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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지성의 허브’ 바이마르

포도줏빛 고전주의 빚어낸 괴테 문학의 산실

‘독일 지성의 허브’ 바이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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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엔이 ‘Classical Weimar’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 리스트에 올렸듯 바이마르는 독일 고전주의의 본당이다. 괴테, 실러, 니체, 헤르더 같은 쟁쟁한 고전파들이 이 작은 도시를 유럽 문화의 중심축으로 키워냈다. 특히 괴테가 청년기 이후 58년을 살았던 바이마르 곳곳엔 고뇌하는 파우스트의 자취가 서려 있다.
‘독일 지성의 허브’ 바이마르

프라우엔플란 거리에 있는 ‘괴테의 집’. 건축 당시의 바로크 양식 그대로다.

알프스 산맥을 경계로 유럽의 자연과 문화는 상이한 풍경을 보여준다. 그 남쪽의 자연은 밝고 경쾌하면서 바다와도 친하나, 산맥을 넘는 순간부터 그만 칙칙한 색으로 바뀌고 사람들의 표정은 ‘쌀쌀맞다’고 할 만큼 굳어진다. 말수도 적어 쉽게 말을 걸기 어렵다. 알프스의 고산준봉이 따뜻한 남풍의 북상을 막으면서 북쪽에서 내려오는 삭풍을 잠재우기에 그 같은 자연과 문화가 생겨난 듯하다.

하지만 그런 알프스 이북 땅에서도 고대 그리스·로마시대의 문화, 다시 말해 남방의 고전문화를 되살리려는 운동이 18세기 한때 크게 일어났다. 그 현장은 튀링겐 주(州)의 바이마르. 수도사 마르틴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발트부르크가 있는 곳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로부터 260년 후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1749∼1832)가 바이마르에서 독일어로 ‘파우스트’를 펴내 독일 고전주의 문학을 꽃피웠다는 사실이다.

유네스코는 세계 최초의 민주헌법이라 일컫는 ‘바이마르 헌법’이 제정·공표(1919)된 이 도시를 1998년 ‘고전도시 바이마르(Classical Weimar)’란 이름으로 세계유산 리스트에 올렸다. EU(유럽연합)는 괴테와 실러, 니체, 헤르더 등 출중한 인물들이 활동한 독일 문화의 중심지이자 고전문학의 메카라는 이유로 괴테 탄생 250주년이던 1999년 바이마르를 ‘유럽문화도시’로 선정했다(2004년엔 프랑스의 릴르와 이탈리아의 제노바가 선정됐다).

바이마르는 독일 학생들이 수학여행지로 제일 많이 찾는 도시기도 하다. 한국 학생들이 천년 고도 경주를, 일본 학생들이 신궁(神宮) 도시 이세(伊熱)를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필자 또한 이런 연유로 옛 동독지역에 위치한 인구 6만의 이 도시를 찾았다.

온 도시 가득한 고전의 물결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곧장 북상해 스위스 취리히에 잠시 머물다 보덴 호수변의 아름다운 국경도시 콘스탄츠를 거쳐 바이마르로 향했다. 거리가 꽤 멀었고 슈투트가르트, 프랑크푸르트, 만하임 등 거쳐가는 도시도 한둘이 아니었다.

하지만 쾌적한 고속열차(ICE)와 완벽하고 정확한 연결 시스템을 갖춘 독일철도(DB)는 8시간 만에 바이마르에 내려주었다. 각 역에선 목적지만 알려주면 경유하는 역과 그 도착·출발 시각은 물론 도착 플랫폼과 출발 플랫폼 등 필요한 정보를 상세하게 제공, ‘고객 서비스’가 어떤 것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줬다. 그래서 길거리에 우두커니 서서 시간을 보내야 할 경우는 적었다.

밤 10시가 지나 도착한 바이마르는 쥐 죽은 듯 고요했고 부슬부슬 비까지 내렸다. 역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선 인터시티 호텔이 ‘오, 자네 왔는가’ 하며 반갑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건물에 별 세 개가 그려져 있어 ‘미안하네. 난 아직 그대를 품에 안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네’라는 말만 건네고 지나쳤다. 지리도 모르고 행인도 드문 그 늦은 시간에 싼 숙소를 찾아 이곳저곳 헤맸지만 주머니 사정에 맞는 곳은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종일 열차 여행에 지친 터라 하는 수 없이 ‘오늘만 호사를 누려보자’는 심사로 인터시티 호텔로 되돌아가 짐을 풀었다. 58유로나 되는 하루 방값이 부담이긴 했으나 대신 아침식사와 교통카드가 제공돼 조금은 위로가 됐다. 독일에만 있는 인터시티 체인호텔은 시내를 다니는 모든 대중교통수단, 즉 시내버스와 지하철(U-Bahn과 S-Bahn), 지역철(Regional Train) 등을 하루 내내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교통카드를 제공하는데, 이런 서비스는 특히 광역도시 베를린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게 나그네 신세라 아침을 먹자마자 시내버스에 실려 프라우엔플란으로 향했다. 그곳 광장 한쪽에 ‘괴테의 집’이 있다고 해서였다. 생전에 괴테가 살았던 집을 후일 박물관으로 개조해 일반에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호텔에서 1km 남짓 되는 거리를 이동하는 사이 시야에 들어온 것은 넓지 않은 길, 그 길 좌우로 들어선 고전 양식의 건물들, 녹색을 잔뜩 뽐내는 공원, 그리고 한가하게 오가는 행인들이었다. 현대식 건물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 도시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고전주의가 독특한 분위기로 바뀌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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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삼윤 문명비평가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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