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라크는 미국의 새로운 식민지로 전락하는가. 미국은 전쟁을 통해 후세인 체제를 무너뜨린 뒤 이라크를 2년간 국제사회(사실상 미국)의 ‘보호령’으로 운영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런 후 친미 성향의 허울뿐인 이라크 지도자를 내세울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서아시아 지역에서 아프간에 이은 제2의 친미국가가 탄생한다. 이라크 석유는 미국 메이저 기업들이 장악할 전망이다.
- 이라크전쟁 이후의 구도를 미리 들여다본다.
3월 중순 현재 걸프지역의 하늘엔 전쟁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독자들이 이 글을 읽고 있을 때면 이미 전쟁이 터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미국은 ‘충격과 두려움(shock and awe)’이란 작전개념에 바탕을 두고, 12년 전 걸프전 때의 10배에 이르는 막강 화력으로 이라크를 공격한다는 방침이다(‘신동아’ 2003년 3월호 ‘이라크전쟁 공습전략 A to Z’ 기사 참조).
“4월말까지 후세인정권 생존확률 0%”
수도 바그다드를 지키기 위해 이라크군 정예부대인 특수공화국수비대는 도시 게릴라 전술로 맞서겠지만, 결국은 패배할 것이다. 후세인에게 충성하는 이라크군 지휘부가 ‘시리야(Siriya)’라 일컫는 일종의 독전(督戰)부대(1개 사단마다 200명)를 일선 부대 바로 뒤에 배치해놓고 후퇴하는 병력을 사살하며 저항해도 끝내는 무너질 것이다. 역사상 최대의 군사초강대국인 ‘파워 아메리카나(Power Americana)’와 이라크군 간의 전투는 처음부터 결과가 보이는 싸움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작전계획을 보면, 영국군은 이라크 남부 바스라 항구와 이라크 석유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루말리아 유전지대를 맡고, 미군은 바그다드로 진격하기로 역할 분담을 했다. 영국군이 이라크 남부를 맡기로 한 것은 병참 문제와 관련이 있다. 영국군은 참전부대 규모가 작아 이라크 북쪽으로 긴 병참선을 잇기 어렵다. 대규모 공습에 이어 미 해병 1사단이 쿠웨이트 국경을 넘어 진격할 때 영국군도 함께 진격할 것이다. 그런 다음 바스라 항구와 인근지역 일대를 장악하는 임무를 영국군이 맡게 된다.
영국은 식민지 종주국으로서 영국이 세운 꼭두각시 하세미트 왕조가 1958년 쿠데타로 무너질 때까지 이라크 석유 이권을 챙겼던 나라다. 바그다드 교외엔 거대한 영국군 묘지가 있다. 대영제국의 군인으로 이라크 침공전쟁에서, 그리고 그 뒤 주둔군으로서 반란에 맞서 싸우다 죽은 2000여 명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이라크 침공 당시 이라크인들의 거센 저항을 경험한 바 있는 영국군과 그런 경험이 없는 미군은 작전개념에서 얼마간 다른 입장을 취한다. 대규모 공습으로 이라크군을 압도해 항복을 받아내려는 게 미군의 전술인 데 반해, 영국은 그런 작전이 이라크인들의 반외세 감정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며 격론을 벌인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결론은 “초반 대규모 공습으로 이라크군을 강력하게 밀어붙이지 않으면, 오히려 영미 연합군 쪽 사상자가 많이 생겨날 수 있다”는 논리가 힘을 얻었다는 소식이다. 초점은 이라크 쪽 인명피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미국인과 영국인의 목숨 보호에 맞춰져 있다.
이라크전쟁에서 미국 젊은이들도 희생될 게 틀림없다. 걸프전 때 펜타곤(미 국방부) 지휘부의 관심사항도 미군 사상자 규모였다. 당시 많은 군사전문가들이 미군 사상자 규모가 클 것으로 예측했고, 일부는 “수만명선에 이를 것”이라 진단했다. 그러나 실제 사망자는 148명이었다(부상자 460명). 이번 이라크전쟁에서 펜타곤이 예측하는 미군 사망자 규모는 “수백명”이다. 그러나 (미국이 그동안 주장해왔듯) 후세인이 숨겨놓은 것으로 짐작되는 생화학무기를 사용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그것들이 실전에 쓰인다면, 미군 사상자 규모는 훨씬 불어날 것이다.
