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방이 두려운 겨울
- 미세먼지 앱은 필수
- “수명 5.5년 단축”…동요하는 민심
베이징의 스모그를 처음 봤을 때는 제법 운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당시는 시진핑이 공산당 총서기로 등극한 지 한 달 남짓 지난 때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정책을 펼 생각인지 가늠할 수 없을 때였다. 이미 G2국가로 올라선 중국이지만 정치체제가 워낙 베일에 싸여 있기에 베이징특파원으로서 기사를 쓰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 스모그에 오버랩되면서 ‘베이징과 스모그는 어울리는 조합’이라는 생각에 젖기도 했다.
목감기 달고 살아
그때만 해도 스모그가 그다지 두렵진 않았다. 이방인의 눈에 비친 이국의 신기한 광경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한 달여가 지나니 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목이 칼칼해 불편했다. 목에 좋은 감기약을 먹어도 마른기침은 잦아들지 않았다. 기자만 그런 게 아니었다. 주변 동료, 대사관의 외교관, 기업 주재원들 중에 목감기에 걸린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찾아온 스모그는 쉽사리 걷히지 않았다. 4~5일 동안 스모그가 자욱한 날이 이어졌다. 슬슬 인내심에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2013년 1월 중순 무렵부터 일본과 미국, 영국 등지에서 파견 나온 주재원들이 가족을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유럽에서는 중국 주재원들에게 거액의 생명수당을 지급한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낭만으로 느껴지던 베이징의 스모그는 그야말로 대재앙의 시작이었다.
2013년 초 베이징의 겨울은 스모그에 뒤덮였다. ‘언제쯤 바람이 불어 스모그가 걷힐까’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었다. 그만큼 혹독했다. 3월 중순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중국에서는 일괄적으로 난방을 실시한다. 거의 모든 집이 중앙난방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매년 11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4개월 동안만 난방을 공급한다. 석탄을 때서 난방하는 아파트 단지가 많은 탓에 스모그가 생겼다는 해석이 분분했기에 난방 공급이 끊기면 이 지독한 스모그도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3월 중순이 지나도, 난방 공급이 중단되어 집이 싸늘한데도 스모그는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갸웃했지만 중국 당국은 스모그의 원인에 대해 구체적인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마스크도 무용지물
“대기오염 문제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더라. 시종일관 서울시의 공기가 어떻게 좋아졌는지에 대해서 물어오더라.”
2013년 4월 22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궈진룽 서기를 면담한 후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 말이다. 박 시장이 서울시와 베이징의 우호협력 강화를 위해 중국을 방문한 당일에도 베이징엔 스모그가 뒤덮였다. 당시 베이징의 초미세먼지(PM2.5) 수치는 200㎍/㎥에 육박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PM2.5 기준치가 25㎍/㎥이니 무려 10배 가까운 미세먼지가 베이징을 뒤덮고 있었던 셈이다.
PM2.5는 머리카락 직경의 30분의 1∼200분의 1인 직경2.5㎛(1㎛는100만분의 1m)이하 크기의 미세먼지로, 흡입하면 기도에서 걸러지지 않고 폐포까지 침투해 심장 및 호흡기 질환을 유발한다. 스모그가 극심했던 2013년 1월 베이징의 대기 PM2.5수치는 500까지 치솟기도 했다. 1월중 베이징에서는 한 달 가운데 5일만이 중국 정부가 목표로 하는 대기질 2급 수준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베이징에 거주하는 내외국인은 스마트폰에 대기오염지수를 확인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깔고 날마다 체크해 마스크를 착용한다든지, 외부활동을 자제한다든지 하는 나름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웬만한 마스크가 아니면 미세한 입자까지 걸러줄 리 만무하고, 생업에 바쁜 일반인이 외부활동을 자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스모그 현상은 베이징뿐만 아니라 중국 북부지역 전역에 걸쳐 나타났다. 극심한 대기오염 탓에 시민의 불만이 치솟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 당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궈진룽 베이징시 서기의 제1순위 관심사 역시 단연 대기 정화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베이징 서기의 고심에도 불구하고 스모그는 여름에도, 가을에도 지속됐다.
2013년 가을까지만 해도 장강 이남지역의 대기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스모그는 상하이와 저장성, 장쑤성, 장시성 등을 덮치기 시작했다. 12월엔 베이징과 상하이, 난징시를 비롯해 20개 성(省) 등 중국 대륙의 절반 이상 지역에 스모그가 최장 1주일 가까이 이어졌다. 12월 초엔 안개와 스모그로 인한 황색이상 경보가 7일째 계속되면서 52년 만에 최악의 스모그를 기록했다. 상하이의 PM2.5 농도는 지난달 WHO의 안전기준인 ㎥당 25㎍을 24배 이상 초과하는 602.5㎍을 기록했고, 베이징의 수치는 400을 넘나들었다. 상하이, 장쑤성 지역에 스모그가 이처럼 심각하고 오래가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다. 스모그가 중국 전역에 걸쳐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넓고 길고 짙다
중국의 스모그가 시민의 평균 기대수명을 5.5년 단축시킨다는 연구 결과는 중국 인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중국 칭화대, 베이징대, 이스라엘 헤브루대 연구팀이 중국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공동 진행한 연구 결과 중국 북부 지역에 만연한 유독성 스모그가 기대수명을 단축시킬 뿐 아니라 폐암과 심장마비, 뇌졸중 등의 발생 비율을 높인다는 내용이었다.
