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호

“동아시아는 여전히 금융협력보다 안보가 우선”

안보 협력과 진정성, CMIM 성공 필요조건

  • 글·벤저민J.코헨| UC 샌타바버라 국제정치경제학과 교수 번역·강찬구| 동아시아재단 간사

    입력2011-07-20 17: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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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를 아우르는 금융안전망이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MIM)’ 체제로 모습을 갖췄다. 지난해 3월 공식 발효된 CMIM의 공동기금 규모는 총 1200억달러. 회원국에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 단기 유동성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CMIM 체제를 뒷받침할 지역 감시기구인 ‘아세안 거시경제조사기구(AMRO)와 역내 채권발행보증기관인 ‘신용보증투자기구(CGIF)’도 곧 출범한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에 대한 첫 제안은 외환위기로 아시아 경제가 휘청거리던 1998년에 나왔지만, 각국 재무장관 회의 등을 거치며 13년간 더딘 걸음 끝에 CMIM이라는 모습을 갖춘 것이다.

    그렇다면 유독 안보 긴장 상황이 자주 빚어지는 아시아에서 CMIM은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나아가 동북아의 협력을 공고히 이끌어낼 수 있을까. UC 샌타바버라의 국제정치경제학과 교수인 필자는 동아시아지역 금융통합 움직임은 역내 안보 긴장과 공동의 정체성 부족으로 인해 대부분 상징적인 선에 머물고 말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을 뛰어넘고자 하는 정치적 의지가 뒷받침된다면, 금융지역주의를 향한 아주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동아시아 국가들이 현재의 안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내다본다. ‘글로벌 아시아’ 2011년 여름호 기고문을 번역, 게재한다.


    동아시아 지역의 금융지역주의와 안보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는 동인(動因)은 무엇인가? 동아시아 금융 협력은 이론적으로는 오래전부터 추진되어왔지만 실제로는 역내 안보 긴장 탓에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각국 상호간 보다 밀접한 통화 및 금융 관계 실현을 위한 임시적 조치들이 실행된다면 역내 안보 긴장을 완화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경우 각국 정부가 상호 공조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게 되고 서로의 국익이 보다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내 금융지역주의 실현을 위한 노력은 계속되겠지만, 역내 국가들의 근본적인 정치적 변화가 담보되지 않는 한, 향후 이러한 노력을 통한 성과는 아주 미미할 것이다.

    현재까지 동아시아가 일궈낸 괄목할 만한 성과는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다. CMI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 회원국과 한국, 중국, 일본을 합친 ASEAN+3 회원국들의 합의 하에 2000년 5월 출범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탄생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는 양자 간 통화스와프협정(BSAs)을 통해 상호 유동성 지원의 근간을 마련했다.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



    스와프협정(swap agreement)은 중앙은행끼리 주로 환시세(환율)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서로 자국 통화를 예치할 수 있게 하는 협정을 말한다. CMI의 본 스와프협정은 기껏해야 600억달러 규모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초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MIM)라는 명칭 아래 모인 기금 규모는 1200억달러에 달했다. 이 기금을 통해 한 회원국이 필요로 할 때 동원할 수 있는 유동성이 커졌다. 이로 인해 CMIM이 역내 국가 간의 보다 밀접한 금융 통화 관계를 설정하는 근간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커졌다.

    중요한 것은 CMIM이 새로운 공동 의사결정 프로세스 구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동기금이 양자 간 스와프협정을 대체한다면, 자금 확보에 대한 결정은 다수결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지역적 금융 통합을 향한 진일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과장된 감이 없지 않다. 현재의 양자간 통화스와프협정을 통해 기금규모가 확대되긴 했지만, 향후 예상되는 필요 액수에 비하면 현재 기금 규모는 여전히 작다. 게다가 현재의 지배구조 역시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전원 합의 방식을 근거로 해 각국 국권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이 적용될 것이다. 각국 정부 역시 독단적인 행보를 취하면서 통화 및 환율 정책을 자국의 입맛에 맞게 펼치는 행태가 지속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돈은 각국 중앙은행의 국가보유고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CMIM이 다분히 상징적인 성격이 짙고 기껏해야 국가 간 최소한의 친선 행위에 불가하다는 인상을 면하기 힘들다. CMIM의 실질적인 영향력은 눈에 띄지 않으며, 출범한 지 10년이 넘은 현재까지 회원국 어느 누구도 CMI(치앙마이 이니셔티브) 혹은CMIM(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을 통해 대출을 받은 사례가 없다.