지금껏 미국은 나라 밖에서의 군사개입으로 많은 사망자를 내왔다. 주요 전쟁만 살펴보면, 제1차 세계대전에서 11만6000명, 제2차 세계대전에서 40만5000명, 한국전쟁에서 3만6000명, 베트남전에서 5만8000명이었다. 이라크전쟁에서는 얼마나 많은 인명피해가 날 것인가. 이는 이라크전쟁이 얼마나 오랫동안 벌어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전쟁 초반 미·영 연합군의 대규모 공습으로 후세인 지휘부가 붕괴돼 이라크군이 이렇다할 저항을 보이지 않은 채 항복하고 바그다드 시가전이 빨리 끝날 경우엔 사상자가 최소화할 것이다.
반대로 도시 주거밀집지역에 포진한 이라크군이 진격해오는 미·영 연합군에게 완강히 맞서면서 도시 게릴라전을 펼친다면(이는 미 중부군사령부 토미 프랭크스 대장이 꼽는 악몽의 시나리오다)? 이때는 전쟁이 단시일 내에 끝나기 어렵고, 양쪽 다 많은 사상자를 낼 것이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면서 비전투원인 이라크 국민들도 큰 희생을 당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문제는 바그다드 시가전이다. 어떻게든 시가전을 빨리 끝내야 미군 사상자를 줄일 수 있다. 사상자에 대한 미국민들의 민감한 반응 때문에라도 미군 지휘부는 바그다드 공방전에서 이라크군과의 접근전을 피하고 공습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이라크 쪽 사상자(특히 민간인 사상자)가 많이 나올 것으로 우려된다. 1985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영국의 핵전쟁 방지 국제의사의회(IPPNW)는 이라크전쟁이 3개월간 계속될 경우 25만명 정도가 사망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그러나 올해 초에 나온 유엔의 한 보고서는 50만명이 넘는 이라크인이 희생될 것이란 우울한 분석을 내놓았다.
세계적 반전여론을 무릅쓰고 이라크전쟁을 밀어붙이는 부시 행정부는 외교적으론 고립된 전쟁을 치른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34개국이 참여한 연합군을 구성, 후세인의 이라크군과 맞섰다. 물론 주력은 미군이었고, 다른 나라들은 소규모 병력 또는 후방지원이었다.
“민주화론과 해방전쟁론은 불법”
이번엔 영국군이 고작이다. 유럽의 반(反)부시 정치평론가들은 “부시가 국제연합을 이루기는커녕 그 반대로 거부(拒否)의 연합(coalition of the unwilling)에 둘러싸였다”고 비판해왔다. 그러나 부시 미 대통령은 미국의 이라크전쟁은 ‘정당한 전쟁(just war)’이라고 주장한다. 후세인이 지닌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자유롭게 하는 이른바 ‘해방전쟁’이란 논리 아래.
해방전쟁론과 더불어 부시의 이라크전쟁 추진 명분 중 하나가 ‘민주화론’이다. 후세인 독재로 신음해온 2400만 이라크 국민들을 전쟁을 통해 구해내겠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 각료들도 저마다 미국 매스미디어에 나와 민주화론을 말한다. 이슬람세계를 민주화하면, 테러도 없어질 것이란 주장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라크는 ‘이슬람 민주화기지’로 떠오르는 셈이다.
더글러스 페이스 미 국방차관은 최근 주간지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이라크가 민주적 제도를 갖춘다면, 중동 전역이 고무될 것”이라 주장했다. “이라크 해방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 해결에 도움을 줄 것”이란 부시 대통령의 주장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이 경우는 팔레스타인 민주화를 말한다. 즉 아라파트를 권력에서 내쫓고 만만한 인물로 교체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에만 중동평화협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 강경파 수상 아리엘 샤론의 지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이라크의 이웃이자 친미 왕정 독재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엔 적용되지 않는다. 민주화 논리의 허구가 바로 드러난다.
