그룹 직원 수가 10만7669명인 데 비해 SK그룹 직원 수는 4만3048명으로 LG의 절반 수준이다. 따라서 직원 수 대비 임원 비중을 따져보면 SK가 LG보다 더 높다.

    10대 그룹 중 직원 대비 임원 비중이 가장 높은 기업은 한화. 한화는 6개 상장사 직원 대비 임원 비중이 1.5%에 육박했다. 임원 비중이 가장 낮은 그룹은 LG로 0.6%였고, 현대차(07.%)도 임원 비중이 낮았다. 삼성그룹은 1.2%로 10대 그룹 가운데 한화 다음으로 임원 비중이 높았다.

    대기업 임원이 되면 여러 가지가 달라진다. 우선 연봉이 눈에 띄게 오른다. 모 글로벌 대기업은 임원이 되면 부장 때보다 연봉이 2배 가까이 오른다. 임원 연봉은 모든 기업이 극비에 부친다. 개별 임원과 연봉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같은 직급 임원도 연봉이 다르고, 같은 그룹에서도 주력사와 계열사 임원 연봉에 큰 차이가 난다.

    “조직의 별? 우리는 행성 아니면 유성”


    “조직의 별? 우리는 행성 아니면 유성”
    재벌닷컴이 10대 그룹 상장사 임직원 평균 연봉을 조사한 결과 이들 그룹 임원은 2012년 기준 평균 3억9500만 원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임원이라도 등기임원이냐 아니냐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등기임원 평균 연봉은 9억7800만 원, 비등기임원 평균 연봉은 3억1800만 원이었다. 등기임원이 비등기임원보다 3배 이상 높은 연봉을 받고 있는 것.

    10대 그룹 직원의 평균 연봉은 6790만 원으로 임원 연봉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직원 평균 임금이 높은 기업은 현대차(8850만 원), 다음은 현대중공업(7450만 원)이었다. 삼성과 포스코의 직원 평균 연봉은 7120만 원이었다.

    임직원 평균 연봉을 개별 기업별로 살펴보면 그룹사 전체 평균과는 사뭇 다른 결과가 나온다. 삼성그룹 전체 임원의 평균 연봉은 4억5600만 원이지만, 삼성전자 임원의 평균 연봉은 5억5315만 원으로 1억 원 이상 많았다. 특히 삼성전자 등기임원 연봉은 52억100만 원으로 10배 이상 많고, 비등기임원도 5억4053만 원으로 삼성 전체 임원 평균 연봉보다 1억원 가까이 많았다. 삼성전자 외에 비등기임원 평균 연봉이 4억 원을 넘는 계열사는 에스원과 제일기획뿐이다. 나머지 삼성 계열사의 임원 평균 연봉은 3억 원대다. 50억 원대 연봉을 받는 삼성전자 등기임원과 5억 원대 연봉을 받는 삼성전자 비등기임원이 삼성그룹 임원 평균 연봉을 1억원 가까이 끌어올린 셈이다.

    현대차그룹도 현대자동차 비등기임원 평균 연봉만 4억 원을 상회할 뿐 계열사 중에는 비등기임원 연봉이 3억 원에 미치지 못한 곳이 많았다. SK그룹도 지주사인 SK 비등기임원 연봉이 4억7783만 원인 데 비해 나머지 계열사 가운데는 임원 평균 연봉이 3억 원에 미치지 못한 곳이 많았다. SK 비주력 계열사 중엔 비등기임원 연봉이 1억 원대에 머물러 있는 곳도 있었다. LG그룹의 경우 LG의 비등기임원 평균 연봉이 4억6134만 원으로 다른 계열사보다 1억 원 이상 많고, 나머지 계열사 임원 연봉은 3억 원대로 일정했다.

    임원이 되면 높은 연봉 외에도 파격적인 대우가 뒤따른다. 독립된 집무실과 비서, 중대형 차량과 골프장 회원권, 법인카드는 기본. 비행기를 탈 때는 비즈니스 클래스를 이용하고, 휴대전화, 태블릿 PC도 지급받는다. 삼성의 경우 임원이 되면 최고급 여행용가방과 몽블랑 만년필 등 임원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고가의 사무용품까지 지급한다고 한다. 기업들이 임원에게 제공하는 이처럼 다양한 혜택은 임원 개인의 복리후생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업무 효율성 제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 대기업 홍보 담당자는 “임원이 되면 의사결정에 따른 책임이 커지는 만큼 업무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업무에 필요한 다양한 측면에서 제공한다”고 말했다.

