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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전사 15인이 말하는 ‘6월의 붉은 전설’

“우리는 축구가 아니라 전쟁을 치렀다”

태극전사 15인이 말하는 ‘6월의 붉은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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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제는 끝났다. 히딩크 감독은 네덜란드로 떠나고, 태극전사들은 소속팀에 복귀했다. 거리를 가득 메웠던 축구팬들이 이번엔 K리그에 열광하고, 유럽의 축구 선진국들이 한국식 압박전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한국축구가 언제 또 히딩크 신화를 재현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2002년 6월의 신화는 세계 축구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그들이 달성했던 4강 진출은 물론이고, 그들이 보여준 땀과 눈물, 투혼과 영혼까지도….
히딩크 감독은 네덜란드로 돌아가고, 대표선수들은 저마다 프로무대와 해외의 소속팀으로 복귀해 다시 땀을 흘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2002년 6월 태극전사들이 연출한 월드컵 4강신화의 감동과 흥분은 축구팬들의 가슴에 여진으로 남아있다.

경기장과 도심을 붉은 물결로 수놓으며 72년 월드컵사를 새로 쓴 태극전사들의 투혼은 다시금 그날의 명승부를 생각나게 한다. 그것은 다시 볼수록 더욱 선연하게 각인되는 한 편의 아름다운 영화다. 저마다 붉은 색 옷으로 치장하고 시청 광화문 공원 할 것 없이 수백만의 응원물결을 이루었던 축구팬들에게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말들이 전혀 꾸밈 없어 보일 정도로 국민들 가슴에 벅찬 감동의 물결을 일으켰다.

외신들이 21세기 세계축구의 지각변동이 한국에서 시작됐다고 타전할 만큼 한국팀의 경기는 짜릿했다. 1년 6개월 동안 히딩크 감독의 지휘 아래 강행군해온 태극전사들의 땀과 눈물을 보상받는 값진 승리였다. 그러나 태극전사들의 4강신화가 빛나는 것은 어떤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투지와 집념 때문이다. 그만큼 영광에 가려진 고비도 많았다. 한번 삐끗하면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냉정함을 잃지 않고 끝까지 목표를 이루려고 분투한 태극전사들의 집념과 도전정신은, 월드컵이 국민들에게 가져다준 최대의 긍지요, 자신감일 것이다.

2002년 6월, 신화를 창조한 영광의 태극전사들은 어떤 느낌에 빠져들었을까. 그들이 체험한 환희와 탄식, 영광과 좌절을 되새겨본다면 ‘오, 필승 코리아’의 함성과 ‘대~한민국’의 엇박자 메아리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까.

마지막 키커 홍명보



2002한일월드컵 MVP 결선투표에서 3위를 기록하며 아시아선수로는 최초로 ‘브론즈볼’수상의 영광을 차지한 ‘아시아의 베켄바워’ 홍명보(33·포항).

그는 유상철과 더불어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올스타’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A매치 134회 출전으로 한국 최다 출전기록도 갖고 있는 홍명보,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 대표팀 막내로 출전한 뒤 4회 연속 월드컵 본선무대를 밟으며 16게임 연속 출장한 것도 아시아 최다기록이다.

그런 화려한 경력으로 사실상 마지막 월드컵 무대에서 그가 맛본 최고 환희는 과연 어떤 순간이었을까.

6월22일 스페인과의 8강전. 연장까지 가는 120분 사투에도 0의 행진을 깨지 못하고 접어든 승부차기. 홍명보는 마지막 다섯번째 키커로 나섰다. 이운재가 스페인의 네번째 키커 호아킨의 공을 막아냈기에 그가 성공시키면 4강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모두들 숨을 죽였다. 이운재의 선방에 얼싸안고 환호하던 동료들도 다시 숨을 고르고 어깨동무했다. 히딩크 감독은 냉정한 눈초리로 홍명보의 발끝을 주시했다.