부시와 그 측근들이 내세우는 민주화 논리는 이른바 미국 신보수주의자들의 이론적 무기다.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를 논리적으로 뒷받침해온 것이 바로 이들 신보수주의 지식인들이다. 이들은 미군의 이라크 진군(進軍)을 독려하는 전쟁의 북소리(drumbeat)를 지난 몇 개월 동안 요란하게 울려왔다. 주요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강경론을 담은 책자들도 많이 나왔다. 그 가운데 많이 읽히는 것이 미 강경파 언론인(‘뉴 리퍼블릭’의 편집인 로렌스 카플란, ‘위클리 스탠더드’의 편집인 윌리엄 크리스톨)이 올해 2월 함께 펴낸 ‘이라크전쟁(The War Over Iraq)’이다.
‘사담 후세인의 독재와 미국의 사명(mission)’이란 부제(副題)가 말하듯, 이 책은 이라크전쟁을 준비하는 부시 행정부를 지지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저자들은 9·11테러가 미국으로 하여금 새로운 지도(road map)에 따라 새로운 길을 걷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해줬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길이란 미국의 이해관계와 미국적 이상(민주주의)에 따라 세계 질서를 확실히 잡아나가는 길이고, 이른바 미국적 국제주의(American Internationalism)의 길이라는 묘한 논리다.
쿠르드족 수천명이 3월4일 이라크 북부 아크라에 모여 이라크전쟁이 일어날 경우 터키의 개입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 법학자 모임인 ‘합법을 위한 교수들(The Professors for Legality)’은 “유엔 안보리의 결의를 얻어내지 못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국제법 위반”이란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법적인 국가관계란 정치지도자가 무력에 호소하는 것이 편리하다고 여길 때마다 무시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국제법이란 전쟁의 끔찍함으로부터 (약소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란 주장이다. 영국의 옥스퍼드대, 케임브리지대, 런던정경대학의 법학과 교수들도 일간지 ‘가디언’에 낸 공동기고문에서 “앞으로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불확실한 가상의 공격에 대한 방어를 내세워 선제공격을 한다는 것은 국제법상 전혀 근거가 없다”고 못박았다. 유엔헌장에 따르면, 외부의 군사적 공격을 받아 자위권을 행사하는 것말고는 어떠한 군사적 행동도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부시 행정부가 내세우는 이른바 ‘선제공격론’은 국제법상 인정될 수 없다는 게 중론. 더구나 9·11테러 공격에 후세인이 개입했다는 증거도 없다.
미국은 후세인 제거 뒤 이라크를 접수하려 한다. 서구 열강의 식민지 쟁탈 바람이 거세게 분 19세기도 아닌 21세기의 서아시아에 미국의 신식민지가 들어서게 된다. 후세인 없는 이라크 상황은 친미 인물 하미드 카르자이를 세웠던 아프간 모델과는 어느 정도 다른 모습이 될 전망이다. 부시 행정부는 1년 반에서 2년쯤 한시적으로 미국인이 직접 이라크를 다스리는 구도를 그려왔다. 그러나 미 군정설과 총독설에 아랍권이 반발하자,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은 “군정을 실시할 계획이 없으며 단기간의 치안유지 계획만 갖고 있다”고 한 발짝 물러선 상태다. 그 ‘단기간’이 얼마 동안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처음 계획했던 군정까지는 아니더라도, 민정을 미국이 주도할 계획엔 변함이 없다. 미국인 민정(과도정부) 수반은 20∼25명의 이라크인들로 이뤄진 자문위원회의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미 군정을 실시한다면, 미 중부군사령관 토미 프랭크스 대장이 군정 우두머리가 된다. 그러나 군정안이 폐기되면, 프랭크스 장군에게 주어진 임무는 이라크군 무장해제까지다. 군정 실시안에 반대하는 견해는 부시 행정부 안팎에 만만치 않았다. 파월 미 국무장관도 그 가운데 하나다. ‘워싱턴 포스트’의 보브 우드워드 부국장이 쓴 ‘전쟁 중인 부시(Bush at War)’엔 파월이 부시 대통령에게 진언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라크 전쟁이야 미국이 이기겠지만, 그 뒤가 큰 문젭니다. 일정기간 미국의 장군이 아랍국가를 다스리는 걸 상상해보십시오. 바그다드의 맥아더 장군? 이런 체제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요?”
