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호

광고와 AI로 버티는 국민 메신저 ‘카톡’의 추락

[Focus] 카카오톡 15년… 혁신은 멈추고 독점만 남았다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25-11-08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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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자 100원 시대 끝내고 혁신으로 일상 파고들어

    • 독점의 그림자, 불만 쌓여도 떠날 수 없어

    • 광고 중심 수익 구조와 체류시간 경쟁의 덫

    • 피드·숏폼 도입이 부른 이용자 반발과 본질 훼손

    • AI 전환의 명암…무너진 신뢰, 회복은 가능할까

    카카오톡 출시 15주년 개편 이후 ‘친구’ 탭이 피드형으로 바뀐 첫 화면과 숏폼 화면. 카카오 홈페이지

    카카오톡 출시 15주년 개편 이후 ‘친구’ 탭이 피드형으로 바뀐 첫 화면과 숏폼 화면. 카카오 홈페이지

    연내 코스닥 상장을 앞둔 IT 스타트업 대표 K씨는 2010년 3월을 이렇게 회상한다. “스마트폰이 막 보급되던 시절, 카카오톡은 문자메시지 요금 100원 시대를 끝낸 혁신이었다. 무료 메시지의 충격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문자 요금이 사라졌다’는 말이 회자되며 카카오톡은 새로운 소통 문화를 열었고, 사람들은 자연스레 대화의 무대를 카카오톡으로 옮겼다. 

    혁신의 상징에서 ‘피로의 아이콘’으로 

    그로부터 15년. 9월 23일 카카오는 카카오톡 출시 15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개편을 단행했다. 메신저 첫 화면인 ‘친구’ 탭을 소셜미디어(SNS)형 피드로 바꾸고, ‘지금’ 탭에는 숏폼 영상(쇼트폼·짧은 영상)을 전면 배치했다. 메신저를 열면 친구들의 게시물과 짧은 영상이 피드로 쏟아지고, 광고와 추천 콘텐츠가 뒤따른다. 첫 화면이 ‘대화창’이 아닌 ‘피드’인 구조다. 인스타그램의 피드와 릴스를 떠올리게 해 혁신이라기보다는 ‘모방’형 개편이라는 지적도 뒤따랐다. 

    ‘더 편리한 소통’을 내세운 개편 이후 카카오톡은 역설적으로 “불편하다”는 반응을 낳았다. 직장인 정하영(29) 씨는 “친구에게 연락하려고 켠 메신저에서 상사의 골프 사진과 거래처 담당자의 반려견 사진, 광고부터 봐야 해서 피로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여론이 거세지자 카카오는 기존 친구 목록을 복원하는 기능을 4분기 내로 도입하기로 했다. 

    이번 개편은 단순한 사용자 인터페이스(User Interface·UI) 변경이 아니다. 업계는 지난 15년간 ‘국민 메신저’의 정체성과 수익 구조 그리고 한국 사회의 플랫폼 독점이 맞물린 결과로 본다. 

    카카오는 압도적 점유율을 바탕으로 ‘생활 플랫폼’으로 외연을 넓혀왔다. 2014년 간편결제 서비스 카카오페이를 시작으로 카카오뱅크·카카오모빌리티·카카오게임즈까지 금융·교통·콘텐츠·커머스를 자사 생태계로 편입시켰다. 이제 카카오톡은 대화창을 넘어 한국인의 소비·연결·정보·관계망을 통합 관리하는 생활 인프라다. 



    문제는 그 성공의 방식이다. 애플리케이션(앱) 분석업체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2025년 8월 기준 카카오톡의 월간활성이용자(MAU)는 4819만 명. 2025년 9월 국내 인구(5114만 명)의 94%에 해당할 정도로 한국인 대부분이 사용한다. 해외에서는 왓츠앱·위챗·라인·텔레그램 등 여러 메신저가 경쟁하지만 한국만은 예외다. 이른바 ‘네트워크 효과(사용자가 많아질수록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치가 함께 커지는 경제 현상)’다. 뒤집어 말하면 불편해도 못 떠나는 구조다. 업계는 이 독점을 카카오의 ‘진짜 무기’로 본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이사가 9월 23일 경기 용인시 카카오AI캠퍼스에서 열린 ‘이프(if) 카카오’ 콘퍼런스에서 키노트 세션 전체를 이끌며, 카카오톡의 대규모 변화와 새롭게 추가되는 다양한 AI 서비스를 공개했다. 카카오

    정신아 카카오 대표이사가 9월 23일 경기 용인시 카카오AI캠퍼스에서 열린 ‘이프(if) 카카오’ 콘퍼런스에서 키노트 세션 전체를 이끌며, 카카오톡의 대규모 변화와 새롭게 추가되는 다양한 AI 서비스를 공개했다. 카카오