    임원에게는 기본적으로 승용차가 지급된다. 다만 상무급 3000cc 이하, 전무 3500cc, 부사장 4000cc, 사장 5000cc 이하 등 직급에 따라 배기량에 차이를 둔다. 상무급은 2700cc 현대 그랜저나 기아 K7을 주로 타고, 전무급은 3300cc급 오피러스 또는 제네시스, 부사장 이상은 에쿠스를 애용한다. 대부분의 대기업은 임원에게 동급 차종 2개 가운데 개인 선호도에 따라 하나의 차종을 고르도록 하고 있다.

    “조직의 별? 우리는 행성 아니면 유성”


    Interview | 대기업 임원 인사 담당자

    “승진에 묘수 없지만, 시대에 맞는 인재가 유망”


    “조직의 별? 우리는 행성 아니면 유성”
    -임원 선발 때 어떤 기준을 중요시하나.

    “기업은 여러 전쟁터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하는 곳과 같다.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 것이 다양한 전투와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이다. 조직이 흐트러져 있을 때는 사람을 잘 다루는 사람을, 기술로 시대의 변화를 돌파해야 할 때는 기술이 탁월한 사람을 중용한다. 시대가 급변하면서 그에 맞춰 기술과 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결국 시대 흐름에 맞는 사람이 등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능력을 갖췄다고 모두 임원이 된다고 보긴 어렵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조직 내부의 납득성이다. 조직 내부에서 ‘될 사람이 됐다’는 평가를 받아야 조직이 안정된다.”

    -임원의 승진과 퇴사를 가르는 기준은.

    “2~3년이면 승패가 드러난다. 기업은 숫자와 결과가 늘 나오는 곳이다.”

    -오너와 가까운 사람이 승진에 유리한가.

    “훈련 상황에서는 충성심이 중요할지 모르지만, 실제 전투가 벌어지면 전투와 전쟁에서 이길 사람을 선발한다. 오너는 자신에게 승리를 안겨줄 사람을 뽑으려 하지, 전쟁에서 질 각오를 하고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을 뽑으려 하진 않는다.”

    -임원을 꿈꾸는 직원은 어떤 준비를 하는 게 좋을까.

    “임원 승진에 묘수는 없다. 조직이 다양한 개성을 가진 복수의 사람을 지켜본다는 점을 깨닫고, 스스로 자신의 강점을 잘 키워가는 길밖에 없다.”

    -조직이 클수록 이른바 ‘라인’이 있어 라인의 수장이 바뀌면 그 라인 전체가 몰살당한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수장이 바뀐다는 것은 시대가 변했다는 의미다. 그래서 소위 그런 계통에 함께 있던 사람들이 인사상 불이익을 당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무슨 특정 라인이어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임원을 가리켜 ‘임시직원’이라고도 한다.

    “1년 단위로 연봉계약을 하지만 일단 임원이 되면 최소한 3년 정도 임기가 보장된다. 그 이전에 사퇴시키려면 사유서가 필요하다. 다만 3년이 지나면 업무 연속선상에서 업무 실적에 따라 계속 갈 수 있을지가 결정된다.”

    -임원에 대한 처우는 어떤가.

    “능력과 역할, 성과에 따라 다르다. 기본연봉에다 맡은 업무에 따라 역할급이 지급되고 실적에 따라 성과급을 받는다.”

    -오너의 직계가족이 인사상 특혜를 받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

    “기업에는 기업가 정신이 살아 있어야 한다. 오너 승계 문화는 기업가 정신을 북돋우는 메커니즘이다. 직계가족에게 승계를 못하게 하면 자기 당대에서 기업이 끝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되면 더 열심히 일할 의욕이 생기겠나. 기업은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존재할 수 있다. 오너만큼 살아남으려는 본능이 강한 사람이 누가 있나.”


    품위 유지 물품 지급

    운전기사 배치 여부도 직급에 따라 다르다. 상무급에게는 승용차만 지급하고, 전무급 이상 고위 임원이 돼야 기사를 배치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인 현대차그룹은 이사대우-이사-상무-전무 등 초·중급 임원에게 승용차를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2년마다 최대 30% 가까이 할인된 가격에 신차를 구입할 수 있는 혜택을 준다. 현대차에서는 부사장 이상 고위급 임원이 돼야 승용차와 기사를 제공받는다.