현재 이라크 민정을 이끌어갈 ‘미국인 총독’으로 꼽히는 인물은 예비역 육군중장 출신인 제이 가너다.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과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가너는 이라크전쟁 승리 뒤 이라크 재건문제를 다루기 위해 올해 1월 미 국방부 내에 조직된 한 부서(재건인도지원처)를 이끌고 있는 인물. 재건인도지원처는 이라크 반체제인사들을 중심으로 ‘예비내각’을 짜고 미국인 고문관(advisor)들이 그들과 함께 이라크를 다스리는 방안도 검토해왔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미국이 이라크 침공 결의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시의 이라크 침공 의지가 확고하다고 보았다. 미국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에 비판적 시각을 지닌 아난 총장은 캐나다 출신 측근인 루이스 프리헤트 사무차장에게 “후세인 체제가 무너진 뒤 유엔의 역할과 관련,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관련 보고서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6인 예비조사팀이 작성한 60쪽 분량의 이 보고서의 골자는 “전쟁이 끝난 3개월 뒤 유엔이 가칭 유엔이라크원조기구(UNAMI)를 설립, 동티모르와 코소보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라크에 새 정부를 세우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이때 UNAMI를 이끌 인물로는 아프간의 하미드 카르자이 정권 탄생에 관여했던 라크다르 브라히미(68·전 알제리 외무장관)가 꼽힌다.
이같은 유엔 사무처의 구상은 미국이 그리는 구도와 근본적으로 시각을 달리한다. 유엔이 전쟁 뒤 이라크 구호·재건에 초점을 맞췄다면, 미국은 전쟁 뒤 이라크를 군정과 민정으로 최장 2년간 통치하면서 그동안 이라크 석유자원, 이라크 재건사업 계약 등으로 실속을 챙기는 쪽에 맞췄다. 전후 이라크 구도에서 미국과 영국은 다소 입장 차이가 있다고 알려진다. 미국이 이라크를 한시적이지만 직접 통치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반면, 영국은 전면에 나서기를 꺼린다. “지난날 영국 식민통치가 다시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껄끄러운 세계의 눈길 때문이다. 전면에 나서기보다 석유이권 등 실속을 챙기자는 게 영국이 그리는 그림이다.
따라서 영국은 가능한 한 빨리 유엔이 이라크 사태에 개입, 전후 재건과정을 주도적으로 맡아주길 바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라크는 동티모르 같은 작은 나라가 아니다(이라크 면적은 동티모르의 33배). 유엔의 6인 예비조사의 보고서도 “유엔이 이라크 임시정권을 이끌어가는 것이 (영미) 점령군보다는 보기에 낫지만, 유엔은 이라크 행정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기 벅차다”고 적고 있다. 따라서 유엔은 오스트리아 본회의(2001년 12월)를 열고 아프간 명망가들을 불러모아 아프간 과도정부 구성을 논의하도록 이끌었듯, 이라크도 같은 절차를 밟는 게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3월9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이라크를 탈출하려는 시민들이 시리아행 버스에 줄지어 오르고 있다.
몇 차례의 유가 파동을 거치면서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에너지 보안’ 측면에서 석유자원의 안정적 확보를 국가적 주요시책으로 꼽아왔다. 텍사스 라이스대학의 제임스 베이커 공공정책연구소(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제임스 베이커가 설립)의 한 보고서는 미국이 점차 에너지 보안 문제로 위협받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특히 이라크와 이란을 중동석유의 안정적 공급을 위협하는 주범으로 지목했다. 이 보고서는 후세인이 군사력을 동원해 (1990년 쿠웨이트 침공 때처럼) 미국의 석유 수송로를 위협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같은 보고서 작성을 의뢰한 인물은 바로 백악관 에너지 정책개발팀을 이끌고 있는 딕 체니 부통령이다.
이라크전쟁을 읽는 코드는 석유다. 미국과 영국은 바그다드에 통제가능한 친서방 정권을 세워 중장기적 전망에서 값싼 석유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싶어한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다 심각한 문제는 갈수록 미국의 석유 해외의존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미 에너지부가 올해 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에는 미국의 석유 해외의존도가 70%에 이를 전망이다(2년 전 발표로는 55%였는데, 70%로 상향조정됐다). 전세계 석유자원의 70%가 묻혀 있는 중동으로 미국이 눈을 돌리는 것은 그런 이유로 이해된다.