    ‘하루 22분’, 많이 쓰지만 오래 머물지 않는 앱

    이번 개편에 대한 반발이 유난히 컸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용자들은 불만을 느끼면서도 카카오톡 앱을 지울 수 없다는 사실은 안다. 가족 대화방, 회사 회의방, 친구 모임 등 일상의 소통이 모두 카카오톡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소비자들이 반발하는 건 낯선 변화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필요하지 않은 정보가 갑자기 밀려오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유튜브처럼 사용자가 선택적으로 보는 서비스와 달리 카카오톡은 생활 인프라에 가까워서 도배되는 느낌을 받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카카오는 한때 “카카오톡에는 광고를 넣을 공간도 없고 쿨하지도 않다”며 광고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지만, 2019년 첫 광고 도입 이후 광고를 꾸준히 늘렸다. 2025년 2분기 연결 매출은 2조 원을 넘어섰다. 절반 이상이 광고와 커머스에서 나온다. ‘톡비즈(Talk Biz)’로 불리는 카카오톡 기반 광고·커머스 매출만 5421억 원대. 메신저가 사실상 광고매체로 변했다는 비판이 여기서 비롯된다. 

    사용자가 많다고 해서 서비스가 활력 있는 것은 아니다.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2025년 8월 기준 카카오톡 1인당 월평균 이용시간은 11시간 25분(하루 약 22분). 틱톡 라이트(18시간 57분)나 인스타그램(18시간 1분), X(옛 트위터·14시간 58분)에 비해 현저히 짧다. 대화가 끝나면 즉시 떠나는 구조라 ‘많이 쓰지만 오래 머물지 않는 앱’이 된 것이다. 반면 경쟁 플랫폼은 메신저 외에 콘텐츠·쇼핑·동영상으로 ‘머물 이유’를 만든다. 젊은 세대가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DM)로 대화를 옮기는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는 2025년 상반기 실적 발표에서 “카카오톡은 가장 많이 방문하는 모바일 앱이지만 체류시간 측면에서는 선두 업체와 격차가 크다”며 “하반기에는 콘텐츠 소비와 공유 기능을 강화해 체류시간을 20%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번 개편은 그 약속의 현실화다. 

    카카오톡의 고민은 메신저가 근본적으로 수익 창출이 어렵다는 데서 출발한다. 구독료를 받기 어렵고, 광고를 과도하게 넣으면 불만이 폭발한다. 그래서 플랫폼 기업에 체류시간은 곧 매출의 다른 이름이다. 이용자가 오래 머무를수록 광고 노출이 늘고 결제·커머스 소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카카오톡의 정체성 다시 묻는 계기

    카카오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메신저에 피드와 숏폼을 얹었다. 친구들의 일상과 쇼핑, 광고를 한 화면에 노출해 자연스럽게 머무는 시간을 늘리는 구조다. 실제로 2024년 카카오 연결 매출 7조8716억 원 가운데 플랫폼 부문이 48%, 콘텐츠 부문이 52%를 기록했다. 핵심은 ‘톡비즈’다. 채팅창 배너, 채널 광고, 이모티콘·선물하기, 카카오페이 결제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2024년 2분기 5140억 원(전체의 26%)이던 톡비즈 매출은 2025년 1분기 5533억 원으로 7% 늘었다. 반면 게임과 웹툰 등 비(非)톡 부문은 부진했다. 결국 카카오는 다시 ‘톡’으로 돌아왔다. 

    정호윤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9월 23일 리포트에서 “인터페이스 변화로 광고 인벤토리(Inventory·광고를 게재할 수 있는 공간)가 확대되면 실적은 2025년 4분기부터 본격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면서도 “카카오톡이 SNS가 아닌 만큼 이용자들이 피드 콘텐츠와 광고를 소비할지는 미지수”라고 짚었다. 

    업계에서는 이번 개편을 두고 “놀랍지만 결국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IT 전문가 L씨는 “국내 대기업이 이용자 반발을 예감하면서도 전면 개편을 단행했다는 점 자체가 놀랍다. 대부분은 리스크를 우려해 결정을 미루지만 카카오는 그 부담을 감수했다”면서 “인스타그램도 ‘릴스’ 중심 전환 당시 거센 비판을 받았지만 결국 트래픽을 회복했다. 카카오도 비슷한 수순을 밟는 듯하다”고 평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카카오톡의 정체성을 다시 묻는 계기로 본다. 소셜커머스 기업 개발자 C씨는 “카카오톡이 메신저인지, 소셜네트워크인지, 업무용 툴인지 그 경계를 재정의하려는 실험”이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오픈채팅, 비즈니스 메신저, 커뮤니티 기능 등 카카오톡의 외연은 이미 대화를 넘어 확장돼 왔다. 