연구에 참여한 리훙빈 칭화대 경제학과 교수는 “장기간의 대기오염이 사람의 건강과 기대수명, 질병유발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데이터를 활용해 연구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리 교수는 “정부가 경제성장을 희생하더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재원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 중국 북부 지역의 기대수명 감소는 이 지역 노동인구가 8분의 1가량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에 실린 이번 연구결과는 중국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황허강을 중심으로 한 북부와 남부 지방 거주민들을 비교 대상으로 했다. 중국의 경우 황허강 북쪽지역은 겨울철 난방 연료로 석탄을 자유롭게 땔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반면 황허강 이남지역은 겨울철 난방을 금지한다. 이 때문에 황허강 북부 지역의 대기오염 정도가 남부보다 훨씬 심하다.
연구 결과가 발표된 이후 중국의 네티즌들은 이 소식을 열심히 퍼 날랐다. “사랑하는 조국이지만 돈을 벌어 이민을 가야겠다”는 네티즌도 있었고 “정부 당국의 부패가 만연해 환경규제가 느슨한 게 원인”이라며 정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네티즌도 나왔다. “평균연령 100세 시대에 접어든 만큼, 5년 더 일찍 세상을 뜬들 무슨 해가 되겠는가”라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왔다.
중국 당국은 급히 진화에 나섰다. 류즈취안 중국 환경보호부 과학기술표준사 부사장은 “이번 연구 결과는 실증이 부족하고 편파적이다. 연구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또 “매연에 포함된 중금속과 이산화황, 질소산화물 등이 인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틀림없지만 수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아직 충분한 근거가 없다. 국제적으로도 이 수치의 계산법에는 많은 논란이 있어 장기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장기적인 현장 조사와 대량의 표본 조사를 병행해 연구할 필요가 있다. 현재 환경보호부는 보건당국인 국가위생계획생육(가족계획)위원회와 공동으로 오염 피해 범위에 대한 조사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중국 인민들은 류 부사장의 말을 거의 믿지 않았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에너지 절약 및 온실가스 감축 관련 보고서’를 발표해 오염의 심각성을 부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국토의 4분의 1 지역에 스모그 현상이 발생하고 있으며 6억 명의 인구가 이 영향권 내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중국 화베이 평원, 황허 지역과 화이허 지역, 창장 중하류와 화난 북부 등지에서 스모그 현상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최근 중국에서 발생하는 스모그는 영향권이 넓고 지속시간이 길며 오염물질의 농도가 짙은 ‘3대 특징’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보고서는 심각한 스모그의 원인으로 중국의 불합리한 산업에너지 구조와 함께 대기오염 방지 관련 법제 시스템의 미비와 기상여건을 꼽는 등 모호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스모그 이면의 복마전
스모그의 원인에 대해 중국 당국은 아직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몰라서 공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30년 동안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했지만 이는 광범위한 지역의 공기, 토양, 수질 악화를 동반했다. 최근에는 환경오염 문제가 사회적 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중국 정부는 환경법 및 환경 관련 규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큰 효과는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2008년 4조 위안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펴면서 중국 전역에서 건설붐이 일었다. 건설업이 성황이면 철강업, 시멘트업, 건자재업도 초호황을 구가한다. 곳곳에 공장이 들어섰다. 쇠를 녹이고, 석회석을 고온으로 굽고, 유리를 달구는 공장들은 막대한 열량이 필요하다. 열량을 만들어내는 데 가장 경제적인 연료는 석탄이었다. 엄청난 석탄을 소비하는 공장들이 어마어마하게 들어서기 시작했다. 환경규제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2008년 정부가 지원한 저금리 은행대출을 받아 짓기 시작한 공장들은 2012년 봄부터 본격 가동됐다. 그리고 그 부작용이 2012년 겨울 스모그로 나타난 것이다. 특히 정책지원을 즉시 받은 베이징과 허베이 지역에서 2012년 말부터 스모그가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시차를 두고 지원을 받은 상하이 인근지역에서도 2013년 가을부터 스모그가 나타났다. 중국의 스모그 뒤에는 허술한 부양정책, 관료들의 관리 부실, 기업주의 윤리의식 부재, 그리고 각종 이권 커넥션이 얽혀 있다.
스모그의 심각성을 깨달은 중국 국무원은 강력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국무원은 최근 상무위원회를 열고 ‘대기오염 예방을 위한 10개 조치사항’을 발표했으며 주무부처인 환경부도 ‘대기오염 방지 행동계획’ 제정을 추진 중이다.
환경부의 오염방지사 왕타오 처장은 모든 행동계획에 대한 투자 규모가 1조7000억 위안(307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대기오염 물질로 꼽히는 이산화황과 질소산화물 배출을 없애기 위한 행동계획에만 1350억 위안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같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환경투자 예산은 자본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A주 시장(내국인 전용 주식시장)에서 환경부문 성장률은 38%에 달했다. 또 중국의 국가발전개혁위원회 관계자와 환경부문 인사들은 중국 환경산업의 미래가 밝다고 한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다.
뤄젠화 전국공상연맹환경상회 비서실장은 “중국 정부는 환경보호산업을 위해서도 아낌없이 투자할 것”이라며 “앞으로 10년간 중국의 환경보호지출 및 환경시설 투자 비용을 늘려 국내총생산(GDP)의 2~3%를 차지할 수 있도 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중국의 스모그가 심해지면 한국에도 그 영향이 밀려온다. 당장 이번 겨울 한국에도 중국발 미세먼지의 공포가 닥쳐왔다. 중국에 비하면 정도가 심하진 않겠지만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첨단 매연절감 기술과 청정 도시 시스템에 목말라하는 중국에 거대한 환경시장이 열리고 있음을 눈여겨봐야 한다. 다행히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들에는 과거 극심한 대기오염을 극복해낸 경험과 기술, 노하우가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적극적인 진출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지난 12월 5일 중국발 오염물질이 한반도 상공에 머물던 안개와 뒤섞여 대기 환경이 악화되면서 서울에 사상 첫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