따라서 이라크전쟁을 비판적으로 보는 이들은 “이라크전쟁의 본질은 곧 석유”라고 말한다. 부시 대통령과 영국의 토니 블레어 수상이 이라크에서 원하는 것은 석유라는 얘기다. 후세인 정권을 뒤엎고 이라크에 친미정부를 세우면, 값싼 석유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이를 통해 OPEC를 장악, 국제 석유가를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
석유이권 독식 가능할까
이라크의 석유 매장량은 1120억배럴로 2650억배럴의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다. 이라크산 원유는 질이 좋고 유정(油井)이 깊지 않아 채굴 단가도 배럴당 1달러 아래(97센트)로 다른 산유국에 비해 낮다(사우디 2.5달러, 북해산 3∼4달러). 걸프전 뒤 유엔의 경제제재와 관련한 이른바 ‘석유식량 프로그램(Oil-for-Food Program)’에 따라 일일 생산량이 최대 200만배럴로 제한돼 있지만, 이라크의 일일 생산능력은 280만배럴이다. 현재 이라크는 주로 두 곳의 유전에서 원유를 캐내고 있다. 북부 키르쿠크 지역에서 하루 70만배럴, 남부 루발리아 지역에서 하루 125만배럴이다.
후세인은 그동안 석유를 국제 로비에 활용해왔다. 유엔의 경제제재를 완화하고 하루라도 빨리 규제를 풀기 위한 로비의 일환으로,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인 러시아·프랑스의 석유기업들과 이라크 유정 개발계약을 맺어왔다. 러시아의 LUKoil, 프랑스의 TotalFinaElf는 언젠가 유엔 경제제재가 풀릴 경우 이라크의 검은 황금알을 캐낼 수 있는 계약권을 여러 건 따냈다. 계약규모 면에서 러시아·프랑스에 비해 훨씬 작지만 중국의 인민석유공사도 1997년 알-아흐다브 유전 개발계약을 맺었다. 후세인이 이라크의 권력을 잡고 있는 한 미국과 영국 석유기업은 ‘찬밥’ 신세다. 따라서 후세인 체제의 붕괴 소식은 영미 석유 메이저들에겐 복음(福音)이다.
그동안 미국의 석유 메이저들은 전쟁 뒤 이라크의 ‘검은 황금’을 차지하려 움직여왔다. 이들 회사들은 이미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이라크 망명자단체인 이라크민족의회(INC) 지도자 아흐메드 찰라비와 접촉, 앞날에 이들 기업들이 누릴 ‘특혜’에 대해 합의를 본 것으로 알려진다.
양대 석유회사인 셰브론 텍사코(일일 판매량 400만배럴, 2000년 Energy Intelligence Group 통계자료)와 엑손 모빌(800만배럴) 등 미국의 주요 석유회사들은 이라크전쟁 뒤 석유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고 치열한 물밑 로비활동을 펴온 것으로 알려진다. 여기에 영국과 네덜란드 합작회사인 로열 다치 쉘(일일 판매량 560만배럴)도 토니 블레어 정권에 줄을 대고 있다. 이들 석유 메이저들은 전후 이라크의 유정개발에도 배타적 독점권을 따낼 것으로 보인다. 영미 석유 메이저들이 가격담합에 나설 경우 폭리를 취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럴 경우 후세인 정권이 프랑스 석유기업 TotalFinaElf, 러시아의 LUKoil, 중국의 인민석유공사 등과 맺은 유정개발 계약은 백지화될 수도 있다. ‘워싱턴 포스트’의 칼럼니스트 찰스 크러새머 같은 이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해온 프랑스를 “이권 분배에서 소외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상황에서 프랑스가 석유 이권과 관련한 어떤 계약도 맺게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냉엄한 국제정치 논리로 보더라도 미국이 이라크 석유자원을 독식하긴 쉽지 않다. 부시 행정부는 프랑스·러시아와 타협점을 찾으려 들 것이다.