    개인 비서 역시 임원 직급에 따라 차이가 있다. 초급 임원인 상무에게는 전속 비서 대신 여러 명의 임원을 함께 보좌하는 ‘공통 비서’를 두는 경우가 많고, 집무실도 완전히 독립된 공간보다는 일반 직원에 비해 약간 분리되고 조금 더 넓은 공간을 배정한다. 그러나 전무급 이상 임원에게는 대부분의 회사에서 별도의 집무실과 전속 비서, 기사가 배치된 고급 승용차를 제공한다.

    기업들은 임원 본인은 물론 배우자까지 매년 수백만 원 상당의 정밀 종합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서울대 병원 등 유명 병원들이 서울 강남에 호텔급 건강검진센터를 별도로 운영하는 것은 주로 강남에 거주하는 이들 대기업 임원 부부들을 주고객으로 삼기 때문이다.

    회사가 임원에게 제공하는 각종 지원은 ‘당근’으로 볼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걸으려는 말을 더 빨리 달리도록 하는 ‘채찍’과도 같다. 모 그룹의 한 임원은 “회사는 무조건적으로 혜택을 베푸는 사회복지단체가 아니다. 임원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 것은 결국 그 대우만큼 실적을 높여 회사에 더 큰 이익을 안겨주라는 뜻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임원의 조건

    ‘성과’는 능력이자 인격, 존재 이유


    ‘임원의 수준이 기업의 수준을 나타낸다’고 한다. 기업들이 회사를 대표해도 손색없을 만한 직원을 임원으로 선발하려 노력하는 이유다. 임원 전문 헤드헌터 드림HR 이희경 이사가 조언하는 임원의 성공조건을 들어봤다.

    -기업에서 요구하는 임원의 조건은.

    “첫째 조건은 로열티(충성도)다. 자기 뒤통수를 칠 여지가 있는 사람과는 함께 일하려 하지 않는다. 둘째는 실적. 임원에게 성과는 능력이며 인격이자 존재 이유다. 셋째는 리더십. 아랫사람들이 잘 따라야 성과도 낼 수 있다. 넷째는 전문성.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는 자기만의 전문 영역이 있어야 한다. 다섯째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위 아래는 물론 사내외, 특히 고객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성공한다. 권위적이거나 일방통행식 커뮤니케이션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롱런하는 임원과 단명하는 임원의 차이는.

    “실적은 임원 생존을 위한 알파이자 오메가다. 신규 사업이나 자금, 조직 등 오너나 대표이사가 고민하는 문제에 솔루션을 제공하는 임원도 오래간다. 실적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크고, 윗사람뿐 아니라 아랫사람에게 인정받는 임원도 오래간다.

    임원 계약을 보통 1~2년마다 하기 때문에 실적이 좋지 않은 임원은 단명할 가능성이 높다. 임원 대부분은 임기에 대한 불안감, 과중한 업무, 성과 스트레스로 불면증과 두통을 달고 산다. 임원은 잘나갈 때 특히 조심해야 한다. 회사 밖에서 실세인 척하다가 오너나 상급 임원 귀에 들어가 ‘괘씸죄’로 느닷없이 짐을 빼는 경우도 있다. 실적이 좋아도 성희롱이나 정보유출, 공금횡령 등의 문제가 생기면 곧장 퇴사해야 한다.”

    -이직에 성공하는 임원의 특징은.

    “연봉뿐 아니라 옮기려는 회사 문화나 기업 이미지를 고려하고, 자신의 권한과 책임을 꼼꼼히 따져보는 임원이 이직에 성공할 확률이 높다”

    “조직의 별? 우리는 행성 아니면 유성”
    -임원을 꿈꾸는 직장인에게 조언한다면.

    “직장인의 키워드가 ‘성공’에서 ‘행복’으로 바뀌고 있다. 빨리 승진하는 것보다 오래 다니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럼에도 직장인의 꽃은 임원이다. 몸담고 있는 회사의 임원 중에 벤치마킹하고 싶은 사람을 정해 그의 성공요인을 살펴보면 앞으로 어떤 경력을 쌓아야 할지 알 수 있다. 기회가 된다면 벤치마킹하고픈 임원과 함께 일하는 것도 좋다. 여의치 않으면 친근한 사이가 돼 멘토 역할을 요청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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