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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총리‘잉락 친나왓’의 등장과 태국정치

선거는 이겼지만, 태국을 통치할 수 있을까?

미녀총리‘잉락 친나왓’의 등장과 태국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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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현재 동남아시아의 민주주의를 향한 움직임은 치열하다. 미얀마(구 버마)에서는 아웅산 수치 여사를 중심으로 60년 이상 지속된 군부독재와 민주주의의 동거를 위한 협상이 벌어지고 있고, 가장 선진화됐다는 말레이시아조차 50년 이어진 집권여당 UNMO에 대한 공정 선거 요구 시위로 거리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 가운데 태국이 동남아시아 민주주의의 최전선으로 떠올랐다. 농민과 도시빈민들은 ‘레드셔츠’를 입고 1인1표제에 입각한 헌법의 준수를 요구하고 나섰고 방콕의 중산층과 왕당파는 ‘옐로셔츠’를 걸치고 왕에 대한 충성을 소리 높여 외쳤다. 태국은 동남아 국가 가운데 최초로 외부에서 주어진 힘이 아닌 내부의 요구에 의해 정치체제의 수평적 이동을 눈앞에 둔 셈이다. 이런 갈등의 한복판에 ‘탁신 친나왓’이라는 태국 제1의 부자 정치인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세계사적인 아이러니에 가깝다.

탁신/잉락 친나왓은 누구인가

“모든 정치세력은 서로 만나야 하며 프어타이도 오늘 이 자리에 ‘복수’가 아닌 태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국민들은 여전히 제 오빠와 그가 과거에 시행했던 정책들을 생각하고 있고, 많은 분이 아직도 우리 가족에 대한 자비심을 갖고 있습니다.”(5월16일 프어타이 당의 총리후보 지명 수락 연설에서 잉락 친나왓)

그간 태국 정치에서는 ‘복수(復?)’란 표현이 횡행할 정도로 ‘레드’와 ‘옐로’의 대립이 절정에 달했다. 이번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군부의 재쿠데타’ 가능성이 피어오르고 양측이 또 한 번의 거리투쟁을 알게 모르게 준비한 것도 지난 3년의 경험이 너무 치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잉락 친나왓은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국가화합에 도움이 될 것이다”는 표현으로 순식간에 화두를 ‘화합’으로 돌리는 패러다임 전환을 이뤄냈다. 여당 후보인 아피싯 후보와의 언쟁도 삼간 채 철저하게 대중에게 불교식 인사와 겸손한 표정으로 일관한 것이다. 미인대회 출신의 잉락은 기대에 200% 부응하면서 스타 정치인의 탄생을 알렸다.



선거에서 승리한 잉락 친나왓은 탁신 친나왓(62) 전 총리의 막냇동생이다. 형제가 9명이나 되는 이 집안은 태국 북부의 치앙마이에서 ‘친나왓(Shinna- watra)’이란 브랜드로 일찍부터 섬유산업에 진출해 부를 축적한 화교집안이다. 이후 ‘탁신’이란 걸출한 경찰 출신 사업가를 배출하면서 1990년대 이후에는 태국 최대의 재벌로 성장했다.

야심가 스타일의 탁신과 달리 잉락은 치앙마이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1991년 미국 켄터키 주립대학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큰오빠의 총리 등극 이후에는 주로 친코퍼레이션이나 SC Asset 등 ‘패밀리 비즈니스’의 관리인으로 활약했다. 잉락은 동지들의 잇단 배신에 몸서리친 탁신이 2007년 이후 형제들을 프어타이당의 전면에 내세울 때 방콕과 중부지구 책임자를 잠시 맡기도 했다. 이 때문에 세간에서는 그의 일천한 정치경력을 이유로 들며 “잉락은 탁신의 아바타에 불과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로 잉락은 선거유세 과정에서 “나를 통해 오빠에 대한 지지를 보여달라”고 호소하는 등 오빠의 그늘에 많은 부분 의존했다. 그의 승리는 탁신이라는 브랜드가 여전히 태국에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태국정치 전문가인 앤드루 워커 호주국립대(ANU) 교수는 “잉락이 탁신의 대중적 정책에 호응을 보이는 농촌 빈곤층을 결집시킴으로써 프어타이당의 단합을 이끌어냈다”고 분석했다.

경찰사관학교 수석 졸업생 출신인 탁신은 국회의원을 지낸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계와 관계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미국에서 두 번이나 유학생활을 했으며 텍사스 휴스턴 대학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미국에서 쌓은 IT사업 경험과 집안의 경찰인맥을 바탕으로 일찍이 정보통신 서비스 사업(IBM 임대업 등)을 시작했고 정관계 인맥을 활용해 1980년대 무선통신(삐삐)과 1990년대 이동통신, 위성통신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1994년 태국의 대표적 불교정치인 잠롱 전 방콕 시장의 후원을 등에 업고 정계에 입문해 빠르게 차세대 정치인으로 부각됐다. 1998년, 탁신은 첨단 마케팅 기법과 현대적 정책을 앞세운 타이락타이당(TRT)을 창당하고 2001년 1월 선거에서 과반에 근접한 득표로 제23대 총리에 올랐다. 집권 초기 탁신은 태국 중산층의 집결지인 방콕에서 압승(37석 중 29석)을 거둘 정도로 이제까지 군부와 관료가 장악해온 태국정계에 새 바람을 몰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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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동아일보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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