되풀이하지만, 이라크전쟁을 읽는 코드는 석유다. 영미의 침공을 반대하는 프랑스와 러시아의 배경도 절반은 석유 이권이다. 그렇지만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전쟁이 석유 때문”이라는 비난을 부인한다. 후세인 체제가 붕괴한 뒤의 이라크 운영과 관련, 미 국무부는 15개의 팀을 꾸려 정지작업을 해왔다. 그러나 국무부 대변인 그레그 설리반은 “그 어느 팀도 이라크 석유자원 처리에 관한 안건을 다루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라크전쟁이 석유 때문이라는 외부 세계의 비난을 의식한 발언이다.
이라크전쟁과 관련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유가 폭등이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를 비롯, 지금까지 여러 연구기관들의 분석으로는 이라크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1배럴당 80달러까지 치솟는다는 것. 이라크전쟁 위기가 높아지면서 이미 40달러를 넘어선 유가는 한국을 비롯한 비산유국 경제를 심각한 수준으로 위협하고 있다.
부시와 블레어는 세계가 다 함께 겪을 이런 단기적 위험쯤엔 눈감을 태세다. 석유 장악으로 인한 중장기적 이해관계에 대한 기대치 때문. 그러나 후세인이 강력히 저항하고 이라크 민중이 게릴라전으로 저항해올 경우 부시의 이라크 침공은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9·11테러 뒤 안 그래도 어려운 미국경제에 치명타를 입히는 시나리오는 부시로선 악몽일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2004년 재선도 물 건너간다.
미국 석유업자 위한 대학살
쿠르드족은 끊임없는 분쟁으로 얼룩진 서글픈 역사를 갖고 있다. 이라크 인구 2400만명 가운데 15∼20%(미 CIA 2002년 통계자료)를 차지하는 이들은 1991년 걸프전 직후 후세인 체제에 반란을 꾀했지만 큰 희생만 치른 채 독립국가의 꿈을 이룰 수 없었다(서아시아 일대에 퍼져 사는 쿠르드족은 인구 3000만명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서 독립국가를 갖지 못한 비운의 민족이다).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터키, 시리아, 이란 등 주변국가들은 쿠르드족의 염원인 쿠르디스탄이 지도상에 나타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게다가 쿠르디스탄 민주당(KDP)과 애국 쿠르디스탄 연합(PUK)으로 갈려 있는 상황이다. 미국도 현재와 같은 국경선 변경을 바라지 않는다.
이라크전쟁의 혼란 속에서 쿠르드족이 북부 유전지대인 키르쿠크를 점령하거나 바그다드에 무장병력을 보내는 것도 미국은 허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이제 쿠르드족은 이라크전쟁으로 인해 그나마 누려오던 자치권이 훼손되지나 않을까, 후세인 체제 붕괴로 바그다드로부터 오던 ‘석유식량 프로그램’에 따른 재정지원이 끊겨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지나 않을까, 전쟁으로 인한 난민 홍수를 미리 막는다는 구실로 숙적인 터키가 쿠르드 지역으로 군대를 파견하지나 않을까 등등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전쟁은 난민을 낳는다. 국제난민 구호기관인 유엔 난민구제고등판무관(UNHCR)은 200만명에 이르는 대량 난민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한다. 대부분은 이른바 지역내 난민(Internally Displaced Persons, 약칭 IDPs)이지만, 약 60만명에 이르는 난민들이 이웃 나라들로 피난을 떠날 것이다. 대다수는 이라크와 국경선을 길게 맞댄 이란으로, 나머지는 요르단, 시리아, 터키, 쿠웨이트, 사우디로 고단한 발걸음을 옮길 것으로 보인다. 전쟁중에 겪을 식량난도 문제다. 이라크 국민 가운데 60% 가량이 유엔의 ‘석유식량 프로그램’에 따라 유엔 구호기관에서 배급하는 식량에 의존해 산다. 이라크전쟁은 이런 유엔의 활동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이처럼 이라크전쟁은 많은 이들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 주범이다. 그 반대로 득을 보는 집단도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지적대로라면, 미국의 군수산업과 석유회사들이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전쟁을 밀어붙이는 것은 미국의 군수산업과 석유회사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만델라의 이라크전쟁 반대론이다. 부시가 미국 군수산업과 석유회사들의 이익을 위해 학살을 저지르는 오만함을 보이고 있다는 게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통렬한 비판이다. 같은 노벨상 수상자인 지미 카터의 휴머니즘 반전 논리와는 억양부터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