    조직 커지며 중앙집중화, 임원과 실무진 온도차 커

    데이터 관점에서도 카카오의 의도는 명확하다. 앞서의 IT 스타트업 대표 K씨는 “이 정도 규모라면 체류시간, 클릭률, 광고 노출률, 피드 상호작용 같은 지표가 의사결정의 중심이 됐을 것”이라며 “글로벌 기업들이 기능을 점진적으로 바꾸는 것과 달리 카카오는 ‘한 번에 묶어’ 바꾸는 방식을 택했다. 오히려 하나씩 나눠 바꾸는 게 더 큰 리스크라고 본 듯하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결단의 배경에는 냉정한 계산이 깔려 있다. 메신저 수익화의 한계를 넘기 위해 광고 기반 슈퍼앱 전환 외에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개발자 L씨는 “한국에서 카카오톡을 대체할 앱은 사실상 없다. 불편해도 떠나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카카오는 장기 수익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전략은 동시에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와 소통 문화의 한계를 드러냈다. IT 스타트업 대표 K씨는 카카오와 협업한 경험을 바탕으로 내부 분위기를 이렇게 전한다. 

    최근 카카오의 앱 체류시간 확대와 광고 영역 확충을 둘러싼 수익화 전략, 그리고 내부 의사결정 문화가 도마에 올랐다. 경기 성남시 판교 카카오 사옥 전경. 동아DB

    최근 카카오의 앱 체류시간 확대와 광고 영역 확충을 둘러싼 수익화 전략, 그리고 내부 의사결정 문화가 도마에 올랐다. 경기 성남시 판교 카카오 사옥 전경. 동아DB

    “카카오는 한때 수평적 문화를 자랑했지만 15년 사이 조직이 커지며 중앙집중식으로 변했다. 임원과 실무진의 온도차가 커졌고, 특정 기업 출신 인사들이 주도하는 조직과 느슨한 협업 문화가 충돌했다. ‘실험과 논의’ 중심에서 ‘위에서 정하고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개편 이후 일부 부서는 속도를, 다른 부서는 안정성을 우선하며 충돌했고, 커뮤니케이션 라인은 복잡해졌으며 책임 체계는 모호해졌다.” 

    “문제가 생겨도 누가 책임지는지 불분명한 구조가 가장 큰 리스크”라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결국 조직문화의 경직화, 내부 소통의 단절, 책임 구조의 불투명성이 얽힌 시스템 문제라는 평가가 설득력을 얻는다.

    카카오의 차세대 돌파구는 인공지능(AI)이다. 9월 ‘이프 카카오 2025’에서 카카오는 “카카오톡을 AI 기반 슈퍼앱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10월부터 챗GPT 기능, 자체 모델 ‘카나나(Kanana)’를 적용한 AI 검색·AI 비서 서비스를 순차 제공할 계획이다. 최승호 DS증권 연구원은 리포트를 통해 “초개인화 데이터는 대화로 많이 생성되지만 윤리 문제로 활용이 어려웠다. 이번 개편을 통해 숏폼 검색·AI 추천·AI 검색 등 데이터를 대량 확보하려는 의도가 보인다”고 분석했다. 카카오는 이 전환을 ‘모바일 중심 기업에서 AI 기업으로의 진화’로 정의하지만 실상은 수익 다변화와 데이터 확보를 위한 현실적 선택이다. AI 서비스를 정착시키려면 방대한 이용자 데이터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이용자가 앱에 더 오래 머물러야 한다. 역설적으로 메신저의 단순함이 이 시대에는 한계가 되는 셈이다. 

    메신저 이외 뚜렷한 성장축 확보하지 못해

    문제는 카카오가 메신저 외부에서 뚜렷한 성장축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블록체인·웹툰·드라마·모빌리티·해외사업 등으로 확장을 시도했지만, 네이버·쿠팡과의 격차는 오히려 벌어졌다. 네이버는 검색·쇼핑·클라우드·웹툰으로 수익을 다변화했고, 쿠팡은 물류와 결제를 결합해 생태계를 확장했다. 반면 카카오는 신사업이 흔들릴수록 다시 카카오톡 중심의 광고·결제에 의존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카카오톡이 다시 신뢰의 플랫폼으로 돌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지금의 방향은 맞지만, 기존 플랫폼과 비교했을 때 차별성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자기만의 큐레이션이나 재미와 유익함을 동시에 주는 콘텐츠를 찾아야 이용자 반발도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불필요한 정보로만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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