정적이 깨졌다. 골네트가 출렁거리자 빛고을의 붉은 함성은 하늘을 찌를 듯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지구촌이 경악하는 순간이었다.

어깨동무를 한 채 깍지까지 끼었던 태극전사들은 손을 풀고 모두들 홍명보에게 달려갔다. 양손을 펼치고 벤치로 달려가는 홍명보의 환호작약. 그 표정에는 그동안 태극전사들이 흘린 피와 땀, 눈물이 한꺼번에 오버랩됐다. 그리고 동료들과 부둥켜안고 엎어지고 넘어졌다.

“내 인생에 월드컵 4강이란 게 있었나 없었나, 정말 기뻤다.”

평소 웃음이 많지 않던 홍명보지만, 이날만큼은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을 지나가면서 환하게 웃었다. 꿈에도 그려보지 못했던 월드컵 4강신화가 그의 발끝에서 완성됐던 것이다.

히딩크 감독은 홍명보를 신뢰했던 모양이다. 그는 스페인전을 하루 앞둔 마무리 훈련에서 “마지막 승부차기는 명보가 차라”고 지시했다.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있을 때 히딩크가 길러낸 제자가 스페인 대표팀의 수문장 카시야스다. 히딩크의 첫째 지시. “카시야스가 왼손잡이이니 모두 오른쪽으로 차라.” 히딩크는 또 “카시야스가 왼손잡이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넘어질 때는 손으로 해결하고, 왼쪽은 왼발을 뻗어 커버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래서 되도록 허리 높이 이상으로 차라는 특명이 내려졌다. 한치도 틀리지 않은 분석에 홍명보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 잊지 못할 순간은 또 있었다.

“폴란드와의 첫 경기에서 선홍이가 첫 골을 넣었을 때였다. 16강전에 올라갈 수 있다는 느낌이 팍 왔다. 그리고 2대0으로 끝나는 순간 멍했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잠시 후 후배들이 달려왔다. ‘진짜 이겼구나’ 하고 실감이 났다. 한동안 닥치는 대로 마구 부둥켜안았다.”

그리고 그라운드를 나오자마자 전화기를 찾았다. 아내(조수미씨)에게 기쁨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전화는 통화중. 계속 버튼을 눌러댔다. 버스에 탄 뒤에야 터졌다. “나, 이겼어!”

미국전에서 안정환이 동점골을 넣었을 때는 속이 후련했다. 미국전 전날 훈련이 끝난 뒤 선수들에게 농담 한마디 던진 게 현실로 나타날 줄이야. “내일 골 넣는 사람이 오노 골 세리머니를 하는 게 어때?”

이날 저녁 김원동 프로축구연맹 사무국장으로부터 “오노 골 세리머니를 하면 속이 시원하겠다”는 얘기를 듣고는 귀가 번쩍했다. 스케이트를 타는 안정환, 그 옆에서 어색하게나마 뻔뻔스런 오노의 흉내를 내는 이천수를 멀리서 바라보며 목이 터져라 소리를 내질렀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만큼 속이 후련한 적은 없었다.”

기억하기 싫은 순간은 터키와의 3·4위전.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는 긴장감이 너무 컸던 탓일까. 휘슬이 울린 지 불과 11초. 유상철이 건네준 볼을 잡아서 처리하려다 볼에 미끄러졌다. 순간 달려들던 터키의 장신 스트라이커 쉬퀴르가 휙 낚아채더니 골문 안으로 차넣었다. 1962년 칠레월드컵에서 체코의 마세크가 멕시코전에서 15초 만에 명중시킨 월드컵 최단시간 골기록을 경신하는 빌미를 제공했으니, 허망할 수밖에. 그것도 볼에 미끄러지는 어이없는 실수로….

그는 경기 뒤 “절정의 순간에서 떠날 수 있어 홀가분하지만, 집중력이 떨어져 골을 허용해 아쉽다. 이제는 후배들이 이 자리를 대신할 때다”라고 마지막으로 아픈 기억을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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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석 < 스포츠서울 축구부 기자 > hans@sport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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