    “동아시아는 여전히 금융협력보다 안보가 우선”

    2010년 10월29일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 이날 회의에서는 상호 유동성 지원을 골자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MIM)’체제 등이 논의됐다.



    현재까지의 이 미미한 성과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논의가 경제에 초점을 두고 동아시아의 경제 주체들 사이에 존재하는 구조 및 제도적 차이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의지만 충분하다면 이러한 장애 요인들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정치에 있다. 잠재적인 위협요소들, 혹은 분쟁에 대한 우려와 같은 안보 긴장으로 인해 각국은 운신의 폭을 최대한 넓히기 위해 애를 쓴다. 동아시아 금융지역주의를 논하는 데 있어 현존하는 경쟁의식과 적대감을 완화시키지 않고서는 결코 진전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정치

    “동아시아는 여전히 금융협력보다 안보가 우선”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글로벌 경기침체로 번지는 신호탄이었다.

    동아시아는 역사적 적대감이 여전하고 국경 분쟁도 심각하다. 이로 인해 공동체 의식이나 공동의 이익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반도 분단 상황이나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문제 등은 굉장히 민감하면서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또한 동아시아 지역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중국과 일본 사이의 경쟁도 계속되고 있다. 갖가지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각국이 자주권에 제약을 가할 수 있는 대대적인 금융개혁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는 점은 이해될 법도 하다.

    모든 금융협력은 자연히 개별 주권 국가의 이해와 상반될 수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2가지 필요조건을 꼽을 수 있다. 하나는 모든 국가가 동의할 수 있는 계약을 근거로 공동의 노력이 효과적으로 작용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하나의 강대국, 혹은 힘을 합칠 수 있는 두 강대국이 존재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각국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치러야 하는 비용에 상관없이 각국의 자주권을 희생할 수 있을 만큼의 탄탄한 동맹과 의지가 존재해야 한다.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듯, 이 두 조건 중 하나가 충족되어야 각 국가 사이의 약속이 꾸준히 이행될 수 있다. 문제는 동아시아가 처한 상황에서는 이 두 가지 조건 중 어느 하나도 실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선 일관된 리더십이 없다. 예컨대 중국과 일본 사이에는 법적 차원에서 국가 상호 간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점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두 나라가 공조해 지역을 이끌어가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두 나라 간의 신뢰가 부족한 탓에 상호 격렬한 언쟁과 의심이 넘쳐난다. 두 나라 모두 상대방에게 더 큰 영향력 혹은 특권을 내주게 될지 모르는 공동의 구상에 몸을 던지려 하지 않는다.

    또 한 가지는, 역내 진정성 있는 확고한 유대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쉽게 말하면 동아시아에는 동질감이 없다는 것이다. 지리적인 요인 말고는 동아시아 국가들을 한데 엮을 수 있는 요소가 거의 없다. 오히려 여러 요인이 합쳐져 서로를 멀어지게 만든다. 언어, 종교, 이념, 사회 구조 등이 그 예이고,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의 유물 또한 한몫하고 있다. 이러한 잔재는 우호라는 개념과는 상극이기에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불신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까지 금융지역주의가 가져온 성과가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다는 점은 놀랄 만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 필요조건들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그 공백이 더 눈에 띄는 것이다. 정치적 의지가 부족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행동을 통한 변화

