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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펀드의 저주, 신자유주의 적자경제…장수국가의 덫에 걸렸다

이탈리아 부채 상환 위기

헤지펀드의 저주, 신자유주의 적자경제…장수국가의 덫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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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한 개방, 헤지펀드의 공격 초래

앞서 지적했듯이 재정적자 비중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재정위기를 겪는 건 아니다. 이탈리아의 경우에 그런 점에서 아주 재수 없이 걸렸다고 생각할 텐데, 이미 자본시장이 완전히 열려있는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는 이런 푸념조차 용납되지 않는다. 이탈리아의 재정적자를 재정위기로 급속히 이행시키는 데에는 사실 헤지펀드의 영향이 컸다. 이탈리아의 재정적자는 “그리스 국채에 물린 프랑스 은행들의 자금에 비해, 이탈리아 국채에 물린 프랑스 은행들의 자금이 5배에 달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불거졌다. 이후 이탈리아 국채는 우려를 증폭시키면서 투기자본들의 먹잇감으로 관심을 끌었다. 이어진 그들의 공격. 국채 이자율은 계속 올라갔고 우려도 확대재생산의 길을 걸었다.

문제는 그들의 공격이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미 재정적자가 심하다는 것은 백일하에 드러났고 채권 이자율도 오른 마당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공격은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질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대규모 국채 상환일이 도래했을 때 프랑스 은행들이 대거 자금회수에 나선다면, 헤지펀드들에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이탈리아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은 바로 이런 시나리오에 근거를 두고 있다.

나쁜 일이 벌어지면 언제나 첫 번째 화살은 정부를 향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요즘 남유럽 국가에서는 정권 교체가 유행이다. 좌파에서 우파로 정권이 교체되는 건 아니다. 우파건 좌파건 기존 정부는 모두 예외 없이 끌어내려지는 지경이다. 10월20일 총선거를 치른 스페인에서는 기존 여당인 사회노동당을 꺾고 중도 우파 국민당(PP)이 집권에 성공했다. 그리스에서도 11월11일에 루카스 파파데모스 총리가 이끄는 과도 연립정부가 출범했다. 여당인 좌파 범(汎)헬레니즘사회주의운동(PASOK) 측과 제1야당인 우파 신민당(ND) 측이 손을 잡은 것. 좌우 동거 정부인 셈인데, 과거에 비해 우파 성향이 강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에도 11월12일에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사퇴하고, 후임으로 마리오 몬티 총리가 새 내각을 맡았다.

이탈리아는 다른 남유럽 국가들과 달리,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톨릭 세력을 중심으로 한 중도우파가 주로 집권을 해왔다. 그런 점에서 1994년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집권은 다소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가 이끄는 ‘전진 이탈리아’는 극우 성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베를루스코니는 그해 전진 이탈리아에 파시스트 정당으로 알려진 북부동맹을 비롯한 다른 보수 정당들까지 규합해서 우파연합을 구성해 정권을 잡았다. 하지만 불과 7개월 만에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으면서 권좌를 내줘야 했다. 2001년 다시 집권한 이후 ‘유럽의 부시’로 불리기도 한 그는 집권 이후 신자유주의 정책을 맹렬하게 추진했다. 이 때문에 집권 기간 내내 정리해고에 대한 기업 자유 허용 문제로 노동계의 파업이 끊이지 않았다.



사회복지 축소하며 기업 감세정책

문제는 그런 와중에도 재정적자는 늘어만 갔다는 점이다. 베를루스코니는 사회복지 축소, 연금지출 삭감 정책까지 추진한 바 있다. 그런데 왜 재정적자 증가를 막지 못했을까? 기업에 대한 감세, 해외도피 재산 반입 시 사면 제도 도입 등의 정책도 함께 추진했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 2008년 초까지 1년여 중도좌파 프로디 정권이 집권한 기간을 제외하면, 2000년대를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우파연합이 이끌어왔다는 점에서 최소한 이탈리아에서만큼은 복지 포퓰리즘이 재정위기를 초래했다는 가설이 성립되지 않는 셈이다. 오히려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신자유주의와 유로존 편입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중도좌파 프로디 정부의 행보다. 프로디 정부 기간 동안 경제성장률이 0%에서 1.9%로 뛰어오른 속에 재정적자 정상화 차원에서 세금인상, 강도 높은 과세조치, 연금을 비롯한 복지 축소 조치가 이뤄졌는데, 이로써 재정적자 비율이 2006년 4.4%에서 2007년 1.9%로 떨어졌고 공공채무율도 국내총생산 대비 106.8%에서 105%로 낮아진 것이다. 당시 연금법과 사회복지법의 개정 내용에는 연금수령자격 최소 납부기간을 35년에서 40년으로 연장하고 연금 수령연령도 58세에서 62세로 단계적으로 상향조정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언 발에 오줌을 누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이런 선제적 조치가 이어졌다면 또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프로디 정부는 마스텔라 법무장관의 검찰조사로 민심이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결국 붕괴하고 말았다.

프로디 정부 시절에 취해진 조치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2007년 11월에 차기 정부 각료 숫자를 60명으로 제한하기로 한 것. 고비용 저효율 정치체제 그리고 저생산 비효율 정부 운영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팽배한 까닭이다. 프로디 정부는 여기에서 한발 나아가 정치체제도 기존의 안정성이 떨어지는 다당제에서 양당제로 바꾸려고 시도했다. 집권 여당 내의 제1당인 좌파민주당과 제2당인 마르게리타당을 통합해서 민주당을 창당하기로 한 것인데, 당시 우파연합도 야당 내 제1당인 전진 이탈리아당을 중심으로 통합신당 창당을 추진한 결과, 자유민중당이란 단일당 결성 추진에 합의한 바도 있다. 중도기민당 역시 중도연합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온건한 가톨릭 중도세력 결집을 시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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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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