    하지만 정치적 의지란 불변의 것은 아니다. 행동함으로써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무엇보다도 원인과 결과를 역으로 따져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안보 긴장 문제가 동아시아 국가들을 망설이게 하지만, 미래에는 다를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각국 정책결정자들에게 금융 협력을 위한 임시적인 조치들이 주는 혜택을 알게 하고, 이들을 사회화(socialization)함으로써 지역 간 갈등을 완화시키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각국 정부는 안보에 대한 우려를 재고하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해 ‘선순환(virtuous circle)’의 금융 정책들을 추가로 탄생시키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실제로 국가 간의 협력이 CMI나 CMIM과 같이 제도화로 이어지면 자연히 사회화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의 열쇠를 찾는 데 있어 각국 정책결정자들의 공조가 많이 이루어질수록, 과거부터 매달려온 서로를 향한 의심에 더 이상 목을 맬 이유가 없어지게 된다. 점차적으로 서로를 향한 조롱과 우려는 상호 신뢰로 대체되고, 궁극적으로 보다 포괄적인 구상들이 탄생하게 된다.

    이러한 식의 사회화가 동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사실, 금융 문제 해결을 위해 역내 회의가 빈번하게 열리는 상황에서 태도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분명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고, 이를 통해 공동 운명체 의식이 조용히 자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화 자체가 결정력을 갖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화란 굉장히 점진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변화에 대한 거부 반응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폭제가 필요하다. 1997~98년 아시아 금융위기나 오늘날의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같은 예기치 못한 어려움은 사회화의 기폭제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국제관계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위기가 지닌 긍정적인 역할의 가능성을 언급해왔다. 여러 학자는 ‘웨이지(危機)’, 즉 위험과 기회라는 의미의 두 글자로 이루어진 이 단어에 주목했다(여기서 ‘지(機)’는 보통 ‘결정적 분기점’의 의미로 더 많이 해석된다). 위기가 발생하면 적어도 잠시 동안은 협력이 주목을 받게 되고, 따라서 치앙마이 경우처럼 그동안의 구상들은 제도화된다. 이러한 구상들은 광범위한 안보 문제가 설정한 한계선을 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일정 수준의 협력이 제도화되면, 상호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를 관통해 흐르던 의심은 약화되고 추가적인 금융 정책들이 양산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다.

    위기가 가져다주는 혜택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와 같은 역학관계가 동아시아에서 지속되는 듯하다. 10년 전, 금융 지역주의에 대한 관심을 촉발하는 데 있어 위기는 그 몫을 톡톡히 해냈다. 마찬가지로, 2007~08년에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로 인한 충격이 2010년에 CMIM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제공했다. 두 예를 통해 보다시피, 금융위기로 인해 감지된 위협 요인은 각국 정부들이 행동을 취하게 할 만큼 강력했다.

    이러한 패턴이 다시 반복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물론 일어나는 과정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예컨대, 이러한 과정은 어떠한 사건들의 반복에 의존하지만, 그 사건들의 발생 빈도와 시기는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위기가 진행되는 중에도 안보에 대한 우려 때문에 새로운 금융협약을 만들어내는 데 있어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위협이 상존하는 세계에서 한 국가의 안보 문제는 언제나 최우선적 고려 사항이기 때문이다.

    사회화 효과를 통해 CMI, CMIM 등의 구상이 향후 협력 강화를 막는 장애물을 없애는 데 일조할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아주 단편적이면서도 극도로 느리게 진행될 것이다. 동아시아 정치에 있어 진정성이 깃든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서는, 지역 금융을 통해 축적한 성과들은 미래에도 미미할 수밖에 없다.

    (영어 원문은 http://www.globalasia.org/V6N2_Summer_2011/Benjamin_J_Cohen.html 참조)

    * ‘Global Asia’는 동아시아재단이 발간하는 국제문제 전문 계간 영문저널이다. ‘21세기 아시아가 열어가는 세계적 변화의 형성과정을 주목한다’는 기조하에 아시아 지역 주요 현안에 관한 각국 전문가와 정책결정자들의 공론장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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